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65화 (165/334)

EP.165 십육장 - 집결, 회의 (7)

* * *

이후 회의는 지지부진하게 끝났다.

하루 만에 모든 걸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혼란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일석의 발언이 문제였다.

지금 강호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후기지수가 그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회의장을 넘어 온 무한 땅에 다 퍼져버린 것이다.

“그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네! 그리 뛰어난 사내가 이름도 없는 스승에게 배웠을 리가 없지 않나!”

“걸왕, 걸왕이라면 이해가 되지! 개방주 자리까지 내려두고 잠적한 사내가 아닌가. 무얼 하나 했더니 후대를 키우고 있는 게였어!”

어딜가도 목리원과 마일석에 관한 이야기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당장 청룡비무회에서 있었던 사고와 청해에서의 사고 탓에 암울하기만 했던 중원 무림에 마침 들어온 희소식이 아닌가.

희망.

지금 중원 무림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드리워졌다.

물론 모든 이들이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마일석과 목리원.

두 무인을 면밀히 살펴보면 의아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한데 걸왕은 왜 묵룡에게 검술을 전수했는지 모르겠구려. 걸왕 본인은 봉을 사용하지 않소.”

“그것 말고도 그렇소. 그간 강호에 지배적이던 의견이 있지 않소. 걸왕은 검성을 따라 갔다고. 한데 공교롭게도 이런 일이 나오니….”

누군가는 의심했다.

마일석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그리고 알고 있는 사실과 엮어 한 가지 추론을 더했다.

사실에 한없이 가까운 추론이었다.

“…묵룡이 검성의 제자인 것 아니오? 왜, 지금까지 보여온 행적도 검성을 아주 닮지 않았소.”

그저 하는 말이라기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일석과 목선오의 관계성이 그랬다.

강호에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아주 드물었다.

누군가가 낸 의견은 곧장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허황된 면이 있는 이야기인 만큼 바로 반박이 나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반박에 열성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목리원의 추종자, 곽칠과 왕허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묵룡은 걸왕의 제자가 맞소!”

“그럼 묵룡이 검수인 이유를 말해보시오!”

“아직도 모르겠소?!”

쾅!

곽칠이 객잔의 식탁을 내리쳤다.

“걸왕이 검성을 그리워한 것이오! 하여 그가 떠난 강호에 다시 한번 검성과 같은 인물을 배출해내려 한 것이 아니겠소!”

곽칠은 필사적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목리원이 천살성을 이고 있는 사내임을 알고 있는 게 이유였다.

곽칠은 이미 그 비밀을 꼭 지키겠다 선언한 일이 있었다.

협의를 걸고, 인생을 걸고, 그리고 곽칠표라는 필명을 걸고.

‘묵룡 대협! 걱정마시오!’

이 곽칠이 다른 건 몰라도 의리와 협만큼은 그 누구에게도지지 않는 사내요!

곽칠은 속으로 말을 전하며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그런 이유라면 다 설명이 되지 않소! 검성이 누구요! 이 강호 무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검수이자 협객이 아니오! 혈사의 시대엔 모두가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나아가지 않았소! 그 오른팔이었던 걸왕은 아는 것이오! 이 강호엔 검성 같은 인물이 필요함을! 그것이 강호를 더욱 이롭게 만드는 일임을!”

확신이 깃든 어조는 그것만으로도 설득력을 얻는 경향이 있었다.

자리한 이들이 슬슬 그 이야기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삼류 무사 곽칠, 하지만 그 정체는 과거 강호 전체를 들썩였던 대문호 곽칠표다.

남들의 호응을 얻는 이야기를 짜깁기 하는 것은 그에게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인 것이다.

“과, 곽형! 과연 엄청난 추론이오!”

그의 의제 왕허가 짝짝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소문은 빠르게 모습을 바꿔갔다.

곽칠이 의도한 형태로.

*

맹 바깥의 소문은 빠르게 무림맹 내부에도 전해졌다.

사실상 거짓과 오해가 뒤섞여 완성된 일화.

그것이 맹 내부에서 마일석과 목리원을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어버렸다.

“참 대협이시구나! 강호 전체를 위해 스스로의 무명까지 버려가며 산골에서 무인을 키우시다니!”

“또한 의리에 죽는 진정한 사나이시오! 의형을 기억하기 위해 그와 같이 의협심을 아는 무인을 키운다라! 어찌 이것에 낭만이 없다 할 수 있겠소!”

마일석은 어딜가도 들려오는 속삭임에 괜히 머쓱해졌다.

“좋으냐?”

염소소가 물었다.

마일석은 괜히 헛기침하며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흥, 좋기는.”

라고 말하면서도 마일석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어찌하지 못했다.

당연히 좋다.

어떻게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들에 싫은 기색을 표할 수가 있겠는가.

비록 거짓이지만 이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마일석이 거리낄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에휴.”

염소소가 쯧쯧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일석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

“걸왕님의 제자였나.”

용봉단 전각의 식당, 남궁진천의 물음에 목리원은 어색하게 웃어야만 했다.

비단 그의 물음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종일 축 처져 있던 혜운도, 직전까지 원명과 불공을 드리고 온 일운도 모두 호기심과 흥분에 차서 목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하오문주 서예까지도 흥미롭다는 듯 목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리원으로선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과거조차 말하지 않았다라….”

남궁진천의 눈이 좁아졌다.

얼핏 삐진 것처럼도 보이는 얼굴.

목리원은 차마 사실을 말할 수는 없어 말을 얼버무렸다.

“스, 스승님께서 숨기라 하셨던 터라….”

