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94화 (194/334)

EP.194 막간 - 실수 (2)

* * *

돌아온 당화서는 침상에 누워 생각했다.

남궁진천에게 들은 말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 목 소협을 노리는 년들이 있을 수는 있지.’

어디 목리원이 좀 이쁘장하게 생겼던가.

사내 주제에 곁에 서면 미모로 모자라보일 걱정부터 떠오르게 만드는 외모가 아닌가.

게다가 성격도 순진해서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떠오르게 만드는 게 바로 목리원이란 말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목리원을 노리는 년들이 있을 수….

“없지.”

으드득!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살벌한 소리가 일었다.

스르르 뜨인 당화서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살의였다.

있어선 안 되지. 있으면 다시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줘야지.

어딜 남이 침 발라둔 것에 손을 뻗으려 하나.

그런 후안무치한 이들은 엄벌로 다스리는 게 도의적으로 옳았다.

‘목 소협도 문제다.’

어딜 외간 여자들 앞에서 함부로 고개를 들고 다니나.

본인 얼굴이 얼마나 잘생겼는지를 정녕 모르… 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아닌가!

분명 헤어지기전까지 분위기가 좋았지 않나!

필연적인 재회 후에 관계의 진전을 도모했어야 한단 말이다!

-묵룡의 침소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이 당화서밖에 없다.

당화서는 이미 그런 결론을 내려둔 상태다.

그 순간이었다.

-가주님.

소향이 문밖에서 기척을 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너라.”

당화서는 울분을 꾹 눌러내며 답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소향이 들어왔다.

언젠가 당화서의 시비였던 그녀는 이제와 가문의 여러 일을 함께 처리하는 실무자가 되어 있었다.

당화서는 애써 평온한 얼굴을 만들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더냐.”

“전방 보급 현황에 대한 보고입니다.”

소향이 고개를 숙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당화서는 서류를 받아 살폈다.

“일차적으로 보급이 끝났구나.”

“예, 다행히 금전적 여유가 있었던 터라.”

“없으면 안 되지. 팔아넘긴 땅이 얼만데.”

사천당문의 기존 중진들을 모두 쳐내고 가문의 크기까지 줄인 와중이다.

과정에서 내다 판 땅과 기물들의 가치가 얼마던가.

사실상 2차와 3차 보급을 모두 끝내도 남는 수준이다.

“그래, 수고했다. 다음 행선지는….”

“후방으로 돌아가 재보급 이후 다시 전방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병력은 어찌 되느냐.”

“호위 병력으로 맹의 무인 삼십이 붙습니다. 거기에 당문의 무인 이십까지 총 오십이니 혹여 물자를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합니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정도 병력이라면 혹시 있을 마교의 수작에도 어느정도 방어는 가능할 터.

그렇다면 안심하고 전방의 일을 더 주시해야….

‘…잠깐.’

생각을 이어가던 당화서가 덜컥 멎었다.

“왜 그러십니까?”

소향의 물음에도 당화서는 답을 주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사고 탓이었다.

‘후방으로 가는 길이 분명 제갈가의 장원을 지나갔었지.’

아닌 게 아니라, 제갈가의 장원이 제 1차 보급로인 만큼 오가는 길에 자연스레 들리게 되는 것이다.

즉, 이번 행렬에 따라나선다면 ‘우연히’ 제갈가에 있는 목리원을 만날 수도 있단 말이다.

당화서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 망할 계집들을…!’

엄벌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쥐고 있던 서류가 구겨졌다.

그것에 소향이 눈을 좁히며 물어왔다.

“가주.”

“왜 그러느냐.”

“또 묵룡을 생각하십니까?”

움찔, 당화서의 어깨가 들썩였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십니까? 가주께선 묵룡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묵룡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눈에 핏대를 세우십니다. 호흡이 거칠어지시고 입꼬리가 삐죽거리시는데….”

솔직히 되게 음흉해보입니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뒷말이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뭘까.

당화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솔직히, 한 번씩 동경을 보던 중 목리원을 떠올리면 딱 지금과 같은 표정이 나왔던 까닭이다.

당화서는 스스로가 얼마나 음흉한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잘 알았다.

“그래서, 같이 가시겠지요? 묵룡이 제갈가에 있으….”

“향아, 그런 이유가 아니란다.”

“네네.”

“정말 아니란다. 마침 전쟁이 격렬해지니 보급 행렬에 힘을 더해야 하지….”

“어련히 그러시겠죠.”

“향아….”

“가주, 가주는 변명에 소질이 없으십니다.”

당화서의 입이 꾹 다물렸다. 뺨에는 홍조가 떠올랐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

현 당문의 핵심 인사 중 하나인 소향.

그녀는 인생의 기구함을 논하는 자리에 나가면 일등을 논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당문의 호위로 교육받아 소가주인 당화서의 곁을 지켰다.

