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57화 (157/334)

EP.157 십오장 - 임무, 추격 (7)

* * *

달리고 달린 목리원은 당화서와 일행을 둘러싼 마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개중 절정이 여섯이다.

당연 전원이 절정인 나머지 용봉단이 훨씬 불리한 상황이었고, 단원들은 제갈산의 진법에 기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소저어어!!!”

목리원의 주변으로 묵색의 기파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목리원의 몸이 새하얗게 타올랐다.

심의 유성만리.

경지에 다다른 기공이 달려드는 마인들을 죄다 찢어발겼다.

“끄허억!”

살초는 피하며 행동불능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둔 만큼 힘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더해져, 목리원은 이윽고 당화서의 앞으로 당도했다.

빠악!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마인의 정수리를 검집으로 내려찍는다.

마인이 털썩 쓰러지는 것을 뒤로 하고 목리원은 가장 먼저 절정의 마인들을 노리는데 주력했다.

그렇게 넷을 처리한 시점.

“늦었군.”

남궁진천이 나타났다.

하늘 높이 검을 들어올린 그가 그대로 내려 베기를 시전했다.

쩌억, 하고 남은 절정 둘의 몸이 세로로 쪼개졌다.

“둘 정도는 죽여도 상관없겠지.”

그리 말하며 남궁진천이 납검했다.

상황은 그렇게 정리가 끝났다.

목리원은 곧장 당화서의 상세를 살폈다.

“괜찮으시오? 어디 상한 데는….”

“괜찮습니다.”

당화서가 작게 웃었다.

“쫓아간 마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미안하오. 이쪽이 더 급한 듯하여 놔두고 와버렸소.”

당화서가 탄식을 흘렸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른 표정은 죄책감을 닮아 있었다.

“방해가 되어버렸군요. 저희가 더 강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오! 그리고 초절정의 마인을 잡지 못했다 한들 어떻소! 이리 마인들을 많이 생포했지 않소!”

목리원은 당화서를 위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환한 얼굴을 만들었다.

게다가 사실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나.

육마를 놓친 것은 뼈아프긴 하나 이리 많은 마인을 생포했으니, 이것은 충분히 성과라 할 만했다.

“어서 이들을 포박하지! 잡아서 무어라도 캐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내 또 하나의 정보를 더 가져왔다오.”

“무엇입니까?”

“지금 내각주님과 싸우고 있는 초월의 마인 말이오! 그가 마교의 소교주라고 하더구려!”

“소교…!”

공간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목리원은 그런 기색을 이해했다.

아무렴 다른 것도 아닌 마교의 다음 주인이다.

그런 이가 중원에 숨어 들어있었단 사실이 얼마나 놀랍겠는가.

하지만 이리 얼어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빨리 알리러 갑시다!”

목리원의 말에 단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패웅추는 상의를 찢어 세로로 쪼개진 주먹을 꽉 감싼 채로 내달렸다.

그러다 몰골이 된 연리건과 합류했다.

“아주 꼴이 엉망이로군!”

유쾌함이 차올라 말하자 연리건이 답했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변명이다! 무인에겐 오로지 승패만이 존재하는 법!”

실로 패웅추는 그런 가치관을 진리로 아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승패만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승패에 있어 상성은 넘어야 할 벽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검가(劒家)에서 태어나 검을 버리고 주먹으로 일가를 이룬 패웅추로선 연리건의 말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패웅추라도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있었다.

‘눈빛이 살아있군!’

평소의 연리건은 거의 죽어 나자빠진 동태 눈깔을 하고 있었다.

한데 오늘의 그는 달랐다.

연리건은 패웅추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품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꽤….’

재밌는 그림.

그 검룡이라는 사내도 별을 졌다던가.

사실상 천살성에 꽂혀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던 제왕성에 문득 흥미가 생긴다.

하지만 역시 목리원만큼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패웅추는 다음엔 어떤 식으로 목리원을 상대해야 할까에 관한 고민을 하며 내달렸고, 그렇게 겨우 신강의 경계에 가까워졌다.

“…잠깐.”