암,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일석도 따지고 보면 목리원의 스승이 맞았다.

왜 아니겠는가, 목리원이 쓰는 박투술과 보법 중 일부는 마일석이 개방의 비전을 몰래 개조해 전수한 것이었다.

평생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목 시주님은 개방 소속이 되는 건가요?”

와중 혜운이 물었다.

꽤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무릇 제자란 스승의 사문을 쫓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아닙니다.”

당화서가 답했다.

“따로 걸왕님께 여쭤본 바로는 목 소협의 소속을 개방과는 별개로 치부한다고 하십니다. 걸왕께서 이미 개방을 나온 뒤에 가르친 제자인 이유라고….”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소! 나는 개방 소속은 아니오. 거기다가 사용하는 검술도 스승님이 비동에서 우연히 얻은 것을 전수한 것이오!”

미리 맞춰둔 말이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목리원의 성련문은 대대로 일정 경지를 넘으면 들러야 하는 비동이 있었고, 그곳에서 성련신공의 역대 제자들의 흔적을 공부해야만 했다.

찾아보면 어딘가엔 비동이 있긴 하단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곧이구나.’

목선오의 말로는 비동에 들어가는 것은 초절정의 끝자락, 초월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했다.

초월에 오르는 것이 성련신공의 8성.

지금 목리원의 별은 막 여섯 개가 지어지는 중이니 일곱 개를 완성할 즘엔 강서성에 다시 들를 필요가 있었다.

“여하튼, 목 소협이 곤란해 하시니 이 얘기는 그만하도록 하지요. 그보다 제갈산 그놈은 대체 어딨습니까?”

당화서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오늘 온종일 보이지 않는 제갈산 탓이었다.

자연히 자리한 이들이 쭈그러들었다.

성내는 당화서는 건드려선 안 된다.

용봉단의 암묵적 규칙이었다.

“낮에 잠시 봤었어요. 회의 중이실 때.”

서예가 말했다.

“뭐하냐고 물어보니 똥싸러 간다더라구요. 더러워서 피하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서예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뱉는 말에 당화서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놈이 그랬단 말이지…?”

스으으, 하고 당화서의 몸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자리한 용봉단의 인원들은 주춤주춤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저, 저는 방장님을 뵈러 잠시!”

“저도 스승님을 좀 뵈고 와야겠네요!”

일운과 혜운이 시작이었다.

두 사람이 떠나가자 남궁진천이 서예를 이끌고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목리원 하나.

‘누, 누가!’

제발 구해주시오!

외쳤으나 공허한 울림이었다.

이 자리에 그를 빼내줄 변명거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

제갈산은 한창 맹 어느 전각의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런 순간이면 꾸는 꿈이 있는 까닭이다.

-산아.

어미의 손길, 미소, 부드러운 어조.

제갈산은 그것을 곱씹으며 작게 웃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나.”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갈산이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내의 목소리였다.

번쩍 눈을 뜬 제갈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 물어야 하나?”

“…가주.”

“사석에선 아버지라 불러도 좋다.”

제갈산의 눈앞에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무표정과 희끗한 새치가 보이는 머리, 그리고 품이 넓은 장포.

진왕 제갈벽.

그의 아버지였다.

“핫….”

제갈산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내 그의 얼굴 위로 비아냥대는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염치로 아비 역할을 하려 하신답니까?”

“그것이 나의 일인 까닭이다.”

“일, 일, 일. 그놈의 일이 참 좋으신가 봅니다.”

제갈산의 기색이 날카로워졌다.

“회의에 왜 참석하지 않았느냐 물으십니까?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

“당신이 원망스럽기 때문입니다. 원망스러운 당신의 후계로서 서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갈벽은 입을 다물었다.

제갈산은 그 모습이 그저 가증스럽게만 보였다.

“할 말이 궁해지면 입부터 다무는 버릇은 못 고치셨나 봅니다.”

“…불손하다.”

“예의를 바라십니까?”

어떻게 당신이 내게.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꾹 눌러내며, 제갈산은 말했다.

“예를 차려야 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못 되시지 않습니까.”

이젠 질리기까지 하는 대치구도였다.

제갈산에겐 그랬다.

“아내의 죽음을 방관하며 자식을 노리는 암살자들을 방치한 인간이 어찌 예를 바라십니까.”

제갈벽의 몸이 굳었다.

제갈산은 그런 모습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제갈산이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봐온 아비는 좀처럼 감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 그에게서 어떤 정도, 그것에서부터 비롯된 애정도 바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건 바라지 않았다.

제갈산이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직도 그를 원망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 잘나신 첩실은 잘 지내신답니까?”

어미를 죽인 첩을, 제갈벽이 죽이지 않고 살려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묵룡이 검수인 이유를 말해보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묵룡은 걸왕의 제자가 맞소!”

“아직도 모르겠소?!”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문의 일이다.”

“예, 뒷배가 없는 제 어머니는 죽든 말든 관심도 없으시겠지요.”

“감정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됨이다.”

“몸을 움직일 감정은 있으십니까?”

제갈산은 이 대치의 끝이 어떤식으로 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갈벽은 끝까지 변명만 할 것이다.

그것에 지쳐 나가떨어진 자신이 먼저 자리를 피해버릴 것이다.

이미 결과를 아는데 더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제갈산은 바로 몸을 돌렸다.

“여하튼, 저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갈가의 소가주로 서지 않을 것이니.”

제갈산이 그대로 경공을 써 지붕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곳엔 맹의 군사 제갈무연이 침잠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고생하쇼.”

제갈산은 그를 지나쳐갔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