EP.214 이십장 - 충돌, 격류 (20)
* * *
흑백의 광풍이 휘몰아친다.
목리원은 스스로의 몸상태조차 잊고 그속으로 다가가려 했다.
“원아! 안 된다!”
마일석이 말린다.
그럼에도 목리원은 낑낑대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가야… 합니다!”
천살성이 죽음을 감지했다.
본디 이렇게까지 예민하지 않았던 별이 이리도 날뛰는 이유는 이미 한계까지 몸이 별에 잠식당한 이유이리라.
아니, 뭐가 됐든 좋다.
목리원은 별이 이르는 목선오의 죽음을 막는 것 외에 무엇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가면 네가 죽는단 말이다!”
마일석이 기어코 목리원을 말리는 데 성공했다.
폭풍이 더욱 거세진다.
이제 목리원은 저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아….”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였다.
찌푸려지는 얼굴은 완연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아…!”
절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선은 직감했다.
‘최후의 일수로구나.’
저것이 검성의 최후, 그리고 최강의 한 수이리라.
찬란히 빛나는 별무리가 그의 심상 위로 덧씌워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발하는 빛이 시리도록 희게 명멸하다, 일순 암흑으로 물들었다.
‘지금!’
이선은 주먹을 뻗었다.
저 검을 꺾겠다는 의지 하나로, 쌓아온 모든 과거와 마선으로서의 미래를 저당잡은 일권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그렇게 충돌,
“끄학…!”
이선은 피를 토하며 씨익 웃었다.
승부의 결과가 났다.
“동귀어진인가.”
목선오가 선 채로 우뚝 멎어있었다.
그에게선 더 이상 티끌만큼의 공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직전의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담아낼 작정이었는지, 그의 늙은 낯짝은 처음 대면했을 때와는 비교하는 것이 실례가 될 정도로 늙어 있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은 이선의 하나 남은 팔이었다.
이선은 고개를 떨궜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대각으로 깊게 파인 자상.
이것이 바로 목선오가 발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그냥 자상이 아닌, 천마 이선을 꺾겠다는 의지 하나로 생을 걸어 남긴 자상이다.
심검의 진정한 공능은 물리적인 해가 아닌 영혼에 남는 상처를 남기는 것에 있음이니, 이선은 더 이상 생을 이어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휘이이―
바람에 머리칼이 나부낀 후에야 이선은 제 머리칼이 새하얗게 물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탈력감이 뒤늦게 전신을 덮친다.
몽롱함과 해방감이 가슴속을 꿰뚫는다.
“훌륭한 수였다. 협객.”
씨익 웃자, 목선오가 답했다.
“…당신이야말로.”
그렇게,
털썩―
목선오가 쓰러졌다.
이선은 쓰러진 목선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러다 하늘을 바라봤고, 얄미울 정도로 청명한 하늘이 보여 이선은 속으로 읊조렸다.
‘무엇을 내려다보느냐.’
내 결국 하늘에 닿지 못함을 비웃기라도 할 심산이더냐?
한데 이를 어쩔까.
네놈들의 하늘에 닿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투쟁을 이미 끝마쳐버린 것을.
생애 내도록 이토록 후련한 적이 또 없었음에 그의 얼굴엔 안락함이 가득한 미소만 떠올라 있었다.
“위광천.”
그를 부르자, 답이 돌아온다.
“…예.”
“화장하라.”
“….”
“나를 화장하라.”
이선은 위광천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절망감과 분함, 그리고 원망 따위의 감정이 얽혀 있었다.
이선은 저런 얼굴을 알았다.
닿지 못할 것을 향한 갈망이었다.
하나, 그의 감정을 신경 써 줄 정도로 이선은 성격이 좋은 사람이 못 됐다.
“나를 화장하라. 매장되는 것은 곧 땅에 몸을 뉘이는 일이니.”
천마라는 이름은 무릎을 꿇어선 안 되는 이름이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두 발로 오롯이 서 세상을 오시하는 이름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죽음으로 합당한 것은 하나였다.
“나를 화장하라.”
이선은 말을 끝마쳤다.
뒤늦게야 숨이 찬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이대로 고꾸라질 것이 분명함에,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겨우 몸을 세웠다.
양팔이 떨어져 나간 시체의 꼴이었다.
하나, 이선은 개의치 않았다.
“이것으로 나의 투쟁은 끝을 맺었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난 생을 돌이켜, 그 삶의 흔적된 투쟁을 돌이켰다.
주마등이었다.
‘생사결.’
모든 승부에 생사를 걸어냄에 생사결.
생명을 불길을 태우는 투쟁이기에 생사결.
