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1 십구장 - 청해, 부자 (1)
* * *
목리원은 제갈가의 장원을 바삐 쏘다녔다.
그리할수록 제갈산의 은엄폐 능력에는 감탄을 흘린다.
장원에 도착하면 바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어찌나 신출귀몰하게 다니는지, 거의 한 시진이나 장원을 뒤졌음에도 목리원은 제갈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혹여 이곳에 지내는 이들은 알까 싶어 그들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
“대공자님 말씀이십니까? 잘 모르겠군요. 임무 외의 시간엔 언제나 사라지셔서.”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사실인 듯했다.
아니, 말한 이상으로 제갈산은 집안과 사이가 나빴다.
목리원이 반쯤 단념한 순간이었다.
“음? 목아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번쩍 고개를 든 목리원은 지붕 위에 엎드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제갈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 위로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제갈 형!”
이렇게 반가울 수가!
목리원은 펄쩍 지붕 위로 뛰어올라 제갈산의 곁에 섰다.
그제야 목리원은 깨달을 수 있었다.
‘진법!’
과연 진법으로 기를 다 숨겨놓고 있었던 듯하다.
제갈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자네가 왜 여기 있나? 분명 걸왕님과 여정을 떠난다 들었는데.”
“이미 다녀왔소! 걸왕님께서 진왕님께 상의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이쪽으로 들른 게 아니겠소? 바로 제갈형이 생각나서 한참을 찾았는데 이런 곳에 있었구려!”
목리원이 한껏 신나서 말을 토해냈다.
제갈산은 그제야 허허 헛웃음을 흘렸다.
“내 한참 잠들어 있느라 자네가 오는 것도 몰랐구먼.”
“그럴 수 있소!”
암, 잠잘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목리원은 싱글벙글한 낯으로 철푸덕 지붕 위에 앉아 소란스레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주로 어찌 지냈느냐는 등의 근황을 묻는 말이었다.
제갈산은 답했다.
“나야 늘 비슷했다네. 가문에서 임무를 맡기면 다녀왔다가 돌아오면 이리 잠만 자고 있고. 듣기로는 다른 쪽도 비슷하다 들었네.”
“다른 쪽이라니?”
“누님과 단원들 말일세.”
목리원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제갈산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누님은 청해 전체를 돌아다니며 보급에 힘쓰고 있다네. 일운 스님과 혜운 스님은 협력해서 마인들과 교전을 치르고 있다고 하고, 남궁 형은….”
“음?”
제갈산이 피식피식 웃었다.
“검왕님과 최전선에 있다고 들었네. 한데 그런 소문이 들려오는 것 아니겠나?”
“무슨 소문 말이오?”
제갈산이 뜸을 들이자 목리원은 애가 닳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말꼬리를 늘이는가 싶어지는 것이다.
제갈산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뜸을 들였고, 목리원이 울상을 짓기 시작할 즘에야 겨우 웃음의 이유를 말해줬다.
“일초지적도 안되는 상대는 관심 없으니 소교주를 잡으러 가겠다고 날뛴다는군. 일각에선 자네가 소교주에게 졌으니 소교주를 이긴다면 자네와 우열이 뒤집힌다는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다 평하고 있네.”
목리원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참으로 남궁진천 같은 이유인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실제로 남궁진천이라면 소문보다 더한 행패를 피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 번째 이유였다.
아무렴 남궁진천이 좀 답답한 걸 싫어하던가.
오랜만에 듣는 단원들의 소식에 목리원은 한껏 환한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중이었다.
“게서 뭣하고 있느냐.”
마일석의 목소리가 지붕 아래에서 들려왔다.
목리원은 아래쪽을 바라봤다.
마일석과 제갈벽이 함께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앗!”
“어이쿠, 어찌 아셨을꼬. 진법은 아직 발동중인데.”
제갈산이 놀라 중얼거리자 그걸 들은 마일석이 답했다.
“그래봐야 절정 놈이 설치한 진법을 내가 모를까?”
흥! 하고 코웃음 치는 마일석의 모습에 제갈산이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다 제갈산과 제갈벽의 눈이 마주쳤다.
목리원은 흘금흘금 제갈산의 기색을 살폈다.
다행히 바로 불쾌함을 드러내지는 않는 듯하다.
“식사 자리가 있을 테니 준비하거라.”
제갈벽이 그리 말하고 마일석을 데려갔다.
“으음, 제갈 형?”
제갈산은 제갈벽의 뒷모습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걸왕님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인 듯하네. 함께 가지.”
