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0 이십장 - 충돌, 격류 (16)
* * *
고작 일 년만에 절정에서 초월까지.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 성장 속도만큼은 경이적이다.
아직 천살성을 가지고 있을 때의 자신보다 더욱.
위광천은 수많은 감정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을 고르라면 위광천은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질시였다. 그리고 위기감이었다.
반푼이밖에 되지 못하는 주제에 저런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혹시 목리원이 천마의 목을 꺾을 존재가 되지 않을까란 상념을 떠오르게 했다.
위광천은 불거진 눈으로 목리원을 노려봤다.
한껏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전신을 강기로 둘렀다.
주먹을 뻗는다.
꽈아아앙―!
강기의 충돌에 땅이 진동한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기가 빨려가고 있다.’
위광천은 그런 특성을 가진 체질을 알았다.
“…극마지체(極魔之體)까지.”
마기의 선택을 받아야만 타고날 수 있다는 몸을, 자미성의 주인이 가지고 있다.
아니, 본디 가지고 있었다기보단 망할 단천화가 시술했다 말하는 것이 옳을 테다. 끝끝내 모른 체 하더니 단천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를 넘을 방법을.
“어째서냐.”
위광천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등 뒤로 기파가 엮이며 악귀의 형상을 만들었다.
위광천이 주먹을 뻗음과 동시에 악귀가 주먹을 뻗었다.
쿵!
목리원이 날아갔다.
“어째서 네놈이냐.”
위광천은 거듭 물으며 진각을 밟았다.
“어째서, 네놈 따위가 다 가져간 것이냐.”
마기의 소모는 개의치 않는다.
그 정도 마기를 빨렸다고 뒤집힐 정도로 공력의 차이가 작지는 않았다.
강과 냇물, 그리 빗대어야 할 정도로 고작 초절정의 공력을 가진 목리원과 오래전 초월에 다다른 위광천의 차이는 컸다.
“나라면 더 잘 쓸 수 있다. 나라면 천살성을 이 하늘 위에 가장 위대한 별로 만들 수 있다. 한데 어째서, 고작, 겨우.”
꽈아아앙!
목리원의 턱이 돌아갔다.
위광천은 빠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이냔 말이다.”
목리원이 바닥에 엎어졌다.
고개가 들리며 보인 눈동자는 핏빛이다.
동공이 너무 좁아져, 그 속엔 세로로 길게 이어진 검은 선 하나만이 보이고 있었다.
“끄륵….”
목리원이 들썩인다.
발악하는 꼴이 너무 가증스러워 위광천이 주먹을 말아쥐는 순간이었다.
서걱―
이번엔 뺨이 베였다.
찰나의 틈, 감정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그 짧은 빈틈 간 목리원의 신형이 위광천의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기파로 추적해보려 몸을 가다듬는 순간 종아리가 베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팔뚝이 베였다.
“그르륵….”
이윽고 찾아낸 목리원은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자세를 다잡고 있었다.
입가에 찢어질 듯 길게 미소를 띄워 올린 채로.
그제야 위광천을 깨달았다.
‘놀이?’
‘저것’은 지금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얼마든지 목을 벨 수 있는 상황이 그리도 많았음에도 팔과 다리, 허리 따위를 베는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발악하는 꼴이 보고 싶은 것이다.
피가 튀어오르는 순간의 반응을 즐기는 것이다.
오로지 살인을 위해 존재하는 별.
천살성은 그 이름의 뜻을 다하고 있었다.
“감히!”
이 위광천을 상대로.
꽈아아아앙!!!
마기가 폭사한다.
주변을 메운 나무들이 다 휩쓸려 나간다.
황무지가 된다. 흙먼지마저 걷어낸다.
평지만이 남으니 저것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지리라.
‘아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별에 줄 벌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사아아―
마기가 침잠한다.
숨을 가라앉힌다.
하나, 그것이 힘을 뺐다는 말은 아니었다.
사방으로 뻗쳐있던 마기들이 일제히 정련한다.
좁쌀만 한 틈도 남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몸 위를 덮는다.
그리고 위광천이 눈을 반개했다.
사아아―
눈동자 위로, 자주빛이 떠올랐다.
자미성(紫微星).
그것을 발현한 것이었다.
“쓸 생각이 없었다. 쓸 가치도 못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자미성이 가지는 공능은 딱 하나밖에 없는 까닭이다.
“내가, 이 별을 쓸 일은 없어야만 했다.”
이 별의 공능을 인정하는 일이 없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쓰는 것이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버러지에겐 벌이 필요하니.”
위광천이 주먹을 풀었다.
순간, 목리원의 신형이 위광천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위광천은 어깨로 떨어지는 검을 보지도 않고 잡았다.
꽈악!
검날이 손아귀에 붙들려 움직이지 못한다.
위광천은 자유로운 팔을 휘둘러 팔꿈치로 목리원의 명치를 가격했다.
꽈드득, 유효타가 들어갔다.
“날뛰어봐라. 얼마든지 상대해줄 터이니.”
