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 십팔장 - 운남, 혈마전 (2)
* * *
마일석은 마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옅은 짜증을 토해냈다.
‘초월이군.’
지금 맹에서 나오는 정보나 마교와 혈천교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정체는 곧장 알 수 있었다.
“장로.”
“호오.”
마인의 눈썹이 들렸다.
꽈드득, 마인이 주먹에 힘을 더하며 말했다.
“중원이 꽤 많은 걸 알아냈나 보구나.”
“주제에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어 볼 생각이더냐?”
“되는 것처럼이 아니지.”
화아악! 마인의 몸에서 마기가 치솟았다.
뒤에 있던 목리원이 ‘끄흡’하고 헛숨을 삼키는 게 마일석의 귀에 들렸다.
“되는 게 맞다. 나는 신교의 4장로, 네놈 같은 거지와는 서 있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이윽고 마인의 주먹에 몰린 마기가 마일석을 향해 폭사했다.
마일석은 곧장 몸에 기막을 둘렀다.
꽈아아아앙!
또 한 번 이는 폭발, 마일석은 이를 악 물며 충격을 버텨냈다.
‘범상치 않은 놈이다.’
쉽지 않은 상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기 전까지 스스로의 마기를 완전히 숨겼다는 점이나 어깨에 시체 하나를 짊어진 상태로도 이 정도의 공력을 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했다.
비단 그뿐이겠는가, 스스로 이르길 마교의 4장로.
청해에서 도왕 진건이 마주했다던 귀신같은 검술을 다루던 이가 7장로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사내도 그와 동급, 혹은 이상의 무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장로라는 것들이 마교의 진짜 전력일 거요. 웬 7장로라는 놈부터가 초월이면 적어도 그 윗장로, 게다가 소교주와 천마까지 하면 초월이 아홉은 있다고 봐야겠지.
이런 놈들이 여덟은 더 있다. 혈사 때가 떠오르는 비보였다.
마일석은 곧장 발을 뻗었다.
부지불식간 쏘아진 각법이었다. 하나 4장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리를 들어 방어해냈다. 그리곤 짊어지고 있던 시체를 멀리 던지며 주먹을 뻗었다.
꽈아아아앙!
이번 역시 호각지세.
마일석이 방어에 성공하며 또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마일석은 삐뚜름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여기 와서 무슨 짓을 하는 걸 보니 혈마 놈이 마교와 관련이 있기는 한가 보구나?”
“말해줄 의무가 있나?”
“처맞기 싫으면 말해야지.”
“그런 말을 하기엔 능력이 없어 보이는구나.”
“글쎄.”
정지된 자세로 공력을 상대에게 쏟아붓는 무식한 힘겨루기였다.
마일석은 이런 접전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무공은 힘겨루기에 적합하지 않다.’
초월끼리의 혈투라 한들 상대방과의 상성은 고려해야만 하는 종류였다.
마일석이 익힌 절기들은 하나같이 공방을 주고받으며 상대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는 형태인 만큼 무식한 힘겨루기는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
‘털어낸다.’
마일석의 몸에서 누리끼리한 색의 기파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팔과 다리를 감싸며 단단하게 굳어진다. 강기공, 4장로가 눈치챈 듯 곧장 거리를 벌렸다.
“늦었다. 이놈아.”
마일석이 자세를 잡았다.
양 손바닥을 펼친 채 몸쪽으로 당겨 작게 원을 그린다.
그리고 앞으로 내달리며 장을 뻗는다.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열여덟의 장법을 엮어 상대를 해하는 마일석이 쓸 수 있는 것 중 가장 강한 파괴력을 지닌 장법이었다.
손바닥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기공으로 만들어진 용이 춤추듯 4장로에게 쏘아졌다.
4장로는 마기를 응집해 몸 위로 강기를 만들었다.
“거지다운 수법이로구나.”
일장, 이장, 삼장이 그대로 막힌다.
멈추지 않고 다음 장을 이어 마일석은 4장로를 몰아붙였다.
‘통한다!’
손맛이 느껴진다. 확실히 이 수는 4장로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도 초월에 이른 무인. 그 수법이 사악한 마공이라 하나 파괴력이 남다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세를 몰아간다!’
