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11화 (211/334)

EP.212 이십장 - 충돌, 격류 (18)

* * *

먼저 천마와 목선오에게로 도달한 것은 위광천이었다.

혹여 천마가 패배할까.

그것이 두려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를 막겠다 다짐했으나, 우습게도 자리에 온 위광천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쿠과광!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비산한다.

그 위로 위광천으로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극에 달한 수가 오간다.

기의 발출, 물리적인 충동.

그런 수준의 전투가 아니었다.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작 초월 ‘따위’로는, 저 둘 사이에 낄 수 없었다.

‘이건….’

의지와 의지의 싸움이라 해야 할 터다.

심상과 심상의 충돌이라 해야 할 터다.

무력감이 위광천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지금 오가는 공방을 티끌만큼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멀었다.

초월을 넘어섰다는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순간 위광천은 늪에 가라앉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도저히 저 경지까지 닿을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것보다 위광천을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이 있었다.

‘천마.’

그가 웃고 있다.

위광천에겐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투기 넘치는 얼굴로.

그것에, 애초에 천마가 바랐던 적수는 자신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목선오는 검을 쥐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자리에 선 채로 이선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은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선은 이제 검성(劒星)이라는 별호를 알았다.

그가 어떤 사내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가 품은 것이 무엇인지.

‘협의(俠義)라.’

신념과 신념이 충돌함은 즉슨 상대가 품은 것을 바로 마주하는 일이다.

그가 마음으로 벼린 검과, 이선이 벼려낸 일권이 맞닿을 때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여러 정보가 있었다.

검성 목선오는 남들이 무가치하다 평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본다.

애초에, 높은 자리에 올라선 이유가 낮은 곳을 바라보기 위한 사내다.

모든 것이 이선과는 다른 극점에 있었다.

쿠구궁―!

‘나는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본다.’

이미 지나쳐온 길은 바라보지 않는다. 그럴 여유조차 쪼개어 다음 경지를 넘봐야 하기에.

‘나를 내려다보는 눈을 파낸다.’

그 누구도, 감히 천마 이선이라는 이름을 우습게 볼 수 없도록.

‘그러기 위한 삶이며, 그것을 위한 투쟁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삶.

이선의 생은 그랬다.

애초부터, 이유도 없이, 본능이 갈구함에.

‘더.’

싸우고 싶어서.

먼 과거부터.

‘그리 살아왔다.’

승리만을 위해 살아옴을 목선오에게 전했다.

쿠구궁―!

기의 영역을 벗어나 심상의 영역.

사고하는 것을 현상으로 빚어내 심검(心劒).

공간에 벌레 한 마리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의 공세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

천마(天魔) 이선.

그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도 위대했다.

아니, 태어남에서부터 위대했다.

“어미를 귀천(歸天)시키고 태어난 아이라.”

이선은 어미의 생을 빨아먹고 태어났다.

난산은 아니었다. 참으로 건강한 무인이었던 어미였음에도, 이선이 품은 가능성에 그 모체가 버티지 못해 출산의 순간 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그의 아비되는 당대의 천마는 그런 이선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총 19명의 자식, 개중 다음 대의 천마를 고르고자 했던 그는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묘책을 떠올렸다.

“이선이 15세가 되는 날, 비무회를 열어라. 내 자식들 모두가 참여하는 비무회를.”

“허면….”

“생사결이다.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다. 살아남은 1인이 바로 다음 대의 천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당시 대공자는 16세.

비무날이 된다면 31세가 될 터였다.

재능도 범상치 않은 이었으니 15세의 이선과 맞붙는다면 상식적으로는 그가 승리하게 되리라.

당대 천마도 그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강행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이대에 머무르는 것 정도로는 안 된다. 자질을 보여라.”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하늘 위에 설 수 있는 자질임을 증명하라.

신생아였던 이선에게 그리 말한 당대 천마는 15년 뒤에 스스로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냈다.

꽈득―

15세의 이선이 31세의 대공자를 이겨 목을 꺾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

이선은 맨몸, 그 어떤 무기나 호구도 착용하지 않았고, 어떠한 비겁한 수도 쓰지 않았다.

그에 반해 대공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보검이라 일컬어야 할 명검엔 극독을 가득 발랐다. 비무회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이선에게로 향하던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열세에 빠지자 비무장 위로 산공독까지 뿌려댔다.

한데도 패배한 것이다.

“이제부터 네가 소천(小天)이다.”

“아직도 소천입니까.”

천마의 명에 이선은 그리 되물었다.

천마는 웃었다.