위광천의 칠흑색 마기 위로 자주빛이 얽혔다.
마치 식물의 줄기를 연상케 하는 유려한 형상이었다.
애초부터, 자미성의 공능은 하나였다.
“천적을 만난 기분은 어떠하느냐.”
천살성을 가로막기 위해 존재하는 이면의 별.
자미성은 오로지 천살성을 앞에 둔 경우에만 빛나는 별이었다.
*
목리원은 컥컥 숨을 몰아쉬었다.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턱이 덜덜 떨려온다.
‘이게 무슨….’
붉게 물든 시야 사이로 위광천의 얼굴이 한가득 들어온다.
직후 위광천의 어깨가 흔들렸다.
콰아아앙―!
“꺼어억…!”
목리원의 몸이 크게 튕겨 나갔다.
허허벌판이 된 땅을 넘어 나무에 부딪친다.
그리하여 겨우 몸이 멈춘다.
하나 끝나지 않았다.
위광천이 곧장 따라와 발길질로 목리원을 걷어찼다.
콰아아앙―!
소리와 함께 목리원의 몸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지직지직 시야가 일그러진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점멸하듯 풍경의 색채가 붉은 색과 본래 색을 오간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목리원은 중단전이 우그러지는 통증을 느꼈다.
성련의 금기를 넘본 대가였다.
그제야 목리원은 스스로가 별에 취해 억지로 경지를 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드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위광천이 목리원의 등을 밟고 있었다.
또 한 번 발길질, 그것에 목리원의 몸이 땅으로 꼴아박혔다.
콰아아앙―!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폭격이었다.
기껏 붙잡아낸 정신은 다시 한번 아득한 저편으로 가라앉는다.
생존본능이 날뛴다. 그리고 천살성이 날뛴다.
긴긴 역사 속, 매번 제 앞을 가로막았던 숙적을 두고 천살성은 어느때보다 강렬하게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르륵…!”
피가래가 끓는다.
목리원의 눈 위, 흰자가 검게 물들어 간다.
쩌저적 검위로 검고 붉은 강기가 둘려진다.
목리원의 의식이 완전히 먹히기 시작했다.
*
마일석은 여유가 생기자 곧장 전장을 떠났다.
자신이 빠져도 중원이 우세다.
그러니 저기 느껴지는 소교주의 기파를, 그리고 그를 쫓아간 목리원의 기파를 쫓아야 했다.
마일석이 생각하기에 목리원으로선 소교주를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하나,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콰아아앙―!
마일석은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자주빛 눈동자의 위광천과 붉은 눈동자의 목리원, 두 사람의 기파가 만드는 형상, 목리원에게서 느껴지는 살의.
“초월….”
목리원이 금기를 넘봤다.
불완전한 초월에 이르러 살의에 몸을 맡긴 채 날뛰고 있다.
게다가 소교주의 눈을 보라.
이젠 부정할 수 없는 확신이 있다.
혈마 단천화.
그가 노린 것은 소교주의 천살성을 목리원에게 옮기는 일이었다는 것.
이 전쟁이 결국 지난 전쟁의 연장이라는 것.
마일석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하나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원아!!!”
막아야 했다.
이 이상 목리원의 정신이 천살성에 막혀선 안 된다.
마일석은 봉을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직후, 소교주와 목리원의 시선이 동시에 마일석을 향했다.
“쯧….”
위광천이 혀를 찼고, 이내 마일석의 눈에 보인 것은 어느샌가 다가와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목리원과 그 앞을 막아서는 위광천이었다.
*
쿠우웅―!
위광천은 또 한 번 목리원의 검을 잡았다.
충격에 어깨까지 저릿함이 퍼져온다.
굳이 맞서지 않아도 될 살초를 막아내려니 부담이 가해진다.
하나, 어쩔 수 없었다.
“꺼져라. 버러지.”
위광천은 마일석이 멍해진 틈을 타 각법으로 마일석을 날려버렸다.
그대로 목리원을 저 멀리 던지고, 뒤따랐다.
자미성은 영웅의 별이다.
천살성이 살인을 위해 숙주를 부추기는 것처럼, 자미성은 숙주에게 구원을 부추긴다.
구원에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이끌림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막을 수 있다.
하나, 막아선 안 된다.
별이 바라는 것과 숙주가 바라는 것.
그 사이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별이 숙주를 좀먹는 까닭이다.
위광천은 겨우 이런 곳에서 끝날 생각이 없었다.
당연, 자미성이 바라는 일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이것이었다.
위광천이 내내 자미성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
감히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못하도록 내내 속에 처박은 이유.
그것을 위해 마약까지 동원한 이유.
‘역겹다.’
강자존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무림이었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야생이었다.
그것만을 위해 살았고, 그 가치관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위광천은 자미성이 역겨웠다.
위선이 역겨웠다.
절대 이 별과 동화되지 않으리라.
어떻게든 천살성을 되찾아, 마땅한 자리로 돌아가리라.
위광천은 재차 다짐하며 기파를 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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