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96화 (196/334)

EP.196 이십장 - 충돌, 격류 (2)

* * *

장원을 거니는 당화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 걸음 끝에 있을 사내를 떠올리며 그리된 것이다.

몇 달만의 재회, 매번 그리기만 하던 얼굴을 마주하고 또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기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셨는데.’

너무 짧은 만남이라 판단이 쉽지 않았다.

…아니, 어찌 되었든 좋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눈다면 변화는 자연히 알게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당화서는 기쁜 마음으로 목리원이 있을 연무장으로 향했고, 이내 그를 만났다.

“아, 소저!”

“수련 중이셨습니까?”

“이제 막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었소!”

목리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흐른 땀을 훔쳐내는 움직임이 묘하게 심장을 건드린다.

그간 저 잘난 얼굴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조금 안 봤다고 또 어색함이 인다.

“소저는 볼일을 끝내고 왔소?”

“예, 가주와도 이야기를 나눴고 제갈산도 만나고 왔습니다.”

“그럼 지금은 한가한 것이구려.”

“한가하진 않지요.”

“응?”

“목 소협과 시간을 보내야하지 않습니까.”

당화서가 싱긋 웃으며 내뱉는 말에 목리원의 눈이 크게 끔뻑였다.

이윽고, ‘빵!’하고 터뜨리는 웃음과 함께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구려! 잠시 기다려 주겠소? 금방 씻고 나오겠소.”

“예, 식사라도 하러 가지요.”

“그거 좋구려. 내 좋은 곳을 알고 있다오.”

“그럼 오늘은 맡기겠습니다.”

목리원이 다가왔다.

함께 연무장을 나서는 당화서의 입가엔 이곳에 올 때보다 더욱 진한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짧은 담소를 나누며 입가로 손을 가리는 이유는 굳이 그에게 말하지 않을 터였다.

‘뜨겁구나.’

얼굴이 너무 뜨거워져, 붉은 뺨을 들킬까 염려되는 이유였다.

*

외출 준비를 마친 목리원이 나왔다.

당화서는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무복을 입고 돌아다니시진 않는 겝니까?”

“아, 걸왕님께 혼이 났소! 걸왕의 제자라는 이름을 달고 다닐 거면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도 신경쓰라는 것 아니겠소? 다행히 제갈 형이 도움을 줬다오.”

목리원은 흑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다.

은은히 빛나는 옷감을 보아하니 질 좋은 비단이 분명했다.

어찌 표현해야 할까, 윤기 나는 머리칼과 검은 비단옷이 어우러지며 떠오른 색채 한가운데, 곱고 흰 피부와 이목구비가 더욱 도드라지니 오늘따라 목리원이 더욱 어여쁘게만 보이고 있었다.

“이상하오?”

목리원이 어색한 듯 묻는 것에 당화서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여쁘십니다.”

라고 말한 직후, 당화서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목리원은 해맑게 웃었다.

“다행이오! 내 무인 된 사람일진대 이런 옷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항상 고민했다오!”

그리 말한 목리원이 옆으로 서자, 그의 체취가 은은하게 당화서의 코끝을 간질였다.

당화서는 심장이 콩콩 뛰는 기분을 느꼈다.

‘조금 달라졌나?’

조금 차분해진 것 같기도.

묘하게 어른스러워져 어색함이 감돈다.

“어서 갑시다!”

목리원의 말에 당화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휘적휘적 움직이는 그의 손이 괜히 신경 쓰인다.

잡을까 말까, 걷는 내도록 당화서의 머릿속엔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

“묵룡 대협! 오늘도 찾아주셨군요!”

“반갑소! 오늘은 손님과 함께니 오향장육으로 부탁해도 되겠소?”

“예이!”

도착한 곳은 대로변의 어느 객잔이었다.

점소이로 보이는 청년이 목리원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기는 것에 당화서는 생각했다.

‘없는 말을 하진 않으셨구나.’

좋은 곳을 알고 있다더니 단골집이라도 온 듯했다.

목리원의 취향이라기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객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주변을 살피자 목리원이 말했다.

“제갈 형이 소개해줬소. 여기 오향장육이 그리 맛난 게 아니겠소?”

“이제 소면에 죽엽청은 그만 드시기로 한 겝니까?”

“설마, 아직도 하루에 한 끼는 먹소.”

목리원이 껄껄 웃었다.

“협객의 식사가 아니오?”

이런 점은 변하지 않았구나.

내내 낯선 모습만 보이는 것에 떠올랐던 불안감이 또 조금 스러진다.

당화서는 웃었다.

“소면으로 식사를 하셔도 되었을 텐데요.”

혹 자신을 신경 써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게 아닐까 내뱉은 말에 목리원이 답했다.

“이 목리원도 이젠 아오. 소중한 사람과 식사 자리를 가질 땐 격식이 필요한 법이라는 것 말이오.”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뱉은 말이다.

한데도,

‘소중한…!’

