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08화 (208/334)

EP.209 이십장 - 충돌, 격류 (15)

* * *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즘 목리원은 소교주가 있는 자리에 도착했다.“그래, 꼴에 눈치는 있는 듯하구나.”

바위 위에 정좌하고 앉아있던 소교주가 눈을 떴다.

목리원의 안색이 험악해졌다.

“…소교주.”

“위광천.”

“…?”

“위광천이다. 그래도 이름은 알려주어야겠지.”

위광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리원은 그 순간 왜인지 모를 떨떠름함을 느꼈다.

‘다르다.’

청룡비무제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다.

일권 강오설로서 비무제에 참여했던 그에게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살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한데 지금은 그저 고요한 기색만이 가득하다.

“…무슨 짓을 한 것이오.”

목리원이 묻자 위광천이 답했다.

“무엇도 하지 않았다.”

위광천의 발아래서 검은 마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조금도 포악하지 않고, 무거우며 진득하다.

마치 거대한 산을 보는 듯한 마기였다.

극마지체가 저릿저릿 울렸다.

“무엇도 하지 않아,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

위광천이 목리원을 가리켰다.

“네놈을 잡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목리원은 입술을 짓씹었다.

위광천이 목선오에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목선오가 협공에 당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그것이 다행스럽진 않다.

‘버텨야 한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저쪽 상황이 정리되고 이쪽에 지원을 보낼 때까지 두 발로 서있을 수는 있을까.

확실히 느껴진다.

요행은 불가하다. 위광천은 조금의 방심도 품지 않고 있었으며, 그의 마기에선 오로지 가라앉은 기색만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목리원이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검성을 찾나?”

흠칫, 목리원의 몸이 떨린다.

위광천은 삐뚜름하게 웃었다.

“곧 죽을 노인네를 뭣하러 그리 찾나. 혹여 있을 이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혹시, 이 모든 것이 함정인 것인가.

“저승에서 만날 터이니.”

생각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위광천의 검지 끝에 마기가 응집해 쏘아졌다.

피잉―

얇은 파공성과 함께, 목리원의 왼쪽 어깨가 꿰뚫렸다.

*

위광천은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도, 눈앞의 목리원도, 그리고 천마도.

‘고작….’

그가 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전면전을 기획하고 교인들을 사지로 내몬 이유는 여흥이었다.

그는 더 이상 무엇에도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검성 목선오. 그와의 승부만을 기다릴 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먼 과거, 천마와의 대면이었다.

-내 목을 치겠다?

-예, 저는 그리할 재능이 있습니다. 당신의 목을 쳐, 이 신교의 주인이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하여 소교주 자리를 달라?

-그렇습니다.

-재밌구나.

분명 그런 약속이었다.

위광천이 바라는 것은 그런 미래였다.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사내를 꺾고 그 머리 위에 올라서는 것.

그의 오만을 양분으로 자라 잘난 낯짝을 구겨주는 것.

한데, 그 미래가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종류가 되었다.

-무용하다. 모든 것이.

자신조차 무용하다 말하는 나른한 낯빛이 다시 떠오름에 위광천은 인상을 구겼다.

그 눈길이 향하는 곳을 돌리기 위해선 역시, 천살성이 필요했다.

이딴 자미성 따위가 아니라.

“끝인가?”

위광천은 무릎 꿇은 목리원을 향해 물었다.

정확히 어깨죽지의 혈도를 꿰뚫은 일격이었다.

제아무리 천살성이 경고했다 한들, 피할 수 없을 속도로 쏘아낸 공격이니 저리 무릎 꿇는 건 당연하다.

“아직 네 몸에 천살성이 남아 있음에 감사해라. 그 비루한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니.”

그러지 않았다면 아주 고통스러운 꼴로 죽여주었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목리원이 물어왔다.

“…무슨 말이오.”

“무엇이?”

“검성이 죽는다는 것이, 대관절 무슨 말이오.”

슬쩍 들린 고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살기가 차오를 때면 이는 반응임을 위광천은 알았다.

“무슨 말이긴.”

위광천은 코웃음 쳤다.

“말 그대로의 뜻이다. 검성은 죽는다. 교주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이 전쟁을 계획하신 것이니.”

내 뜻을 떠나, 이런 양상이 된 것이니.

그렇게까지 천마 이선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으니.

“천마는 뜻하는 모든 바를 이루어 하늘에 닿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말하는 순간이었다.

“아니오.”

목리원의 동공이 좁아졌다.

숨이 거칠어졌다.

가래가 끓는 목소리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니오. 그럴 리가 없소. 지지 않소.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하오.”

툭툭, 목리원이 꿰뚫린 어깨를 지혈했다.

그리곤 한 손으로 검을 쥐었다.

검신이 새까만 검이었다.

“당신은 거짓말을 했소. 천마는 검성을 이기지 못하오. 악은 협객에게 이기지 못하오. 그러니.”