그 순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이선의 눈동자 속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깃들어 있었던 까닭이다.

“정진하라.”

그리하여 나를 넘는다면, 기꺼이 목을 내어주리라.

*

이립의 이선은 100회의 생사결을 치렀다.

백 승 무패.

이선은 단 한 번도 패배를 겪지 않았다.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겨낸 까닭이다.

성장하고, 성찰하며, 끊임없이 상승을 갈구한 까닭이다.

그러니 그의 시대였다.

십만대산의 모든 교인은 이선이야 말로 진정한 마도천하(魔道天下)의 재림을 이룰 이라 외쳤다.

그것이 천마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선이 25세가 되던 해였다.

“나를 넘겠느냐.”

천마가 물었고, 이선은 답했다.

“이미 넘었다.”

“호오….”

천마는 웃었다.

그리고 곧장 이선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날, 천마전이 무너졌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이선의 시대가 왔다.

이선은 여전히 굶주려 있었다.

제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그 위가 있기에.

제아무리 빠르게 성장해도 이미 그 길을 가본 이가 있기에.

그렇기에 더 많은 비무를 펼쳤고 더 많은 생을 비틀었다.

날 때부터 그를 부채질했던 투쟁심은 좀처럼 나아지는 법이 없었기에.

이선은 또 성장했고, 기어코 상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의 강자가 됐다.

당시의 이선은 지천명의 나이였다.

얼굴 위로 주름이 올랐고, 세월이 머리칼을 물들여가는 시기였다.

“권태롭다.”

권태를 달래기 위해 천살성을 거뒀다. 그 외에도 제 목을 노릴 만한 인재를 찾게 했다.

싹수가 보이는 것이 몇 있었다.

하나, 그들이 자라는 과정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먼 일이다.

또한, 싹이 얼마나 화려하게 꽃을 틔울지는 미지수였다.

하여 이선이 결심한 것이 있었다.

“이 땅에 강자가 없다면, 강자가 있는 곳으로 떠나면 그만인 일.”

등선(登仙)을.

강자의 땅으로 향할 것을.

“폐관에 들어간다.”

그것은 곧 25년의 침묵을 뜻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초월 다음의 경지가 실존하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끊임없는 명상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깨우쳤구나.’

삼라만상의 이치가 함께하는 감각이 이선을 휘감았다.

통천(通天)한 것이다.

열린 백회혈을 통해 하늘의 지기가 몸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더 이상 그 어떤 인간적인 한계에도 얽매여 있지 않아도 됨에, 이선은 낡은 육신을 다시 조립했다.

환골탈태(換骨奪胎)였다.

이선은 젊은 육신을 취했다.

그리하니 뒤늦게야 느껴지는 것이 바로 목선오의 기운.

이 땅에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이가 있음이 이다지도 기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용하다.”

인세의 모든 것은 필멸적이고 하잘것없음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오로지 하나.”

투쟁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으니, 등선에 앞서 그를 대담하리라.

“전쟁을 준비하라.”

이선은 원했다.

투쟁심을 달랠 호적수를.

*

목선오의 굳은 낯이 이선을 기쁘게 했다.

심장이 뛴다.

투쟁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만족감을 토해낸다.

‘이것을 찾아 헤맸다.’

더 높은 곳, 더 강한 적을 찾아 헤맨 평생은 오로지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함이리라.

이선은 오로지 목선오에게만 온 신경이 몰리는 것을 느꼈다.

선계에 대한 생각까지 깡그리 날아갈 정도였다.

‘죽는다.’

이 생사결에서 살아남는 이는 없으리라.

죽음의 순간까지 서로가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내며 피를 토해내리라.

끌어오던 선천진기(先天眞氣)가 슬슬 이른다.

더 했다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으리라고.

거기에서 또 나아갔다간 목숨을 잃으리라고.

이선은 답했다.

‘어쩌라는 것이냐.’

그럼에도 이리 즐거운 것을 대관절 어쩌라는 것이냐.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망령되어 울부짖게 될 터인데 어찌 목숨을 아까워할 수 있단 말이냐.

이선은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러자 목선오도 발을 내디뎠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쿠구구궁―!

진동이 강해진다.

폭풍이 휘몰아친다.

검고 흰 두 가지 기파가 소용돌이치며 드잡이질 한다.

공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다가갈 때마다 목선오가 벼린 심검에 영과 육이 난도질당함에.

그에 맞서 목선오의 영과 육을 난도질함에.

이선은 그 어느때보다 충만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더 해보라.”

마귀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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