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82화 (182/334)

EP.182 십구장 - 청해, 부자 (2)

* * *

다음 날부터 마일석은 보이지 않았다.

제갈벽과 어디론가 조사를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게 끝인데, 이에 목리원은 미리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마일석에 대한 묘한 섭섭함을 느끼며 제갈세가의 장원을 나서고 있었다.

“목 아우, 뭐 그리 죽상인가. 걸왕께서도 공사가 다망하신 게지.”

임무를 나가던 중 건넨 말, 제갈산은 목리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달랬다.

목리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기분에 속내를 털어냈다.

“그래도 조금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드오! 미리 말씀해주셨다면 오늘 아침상을 안 차려도 되는 것 아니었소!”

“…그게 문제였나?”

“걸왕님은 아침상을 안 차려두면 딱밤을 놓으시오.”

“오우.”

제갈산이 탄성을 흘렸다.

목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속에 담아 두어야 무엇하겠나. 마일석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일을 한 것일 터다. 목리원은 떠오른 섭섭함을 속에 묻고 걸음을 옮겼다.

“한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오? 생각해보니 어떤 임무를 맡는지를 듣지 않았구려.”

제갈세가는 정보 수집을 위주로 움직인다.

그런 까닭으로 청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목리원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오늘도 마찬가지, 제갈산이 임무가 있다고 말하기에 따라 나온 것이라 목리원은 의아함을 띨 수밖에 없었다.

제갈산은 말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첩보가 들어와서 말일세.”

“첩보?”

“인근에서 마인들이 수작질을 한다는 첩보일세. 우리 임무는 첩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걸세.”

이를테면 감사 같은 것일 테다.

목리원은 단번에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

도착한 곳은 청해의 한 한적한 마을이었다.

가구 수를 다 해봐야 백이 다 안 넘을 정도인 마을이었는데, 하나 특이한 점을 고르자면 거주민의 표정이었다.

“마인들이 수작하는 동네라기엔 양민들의 표정이 꽤 밝구려.”

“첩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니 말일세. 허탕이 대부분인 경우가 왕왕 있는 게지.”

제갈산이 바로 긍정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겉으로 봐선 모르는 법일세. 어디 한번 조사를 시작해보지.”

“알겠소. 내 힘내보겠소!”

“의욕도 좋군.”

제갈산은 껄껄 웃었다.

*

결론만 말해보자면 첩보는 틀렸다.

이후로도 네 군데의 마을을 더 들렸지만 첩보에 기록된 말과 일치하는 사실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이런 단순 노동으로 어떻게 마인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인가.

목리원이 슬슬 답답함을 느낄 적 제갈산이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게. 목 아우는 첩보에 관한 공부를 다 잊은 듯하군.”

“공부… 말이오?”

“그렇네. 공부.”

제갈산이 킥킥 웃었다.

“첩보가 무언가, 단순히 우리 쪽에서 정체를 숨기는 행위만을 첩보라 이르는 건 아니지 않던가. 우리가 상대방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게지.”

“…아!”

목리원은 뒤늦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위치를 알려 역으로 기습당할 상황을 조성하는 것.

그리하여 달려드는 상대를 생포하는 것.

그 또한 마찬가지로 첩보에 해당하는 기술이었다.

“내가 깜빡 잊었구려!”

“물론 나는 놀 생각으로 나온 게라네.”

“거짓말 안 해도 괜찮소. 제갈 형만큼 성실한 사람이 세상 또 어디 존재한다고 그러시오?”

“자네는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법을 잘 아는구먼. 그러니까 누님이… 아니, 아니네.”

제갈산이 대뜸 고개를 저으며 안색을 희게 만들었다.

목리원은 그 태도에 의문이 차올랐으나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당화서와 관련된 얘기만 나올 때면 이따금씩 이리 겁먹은 듯한 기색을 보이는 까닭이다.

‘소저라….’

그러고 보니 잘 지내고 있을까.

목리원은 당화서의 얼굴을 떠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고, 제갈산은 참 할 말이 많은 눈빛으로 그걸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어갔다.

허탕이었다.

*

이후 사흘 동안도 목리원은 그 어떤 마인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인들이 신중해서 근처에 오지 않는 것이라 말하기엔 너무 흔적이 깔끔했다.

그것이 목리원의 속에 의심을 더 짙게 만들었다.

“제갈 형, 이상하지 않소?”

“근처에서 무언가 수작을 하고 있는 게 확실하네. 너무 깨끗한 게 도리어 단서가 되었어.”

“어찌하시겠소?”

“일단 보고는 마쳤네. 아무래도 인력 충원이 필요….”

“대공자님.”

제갈가의 무인 하나가 다가왔다.