위광천은 쯧 혀를 찼다.

‘먹히고 있군.’

천살성을 제대로 다룰 생각조차 안 하니 저리 되는 것이다.

살의를 내내 무시하고 보통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사니 결정적인 순간에 저리 먹혀버리는 것이다.

이지가 흐려지겠지.

감정이 날뛰고 살의가 들끓겠지.

위광천은 알았다.

저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천살성이 원하는 만큼 피를 뿌려야 했다.

“병신같은 것.”

역시 어울리지 않는 보화를 품고 있다.

저놈은 반푼이다.

“사지를 분질러놓는 게 좋겠지. 편히 데려가려면.”

아, 입도 찢어놔야 할까.

생각하며 마기를 그러모으는 순간이었다.

서걱―

위광천의 옷깃이 베였다.

*

시야가 온통 붉다.

물체의 구분이 오로지 채도로만 결정될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이 붉게만 보였다.

훅, 후욱. 숨을 내쉬면 내쉴수록 속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속에 차오른다.

머리가 뜨겁다. 지끈거렸고 답답했다.

눈을 좁히니 보이는 것은 얼빠진 얼굴의 위광천이었다.

“아니오.”

가래 끓는 목소리로 목리원은 말했다.

“검성은.”

스승님은.

“죽지 않소.”

목리원은 유독 선홍색으로 빛나는 살로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까앙―!

튕겨 나간다.

하지만 괜찮았다.

살로가 이렇게나 많이 보이고 있었다.

위광천이 움직인다.

그에 따라 목리원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검을 휘둘렀다.

쿵쿵 뛰는 박동이 표하는 것은 불안감이었다.

목선오가 이대로 죽는다.

그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만으로도 목리원은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목선오는 강하다. 그는 절대 굴하지 않는 협객이다.

협객은 악에 지지 않는다.

암시해 보지만 천마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전장을 지배했던 재앙이, 순간 느꼈던 두려움이 속을 진창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사실상 지금 검을 휘두르는 행위조차 목리원에겐 불안감을 덜어내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평소 신경 써왔던 살기의 억제나 살로의 회피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도 위광천이 그런 것까지 신경 써가며 상대할 수 있는 약자가 아닌 것도 이유였다.

“감히!”

쾅!

위광천이 주먹을 뻗자 마기가 공간을 휩쓴다.

목리원은 피했다. 스스로도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살기가 몸을 콕콕 찌름에 그저 발을 놀렸고, 와중 살로가 보이기에 검을 휘둘렀다.

본디 신체적 한계나 경지의 우열 탓에 성립될 수 없는 일들이다.

그것들이 성공한 이유는, 부정할 수 없는 성장이었다.

쾅!

목리원은 인지하지 못하는 성장이었다.

그저 위광천이 너무 미워 검을 휘두를 뿐이니, 살의에 몸을 맡길 뿐이니 인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쾅!

목리원은 바랐다.

감히 목선오의 죽음을 말하는 저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혹여 목선오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천마의 목을 베고 싶다고.

갈망은 곧 별의 힘이 되는 법이다.

쾅!

살기가 또 한 번 짙어진다.

형(形)을 벗는다.

식(式)을 벗는다.

오로지 하나, 살인에 최적화된 검을 휘두른다.

쩌적, 하고 속에 균열이 인다.

목리원이 행하는 것은 성련의 금기였다.

심기체의 합일, 균형을 통해서 완성되는 밤하늘을 스스로 찢어발기는 행위였다.

공력이 모자라다.

이해가 모자라다.

그럼에도 육신만큼은, 검을 휘두르는 법만큼은 직감의 영역을 뛰어넘어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

기형적인 성장의 원인 되는 별이 다시 한번 길을 제시한다.

허리를 베거라.

속삭임이 들려왔고 목리원은 행했다.

그 순간 위광천이 몸 위를 덮은 기파를 움직였다.

굳어지며 기파가 결정화 됐다.

강기(罡氣)였다.

이 검으로는 뚫을 수 없다.

그러니 별이 속삭인다.

너도 강기를 쓰거라.

그것에 목리원이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느냐 물으니, 별이 또 한 번 답한다.

‘피를 뿌리거라.’

목리원은 쓰지 못하는 왼팔뚝을 베었다.

혈향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

위광천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목리원의 왼 팔뚝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시야를 일순 방해했다.

걷어내려 마기를 흩어냈고, 그것이 실책이었다.

쩌저적―

소리와 함께 목리원의 검 위로 덧씌워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검은 기의 결정이었다.

세상 모든 빛을 삼킨 심연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은 색채였다.

그 위로, 선홍색 길을 만드는 불규칙한 이음매는 마치 혈관과도 같았다.

‘강기(罡氣)…!’

초월이었다.

기형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 결정은 분명 초월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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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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