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70화 (170/334)

EP.170 십칠장 - 임무, 잠행 (1)

* * *

본격적인 마교와의 결전을 앞둔 시기였다.

밝혀지길 마교의 소교주인 사내가 신강으로 도주한 이후, 중원 땅은 한동안 폭풍전야의 평온을 맞이한 채 각자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련에 박차를 가했고, 누군가는 집단을 만들어 맹에 투신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보 수집에 목을 맸다.

그런 중 목리원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목리원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터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막 목리원이 오전의 수련을 마친 연무장.

때에 맞춰 당화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소저!”

목리원은 환히 웃으며 반기다, 당화서가 다가오는 것에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발걸음을 물렸다.

“음? 목 소협?”

당화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목리원은 스스로의 행동에 당황하다, 이내 발걸음이 뒤로 향한 이유를 깨닫고 뺨을 붉혔다.

‘따, 땀 냄새가 부끄럽구나!’

새삼 그녀를 이성으로 인지하게 되니 괜히 악취 같은 것에 신경 쓰게 된다.

멋있고 깨끗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는 것이다.

하나 차마 그 마음을 토로할 수는 없는 법이리라.

목리원은 최대한 속내를 숨기며 말했다.

“그… 아직 수련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거리를 벌렸구려.”

“그게 무슨 우스운 이유입니까.”

당화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곤 수건으로 목리원의 땀을 닦아냈다.

목리원은 심장이 쿵쿵대는 기분이었다.

“꽤 열심히 움직이셨나 봅니다. 오전 수련은 이렇게까지 안 하셨던 것 같은데.”

“시, 시기가 시기이지 않소! 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오.”

“기특한 마음가짐이십니다.”

당화서가 목리원의 이마와 목에 흐른 땀을 다 닦아내곤 수건을 접어 품에 안으며 말했다.

“일단 정리하고 나오시지요. 식사도 해야 하고, 달리 공지할 말도 있으니 말입니다.”

“공지라면….”

“임무가 떨어졌습니다.”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드디어!”

한창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무인들이 청해와 사천 쪽을 틀어막는 와중이다.

개중 용봉단은 아직까지도 대기 명령만을 받고 있었다.

본적에 합류하지도 않고 기다린 게 어언 일주일.

드디어 일을 받았다는 것에 목리원의 낯빛이 혈기로 가득 찼다.

“내 바로 다녀오겠소!”

그리 말한 목리원이 헐레벌떡 연무장을 나섰다.

등 뒤로 당화서의 호흡이 조금 깊어지는 게 느껴졌으나, 목리원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

각자 수련이나 일에 바빠 좀처럼 모이지 않았던 용봉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단주 집무실, 목리원은 그곳에 바른 자세로 앉아 의아함이 묻은 얼굴로 서예에게 물었다.

“한데 문주께선 왜 여기 계시오?”

“이번 임무에 동행하실 분입니다.”

“응?”

당화서의 말에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서예가 답했다.

“저희 광동 가요.”

흠칫, 목리원의 몸이 굳었다.

“광동이라면….”

흑도의 땅이다.

그것도 흑도의 중심인 흑사련(黑蛇聯)이 있는 땅 말이다.

대체 이런 시기에 그곳은 왜 가고자 하는 것인가.

목리원의 속에 자리한 의문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답을 준 것은 당화서였다.

“흑도와의 연합을 체결하러 가야 합니다.”

“연합… 말이오?”

“함께 싸우자는 뜻의 연합은 아닙니다. 그저 이해가 일치하니 전쟁이 있는 동안은 서로 등에 칼꼽지 말자.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지요.”

“아…!”

목리원은 그제야 이해했다.

확실히, 지금 당장 마교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일진대 등 뒤에서 흑도까지 덮쳐온다면 꽤 곤란해질 터였다.

그에 대한 대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 혈사에서도 흑도가 개입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때도 이런 협약이 맺어졌을까.

문득 목리원은 궁금증을 느꼈다.

“여하튼, 이번 임무는 극비임무입니다. 맹 내부에서도 맹주님과 몇몇 중진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임무이지요.”

“잠행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혹 모를 정보의 유출을 고려해 자세한 임무는 출발 이후에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출발은 언제인가.”

남궁진천이 물었다.

당화서는 바로 답했다.

“내일입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빠듯함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고려해서 당장 채비를 시작해주십시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해산하는 단원들 사이에서 당화서에게 다가가 은근슬쩍 물었다.

“그… 걸왕님한테는 말해도 되오?”

“예, 그분도 이미 이 작전에 대해 알고 계시니.”

“아, 고맙소!”

목리원은 바로 마일석에게로 향했다.

*

마일석은 말했다.

“당연 혈사 때도 이런 협약은 있었다. 당장 중원 땅이 난리가 났는데 뒤에서 그놈들이 달려들면 그만큼 짜증나는 일도 또 없지 않겠느냐.”

“그랬습니까?!”

“그래, 그때 협약을 맺기 위해 나와 형님이 그곳을 찾았었지.”

“오오…!”

목리원의 눈이 빛났다.

다름 아닌 스승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에 설레는 마음이 차오른 이유였다.

“흑도의 땅은 어떻습니까? 흑사련주는 또 어떤 사람입니까? 당장 내일 광동으로 향하는데 조언이라도 좀…!”

“모른다.”

“…예?”

“모른다고 말했다.”