“가주님께서 복귀하셨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내뱉는 말에 제갈산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래서?”

“가주께서 찾으십니다.”

제갈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목리원은 잠시 눈치를 보다, 이내 제갈산에게 말했다.

“제, 제갈 형. 일단 보고도 있으니….”

“그래, 가보지.”

기세가 아주 사나웠다.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에도 짜증이 묻어났다.

목리원은 가만 제갈산의 뒤를 따라 걸었고, 이내 가주가 있는 안채에 도착했다.

“마침 같이 왔군.”

제갈벽이 정갈한 자세로 앉아 두 사람을 반겼다.

목리원이 포권을 취하자 손을 들어 제지한 제갈벽은 말했다.

“인사는 넘어가지. 그보다 중한 게 있으니. 먼저 걸왕께선 마인들의 흔적을 쫓아 먼저 움직인 참이네.”

“흔적이라면….”

“직전 자네들도 보고하지 않았나. 근처가 너무 조용하네.”

아, 그 일에 대해 따로 조사 중이셨구나.

목리원이 탄성을 흘리자 제갈벽은 제갈산에게 말했다.

“인근 산채의 산적들도 모두 침묵한 상태다. 정확히는 모두 쓸려나갔다.”

“…그렇습니까?”

“이미 무너진 산 채 대여섯개를 확인한 참이다. 흔적을 살피던 중 알게된 사실이 있다.”

제갈벽이 특유의 무심함이 깃든 어조로 말했다.

“적의 병력에 초월이 있다. 장로라 판단된다.”

목리원의 숨이 멎었다.

“장로급이라면 대대적인 병력이 그 뒤를 따르고 있을 터다. 전투가 있을지 모르니 급히 준비해 따라나서라.”

“명대로 합죠.”

제갈산이 그대로 등을 돌려 나섰다.

그 순간 목리원은 볼 수 있었다.

제갈산의 등을 바라보는 제갈벽의 입술이 달싹이다, 이내 꽉 물리는 것을.

‘으음….’

제갈벽은 제갈산을 좋아하는 걸까.

하긴 이제껏 보였던 제갈산의 일방적인 적의를 생각하면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러 아직도 사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목리원은 알았다. 자존심을 누르고 손아래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와중 제갈벽이 말했다.

“…자네도 가보도록 하게.”

“아, 옙!”

“묵룡.”

“이르십시오.”

“아들 놈을 잘 부탁하네.”

제갈벽이 눈을 감아버렸다.

목리원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이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제갈 형은 제가 아니어도 한 사람의 무인 몫을 잘 해내실 분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재능있는 형님이시니!”

아주 짧은 순간, 제갈벽의 표정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목리원이 보기에는 뿌듯함이 서린 미소였다.

*

어디로 향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제갈벽이 직접 행차하는 만큼 병력의 수와 질은 여느 때와 달랐고 그런만큼 목리원과 제갈산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도 많았다.

목리원은 머쓱함에 괜히 제갈산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갈산은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네. 그래봐야 자네보다 강한 사람은 이곳에 제갈가주밖에 없지 않나. 자네는 어엿한 강호의 고수라네. 그것도 백대 고수에 당당히 이름 올려도 모자람이 없는 고수.”

목리원은 허허 웃었다.

마냥 겸양 떨며 부정하긴 그 말이 사실인 까닭이다.

아니, 파고 들어가면 그 정도도 얕본 수준이라 말할 수 있었다.

이제 성련이 7성에 달한 상태다.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초월에 달할 수 있는 경지였고 그것은 즉 천살성과 극마지체, 신공이라는 무기를 가진 목리원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건 이미 초월에 이들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과장되게 말하면 고작 18살에 사성육왕을 제외한 최고수, 그러니까 십대 고수의 말석 정도는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 그런 사실에 빠져 방만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경지에 별의 도움을 받아 이른 경지라는 것.

또한 목리원이 나아가야 할 길에 거만함이나 우월감 따위는 천살성을 자극하는 그른 감상일 뿐이었다.

목리원은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강호에서 전력의 3할은 숨기고 살아야 하는 법이라는 강호협객전의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말했다.

“그저 주변의 도움이 많았소.”

“싱겁구먼. 나였으면 온 땅에 자랑하고 다녔을 것이네.”

제갈산이 껄껄 웃었다.

목리원도 부드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런 순간이었다.

‘…살기?’

아주 미약한 살기, 하지만 진득하게 파고들어 극마지체를 자극하는 살기였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간다면 설명이 될까.

목리원은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마인이오―!”

“쳐라!”

풀숲에서 마인들이 튀어나왔다.

그들 모두가 목에 괴상한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기척을 숨기기 위한 도구인 듯했다.

목리원은 곧장 달려나가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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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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