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8 십오장 - 임무, 추격 (8)
* * *
대치 상태가 되었다.
진건은 삐뚜름하게 미소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주 빌어먹게도 돌아가는구먼.’
웬 초월의 마인 하나를 쫓았더니 초월의 마인 하나가 더 나온다.
하물며 그냥 초월도 아니다.
스스로를 ‘신교의 7 장로’라 소개한 저 뱀 눈깔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는 확실히 초월에 오른 지 몇십 년은 족히 된 이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제껏 제대로 답을 듣지 못한 저 젊은 초월의 마인의 정체가 더욱 확고히 굳어지고 있었다.
‘젊은 놈이 더 직위가 높다?’
7 장로의 태도가 기이하다.
분명 경지로 보나 나이로 보나 7 장로가 젊은 놈보다 우위에 있는 게 확실한데, 젊은 놈을 대하는 7 장로의 태도가 왕을 모시는 신하의 것과도 같았다.
진건은 사고를 더 확장했다.
본디 한량 소리나 들으며 대충 살아가는 진건이었지만, 그것이 그의 우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확신으로 만드는 게 가능했다.
“소천마, 소교주.”
“호오?”
“교주라면 저렇게 비실비실할 리가 없겠지. 그 동네는 강자존이 법 아닌가? 7 장로나 되는 인간이 비실비실한 교주를 섬길 리가 없단 말이야. 그런데도 공대를 한다? 이보게 노친네. 난 바보가 아니야. 바로 알 수 있다고.”
진건은 젊은 초월의 마인을 가리켰다.
“저 자가 확실히 소교주로군. 다음 대 교주로 내정된 인물 말일세.”
7 장로가 삐죽 웃음을 흘렸다.
“중원 나부랭이 주제에 눈치는 있구나. 한데….”
순간, 진건은 목덜미가 싸해지는 기분에 본능적으로 도를 휘둘렀다.
채재재쟁!
충격과 함께 도가 튕겨 나갔다.
전조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공격.
그것이 목덜미를 노려온 것이었다.
‘미친!’
살벌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와중 7 장로가 말을 이었다.
“그걸 알고도 고개가 빳빳하구나. 주제도 모르고.”
“내가 마교 소교주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나?”
“마교가 아니라 신교다. 천하의 다음 주인이 되실 분이다.”
‘사교에 아주 단단히 미쳐있군.’
진건은 후욱 숨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마기를 발하는 7장로 탓에 전신의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전황은….’
불리하다.
이쪽은 완숙한 초월 둘, 저쪽은 초짜 초월과 노련한 초월 하나.
사실 초월지경에 이르면 세밀한 경지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는 만큼 그저 초월이 둘씩 짝을 지어 대치하는 상태지만 현재 남은 공력이 문제였다.
소교주를 쫓아 내달리고 싸운 게 며칠째다.
그간 소교주가 체력이 떨어진 만큼, 진건과 견궐의 체력과 집중도도 꽤 떨어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만전의 상태인 초월 하나가 더해졌으니 어찌 이 상황이 유리하다 말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건은 고민했고 이내 답을 내었다.
“견가 놈아. 이건 후퇴해야 할 것 같다.”
“동의하오.”
패배가 두려운 게 이유가 아니었다.
여기서 맞서 싸워 얻을 이득이 너무 적은 게 문제였다.
그렇지 않나.
지금 얻은 정보가 너무 크지 않나.
혹여나 있을 패배 탓에 견궐과 자신의 목이 달아나면 이 정보는 영영 무림맹에 전해지지 못하게 된단 말이다.
그것은 혹 앞으로 이어질 마교와의 전쟁에서 크나큰 실책으로 다가올 일이었다.
“보내줄 것 같더냐?”
7 장로의 팔이 또 한 번 흐려졌다.
진건과 견궐은 이번 역시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직후 이어진 공격까지 여유롭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아닛?!’
어느새 진건의 코앞에 7 장로가 다가와 있었다.
대체 무슨 보법을 쓰는 건지 기감에 제대로 잡히는 일이 없다.
겨우 기척을 눈치채보면 코앞.
진건은 이를 악 물며 도를 그어 내렸다.
채재재쟁!
말도 안 되는 쾌검.