막 구 장을 펼친 시점이었다.
꽈아아아아앙!
4장로가 흐름을 끊었다.
하지만 공격을 더 잇진 않는다.
마일석은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4장로의 시선, 움직임, 몸짓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다.
그리하고서야 깨달았다.
“이런… 원아!”
“늦었다.”
어느새 4장로와 마일석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즉, 4장로가 목리원에게 더 가까워진 것이다.
목리원이 흠칫했다.
4장로는 그대로 목리원에게로 돌진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히,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다.
스릉―
목리원이 검을 뽑았다.
검신이 온통 새까만 흑야가 뽑혀 나오며 묵색의 기파를 두른다.
한껏 좁아진 목리원의 동공, 길게 내뱉어지는 숨과 쭈뼛 서있는 솜털이 마일석의 눈에 들어왔다.
‘천살성이 반응 중이다!’
그렇다면 단번에 사로잡히진 않으리라.
예상은 옳았다.
목리원이 기형적인 각도로 몸을 꺾으며 검을 휘둘렀다.
까가강, 강기를 뚫지 못한 검이 튕겨 나갔으나 한 수는 벌었다.
마일석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있는 힘껏 발길질해 4장로를 목리원에게서 떨쳐냈다.
“흐읍!”
4장로의 근육이 한껏 부풀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는 속셈이리라.
마일석은 그를 도발했다.
“자, 아직도 주제가 어쩌니 운운할 셈이냐? 싸우는 게 무서워 어린애나 노리는 놈이.”
“교의 지시라면 수치가 무에 중요할까.”
“병신같은 마인 하나를 주인으로 모신다고 고생이 많구나.”
4장로의 눈이 부릅 뜨였다.
분노한 기색이 역력하다.
과연, 개새끼라 그런지 주인님 욕에 아주 예민한 모습을 보인다.
마일석은 껄껄 웃었다.
“왜, 주인님이 나 욕하는 놈들은 다 패버리거라~ 하더냐?”
“가아아알!!!”
쾅! 4장로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마기가 폭사해왔다.
쾅쾅쾅 걸음마다 폭음이 인다.
진동과 함께 섬찟한 감각이 마일석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원아! 떨어져라!”
“예!”
마일석은 단전의 내공을 모두 끌어올리며 허리에 차고 있던 방망이를 쥐었다.
“개새끼는 몽둥이가 약이지!”
쩌저저적, 방망이 위로 강기가 덧씌워졌다. 불규칙한 결정을 이루며 단단히 굳어진 강기가 사뭇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이윽고 주먹과 방망이가 맞부딪친다.
까아아아앙!
귀가 ‘징―’ 울릴 정도의 소음.
그 뒤로 4장로가 힘줄이 잔득 돋아난 머리를 들이민다.
박치기였다.
‘징글징글한 놈!’
마일석은 봉을 쥐지 않은 왼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4장로의 이마에 꽂았다.
실책이었다.
꽈득, 마일석은 손가락뼈까지 공력이 침투하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새끼, 대가리가 진짜였구나…!”
4장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마일석은 이를 짓씹었다.
“참으로 똥개다운 무공이다!”
머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공이라니, 무슨 근본없는 무공인지 원.
마일석은 쯧 혀를 차며 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저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비전 무공, 타구봉법(打狗棒法)의 묘리가 마일석의 움직임에 그대로 묻어나기 시작했다.
카앙! 캉! 카강!
강기끼리의 격돌인 만큼 서로에게 전해지는 충격의 양이 범상한 수준을 한참이나 넘는다.
마일석은 집요하게 4장로의 머리를 노렸다.
누적된 충격이라면 제아무리 단단한 머리라도 깨지리란 판단이었다.
4장로 또한 그런 사실을 아는 듯, 치명적인 공격은 팔을 이용해 막아가며 공방을 이어갔다.
와중 마일석은 외쳤다.
“자! 주인님이 혈마의 대법에 대해 알아 오라고 하더냐! 그것도 아니면 그 대법이 원래 너희들의 것이었더냐!”
“말해 줄 의무는 없다!”
“개새끼라서 주인님 허락 없이는 아무런 말도 못 하나 보구나!”
“가아아알!!!”
꽈아앙!
