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 막간 - 실수
* * *
한창 전쟁이 이어지는 청해, 개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는 곳은 단연 최전방이다.
“진천아.”
남궁진천의 숙부 남궁운이 그를 불렀다.
남궁진천은 연무장 한가운데서 가부좌를 틀던 중, 눈을 뜨며 답했다.
“예.”
“출정이다. 준비하거라.”
남궁진천은 몸을 일으켰다.
아직 채 갈무리되지 않은 공력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남궁운은 작게 감탄했다.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구나.’
너무 빠른 속도.
이제까지 22년간 남궁진천을 봐온 남궁운이기에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경지의 상승이었다.
이유야 복합적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몸에 쑤셔 박은 영약이 청해에서의 실전으로 점차 녹아들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끔찍한 전쟁의 민낯이 남궁진천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시 잡게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개중 가장 그럴싸한 이유를 들라 말한다면 남궁운은 말할 것이다.
“그리도 묵룡이 이기고 싶나 보구나.”
남궁진천이 흠칫했다.
그의 얼굴 위로는 미약한 짜증이 떠올라 있었다.
“…뒤처지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놈은 제가 이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나아갈 테니.”
확신이 깃든 어조였다.
남궁운 또한 그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렴 이때까지 강호에 목리원보다 빠르게 성장한 무인이 있긴 했던가.
그보다 충격적인 행보를 보인 무인이 있긴 했던가.
목리원이라면 분명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깨달음을 얻고 있을 것이다.
‘암, 다름 아닌 검성님의 제자이니.’
남궁진천도 조바심을 느낄 것이다.
목리원이 나타나기 전까지 예견된 다음 강호의 주인은 남궁진천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차에, 갑작스레 나타난 호적수는 호승심을 끌어올리기에 썩 좋은 상대였을 테고.
‘이거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나.’
목리원에게 감사의 뜻으로 무어라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던 중 남궁진천이 남궁운을 지나쳐갔다.
“가지요. 전장으로.”
남궁운은 한껏 날카로워진 남궁진천의 기도에 뒤통수를 긁었다.
‘이제 비무에서 이기기도 힘들겠구먼.’
슬슬, 남궁진천이 턱 밑까지 쫓아오고 있는 것에 숙부로서의 위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청해와 신강의 경계, 그곳엔 서로 다른 깃발을 든 채 진을 친 신교와 중원의 병력이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조부 남궁혁의 곁에 선 채로 말했다.
“오늘도 따로 움직이십니까.”
“그래, 오늘은 결판을 지으려 한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 일주일, 남궁혁은 도왕 진건, 살성 염소소와 함께 전장을 헤집는 마교의 장로를 쫓고 있었다.
하나 그 상대가 너무 신출귀몰하여 도저히 뒤쫓을 실마리가 없는 상황.
남궁혁의 성격에 슬슬 화가 차올라도 잔뜩 차올랐을 터다.
“너는 어디를 가느냐.”
“검마를 잡으려고 합니다. 근방에서 몇 번 마주칠 일이 있는지라.”
매번 애매하게 수를 나누다 멀어지긴 했지만, 목표를 잡는다면 검마였다.
“짜증 나는 무공을 쓰는 지라 한 대라도 처박아주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듯합니다.”
“목을 가져오면 제왕검형을 다시 손봐주마.”
“잊지 않겠습니다.”
남궁진천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뿌우우우우우―!
뿔피리가 전장에 길게 울린다.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가자꾸나.”
라고 말한 남궁혁이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진각을 밟았다.
직후 남궁혁은 이미 전장의 한 가운데로 가 있었다.
남궁혁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리고 참수하듯 허공을 내리그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마교 진영의 한가운데, 세로로 길게 검기가 쏘아져간 검기가 경로상의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돌겨어어어어어억!!!”
남궁혁의 외침과 동시에 전쟁이 시작됐다.
*
그로부터 약 하루가 흘렀다.
이번 역시 서로의 전력을 소모하는 소모전의 형태로 전투가 끝을 맺었다.
형세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이어진다.
당연, 날이 갈수록 체력이나 정신력의 소모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남궁진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못 잡았나보구나.”
“쥐새끼처럼 빠져나가 버린지라.”
남궁진천은 쯧 혀를 찼다.
검마 연리건, 방어적인 무공 탓에 칼을 쑤셔 넣기도 힘든 상대가 틈만 나면 도주를 해버리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오늘 또한 그랬다.
드디어 한 방 먹여줄 수 있나 싶은 순간에 다른 마인들이 끼어들어 연리건 대신 죽어버렸다.
“일단 쉬거라. 들려오는 말로는 앞으로 사흘은 전투가 없을 것 같다더구나.”
“예.”
남궁진천은 숙소로 돌아갔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상태만 봐선 당장 쓰러져 잠들 수준일 테다.
한데도 남궁진천은 쉽사리 잠에 빠지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어지는 전쟁인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 전쟁이 언제나 되어야 끝을 맺을지에 관한 걱정도 떠오른다.