그런 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후회는 없음이라.
‘흡족하다.’
도리어 충만함으로 가득한 삶이었을지라.
총 2713전.
2712승(勝) 0패(敗).
그리고 1무(無).
천마(天魔) 이선은 그리도 이름에 걸맞는 승부를 해내고,
“…존명.”
선 채로 숨을 거뒀다.
*
마일석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함에도 채 참아내지 못한 슬픔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왜 마일석이라 해서 목선오를 말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목리원만큼, 어쩌면 목리원보다 더 그를 말리고 싶은 것이 바로 마일석이었다.
그럼에도 끝끝내 목선오의 끝을 지켜본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아는 목선오는 대의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사내인 까닭이다.
천마를 막을 사람이 본인밖에 없음을 알기에, 스스로 해낸 맹세조차 깨고 이리 강호에 나온 사내다.
인간으로서가 아닌 무인으로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도리어 그를 존중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물러가마.”
위광천이 선 채로 죽은 천마의 시신을 안아 들었다.
흠칫, 마일석은 몸을 떨었다.
위광천 때문이 아니었다.
품속의 목리원이 뿜어내는 살기가 마일석도 놀랄 정도로 짙었기 때문이다.
“원아…!”
다그쳐본다.
목선오가 아직 쓰러져 있다.
이곳에서 싸운다면 필시 목선오의 시신을 해치게 되리라.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목리원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리라.
불완전한 초월이다.
성련의 금기조차 깨버리고 이룩한 초월이니 목리원의 몸은 지금도 시시각각 망가지고 있었다.
목리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위광천을 보내는 게 맞았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위광천은 그리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목리원이 날뛰기 시작했다.
“멈추지 못할…!”
“원아!”
마일석은 다시 한번 목리원을 말렸다.
그리고 목선오에게로 다가갔다.
마일석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숨이…!’
아직 끊기지 않았다.
“형님이 살아계시다!”
목리원에게 곧장 말했다.
목리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는 시뻘건 눈동자를 한 채로 허겁지겁 목선오에게로 달려왔다.
“스승니이임!!!”
눈물로 얼룩진 목리원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처참했다.
꺽꺽 울며 목선오를 흔드는 몸짓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마일석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함을 깨달았다.
“어서 안으로 모시자꾸나!”
그대로 목선오를 업었다.
그리고 내달렸다.
그를 치료할 수 있을 만한 이들이 있는 자리를 찾아서.
*
전쟁은 그리도 많은 생을 앗아갔음에도 승자가 없었다.
천마의 죽음과 동시에 모든 마인들이 신강 너머로 후퇴한 까닭이다.
후퇴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온 의견이 있었다.
“쫓아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저들을 잡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당연한 의견이었다.
전장은 검성이 천마를 물러가게 하며 확실히 승세로 접어들었다.
그대로 끝까지 갔다면 아마 승리는 중원 무림에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맹주인 사백운은 진군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소.”
비단 무인들의 죽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호의 별이 졌소.”
이 강호를 비춰주던 가장 큰 별이 졌다.
스스로의 생을 불태워 암운을 걷어냈다.
“그렇기에 진군해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그렇기에 멈춰야 하오.”
어찌 사백운이라 하여 이리 미진한 결과를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미 전쟁을 겪어본 사백운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대로 갔다간 희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오.”
신강 너머로 그들을 추격한다면 마교를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마교를 멸망시키려 모든 군대를 보냈다간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었다.
“중원무림의 적은 마교만이 아니오.”
흑사련이 있다.
북쪽의 오랑캐가 있었으며, 남만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중원이 약해지기만을 바란다.
언제고 이 중원을 탐하려 입맛을 다시고 있다.
마교 하나를 멸문시키겠다고 전 중원의 병력을 그리 사지로 몰아넣었다간,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없게 된단 말이다.
그제야 돌격을 명하는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사백운은 가슴 속이 저며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득한 절망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결국….’
무엇도 이루지 못했으니, 이는 패배라 일러야 할 것이다.
“…정비하시오. 청해의 경계는 늦춰선 안 될 것이나, 먼저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들의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어야 하오.”
그리 말하고 사백운은 자리를 떴다.
무림맹 청해 지부, 그 최심부로 들어섰다.
작은 전각이 그곳에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검왕 남궁혁과 살성 염소소였다.
“…검성께선 어떠시오.”
사백운의 물음에 두 남녀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목숨이 붙어있어 이곳까지 왔다 했으나, 목선오는 이미 선천진기까지 모두 끌어쓴 탓에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원동력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염소소의 말에, 사백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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