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4 십구장 - 청해, 부자 (4)
* * *
제갈산은 제갈벽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게 품은 감정을 다 헤아려 보자면 고작 원망 정도가 있는, 두 사람은 그런 관계였다.
하여 제갈산은 단 한 번도 제갈벽에게 먼저 다가간 적이 없었다.
그가 말을 걸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그가 무언가를 물으면 건성으로 답하며 타인으로서 지냈을 뿐이다.
그랬던 제갈산이 처음으로, 제갈벽의 두 번째 혼인 소식에 먼저 그를 찾아갔다.
“안 됩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집무실에 앉아있다.
언제나처럼 일을 보고 있었고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갈산은 그것이 너무 미웠다.
마치 두 번째 혼인 따윈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그가 보이는 평정이 너무 미웠다.
“어머니가 있는데 또 혼인이라니요! 저는 절대 허락 못합니다! 이 제갈가의 대공자로서 제가 가장 앞서 반대할 것입니다!”
“반대를 불허한다.”
“그게 무슨…!”
“상대는 호북에서도 이름있는 명가의 독녀다. 이번 혼인으로서 얻는 이점이 있으니 감정적으로 굴지 말거라.”
“감정? 감정적으로라고 하셨습니까?!”
어찌 그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혼인이라 함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평생을 기약하는 일이 아닌가.
고작 이익을 이유로 가볍게 생각할 수가 있는 일이냔 말이다.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안다.”
“안다면 그리해선 안 됩니다! 어머니를 돌봐주지 못하실지언정 더 구석으로 몰아가선 안 됩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해야만 하는 일은 어머니를 돌보는 것입니다!!!”
제갈산은 목이 다 찢어져라 외쳤다.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나 그것도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
“…돌아가라.”
제갈벽은 무심한 어조로 그리 말하곤 글자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제갈산의 속에 원망으로 자리했던 감정이 끈적한 증오로 모습을 바꾼 것은.
“산아.”
“어머니.”
“산아, 그러지 말거라.”
제갈산은 울었다.
그의 모친이 이리 슬퍼함에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못내 가여워 그녀의 몫까지 울었다.
다만 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장로를 설득하고자 했고 세가 무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그리하면 어머니를 다시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겨우 8세에, 제갈산은 한창 아이다워야 할 시기에 어미를 위해서 대공자로 살았다.
“대공자님이 달라지신 듯하구나.”
“아무렴, 본격적으로 무공에 뜻을 두시니 그 성취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더군!”
“가주님의 적자가 아닌가! 제갈가의 피가 대공자께도 진하게 이어졌다는 뜻일 테지!”
“그래! 남궁가의 제왕성이 다 뭔가, 제갈가의 미래도 그 못지않게 밝을 걸세!”
칭송의 목소리, 또한 기대의 눈빛이 있었다.
하나 제갈산은 그것들에 기뻐하지 않았다.
제갈산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들의 지지였다.
하나 지지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꿈이었을까.
“둘째 마님께서 아들을 출산하셨다더군.”
“그럼 후계 구도는….”
“글쎄.”
‘세상이 나를 버렸구나.’
제갈산은 그날 비통함에 빠졌다.
어찌 이리 노력함에도 모친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기만 한다.
“산아, 이 어미는 괜찮다.”
무엇이 괜찮다는 말입니까.
그리도 슬픈 눈을 하고 계시면서 왜 입꼬리를 올리십니까.
제갈산은 속이 문드러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하여 9세의 제갈산은 말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편입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제가, 바로 제가 가주가 되어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이들을 벌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산이만 믿어야겠구나.”
“당연한 일입니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제갈산은 모친을 생각해서라도 쓰러질 수 없었다.
다행히 시간은 제갈산의 편이었다.
배다른 동생이 천자문을 다 떼기도 전에 대공자의 입지를 확실히 하면 된다.
그리고 가주직을 물려받으면 된다.
어떤 역경이 눈앞에 드러워지더라도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제갈산은 다시 일어났다.
그렇게 15세, 지학(志學).
제갈산은 일류 무인이 되어 형세를 굳혔다.
후계 구도를 정리했으며 무인으로서도 빛나게 되었다.
제갈산은 모친에게 달려갔다.
이제야 모든 일이 정리되었으니 그간 갖은 고생을 다 해온 모친도 이젠 웃을 일만 남으리라.
얼마나 고생을 심하게 하셨는지 병상에 누워계시는 날이 하루 이틀이던가.
이 소식을 들으면 모친도 못내 기뻐하시리라.
그런 생각으로 안채에 들어선 제갈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 이제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니?”