그리 이어지는 생각이 이내 한 여인에게까지 닿는다.
‘서예.’
하오문주 서예. 그녀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혹 이곳에서 막지 못한 마인이 그녀가 있는 귀주까지 흘러들어간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녀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궁진천은 작게 미소를 띄워 올렸다.
‘아픈 곳은 없어야 할 텐데.’
여간 약골이 아니라 그게 걱정된다.
그리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대공자님.
시비가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
남궁진천은 벌떡 일어났다.
설마, 설마 서예인가.
이리 그리워한 것이 자신만은 아니었던 것인가.
혹여 전장에 있을 자신이 걱정되어 서예가 이곳까지 온 것인가.
남궁진천의 입가에 삐죽삐죽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곧장 성큼성큼 걸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짝 굳었다.
“검룡, 오랜만입니다?”
당화서였다.
날카로운 인상에 하얀 피부, 새까만 머리칼의 대비가 특징적인 여인.
그녀를 본 순간 남궁진천의 표정에 노골적인 실망감이 떠올랐다.
당화서의 이마엔 핏대가 솟았다.
“그 표정은 뭡니까?”
“아니다.”
와도 꼭 이런 여자가 오는 건가.
이건 손님도 아니지 않은가.
남궁진천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투덜거림을 이어갔다.
*
그래도 손님 취급은 하는 게 도리라 남궁진천은 당화서를 접객실로 이끌었다.
이후 차를 마시는 당화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인가.”
“어쩐 일은 무슨, 보급 때문에 왔지요.”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화서는 사천당문의 주인으로서 이곳에 온 것이니 용건이라면 그것밖에 없었다.
“잘 지내고 있으신 듯해 다행입니다.”
“잘 지내는 걸로 보이나?”
“모가지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 볼 수 있지요.”
당화서가 눈을 좁히자 남궁진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
역시 용봉단의 폭군다웠다.
방 안이 조용해진다.
와중 당화서가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전방의 다른 막사도 들렀습니다.”
“그런가.”
“예, 백봉과 일운 스님도 뵈었지요.”
그들의 소식은 남궁진천으로서도 꽤 궁금한 종류였다.
정이란 걸 무시할 수는 없는지 그들이 잘 지내는 지에 대한 걱정이 이따금 들던 게 아니겠나.
남궁진천이 집중을 더하자 당화서가 말했다.
“백봉은 여전합니다.”
“전장에서도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건가.”
“만나려고 했지요. 아미파 스님분들이 제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말린다고 말을 듣긴 하는군.”
“대신 화풀이 할 전장이 있지 않습니까? 요즘 전장에서 날뛰는 백봉을 본 무인들이 그럽디다. 백봉이 아니고 백룡이라 불러도 모자라겠다고.”
하기야, 혜운의 불같은 성정을 생각하면 안 나올 말도 아니었다.
“일운은 어떤가.”
“강해졌습니다.”
우뚝, 남궁진천의 몸이 멎었다.
“…강해졌다라.”
“실전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던가. 그런 소릴 하더군요. 기도가 더 날카로워지셨습니다. 스님답지 않아서 부끄럽다 이르시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건 있었습니다.”
“뭐지?”
“절정의 끝자락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남궁진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또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젠 뒤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건가.’
목리원을 뒤쫓는 일만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뒤따라오는 것이 너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제갈벽이 변을 당한 날 제갈산이 초절정에 올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 않나.
앞뒤로 난리들이니 남궁진천의 조바심은 조금 더 심해졌다.
그런 순간이었다.
“…저도 하나만 묻겠습니다.”
“음?”
당화서의 태도가 조금 조심스러웠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윽고 당화서가 말했다.
“혹 목 소협의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아, 전방 보급을 다니느라 제갈세가의 소식을 듣지 못한 듯하다.
어쩔까, 남궁진천은 고민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도 큰 상관은 없으나, 직전까지 들은 단원들의 소식에 괜히 못된 심보가 차오르는 와중이다.
‘독봉이라면.’
홀로 앞서나가려는 목리원의 발목을 한 번은 잡지 않을까.
당화서만 보면 헬렐레하는 목리원이 수련을 조금은 게을리하지 않을까.
어린애나 할 법한 발상을 한 남궁진천은 이내 말했다.
“제갈세가와 합류했다더군. 들리는 염문으로는 그곳 계집들이 묵룡을 탐하기 위해 매일 밤 그놈 숙소 근처를 서성인다던….”
꽈직―!
당화서가 들고 있던 잔이 으깨졌다.
남궁진천은 딸꾹질을 했다.
“호오…?”
당화서의 몸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남궁진천은 숨을 꾹 참았다.
“그 얘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만.”
희번뜩 뜨이는 당화서의 눈을 보니 뭐랄까.
‘…실수했군.’
남궁진천은 드물게 목리원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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