목리원은 미친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제갈산은 제게 술을 먹이는 당화서만큼이나 무섭다고, 목리원은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
식사 자리는 다른 손님 없이 마일석과 제갈벽, 그리고 목리원과 제갈산만이 자리했다.
“한동안 여기 머물 것이다.”
마일석이 말했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전방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그래, 최전방이야 맡은 놈들이 많지 않느냐. 나는 여기서 이놈과 더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런다.”
마일석이 제갈벽을 턱짓했다.
목리원은 바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곳은 혈마전에서 찾았던 서책의 해석을 위해 찾아온 게 아닌가. 분명 해석이 곧장 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일 테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그래, 저 제갈 놈이랑 같이 임무나 좀 다니고 있어라.”
마일석이 제갈산을 언급하자 제갈산은 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동안 심심할 일은 없겠습니다. 안 그런가 목 아우?”
“차, 참으로 그렇소!”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제갈벽이 입을 열었다.
목리원은 움찔했으나, 그의 시선이 제갈산에게 바로 박혀있는 것을 보곤 이윽고 안심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언제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심하지 않는….”
“예입.”
제갈산은 낼름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명백한 무시의 태도였다.
또 한 번 날카로워지는 분위기에 목리원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마일석은 두 사람의 관계에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리 알고 원아, 너는 식사 끝나고 잠시 나 좀 보자.”
“아, 옙!”
뭐가 됐든 도망치기엔 딱 좋은 변명거리.
목리원은 허겁지겁 속에 음식을 넣었다.
그 와중에도 세가의 식솔들이 밥을 참 잘했다는 생각은 드는 게 우스운 점이다.
*
“서책의 해석은 조금 더 시일이 필요할 듯하구나.”
마일석은 목리원에게 그리 거짓말을 했다.
목리원은 그저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란 것은 익히 짐작했습니다!”
이런 모습 탓에 죄책감이 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순진하기만 해서 괜히 사람 속을 미어지게 만드는지, 마일석은 찌푸려지려는 표정을 애써 관리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쉬거라. 나는 또 가볼 터이니.”
마일석은 뒤돌았다.
“편히 쉬십시오!”
목리원의 우렁찬 목소리를 뒤로한 채 장원을 걸었다.
그래도 오대세가의 장원이란 것인지 넓기는 아주 넓어 산책하기 딱 좋은 정도다.
한참이나 걷다 보니 외진 곳에 연못 하나가 보인다.
마일석은 그곳으로 가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꺼내 드는 것은 제갈벽이 역성대법의 핵심을 요약해 적어준 종이였다.
종이를 펼쳐 내용을 되새기는 마일석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림을 더해갔다.
“어찌….”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소. 형님.”
어찌 혈마는 그리도 악독한 짓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인가.
왜 목리원이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역성대법(逆星大法)은 언어 그대로 별의 성질을 뒤바꾸는 대법입니다.
이 땅에 별을 지고 있는 인간 중 그 별에 대칭되는 별이 있는 이들에게나 사용이 가능한 대법이지요.
대법의 목표는 하나, 각 대칭되는 별을 가진 이들의 별을 뒤바꾸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말한다.
‘형님, 원이가….’
목리원이, 그 착하고 순진한 놈이 사실은.
『기록된 것은 천살성과 자미성을 뒤집는 방법입니다.』
이 강호를 구할 영웅의 별이었다.
『세상을 환란에 빠뜨리는 천살, 그리고 환란을 잠재우는 자미. 두 별은 언제나 같은 세대에 땅에 내려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역성대법을 사용하기엔 최적화된 별이란 뜻입니다.』
마일석의 손등 위로 힘줄이 불거졌다.
눈 또한 부릅 뜨이고 있었다.
『천살성에 다른 처리는 필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자미성을 떨어트리는 일뿐이지요.
자미성을 타고나는 이는 그 성질이 선하고 유약한 편이어 살기를 잘 품어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대법은 자미성에 살기를 깃들게 하는 방법에 대해 총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몇 번이고 읽어도 눈을 의심케 만드는 내용이었다.
마일석은 그제야 인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자미성의 주인이 그 무엇도 모르는 갓난아이의 상태일 것.』
목리원이 그날 제단 위에 있는 이유.
『둘째, 동남동녀 100명분의 피를 제단에 받을 것. 이를 통해 사자의 원한을 수집합니다.』
그 제단에 그리 많은 피가 고여있던 이유.
마지막으로.
『셋째, 생모를 산 채로 제단 아래에 결박할 것. 이리하여 살기의 그릇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까지 운반해온 두개골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형님.”
마일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이 사실을 어찌 원이에게 전해야 하겠습니까?”
돌아오지 않을 답을 갈구한다.
그날 밤이 다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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