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8 이십장 - 충돌, 격류 (4)
* * *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꼴이 됐다.
출혈, 골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상처가 전신을 다 내리누른다.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다.
무당의 장문인 태허진인은 슬슬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현공… 아니, 마교의 첩자를 바라봤다.
“공아….”
“다시 소개를 드려야겠지요.”
살아생전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한 그가 다가왔다.
“신교의 사마공입니다. 소개는 이 정도면 될까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것은 진짜 이름.
사마공. 사마공.
태허 진인은 알았다.
신교의 사마 성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육문이었더냐.”
마도육문 천뇌문(天腦門).
그 직계가 사마씨를 쓰는 것은 중원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호오, 알고 계시는군요. 영광이라고 해야 합니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닐 텐데요.”
사마공의 얼굴 위론 여유가 가득하다.
“어째서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하셔야지.”
사마공이 태허진인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크헉!”
핏물이 토해져 나왔다.
징징 울리는 귓가에 박히는 것은 웃음기 가득한 사마공의 목소리였다.
“제가 왜, 그 오랜 시간을 웃기지도 않는 도사 놀이나 해왔느냐. 그걸 물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무당의 무공이 필요했습니다. 부드러움을 본으로 끊임없는 흐름을 만드는 무학, 당신들이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그 무학 말입니다.”
그런 이유였나.
“당신들은 모르겠지요. 태극혜검이 왜 신공인지 말입니다. 그걸 모르니 당한 거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으니 당한 겁니다.”
사마공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눈에서 경멸이 느껴졌다.
태허진인은 옅게 숨을 토해내며 그 눈을 마주했다.
떠오르는 것은 먼 과거, 아직 장문인이 되지 않았던 시절 사마공과 처음 만난 날이었다.
*
온 세상이 설원이 된 추운 겨울날이었다.
무당산 또한 쌓이는 눈에 평시와는 다른 정취를 보이고 있었다.
태허진인은 그날 왜인지 모를 이끌림에 산을 내려가 거리를 거닐었다.
현공은 그곳에서 만난 아이였다.
“음? 너는 왜 이곳에 있느냐?”
고작 다섯 살배기나 되었을까.
현공은 이 추운 겨울에 허름한 옷 하나만을 입은 채로 골목에서 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친 순간, 태허진인이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맑구나.’
눈동자가 참 맑았다.
투명한 호수면을 보는 것처럼.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을 말이냐?”
“네, 그리고 상상했습니다.”
“무엇을?”
“눈이 다 녹아내리면 다시 따스해질 땅을요.”
태허진인은 호기심을 느꼈다.
“어째서 그런 것을 떠올렸느냐?”
“저의 고통이 찰나이리라는 믿음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음?”
“눈이 녹으면 다시 땅이 따스해질 것 아닙니까. 또다시 겨울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저는 추위에 떨며 자지 않아도 되겠지요. 예컨대 이런 것이 순환이겠지요.”
태허진인은 크게 놀랐다.
이 어린 아이가, 그것도 배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가 세상의 순환을 깨우치는 오성을 지녔다는 것에 큰 감탄을 토해냈다.
이어 내뱉는 말은, 호기심 위로 덧씌워진 일말의 욕심에 의한 것이었다.
“너는 그 순환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혹시 이 답마저 안다면 아이를 거둬도 되지 않을까.
이 아이가 무당의 미래를 이끌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 기대감은,
“어떤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지요.”
보답받았다.
“…아해야.”
“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어디로 말입니까?”
“무당으로.”
아이의 눈이 끔뻑였다.
어딘가 허허롭고 공허하여 태허진인은 긴장해야만 했다.
하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가면 식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게도 너무 허기가 지는 지라.”
어린 현공은 웃으며 말했다.
흐름을 논하면서도 아이다운 모습이야말로, 태허진인이 현공을 아꼈던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몰랐다.
*
‘처음부터….’
모두 계획된 것이었구나.
허탈함이 속을 아프게 했다.
비틀린 웃음을 짓는 사마공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경멸을 담은 눈동자가 너무 낯설다.
태허진인이 아는 사마공은, 무당의 선룡 현공은 언제나 허허롭고 절대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낸 적이 없는 아이였으니 당연했다.
태허진인의 입술이 달싹였다.
처음 무당에 들어온 날 보였던 호기심은 무엇이었느냐.
검을 쥔 순간 피워올리던 미소는 무엇이었느냐.
후기지수의 대표가 되어 태극혜검을 전수받는 순간 끝끝내 거절하려 했던 그 겸손은 다 무엇이었느냐.
너는 참으로 무당다운 아이이지 않았느냐.
소리 내 물으려 하지만 이젠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태극혜검은 이어질 것입니다. 신교의 검으로.”