마일석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이놈아, 넌 아직도 흑도 놈들을 잘 모르는구나.”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렸다.

마일석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덧붙였다.

“뒤통수치는 게 숨 쉬는 것만큼 자유로운 놈들이다. 이렇게 큰 사안이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쳐올지 모르는 게 흑도 놈들이란 말이다. 그놈들이 자기들끼리라고 해서 잘 지내겠느냐? 어림도 없지.”

말을 내뱉는 마일석의 얼굴 위론 질린 기색이 가득했다.

“자기들끼리도 틈만 나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들이 그놈들이다. 흑사련주? 5년이면 오래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운 위치지.”

목리원은 단번에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그럼….”

“그래, 혈사 이후로 흑사련주가 두 번 더 바뀌었다. 모르겠구나. 우리 때의 흑사련주가 혈사가 끝난 다음 해에 암살 당했고 그 자리에 오른 놈이 3년 만에 목이 떨어졌으니. 음….”

마일석이 턱을 쓸었다.

“생각해보니 이번 놈은 꽤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구나. 흑사련주가 14년이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라… 꽤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지.”

목리원은 돌연 긴장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좀처럼 타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마일석이 ‘능력이 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면 분명 보통내기가 아닐 터인 까닭이다.

“뭐, 그래도 잘해보거라. 사실 흑도 놈들 입장에서도 우리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놈들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 아니더냐. 신강과 흑도의 땅 사이에서 우리가 몸으로 마교 놈들을 틀어막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확실히 이해가 되는 이유였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가봐라.”

“걸왕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조사할 게 있어서 따로 움직일 생각이다. 네놈은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대로 날 따라 움직이게 될 테고.”

조사라, 확실히 마일석이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주지 않았지만, 분명 이런 시기에 마일석이 하는 조사라면 보통 조사가 아닐 터였다.

마일석과 함께 하는 임무라, 그 또한 목리원에게 설렘을 주고 있었다.

“예! 그럼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빠르게 말고 확실히. 형님 말씀은 잊었느냐.”

목리원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 그럼 확실히!”

“대답은 잘한다. 요놈.”

마일석 또한 목리원을 따라 웃었다.

*

다음 날, 용봉단과 서예는 바로 광동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일곱 사람 모두 잠행을 위해 변장을 한 상태였다.

사실 이런 임무가 있으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목리원과 남궁진천이었는데, 이번 임무는 다행히도 두 사람의 푼수 같은 면모가 잘 숨겨져 과정의 위기가 없었다.

이번만 유독 다른 이유.

따지고 보자면 역할이나 상황, 쌓아올린 경험 등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서예의 유무였다.

“저한테 더 붙어요.”

“…알겠다.”

서예가 남궁진천을 온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자존심 강하고 제멋대로인 남궁진천이 그녀에게만큼은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목리원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화서가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그의 실수를 온전히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편하구나.’

당화서는 감탄했다.

서예의 존재 하나로 여정이 이렇게 쉬워질 줄은 몰랐다.

사실상 전투 외엔 구멍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제 몫을 하니, 당화서가 느끼는 감정은 경탄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일운은 당연히 제 몫을 했고 제갈산은 잠행만큼은 용봉단 제일이다.

혜운은 그저 스승님에게서 도망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기쁜지 웬일로 사고를 치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 중이었다.

‘이렇게만 가자.’

라는 마음으로 여정을 더 빠르게 독촉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당화서는 광동 땅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제부턴 흑사련의 영역이에요. 광동 전체가 그래요. 그러니까 눈에 띠는 행동은 삼가고 일단 절 따라와 줘요.”

서예가 나서서 말했다.

근래 들어 맹에서만 얼굴을 봐 잊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녀 또한 흑도였다.

그것도 흑도의 기둥 중 하나인 하오문의 주인.

광동의 안내인으로서의 그녀는 꽤 훌륭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일단 하오문에서 구한 은신처가 몇군데 있어요. 개중에 흑사련에도 숨겨둔 은신처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죠.”

서예가 안내한 곳은 장원이라 부르기도 무안할 정도로 작은 집이었다.

하나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질 여건은 또 아닌지라 당화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녀의 호의에 응했다.

그렇게 짐을 풀고 난 직후였다.

“현 흑사련주에 관한 정보는 얼마나 있습니까?”

당화서는 혹시 더 들을 정보가 있을까 싶어 서에에게 물었다.

서예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거의 없어요. 저도 한 번 얼굴 본 게 끝이라서.”

“음?”

“좀 특이한 사람이거든요. 무섭기도하구요.”

“무섭다라….”

“흑사련주 별호는 아세요?”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 흑사련주에 관한 정보는 백도 무림에 그리 크게 퍼지지 않았지만, 그의 무명 만큼은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편이었다.

“만악(滿惡).”

만악 도은강.

현 흑사련주의 이름이었다.

서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악의 전형이라고 해야 할 인물이죠. 무자비하고 비정해요. 그게 그런 것을 즐겨서라기보단,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보다 이익이 더 크다면 기꺼이 이익을 택하는 성정 탓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네요.”

“흑도가 다 그렇지 않소?”

“그 사람처럼 극단적이진 않죠. 제아무리 흑도라고 해도.”

서예는 께름칙함이 가득 묻은 얼굴을 한 채 중얼거렸다.

“뭔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게 빠져있는 인간 같아요.”

당화서는 긴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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