후계자 자리를 굳힌 날이다.
또래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남궁진천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날이다.
그리고 생애 첫 용봉지회를 한 달 앞둔 날이다.
“…어머니.”
제갈산은 싸늘하게 식어 죽은 모친을 마주해야만 했다.
야속하게도.
*
왜 이렇게 된 걸까.
제갈산은 내도록 그 이유를 찾고자 했다.
약 일 년, 폐인이 되어 그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무너뜨리며 제갈산은 홀로 세가를 조사했다.
그 끝에서야 모친의 사인이 독살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범인이 가주의 후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제갈산은 제갈벽을 찾았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는 여전했다.
어린 날 기억하던 그대로 여전히 모든 것에 무심했다.
“어머님이 죽은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까?”
속으로 기도했다.
여전히 증오스러움에도, 제갈벽이 그리도 싫었음에도 답은 다르길 바랐다.
나도 몰랐다. 미안하다. 후처를 벌하겠다.
제갈벽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제갈벽은 그런 기대에 어울려주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갈벽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것이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을 아는가.
혹 그런 기분을 안다는 사람이 있다면 제갈산은 도리어 물을 것이다.
당신의 삶은 얼마나 외로웠느냐고.
티끌만 한 믿음조차 보답받지 못하는 삶을 아느냐고.
타인을 증오하는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기분을 아느냐고.
묘한 일이었다.
제갈벽의 답을 듣는 순간 제갈산은 그리도 뜨거웠던 머리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모든 것이 회백색으로 빛바래 가는 중 오로지 제갈벽의 모습만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기형적인 현상임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고개를 든 제갈벽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식는 것이 다만 감정의 변화로 생긴 현상이겠는가.
절연성(絶緣星).
잃고 잃어 고독해질 수록 더욱 빛나는 별.
제갈산은 제게 깃든 별이 있음을 그날 깨달았다.
“당신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
“그러니 그것을 위해 살겠습니다. 막을 테면 막으시지요. 미래가 두렵다면 죽여보시지요.”
말조차 섞기 싫은 감정을 꾹 누르고 겨우 이른다.
“못하시겠다면 저는 계속해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게 될 힘이 생기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가문을 박차고 나섰다.
혼을 다해 복수해야만 하는 적.
제갈산에게 제갈세가는 그런 이들이 되었다.
*
마인들의 본거지를 앞둔 순간이다.
제갈산은 목리원을 보낸 후 나무 위에 누워 짧은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인상은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제갈세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 내내 꿈꾸게된 과거의 일 탓이었다.
“산아.”
그 목소리에 제갈산의 눈이 뜨였다.
제갈산은 눈을 굴려 아래를 바라봤다.
제갈벽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심함만 깃든 얼굴을 한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거 내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건가.’
꿈속에서 한창 괴롭힘 당했더니 눈을 뜨고 보이는 게 저 얼굴이라.
어찌 하늘도 이리 무심할 수가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려오거라.”
“예, 예. 올려다보자니 목이 뻣뻣하시겠지요.”
제갈산은 가벼운 몸짓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제갈벽을 마주했다.
짝다리를 짚었고 기색엔 빈정거림을 더했다.
그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걸까.
제갈벽은 뒷짐을 진 채로 여상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곧 전투가 있을 것이다.”
“압니다.”
“초월의 마인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피하거라.”
“꼴에 걱정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헛되이 명을 달리하게 만들 이유는 없지.”
제갈산의 이가 앙 물렸다.
눈빛에는 반항적인 기색이 한껏 진해진 채였다.
“제가 초월의 마인과 싸우겠다면?”
“개죽음을 당하겠지.”
“당신과 관계가 있습니까? 후계? 그 잘나신 첩이 낳은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네 어머니다.”
“내 어머니는―!!!”
하고 크게 외친 제갈산은 이내 말을 끊었다.
분노하는 모습 따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감정조차 제갈벽에겐 조롱거리일까 싶은 이유였다.
이를 악 문 채 제갈벽을 노려보며, 제갈산은 말했다.
“…내 앞에서 어머니란 단어를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래, 그럼 다른 이유를 들겠다.”
제갈벽이 뒤돌았다.
떠나가려는 듯한 태도였다.
“내 목을 노리겠다 하지 않았느냐. 목숨을 중히 쓰거라.”
그 말을 끝으로 제갈벽이 막사에 돌아갔다.
제갈산은 이후로 꽤 오랜 시간, 그 뒷모습을 보며 증오를 끌어올렸다.
그것은 분명 제갈산의 공력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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