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6 이십장 - 충돌, 격류 (12)
* * *
쿵!
사백운이 기파를 쏘아내자 굉음이 일었다.
“1장로 무검(無劒), 자네 목을 거둬갈 이름이네.”
스스로를 무검이라 밝힌 사내가 막아낸 것이었다.
무검이 주먹을 말아쥔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우우웅, 소리와 함께 무검의 말아쥔 주먹 위로 강기가 솟아오르며 검이 되었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꽈앙!
뒤이어 한쪽 팔이 없는 노파가 손톱을 휘둘렀다.
그 뒤로는 삐쩍 마른 노인이 무어라 중얼거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술임이 분명했다.
“감히 중원 땅에 발을 디디려 하느냐.”
사백운은 창을 크게 휘두르며 모든 공세를 털어냈다.
눈시울이 타들어가는 감각은 분명,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해하려 하느냐.”
어느덧 강기가 창끝에 맺힌다. 퍼져서 창 전체를 휘감고 사백운의 몸 주변을 노닐었다.
“이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거늘 그런 일을 하려 하느냐.”
포악하기만 한 공력이야말로 사백운의 상징이었다.
사백운이 창을 크게 앞으로 내질렀다.
―――!
공기가 찢겨나갔다.
*
“겁쟁이 놈! 너는 겨우 거지가 무서워서 도망치냐?!”
겁쟁이, 어린 사백운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사백운은 한미한 어느 촌마을의 별 볼 일 없는 무관의 장남이었다.
워낙에 겁이 많은 탓에 좀처럼 무공에 진전이 없어 아비의 속을 썩이는 그런 아들이었다.
“크히히! 무인 아들이 주먹질도 못 해서 어떡하냐!”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그랬다.
사백운이 진정 두려워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 시절엔 그의 아비밖에 없었다.
“백운아, 잘 참았다.”
“아버지….”
“진정한 무인은 힘을 섣불리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무력이 두려움을 아는 법이다. 너의 마음가짐은 무인에 걸맞다.”
사백운의 아버지인 사군명은 이런 시골 무관에서 썩을 인재가 아니었다.
절정의 무인, 어딜 가도 대접받을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내였고, 그런 그가 시골 구석에 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평온을 바라는 그의 성정 탓이었다.
“백운아, 너는 강하다.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고,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 아비를 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내겐 재능이 있단다.”
그런 아비 밑에서 자라 사백운 또한 성정이 부드러웠다.
성정 탓에 싸움을 멀리한지라 겁쟁이가 되었다.
사백운은 제 손으로 사람을 해하는 것이 두려운 아이였다.
하여 어린 날의 사백운은 곧잘 사군명에게 칭얼거렸다.
“저의 재능이 무섭습니다.”
그리하면 사군명은 말했다.
“남을 해치는 일을 두려워함은 참으로 바른 마음이다.”
“저는 무엇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이 많음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진정 지켜야 할 것을 등 뒤에 두고 있을 때, 그때만큼은 용맹해야 한다. 그것이 사내이며 무인이며 또한, 협객이다.”
협객, 소년 사백운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였다.
혹 스스로의 힘이 사람을 해할까 두려워하던 사백운이 조금이라도 덜 재능을 두려워할 수 있게 해준 버팀목 같은 단어였다.
하여 사백운은 협객이 좋았다.
협객을 바라, 남을 위해서만 힘을 휘둘렀다.
“감사합니다! 대협!”
강호초출, 사백운은 핍박당하는 이들을 위해 창을 휘둘러 무명을 얻었다.
겁쟁이 사백운을 칭하기엔 참 역설적이게도 그의 별호는 맹룡창(猛龍槍)이었다.
지킬 것이 등 뒤에 있을 땐, 절대 물러섬 없이 적을 향해 달려들었던 까닭이다.
무명이 높아지니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수많은 이들이 천하를 함께 도모하길 바랐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노려왔다.
그럼에도 사백운은 여전히 협객이 되기만을 바랐다.
스스로를 사랑할 방법으로, 남을 지키는 일밖에 모르는 까닭이다.
“좋은 비무였소.”
검성 목선오는 그런 중 만난 사람이다.
“당신은 참 훌륭한 협객이시구려. 비무 중, 스스로의 무력에 교만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소. 내 대협을 뵙소.”
검군이라 불리며 강호를 뒤집은 고수.
당시 목선오에 대해 그리만 알고 있던 사백운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단 말이오?!”
처음이었다.
맹룡창이라 불리는 만큼 사백운의 공력은 포악했고 무공은 거칠었던 까닭이다.