도의 경로가 단번에 7 장로와 어긋나버렸고, 그 탓에 진건의 가슴팍에 긴 자상이 남았다.
푸슛, 하고 핏물이 튀었다.
‘깊지는 않다.’
언제까지 이렇게 얕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은 할 만한 수준이다.
“견가야! 뛰어라!”
진건은 목청이 다 나갈 정도로 크게 외쳤고, 그것에 견궐이 바로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적 앞에서 등을 보이다니, 과연 중원의 떨거지들이구나.”
“전략적 후퇴요.”
진건은 그리 말하곤 강기를 전신에 둘렀다.
강기가 응집된다.
밀도가 더욱 높아져 진건이 더 통제할 수 없을 수준이 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일종의 물귀신 작전이었다.
이렇게 통제를 벗어난 강기를 계속 쥐고 있으면 그것이 거대한 폭발로 화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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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소교주, 안 챙겨도 되나?”
진건의 말에 7 장로의 시선이 소교주를 향했다.
그는 ‘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간사한 것.”
쾅!
7 장로가 진건을 발로 차 밀어냈다.
그리고 소교주에게로 향하며 외쳤다.
“소교주님! 일단 대피를!”
소교주가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내달렸다.
정확히 신교가 있는 방향.
진건은 그제야 안심하고 강기에 불어넣는 공력을 줄여, 이내 내공을 완전히 회수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
뒤질 뻔했네.
진건은 벌러덩 뒤로 누우며 숨을 내뱉었다.
*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위광천은 드디어 신강의 경계에 다다랐고, 자신을 마중 나온 수많은 교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하나같이 바닥에 부복한 자세.
15년 전, 십만대산을 떠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봐왔던 장면이었다.
꽤 오랜만에 위치를 실감하는 것에 다른 감상이 들 법도 했으나, 지금 위광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도주했다.’
위광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차오른 분노에 이마 위로 힘줄이 섰다.
적을 앞둔 상황에서의 도주.
그것은 위광천의 자존심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어 떠올리는 것은 ‘만약’이라는 가정.
만약 그 자리에서 자신이 조금만 더 체력이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이전에 급히 도주해야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아니, 약을 먹지 않았다면.
다른 방식으로 중원과 천살성에 접근했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념에 따라 위광천의 속엔 불길이 끓기 시작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다 불사질러 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소교주님.”
7 장로가 말했다.
“이제 돌아가시지요. 신강으로.”
위광천은 중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다음은.’
위광천은 중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적을 마주하고서라도 다 깨부수고 나갈 것이다.
“…돌아간다.”
위광천은 15년 만의 귀향길에 들어섰다.
*
청해에서의 사고가 있고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건의 규모가 이제까지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또한 알아낸 정보는 급보 중에 급보였던 만큼 그 모든 사실은 늦지 않게 무림맹주 사백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무림맹 맹주전의 정원.
사백운은 그곳에가 군사 제갈무연의 보고를 모두 받은 후 침잠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게 소교주였다?”
“예, 그렇습니다. 강우설의 이름으로 청룡 비무회에 잠입해 난동을 부린 마인은 천마신교의 소교주, 그를 추적하던 중 청해에서 도왕 진건 대협의 도움을 받았고, 내각주가 그와 함께 소교주를 몰아붙이던 중 마교의 장로가 난입해 포획이 실패했습니다.”
다시금 들려온 소식이 쓰다.
사백운은 이어 물었다.
“피해는 어떻게 되나.”
사실, 이런 내용은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리를 잃은 검에 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사백운이 이리 긴 세월 무림에 몸을 담았음에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한 종류인 까닭이다.
하지만 맹주로서의 직위는 그런 외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맹의 무인 사백칠십팔, 추적을 도왔던 각 지방의 무인들이 삼천이백오십칠.”
제갈무연의 고개가 깊이 숙여졌다.
“…밝혀진 사망자의 수만 그 정도입니다.”
사백운의 눈이 질끈 감겼다.
“마인들의 심문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마교의 마인들이 또 한 번 침공을 감행할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감히.”
순간, 사백운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파에 제갈무연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사백운은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언제나 인자함을 보이며 타인에게 힘을 드러내지 않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감히, 그 간악한 마종들이 또 한 번 중원을 넘보는구나.”