그 말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버린다.

의도한 걸까? 아니, 표정을 보니 의도한 건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고 판단하긴 싫었다.

아, 얼굴이 너무 뜨겁다.

입꼬리는 왜 또 제멋대로 움직이는지 옷소매가 계속 일을 하게 만든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당화서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다행히 시선을 끌어줄 요리가 나왔다.

곧장 식탁 위로 올라오는 오향장육의 향이 꽤 군침을 자극한다.

제갈산의 추천이라던가? 그놈이 입맛 하나는 꽤 까탈스러운 편이니 엄한 걸 추천하진 않았을 것이다.

곧장 젓가락을 들고 한 입 먹자 과연, 그리 추천한 이유가 느껴지는 맛이다.

“어떻소?”

목리원의 물음에 당화서는 희게 웃으며 답했다.

“참 괜찮군요.”

“다행이오. 어서 식사나 드십시다.”

목리원이 젓가락을 들고 한입씩 식사를 시작했다.

당화서는 그 모습을 연신 흘끔댈 수밖에 없었다.

‘식사예절이라도 배워온 겐가?’

목리원 하면 입안 가득 음식을 채워놓고 우물대는 모습이 다람쥐 같아서 어여쁜 사내였을진대, 그는 전처럼 식사하지 않고 예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고 한켠으로는 아쉽다.

이전같은 모습은 더 볼 수 없는 것일까.

자신과 떨어진 사이 변해버린 것일까.

그런 걱정이 떠오른 까닭일 터다.

‘…아니, 이건 너무 추하지 않느냐 화서야.’

당화서는 떠오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그렇게 잡담이나 나누며 식사를 다 마친 순간이었다.

“차나 한잔하지.”

목리원이 점소이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차가 나왔다.

참 어색한 구도였다.

언제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고, 목리원은 뭘 해도 그저 좋다고 헤헤 웃기만 했으니 말이다.

자식이 독립하는 걸 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당화서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묘한 허허로움을 느끼며 차를 홀짝였다.

“그래서, 소저는 그간 어찌 지냈소?”

목리원이 물었다.

당화서는 웃으며 답했다.

“전방의 보급에 신경 쓰며 지냈지요. 다른 단원들도 다 만나고 이제 다음 보급을 위해 후방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아! 다른 단원들 말이오?!”

목리원의 눈이 반짝였다.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것처럼 들썩이는 모습이 어색함을 조금 지워준다.

당화서는 웃으며 말했다.

“예, 다들 여전합니다. 검룡은 특히 여전하구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구려. 잘 지내신다니 다행이오.”

목리원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만들었다.

당화서는 그 모습을 보다 물었다.

“한데 목 소협은 어찌 지내셨습니까? 그간 통 소식을 못 들었던 터라 궁금해지는군요.”

“음? 아, 하기야 내 소식을 들을 일은 잘 없었겠구려.”

목리원이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당화서의 귀가 활짝 열렸다.

대체 무슨 일을 겪고 왔기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차분해지나, 그런 생각이 든 까닭이다.

“운남에 다녀왔소.”

“운나….”

덜컥, 당화서의 몸이 멎었다.

운남.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중원 무림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혈마전입니까.”

당화서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혈마전이라 하면 목리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혈사가 끝난 날, 그곳에 버려져 있던 갓난아기 목리원을 구해온 게 목선오다.

적어도 당화서가 아는 사실은 그랬다.

“맞소. 걸왕님께서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다고 그러시더구려.”

“정보… 말입니까?”

“그렇소. 하여 함께 그곳으로 떠나갔는데, 글쎄 그곳에서 마교의 장로를 만난 게 아니겠소?”

당화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장로라면….”

“걸왕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소. 이제 꽤 신빙성이 생긴 정보요.”

목리원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혈천교가 마교와 연관되어 있는 듯하오.”

그 말에, 당화서의 표정이 쩌적 굳었다.

*

비단 마교와 혈천교가 연관 있다는 정보 때문에 이리 굳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목리원의 출신, 그리고 그가 혈마전에 간 이유 따위의 것들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는 게 이유였다.

당화서는 곧장 묻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의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느냐고.

목리원은 그가 알아낸 사실들을 모두 말하려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으나, 그럴수록 당화서의 속에 새겨지는 사실이 있었다.

‘목 소협은 모른다.’

그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본능에 의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목리원의 인지에 의한 것인지 당화서는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을 묻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진실인 까닭이다.

만약 목리원이 마교 출신이었던 것이라면, 그의 천살성과 극마지체는 마공을 익히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면.

지금의 목리원이 어떤 사내이든 그는 분명 백도 무림의 공적이 되어버릴 테다.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아닌, 목리원이 가진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안 된다.’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다.

‘그건 안 된다.’

확실한 인과 관계를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한다.

하여 외출을 끝내고 목리원과 헤어진 당화서는 곧장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걸왕님을 뵙습니다.”

진실과 가장 가까운 사내를 만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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