비무를 할 때면 상대방에게 ‘비무이니 조금만 살살 해주시오’ 따위의 말만 들었던 사백운은 그 나름의 배려를 처음으로 알아채준 목선오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고, 이윽고 그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세상에 협이 서기를 바라오. 모든 이가 일말의 여유를 타인을 향한 호의로 덜어내어 준다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오. 나는 그런 협의가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싶소.”
목선오는 분명 사백운의 이상에 있는 사내였다.
배움을 얻고자 했고, 그와 닮고자 했다.
그렇게 대의를 위해 싸웠으며, 혈사를 함께 이겨냈다.
최후의 순간, 서로의 선택이 다른 곳을 향했다곤 하나 여전히 사백운이 닮고자하는 것은 목선오였다.
여전히 사백운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사내였다.
“네이노오오오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창을 휘두른다.
찌른다.
막는다.
세 가지 동작을 거칠게 이어가며 3인의 초월자를 맞상대한다.
물론 우세는 아니었다.
도리어 명백한 열세였다.
몸 곳곳은 이미 진창이 되어있고 뭔지 모를 사술에 공력 또한 빠르게 소모된다.
그에 반해 상대들은 여유로웠고, 그들이 뿌려대는 공력 탓에 주변 무인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끄아아아아악!!!”
그저 함께 중원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일어선 협사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것에, 이제와 사백운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두지 못할까!!!”
그저 공격하는 게 아니다.
사백운은 그들의 공력을 몸으로 받아내고, 또한 반대쪽으로 날려버리며 이리 불리한 와중에도 싸움을 이어갔다.
그것으로 모자라다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미련한 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채애앵―!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찌푸린 염소소가 달려와 노파의 손톱을 막았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콰아아앙!
공간을 찍어 내리는 짓푸른 기파와 함께 남궁혁이 사백운의 등 뒤로 날아오던 강기를 튕겨냈다.
“이 병신같은 놈들!”
마일석과 진건이 달려왔다.
그들의 손엔 각각 하나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왔다! 이놈들아!”
도왕 진건이 쥐고 있던 머리를 1장로를 향해 던졌다.
“5장로…!”
“이것도 받아라 요놈아!”
마일석이 머리를 던졌다.
사백운도 알 수 있었다.
흉터가 가득한 머리는 마일석이 그리도 욕하던 4장로의 머리였다.
두 사람은 장로들이 당황한 틈을 타 곧장 도와 몽둥이를 휘둘렀다.
장로들이 뒤로 빠진다.
사백운은 헉헉 숨을 내쉬며 제 사방을 막아선 옛 동료들을 바라봤다.
‘이것은….’
전황이 뒤집혔다.
한창 이 셋을 홀로 잡아두는 동안 다른 이들이 남은 장로를 끝내고 온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괜찮느냐 이놈아!”
마일석의 말에, 사백운은 그제야 힘 풀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늦지 않게 와주셨구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이들을 목숨을 앗아갔던 저 마두들을 끝장낼 수 있다는 희망이.
“그래, 빨리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마교의 본단을…!”
하나, 너무 이른 희망이었다.
쿠구구궁―
자리해 있던 모든 초월자들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무림맹 측이고 마교 측이고 할 것없이 정말 동시에, 모두가.
“…무엇이냐.”
마일석의 말마따나, 정말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 공간을, 전장을, 이 땅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쿵! 하고 무릎 꿇는 장로들을 통해, 싸움을 멈추고 일자로 길을 트는 마인들을 통해,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말을 통해.
“천마군림! 만마앙복!”
갈라진 마인들의 한가운데로 한 사내가 유유자적 걸어온다.
흑색의 곤룡포를 입은 남자다.
긴 장발이 바람에 휘날렸고, 눈에 담긴 것은 공허함뿐이다.
하나 특이한 점은 이리 격렬한 전장 한가운데를 걸어옴에도 마치 산보를 나온 듯한 가벼움이 그 발걸음에 깃들었다는 것 정도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1장로가 바닥 깊이 고개를 처박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밝혀진 정체에 사백운은 숨을 삼켰다.
천마신교의 교주.
그 단어가 머릿속을 ‘꽝!’ 하고 때린다.
‘대체….’
저것은 무슨 괴물인가.
대체 어떻게 저것을 이기란 말인가.
어떻게 저것을 막으란 말인가.
창을 뻗는 순간 필패일 터다.
그 어떤 수를 쓰던 저 상대에겐 일말의 타격조차 주지 못할 터다.
무거운 기파나 악독한 마기, 그 외의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다만 교주의 존재감 하나만이 사백운의 머릿속에 그런 결론을 띄워 올렸다.
교주가 고개를 드는 순간 아득한 절망감이 사백운의 속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무엇하나.”
와중 교주가 말했다.
“싸워라. 아직 여흥이 필요하니.”
잔이라도 함께 기울이자 말하는 듯, 가벼운 어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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