겨우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마인들에게 그리 많은 무인과 양민이 스러진 일이 20년도 채 전의 일이란 말이다.
한데 어찌 벌써부터 또 이빨을 들이미는 것일까.
어찌 그 작은 것들을 해하려 드는 것일까.
“맹주님….”
“그래, 우리가 그간 너무 얌전하게만 군 것이 이유겠지.”
혈사 이후 정확히 18년.
사백운은 맹주의 자리에 올라 내내 평화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
다툼보다는 대화를, 피보다는 붓을 먼저 떠올리며 동도들과 함께 지켜낸 중원무림에 햇볕을 드리우고자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사백운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군사.”
“예.”
“평화가 너무 길었던 듯해.”
“…맹주님.”
“강호가 피를 원하고 있다네.”
강호가 바란다.
강자존과 승자독식을 부르짖는 끊임없는 투쟁을.
그리하여 세워질 새로운 정의를.
짧고도 달콤했던 평화의 마침표를.
바란다면 들어주어야지.
그것이 이 땅의 순리일진대.
사백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도무림(百道武林).”
올곧은 길 위해 힘쓰는 무인들의 땅, 그들의 기개, 신념, 정의.
그 모든 것이 조금도 바래지지 않았음을 침략자들에게 일러줄 필요가 있었다.
“다시 한번 그 이름으로 뭉쳐야 할 때라네.”
제갈무연에게서 등을 돌렸다.
“대회의를 소집하게나.”
제갈무연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대회의라 함은….”
“군사가 아는 그것이 맞네.”
중원 대회의.
그것은 하나의 약속이었다.
20여년 전, 혈사가 끝맺고 당시 전쟁을 이끌었던 무인들과 집단이 한데 어울려 해냈던 약속.
-중원 땅이 다시금 위험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은원을 접고 한데 뭉칠 필요가 있소. 먼 훗날엔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이오.
-그 방법은?
-명예와 이름을 걸고 지켜야 할 하나의 약속을 하는 것이오. 형태는 회의가 좋겠지. 그 누구도 결석해선 안 되는, 그리고 개인의 은원을 주장해선 안 되는 회의.
이것은 그날, 진왕 제갈벽이 직접 고안해낸 수였다.
-중원 대회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당신들 모두 딱 한 번, 그 어떤 예외도 없이 회의에 참여하여 함께 머리를 맞대 주시오.
‘내 대에는 이것을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라.
사백운은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구파와 세가를 소집하시게.”
그들의 위명이 필요하다.
“전대의 고수들을 소집하시게.”
혈사를 헤쳐 나갔던 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 더.
“사성육왕을 모두 소집하시게.”
아니, 이젠 삼성오왕이라고 해야 할까.
사백운은 피식 웃었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이름조차 빛바랜 순간에 다시 그것을 부르짖는 이 상황이 너무나 우스운 이유였다.
“전우들의 무력이 필요하오.”
제갈무연이 결연한 얼굴을 만들곤 고개를 깊이 숙였다.
“…존명.”
그리 답했다.
정확히 사흘 뒤, 태평성대에 잠들어있던 무림의 기인들이 일제히 깨어났다.
*
강서성 어느 산골.
마일석은 목선오에게 말했다.
“형님은 정말 가지 않는 것이오?”
“그래, 나는 이미 중원 무림에서 사라진 이름이 아니더냐.”
“형님을 필요로 할 수도 있소.”
“나는 지난 물결이다.”
목선오가 차를 호로록 마셨다.
그리고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림은 흘러가야 한다. 언제까지고 과거에 기대있어선 안 돼.”
“형님….”
“중원은 넓지 않느냐. 그러니 모르는 일이 아니더냐.”
그리 말한 목선오는 이내 조곤조곤한 어조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를 대신할 이름이 분명, 이 무림에 있을 것이다.”
마일석은 그 말에 더 권유하지 못했다.
그저 한참이나 목선오를 바라보다, 애써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원이 그놈이면 하는 게요?”
“그것도 괜찮겠지.”
목선오가 끌끌 웃었다.
“다녀오거라.”
“다녀오겠소.”
마일석이 미련 없이 등 돌렸다.
걸왕(乞王) 마일석.
그가 다시 한번 중원 무림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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