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1 이십장 - 충돌, 격류 (17)
* * *
목리원과 위광천의 결투가 한창인 와중, 목선오와 천마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일말의 휴식 따위의 고상한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초월 너머의 경지.
등선과 맞닿아 있는 절대자들의 비무는 그저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향해 뻗어있었다.
스으으―
이미 주변이 황폐해진 와중이다.
공간을 메운 기파가 충돌할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충격파가 일고 있었다.
심리전이었다.
서로의 눈을 보며 이어질 공격과 그에 대한 대처, 그리고 그 다음을 동시에 그려내며 상대를 파악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공방을 두 사람은 이미 머릿속에서 완성하고 있었다.
쿠구궁―
목선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열린 백회혈로 자연지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만물과 개인의 구분을 흐리게 하여 삼라만상의 일부로 화하니 천통(天通).
그리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길 수 없구나.’
목선오는 천마를 이길 수 없었다.
천마 또한, 목선오를 이길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게 된다면 이어질 것은 필시 공멸이었다.
그만큼이나, 두 사람 사이에는 우열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나?”
천마가 물었다.
그 또한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어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이윽고 목선오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은 그저 투쟁이 좋은 것이구료.”
그에게서 전해지는 투기는 포악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그리도 포악하니 두려움이 낄 틈이 없다.
“싫어할 수가 있나?”
천마는 말한다.
“생과 사를 오가는 투쟁이야 말로 진정 무인을 무인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 끝이 공멸이라 해도?”
“그렇다 해도 족한 일이다.”
천마가 마기를 몸 위로 둘렀다.
“최초, 등선을 결심했다. 네놈의 목을 꺾고 마선(魔仙)으로서 다음을 예비하고자 했다. 하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
“실로 모자람이 없구나. 네놈과의 생사결은.”
천마의 미소가 짙어진다.
“이 정도면 족할 듯하다.”
목선오는 지그시 눈을 감고 검을 고쳐 쥐었다.
각오가 필요했다.
죽음을 불사할 각오가.
‘원아….’
하나 역시, 그런 순간이면 떠오르는 것은 목리원의 해맑은 미소였다.
*
콰아아아앙―!
위광천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과 동시에 전해지는 기파에 섬찟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시작되었다.’
그제까지 간헐적인 충돌만 해오던 천마 쪽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아득함이 이곳까지 전해져 온다.
하나, 만약 경악하고 있기는 또 함께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설마…!’
천마신공.
마천의 주인이 될 이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이기에 이 무공에 대해 아는 자는 천마 이선과 소천마 위광천 뿐이었다.
그러니, 위광천만이 아는 것이다.
‘…천마선강.’
천마가 끝을 보려고 하고 있다.
목숨을 불살라서.
이대로 만족하며 숨을 거두려 하고 있단 말이다.
“그륵…!”
목리원이 달려든다.
하나하나가 죽음과 직결되는 살초로 검을 휘두른다.
위광천은 그것을 막으면서 이를 악 물었다.
“…이럴 틈이 없다.”
이지를 잃고 날뛰는 짐승 따위에게 투자할 시간은 없었다.
이대로면 모든 일이 끝나버린다.
위광천의 삶도, 그 목표도, 갈 곳을 잃고 영영 방황하게 될 터였다.
천살성을 손에 쥔다.
그 목적 하나를 위해 맹목적으로 움직였던 위광천은,
“비켜라…!”
처음으로 목리원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쿠우웅―!
“꺼억…!”
목리원의 명치에 주먹이 꽂혔다.
그 와중에도 어찌 칼질하긴 한 것인지, 위광천의 어깨엔 목리원의 검이 꽂혀 있었다.
위광천은 검을 뽑아던졌다.
내력을 한껏 실어 속부터 진탕지킨 일격이다.
공격일변도를 유지해온 천살성이 저것을 위한 방어를 떠올렸을 리가 없다.
목리원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위광천은 천마를 향해 내달렸다.
쿵쿵 뛰는 심장이 다급함을 떠올린다.
목리원을 챙겨 이대로 다른 곳에 포박한다는 생각조차, 그럴 여유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로 위광천은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
쿵, 쿵.
진동이 인다. 검을 휘두르자 천마의 주먹이 절묘하게 파고들며 틈을 노린다.
벌써 얼마나 반복되고 있는지 헤아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공방.
허나, 그 과정은 확실히 정해진 결말을 향해가고 있다.
목선오는 전신의 기맥이 한계를 넘나드는 것을 느꼈다.
백회혈로 들어온 자연지기가 중단전과 하단전까지 이어지며 세상 만물의 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것이 모자라다 느껴질 정도의 거센 일격이 연신 몰아친 까닭이다.
천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권은 스스로의 생을 불태우며 명멸하고 있었다.
선천진기를 끌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앙―!
