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88화 (188/334)

EP.188 십구장 - 청해, 부자 (8)

* * *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되새기는 일조차 가증스럽다.

제갈벽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저 먼 미래만을 바라보며 당면한 모든 과제를 외면한 스스로의 우둔함을 말이다.

슬퍼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제갈벽은 고서연의 시신 앞에서 울지 못했다.

뒤늦게야 후회하고 슬퍼하는 스스로가 경멸스러워 그저 모든 이가 무덤을 떠날 때까지 홀로 남아 이별을 곱씹었다.

“내가….”

중얼거린다.

“…내가, 너에게 너무 큰 죄를 저질렀구나.”

너는 떠나버렸구나.

나는 평생을 사죄조차 못하겠구나.

나는 이다지도 못난 남편이 되어 살아남았구나.

목이 메어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흐느낌을 겨우 토해냈다.

원망과 증오의 감정이 몸을 감싼다.

스스로를 향한 원망이었고, 금화장을 향한 증오였다.

“꼭, 언젠가는 내가 너의 복수를 이뤄주마. 그리고 내 마땅한 형태의 죽음을 맞을 것이다.”

제갈벽은 그날 고서연의 묘소 앞에서 다짐했다.

그녀를 이리 만든 금화장을 반드시 몰락시키겠다고. 그들의 기둥뿌리 하나까지 모두 뜯어 불구덩이에 처넣겠다고.

그리고 아파야만 했던 제갈산에게, 그 아이가 바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내내 고서연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제갈산은 결국 고서연의 사인을 밝혀냈다.

그리고 찾아왔다.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다.

나도 몰랐다.

내가 너무 못나 너의 어미를 지켜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수많은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럼에도 무엇 하나 내뱉지 못했다.

뒤늦게야 사죄를 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가증스러운 행위처럼 느껴져, 끝까지 아이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못 한 주제에 말로 사죄하는 행위가 가증스럽게만 느껴져 제갈벽은 차라리.

“…그렇다면 어쩔 것이냐.”

죄인이 되기로 했다.

아이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해내고자 했다.

원망을 곱씹어 증오로 태워 올린다면 제갈산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미를 위해 세가를 증오한 것처럼, 그렇게 성장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더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터다.

“당신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

“그러니 그것을 위해 살겠습니다. 막을 테면 막으시지요. 미래가 두렵다면 죽여보시지요.”

그것이 고독해야만 빛날 수 있는 아들에게 죄인 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죄였다.

제갈벽은 감히 바란다.

“못하시겠다면 저는 계속해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게 될 힘이 생기는 그 순간까지.”

죽음으로 하는 속죄를.

*

눈앞에 고서연의 얼굴이 있다.

그 사실이 제갈벽으로 하여금 잃었던 표정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하루도 그리워한 날이 없음에도 다시 볼 수 없어 뇌리에서 흐릿해졌던 얼굴이 선명해진다.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가슴이 잘게 떨린다.

“연아….”

진에 빠졌음을 알고 있음에도 흘려내는 것은 넋두리다.

“내가 너를 아프게 했구나.”

“내가 너를 그리 죽게 만들었구나.”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이냐.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토막나 흘러내리는 말에 물기가 서린다. 제갈벽은 어느 순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꼈다.

“내가 죄인이다.”

세상이 진왕의 위대함을 말한다.

그럼에도 제갈벽은 스스로를 조금도 위대하다 평하지 못했다.

“무공으로 초월에 올라 무엇하느냐.”

무인으로서 초월, 가주로서는 일류였다.

하지만 가장으로서는 삼류였다.

최악의 남편이었고, 최악의 아버지였다.

“정작 중요한 것 하나를 지키지 못해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내가, 너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

그 탓에 모두 망가져 버렸다. 끊임없이 후회한다.

조금만 욕심을 버렸더라면, 세가와 가족을 모두 손에 쥐려 하지 않았다면, 그저 고서연과 제갈산만을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나는 길을 잃었다. 네가 없어 길을 잃었다.”

슬픔을 토해내는 말이 한창 이어졌다.

그러던 중 고서연이 사뿐사뿐 다가왔다.

언제가 그녀가 서 있던 풍경을 가로지르며 제갈벽의 코앞에 도달했다.

“가가께선 참 바보같이 구십니다.”

그녀는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뺨 위로 손이 닿는다. 너무나도 실감 나는 형태로 눈물을 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 이르셨지 않았습니까. 제게.”

제갈벽은 그 말에 긴 숨을 토해냈다.

무릎이 꿇렸다.

고서연이 제갈벽을 감싸 안았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환영인지 진짜 영인지 모를, 모르고 싶은 고서연의 말에 또 한 번 위로받는다.

그녀의 존재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더욱 죄스럽고 감사하여 제갈벽은 입을 열고자 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푸욱―!

소리와 함께 제갈벽은 허리가 타들어가는 통증을 느꼈다.

조갑이 끼워진 손이 왼쪽 허리를 관통해 있었다.