그녀가 힘들어할 땐 어깨를 감싸주고, 그녀가 기쁠 땐 함께 기뻐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당화서가 당문을 탈출한 날에 함께 길을 떠나 5년.

돌아온 당문에서 그 환란을 당화서와 함께 헤쳐 나갔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지금 소향은 살아있는 당문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당문의 누구도 감히 소향에게 항명하지 않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적어도 당문 안에서 소향은 그런 지위에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겐 남들에겐 말 못할 고민거리가 있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바로 가주인 당화서에 관한 고민이었다.

정확히는, 첫사랑에 끙끙 앓는 당화서에 관한 고민이었다.

상대는 바로 중원 강호를 뜨겁게 달군 젊은 고수 목리원.

얼굴만 잘난 푼수였다.

‘가주께서 사내에게 약하실 줄이야.’

목리원만 관련되면 질투에 눈이 멀어 바보가 되어버리는 당화서가 걱정이다.

소향은 목리원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에 대해 모르지 않기에 꽤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 강서성 수양현에서 그와 대적한 것이 자신이 아니던가.

막 강호를 나오던 시기의 그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자신이 아니던가.

소향도 인정했다.

목리원은 선하다. 협의를 알고 무공 또한 뛰어나다. 무엇보다 얼굴이 잘 생겼다.

하지만 말이다.

그런 목리원을 당화서의 짝으로 점지하려니 소향의 속에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그 푼수가 부군?’

소향은 등골이 섬찟해졌다.

푼수 같은 목리원, 그 푼수 앞에선 똑같이 푼수가 되어버리는 당화서.

그렇다면 당문은 누가 이끌고 나가나.

당문의 미래는 대체 누가 지켜주느냔 말이다.

소향의 머릿속에 끔찍한 장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목 소협, 오늘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합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좋소! 그런데 일은 누가 하오?

-향이가 할 것입니다.

오소소,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소향은 감히 장담했다.

그 둘이 이어진다면 자신은 평생 당문만 지키다 외로이 죽어버리란 것을.

‘하지만….’

그래도 목리원이다.

고금제일의 후보로 논해지는 목리원이다.

분명 그가 당문에 소속되는 순간부터 당문의 기울어버린 가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드높아질 것이다.

아깝지 않나.

무려 고금제일후보가 당문 소속이 된다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말은 당문의 첩자나 할 법한 소리였다

물론 당문 같이 허름한 세가에 첩자까지 넣을 인간은 없겠지만 말이다.

‘실리냐, 그도 아니면 평온한 삶이냐.’

소향은 눈을 질끈 감고 고민했으나 답을 낼 수 없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행렬이 떠날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부하의 말에 소향은 눈을 번쩍 떴다.

“그래, 가주님은?”

“아직 나오지 않고 계십니다.”

소향은 고개를 기울였다.

당화서는 절대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는 철두철미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직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니, 소향의 속엔 불안감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거라.”

소향은 재빨리 당화서의 처소로 향했다.

혹 몸이라도 안 좋은 것이라면 몇날며칠이건 병간호를 할 생각이 만만했다.

그렇게 도착한 처소.

쾅!

“가주!”

“으, 음?”

문을 연 소향은 드리워진 광경에 쩌적 굳어버렸다.

“…아, 향이 왔구나. 벌써 시간이 되었다더냐?”

당화서가 동경 앞에 앉아 분칠하고 있었다.

얼마나 꼼꼼히 칠한 것인지 모공도 안 보일 정도였다.

소향의 시선이 한가득 깔려있는 치장품들을 향했다.

소향은 무심코 물었다.

“뭐 하십니까?”

“대, 대외적인 자리에 나가는데 지저분한 모습은 보여선 안 될 것 아니냐.”

목리원을 만나러 갈 생각에 꾸미는 것이겠지.

“그래도 내가 당문의 얼굴이 아니냐. 어찌 주인 되어 당문을 먹칠하겠느냐.”

그 당문, 제 손으로 무너뜨린 사람의 말이었다.

“햐, 향아. 그러지 말고 이리와서 나 좀 도와다오. 이 색이랑 이 색 중 어느 것이 더 나아 보이느냐?”

똑같이 빨간 것을 두고 차이를 논하라니, 이게 안력 수련인가 싶다.

“…향아?”

“가주.”

“…으응?”

“선보러 가십니까?”

거 뭣하러 이렇게까지 꾸미시는 겁니까.

그 푼수라면 거지꼴로 나타나도 가주를 반기실 텐데요.

내뱉어봐야 당화서를 기쁘게만 할 말이라 소향은 꾹 참아냈다.

거짓말은 할 생각도 말라는 의미를 담아 강하게 노려보니, 당화서가 그 와중에도 뻔뻔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데….”

안 어울리게 소녀처럼 구십니다.

소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되었으니 나오십시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일정이 꼬입니다.”

“알겠다. 알겠어. 소향이 너도 성격이 참 급하구나.”

당문의 미래가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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