이윽고 천마의 권이 목선오에게 타격을 입혔다.
왼쪽 팔이다.
어깨죽지가 날아갔다.
검로를 보조해주던 왼팔이 없어졌으니 이제 더 이상 공방의 일치는 바라볼 수 없음이라.
‘그러니.’
역시, 그가 보이는 만큼의 전력을 다해야할 터였다.
“드디어 오는구나.”
천마가 희게 웃었다.
목선오는 눈을 반개했다.
휘이이이, 목선오의 몸 주변을 휘감는 바람이 있었다.
또한 그의 기파에 이는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성련의 극의였다.
심상 위로 떠오른 일곱의 별자리를 모두 연결하여 심과 기, 그리고 체의 완전한 조화를 자아낸다.
시리도록 흰, 그리고 푸른 별자리가 목선오의 검과 기파 위로 씌워졌다.
생을 다한다.
“흐으….”
목선오의 안광이 빛났다.
검을 휘두른다.
서걱―
천마의 왼팔이 마찬가지로 잘려 나간다.
천마는 개의치 않고 어깨죽지만 남은 팔을 뻗었다.
주먹이 없는 권이라,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 목선오에게 닿고 있었다.
절대지경, 그리 이르러야 할 경지에 올라 생을 다한 무예를 펼치니.
상대를 해하겠다는 심상(心想)만으로 피해를 입히기엔 족한 것이었다.
이 또한 예견된 양상이었다.
목선오 또한 그와 같이 심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저자를 막아 강호의 환란을 끝내겠다.
그것이 성련문의 문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니.
그리고 스승으로서, 아버지로서 목리원을 위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니.
‘원아.’
이리도 모자람이 있어 끝끝내 너의 성장을 다 지켜보지 못하는 스승을 이해해다오.
목선오는 검을 놓았다.
그 순간, 그저 시리기만 한 기파 사이로 무형의 검날이 솟구쳐 천마를 향했다.
심검(心劒)이었다.
*
“…아!”
목리원은 징징 머리가 울리는 중 들려온 목소리를 들었다.
“원아!”
그것은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늙스구레하고 우렁찬, 그리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걸왕님.’
목리원의 눈이 스르르 뜨였다.
새빨간 동공이 마일석을 향했다.
“원아! 정신이 드느냐!”
마일석의 표정은 처참히 구겨져 있었다.
아주 슬퍼하는 것도 같았다.
목리원이 그에 떠올린 반응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어찌 이다지도 슬퍼하시는지에 대한 의아함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에 신음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혈이 뒤틀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음에도.
‘…달다.’
목리원은 풍기는 혈향에 무심코 살의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런 스스로에 흠칫, 몸을 떨었다.
“원아!”
덜덜 떨리는 손이 마일석의 목을 향하자, 마일석이 손목을 움켜쥐며 다그쳤다.
목리원의 얼굴 위로 당황이 떠올랐다.
하나 감상에 젖어있을 틈은 없었다.
“일어나야 한다!”
마일석이 말했다.
동시에 굉음이 일었다.
쿠우우우웅―!
그것은 분명 목선오가 있는 방향에서부터 뻗쳐오는 것이었다.
“형님께 가 봐야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느냐! 그게 안 된다면 살의라도 참아보거라! 내가 너를 업고 저곳까지 가마!”
목리원의 시선이 굉음이 이는 방향을 향했다.
대관절 어찌된 영문인지, 참 먼 자리에서 전해지는 기파임에도 그 속의 살의와, 스러지는 생명력이 이다지도 잘 느껴지고 있었다.
쿵, 쿵.
목리원의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당장 저 전장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이 충동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물론 그런 마음에 몸을 맡기진 않았다.
머리가 징징 울리는 중에도 작용하는 일말의 사고가 있었다.
‘스승님…!’
저 스러져가는 생이 스승과 천마의 것이란 걸 깨닫는 순간, 목리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과 다급함을 떠올렸다.
“가, 가야…!”
비척비척 일어나려 한다.
하나, 몸을 바로 세울 순 없다.
몸이 기운다.
마일석이 그런 목리원을 부축했다.
“업히거라!”
답도 듣지 않고 마일석이 목리원을 들처멨다.
목리원은 가쁜 숨을 내쉬며 목선오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따.
참담한 심정이 그의 몸을 휩쓸었다.
‘스승님….’
그리 속삭이며 죄스러운 마음을 토해낸다.
‘…저는.’
실패했습니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별을 억제하지 못했고, 적수를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목리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 무엇도 하지 못해, 눈구멍이 타들어 갈 정도의 열기와 달콤한 혈향에 머리가 어지러움에 목리원은 긴 숨을 내쉬었다.
‘살아주십시오.’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가야할 길을 일러주십시오.
저는, 이제부터 어찌해야 할지 조금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목리원의 시야가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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