“…아.”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머리, 삐걱삐걱 돌아가는 고개.

그곳엔 제갈산이 있었다.

멍하니 풀린 눈으로, 만면 가득 인상을 찌푸리며 거친 호흡을 내뿜는 제갈산이.

분명 환영에 휘둘려 이지를 잃은 모습이다.

“산아….”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

제갈산은 수십 수백 번을 도전했다.

제갈벽을 손으로 꿰뚫어 죽이는 순간의 반복이었고, 매 순간 환영은 그의 심장에 손톱이 닿기 직전 스러졌다.

그럴수록 제갈산은 더욱 이지가 흐려지는 것은 느꼈다.

그럼에도 제갈벽을 쫓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응어리진 마음이 공력으로 화하여 또 한번 몸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언제나 발목을 잡았던 일천한 공력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톱을 휘두르고 목놓아 비명지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달려 또 손을 뻗은 순간, 제갈산은 손이 무언가를 파고드는 감각을 확실히 느꼈다.

“산아….”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야 제갈산은 고개를 들었다.

팔이 제갈벽의 허리에 박혀 있다.

제갈산은 뒤늦게 멍한 정신을 일깨울 수 있었다.

‘이것은….’

환영인가, 그도 아니면 현실인가.

이 손맛을 환영이라 치부할 수가 있겠는가.

의문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스러진다.

“…뜻대로 되었구나.”

제갈벽이 말했다.

그의 얼굴 위로는 제갈산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표정,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주 씁쓸한 미소가.

*

이대로 죽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제갈벽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윽고 고개가 저어졌다.

‘이곳은 적진이 아니더냐.’

어찌 이 위험한 곳에 제갈산을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일은 했다간 고서연에게 사죄할 일 하나가 더 늘어버릴 것이다.

제갈벽은 눈을 질끈 감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죄인 되어 벌 받아 마땅한 삶이니 죽음으로 도주해선 안 될 터다.

툭, 제갈벽은 바닥을 짚었다.

몸을 일으키며 제갈산의 손을 뽑아냈다.

“…진법을 해주 해야 한다.”

딱딱한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못난 인간임이 이리도 다행인 때가 또 있을까.

“사적인 은원은 뒤로 미루라. 지금은 작전을 수행 중이니.”

제갈벽은 멍한 제갈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왼쪽 허리가 꿰뚫린 상처.

괜찮다. 당장은 버틸 수 있다.

“생문을 찾아야 한다.”

초월에 이른 육신은 겨우 이 정도로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문제 되지 않았다.

‘준비는 끝냈다.’

금화장을 몰아낼 준비를 끝냈고, 제갈산에게 세가를 물려줄 준비를 끝냈다.

전쟁 이전에 그 모든 준비를 끝냈으니 제갈산은 마땅한 복수를 손에 거머쥘 수 있을 터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하나만 생각하자.

오늘 목숨이 다하더라도 제갈산을 살려 보내는 것만 생각하자.

제갈벽은 허리 쪽을 점혈했다.

통증이 잦아들었고, 출혈이 상당 부분 멎었다.

이것이라면 충분하다.

“따라오거라.”

터덜터덜 걸어 진법의 생문을 찾는다.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던 기이한 향과 기의 유동을 떨쳐낸다.

그러자 제갈벽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생문이다.’

또한 진법의 중심이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었던 듯했다.

“잠시….”

제갈산이 말했다.

*

제갈벽의 허리를 꿰뚫는 감각이 아직도 몸에 선명하다.

제갈산은 피로 얼룩진 손을 바라보다,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제갈벽을 바라봤다.

어째서, 그리도 바라던 일을 했음에도 이리 가슴이 답답한지.

그가 보인 씁쓸한 미소가 문제인 걸까, 그도 아니라면 스스로의 마음이 문제인 걸까.

제갈산은 제갈벽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제갈벽은 여전한 무표정이다.

하지만 분명 그 속 어딘가엔 직전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허리가 꿰뚫린 순간조차 변함없는 무뚝뚝함이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 든다.

제갈산은 알았다. 이것은 증오 아래 깔려있던 마음이었다.

끝끝내 손에 쥘 수 없으리라 지레짐작하며 포기해버렸던 부자 간의 정이다.

결국 제갈산은 속에 이는 답답함을 어찌하지 못해, 그리 물었다.

“정말 몰랐습니까?”

주어를 떼어낸 말이지만 곧장 전해질 것이다.

무엇을 묻는 말이지는 그와 제갈산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

“어머니의 사인을 정말 몰랐습니까? 가주께선 어머니의 죽음에 아무렇지 않으셨습니까? 가주께서는…!”

말이 끊겼다.

짧은 침묵이 일었다.

뒤돌아선 제갈벽이 답했다.

그것은 분명 제갈산이 건넨 모든 의문을 해결해주는 하나의 답이었다.

“단 한 번도.”

왜 이제야.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이제야, 이리 늦게야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포기했으니, 그저 나를 원망하거라.”

당신께선 어찌 그리 서툴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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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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