연리건이 말했다.

그제야 생각에 빠져있던 패웅추도 정신을 차렸다.

“이 기운은….”

두 사람의 경공이 동시에 멈췄다.

저릿하게 몸을 찍어 내리는 마기.

그리고 그것이 전해지는 순간 꽉 조이는 심장.

비단 발걸음만이 아닌 사고까지.

그 모든 것이 단번에 얼어붙는 중 패웅추가 중얼거렸다.

“…7장로.”

천마신교 7 장로 귀명검(鬼鳴劒) 구경오.

그의 기운이었다.

그것이 아주 빠르게 가까워졌다.

패웅추의 사고가 가속했다.

‘어떻게 벌써?’

태을벽은 아직 신강에 조차 다다르지 못했을 터다.

신강은 지금부터 안 쉬고 달려도 이틀은 더 가야 하는 거리에 있으니 당연했다.

한데 어떻게 벌써부터 장로가 이곳에 온 것인가.

함께 떠오르는 생각은 목리원에 관한 것이었다.

‘잡힌다.’

천살성의 위치가 발각되는 순간 곧장 7 장로가 그를 잡으러 갈 것이다.

그건 패웅추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목리원은 잡히지 않아야 했다.

정체 또한 들키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온실 속에서 더욱 강해져, 다음 투쟁을 함께해 주어야 했다.

생각이 이어지던 중 장로가 패웅추의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검마, 권마.”

흠칫, 패웅추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마른 고목 나무 같은 노인이었다.

흑색의 품이 넓은 도포가 펄럭이는 와중에도 그게 느껴질 정도로 드러난 몸이 너무 앙상했다.

신선처럼 길게 늘어진 수염 아래, 검게 물든 흰자위가 드러났다.

“소교주님을 마중 왔소. 어디 있소?”

그 말에 패웅추는 안도해버렸다.

‘소교주를 마중 나온 것이었구나!’

천살성이 목적은 아닌 듯했다.

마른침이 목뒤로 넘어갔다.

패웅추는 바로 맨 땅에 부복하며 외쳤다.

“중원의 초월 둘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허어,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

7장로가 수염을 슥슥 쓸었다.

“그래, 교주님의 폐관동 앞을 떠나질 않았다곤 하나 소식은 항상 듣고 있었소. 소교주님이 산공독을 한시도 곁에서 떼어두지 않으셨다지.”

인자한 조부와도 같은 부드러운 어조였다.

하나, 그 속엔 짜증이 얼핏 묻어있었다.

“다, 이것이 모두 다 그 찢어 죽일 제사장 때문이지. 어찌 교주님이 폐관에 들자마자 배신을 꿈꿨을꼬.”

혈마 단천화.

중원에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신교에선 여전히 그를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7 장로는 그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는 것이다.

“소교주님께서 상심이 크셨겠구려. 일단 교주님의 명이 있으니 함께 신교로 복귀하고, 이후 천살성을 되찾을 방법에 관해 다시 한번 논의해봐야겠소.”

그리 말한 7 장로가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먼저 교로 복귀하시구려. 몸도 성치 않아보이는데 정양에 힘쓰도록 하고.”

직후, 7 장로가 패웅추의 기감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귀신같은 인간이군.’

패웅추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

낮과 밤의 흐름을 헤아리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위광천은 그저 달렸고, 이따금 중원의 초월이 달려들 때면 그들을 걷어내며 신강을 향했다.

이번 역시 그런 순간이었다.

겨우 두 초월을 걷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따라붙은 그들이 칼질을 해댄다.

위광천은 반격을 위해 마기를 폭사했고, 그것이 지반에 영향을 미쳤다.

꽈르르릉, 하고 일대의 산맥이 다 무너진 것이다.

그것에 새삼스러움을 느끼기엔 요 며칠간 이런 일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왔다.

위광천은 산사태로 흘러내리는 나무들을 타고 다니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기가 고갈되고 있다.’

위기감이 치솟는다.

아마 증원이 없다면 며칠 이내에 저들의 손아귀에 잡힐 수도 있겠다.