기묘한 각도로 꺾여 들어 온 4장로의 박치기가 마일석의 팔을 노렸다.
마일석은 이미 부상 당한 왼손으로 박치기를 막았다.
뿌득, 손가락 뼈가 확실히 상하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여기느냐!”
“네놈보다는 더!”
외친 마일석이 방망이를 이마 쪽으로 휘둘렀다. 4장로가 오른팔을 들었다.
그 순간 마일석은 눈을 빛냈다.
‘지금!’
마일석의 방망이가 신묘함을 담기 시작했다.
기이한 흐름을 타고 궤도를 꺾기 시작한 방망이가 이윽고 텅 비어있던 4장로의 왼쪽 목을 내려찍었다.
빠드득, 골절 정도는 일으킨 듯한 소리가 일었다.
“끄흡…!”
4장로가 이를 악 물며 버텼다.
과연, 박치기를 사용하는 무공인 만큼 목 또한 단련되어있다는 것일 테다.
“한 번 더!”
부지불식간 휘둘러진 방망이가 4장로의 반대쪽 목도 후려쳤다.
그 순간 4장로가 몸을 물렸다. 마일석을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듯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다.
마일석은 코웃음 치며 4장로를 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무려 18년이다.
강호를 떠나 그 목선오와 함께 생활한 게 그리도 오래되었단 말이다.
그간 목선오와 비무 한 번을 안 했겠는가? 우습지도 않다.
이미 초월을 넘어 다음 경지에 다다른 사내와 수도 없이 많은 비무를 해왔다.
한데 지금 상대는 고작 초월, 할 만했다.
꽈득!
방어를 위해 4장로가 들어 올린 팔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제단은 무얼 위해 있는 것이냐!”
“끄읍…!”
“네놈들은 혈천교와 무슨 관계냐!”
“흡!”
몰아붙이며 뭐라도 알아내려 했지만 4장로는 입을 꾹 다문 채다.
정녕 이대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인가.
마일석의 속에 참담함이 차오르는 와중이었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마인들이 쏟아져들어왔다.
‘아차!’
4장로에게 집중하느라 저들이 들어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일석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저들의 목적 중 가장 우선이 될 만한 것을 떠올렸다.
“원아!”
“막겠습니다!”
총 열의 마인, 둘의 초절정과 여덟의 절정이었다.
확실히 목리원이 막을 수 있을 만한 전력이다.
하여 마일석은 다시금 4장로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하나 불발됐다.
“후퇴!”
눈치도 빠르지, 미친 개새끼처럼 달려드는 주제에 전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아주 비상하다.
마일석은 구태여 그들을 막지 않았다.
‘장기전은 나도 힘들다.’
저쪽은 얼마든지 지원군이 더 올 수 있는 환경, 하지만 이쪽은 맹에 목적지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나온 참이다.
혹여 장로 하나가 이쪽에 더 붙는다면 그만한 참사도 없다.
“걸왕님!”
“보내주거라.”
마일석은 멀어지는 마인들을 지켜보며 숨을 골랐다.
목리원이 그제야 다가왔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없겠냐 이놈아?”
간만에 목숨 걸고 싸우자니 아주 죽을 맛이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솔직히 말할 수는 없어 마일석은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그래도 내가 더 많이 팼다.”
씨익 웃으며 말하자 목리원이 그제야 안도한 듯 미소짓기 시작했다.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참 사람이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것은 목리원의 호들갑이었다.
“한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검을 쫓는 눈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도 걸왕님의 방망이가 움직이는 궤적은 순간적으로 놓쳐버린 게 아닙니까! 그 수가 얼마나 신묘한지 위험한 중에서 넋을 놓고….”
“되었으니 따라와라.”
마일석은 바로 호들갑을 끊어내고 재차 제단이 있던 방향을 향했다.
‘부숴버려야지.’
이것으로 뭔가를 더 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이대로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마일석은 핏물이 가득 차 있는 제단 앞으로 갔다.
그리고 방망이로 있는 힘껏 제단을 내리쳤다.
꽈아아아앙!
소리와 함께 제단이 무너진다.
그 순간.
“…!”
마일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걸왕님…!”
목리원도 한껏 놀라 그를 불렀다.
부서진 제단 아래,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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