태허진인은 쌕쌕 숨을 내쉬며 그 말을 들었다.
그러다 이내 한 마디를 토해냈다.
“공아.”
“유언입니까?”
“공아, 너는….”
비틀린 미소, 경멸 어린 눈, 드디어 드러난 정체.
그 모든 것이 배신을 말한다.
한데도 태허진인은 그를 좀처럼 미워할 수 없었다.
아마, 너무 늙어버린 이유일 테다.
“…너는, 태극혜검을 사랑하느냐?”
사마공의 표정이 슬쩍 굳었다.
무슨 감정일까.
마지막에 토해낸 말이 겨우 이런 것이라 김이 빠진 것일까, 그도 아니면 황당함에 굳은 것일까.
깊게 생각할 기력이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하여 그저 말했다.
“무당은, 너에게 따스한 집이었느냐?”
미소를 보였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이 아이가 무당을 사랑했을 가능성을 믿고 싶어서.
그간 함께 살아오며 보았던 모습에 조금은 진심이 섞여 있길 바라여서.
“그랬으면 좋겠구나. 누가 뭐래도, 내게 너는 자랑스러운 무당의 아이였다.”
아, 더 말이 나오지 않는구나.
태허진인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사마공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그의 검이 하늘 높이 들렸다.
그것에 눈을 감았다.
‘무량수불.’
천존께서 이 아이를 잘 이끌어주시길 바라는 수밖에.
*
검날이 흔들렸다.
마지막 순간 단번에 목을 내려치지 못해 목뼈에 검이 걸렸고, 결과적으로 두 번을 내리쳐야 했다.
“끝났느냐.”
5장로가 말했다.
사마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돌아가시지요.”
“비급은?”
“머릿속에 들어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서책에 옮길 계획입니다.”
“알겠다.”
터벅터벅 5장로가 걸어갔다.
현공은 바로 그를 뒤쫓지 못했다.
목이 떨어져 나간 태허진인, 그리고 무당의 본 전력이었던 도사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들의 마지막을 눈에 담는 것이었다.
‘우둔한 것들.’
그리고 우둔한 장문인.
마지막 순간까지 그놈의 정에 이끌려, 그리 죽어버리니 한껏 비웃어주고 싶다.
한데도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 것은 장문인의 유언 같은 말 때문일 터다.
‘참 사람 감정을 잘 파고드는 노친네십니다.’
사마공은 인정했다.
그 순간의 말은 분명 감정을 파고드는 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큰 기대는 마십시오.’
천뇌문은 감정에 몸을 이끄는 법따윈 가르치지 않으니.
사마공은 뒤돌아 폐허가 된 막사를 떠나갔다.
*
제갈세가의 장원.
가주 제갈벽의 침소에 마일석과 목리원, 제갈산과 당화서가 자리했다.
“소식은 들으셨겠지요.”
“그래, 무당이….”
마일석의 표정이 침잠해졌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에 목리원 또한, 같은 표정을 만들어버렸다.
제갈벽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황이 급박해졌습니다. 당장 무당이 맡고 있던 진영이 뚫렸으니 적들이 파고들고자 할 것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청해를 뚫는 것이 신교의 지상과제일 것인만큼 그것이 해결된 순간 전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뒤집힐 테다.
“전방으로 올라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갈벽의 물음에 마일석이 단번에 답했다.
“그래,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 길을 틀어막으마.”
“도왕께서 이미 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쪽에서 장로급 병력을 얼마나 운용해올지는 모르겠으나, 걸왕께서 합류해 주신다면 큰 어려움은 없으실테지요.”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제갈벽은 그 물음에 쓴웃음을 그렸다.
“이곳에 남을 생각입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한다 하나, 전장을 보고 전략을 짜는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을 테니.”
제갈벽은 이제 스스로의 의지로는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또한 한 줌의 내력조차 뿜어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사실이 제갈산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온 듯했다.
제갈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제가 가주의 몫까지 힘써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제갈벽은 작게 웃었다.
“부탁하마.”
“얘기는 끝났느냐?”
마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결연한 얼굴을 한 채로 말했다.
“바로 떠나자꾸나. 한 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으니.”
“예!”
바로 일어나며 답하던 목리원은 순간 몸을 멈칫하며 당화서를 바라봤다.
“소저는 어찌할 생각이시오?”
“저도 함께 올라갑니다.”
“음? 누님은 보급을….”
“내가 없어도 향이가 책임자로 있어줄 것이다. 오대세가의 가주씩이나 되어서 보급을 핑계로 후방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 결정된 듯하구나.”
마일석은 그리 말하고 침소를 나섰다.
목리원과 당화서, 제갈산도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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