하나, 그런 중에도 다행이라 할 점은 있었다.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15년은 길었다.

산공독으로 마기를 다 지워내고 정제하지 않은 자연지기를 채워둔 기간이 그 정도인데 몸 상태가 멀쩡할 리 있겠는가.

또한 기감이 제대로 벼려질 리 있겠는가.

하여 이 전투는 어찌보면 기회였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15년의 공백 동안 무뎌진 감이 두 명의 초월을 한 번에 상대하며 다시금 전성기때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증원만 온다면.’

그리하여 신교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완전한 회복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줄행랑만 치려고!”

와중 도왕 진건이 강기를 두른 채로 달려들었다.

위광천은 팔 위로 강기를 두르곤 몸을 웅크렸다.

꽈앙! 소리와 함께 위광천의 몸이 뒤로 크게 날아갔다.

벌어진 거리에 진건이 아차하는 얼굴을 만들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위광천은 중심을 잡는 그대로 또 달렸다.

“어딜!”

내각주 견궐이 나섰다.

그 역시 강기를 두른 채로 찌르기를 해온다.

직전의 공방에서 베기는 악수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위광천은 이를 빠득 갈며 몸을 한바퀴 회전시켰다.

검이 빗겨나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견궐의 각법이었다.

“버러지가…!”

위광천은 주먹으로 견궐의 허벅지 한가운데를 후려쳤다.

꽈앙!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렸고 견궐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다.

이 자리에서 몰아치느냐, 이 틈에 신강을 향해 한 번 더 달리느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신강으로 향한다.’

몸 상태를 완전히 회복한다면 이 둘쯤은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약기운에 취해있던 때와는 다르다.

위광천은 순간의 혈기에 그른 판단을 할 정도로 우둔하지 않았다.

“천운에 감사해라.”

위광천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뒤에서 쫓아오는 두 개의 기운이 있음에 하체에 마기를 더했다.

쾅쾅쾅 걸음마다 땅이 울리고 마기가 주변을 잠식한다.

그것으로 추격자들을 혼란하게 만든다.

하나, 역시 무리가 있다.

채 백리(百里)도 가지 못한 시점에 진건이 따라붙었다.

아니, 진건과 견궐이 함께 따라붙었다.

두 초월의 기운이 이제까지 중 가장 포악한 기세로 널뛴다.

결전을 준비하는 듯하다.

위광천에게서 도주라는 선택지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도주가 불가하다.’

등을 보이는 순간 저들의 폭격에 사지 한 군데가 망가질 터다.

그렇다면 끝이다.

선택지가 맞대응밖에 남지 않는 것에 이가 다 갈리는 기분이다.

한들 어쩌겠나.

위광천은 단전의 마기를 다 쥐어 짜내 몸 위로 둘렀다.

‘비참하게 당해주진 않겠다.’

꼭 이곳을 탈출해 후일을 도모하리라.

위광천은 이제껏 기감의 무뎌짐으로 포기했던 수법을 쓰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으….”

잇새로 숨을 뱉어내자 칠흑의 마기를 더욱 불어난다.

그 순간이었다.

“참아주시지요. 옥체를 보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끌끌, 노인의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그것은 꼭 귀신의 곡소리 같은 울림을 하고 있었다.

위광천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이 목소리는….’

위광천이 확실히 아는 목소리였다.

이윽고 흐릿하게 일렁이는 노인의 형상이 달려드는 중원의 초월들을 막아섰다.

“필부가 왔습니다. 안심하지요.”

스릉, 검을 뽑아 들었고.

“옥체는 강녕하셨는지?”

허허로이 웃는 순간, 그의 팔이 흐려졌다.

채재재재쟁! 검명과 동시에 검풍이 공간을 휩쓸었다.

“이건 또 뭐야!!!”

진건의 투덜거림.

그에 노인이 말했다.

“귀명검.”

진건을 보는 노인의 눈빛은 뱀의 것처럼 차가웠다.

“내 위대한 신교의 7 장로다.”

위광천은 웃었다.

이제야 증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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