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54화 (154/334)

EP.154 십오장 - 임무, 추격 (4)

* * *

강행군이었다.

밤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이동에만 쓴 나날이었고, 그 끝에서야 목리원 일행은 청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들은 소식은 놀라웠다.

“도왕님이 계시단 말이오?!”

목리원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도왕 진건, 그는 목리원이 이 강호에 나와 꼭 한번 만나보고자 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까닭이다.

-도왕? 말이 도왕이지 그냥 멍청한 한량 놈이다. 계집질이나 쌈박질에 영혼을 판 놈인데 하필 또 재능은 있어서 사성육왕에 오른 놈이지.

-그분은….

-그날 중립에 섰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지. 그냥 마지막까지 입 꾹 다물고 있다가 자기 표에 네 운명이 결정된다니까 아예 투표를 무산으로 만든 게다. 책임지기 싫은 이유였겠지.

-그, 그래도 그분 덕에 제가 살 수 있게 된 것 아닌가요?

-야 이놈아, 널 살린 건 형님이고!

걸왕 마일석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천살성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조금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여 아마 강호에서 만나면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후배로서 대접해줄지도 모른다던가.

‘이런 우연이!’

상황이 좋지 않으나 정리가 된다면 꼭 따로 만나 뵈어야겠다고 목리원이 결심하던 중이었다.

무림맹 청해 지부의 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현재 도왕님과 내각주님께서 초월의 마인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닷새째.

추격과 전투의 반복, 그에 따른 지형의 붕괴와 굉음이 이곳에서 하루만 더 가면 온통 사방을 점하고 있다는 말에 목리원은 입을 떡 벌렸다.

“빠, 빨리 도우러 가야 하는 것이 아니오?!”

말해보지만 맹의 무인의 고개를 가로저었다.

“접근이 불가능한 수준의 전투입니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저희 쪽 피해만 더 생기겠지요. 하여 내각주님께서 명하신 바가 있습니다. 현재 청해 전체에 암약해있던 마인들이 모두 들고 일어난 상황이니 그들을 정리해달라 요청하셨습니다.”

“그럼 방침은 결정됐군.”

금검 권표월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대로 다시 움직이세나. 선발대와 합류해 청해의 마인들을 처리할 방도에 대해서 논의해야지. 이보게. 선발대는 어디에 있나?”

“신강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개중 앞서 중원에서 활개 쳤던 육마(六魔) 중 하나가 보이고 있습니다.”

“정체는?”

“맹의 정보에 의하면 그자가 권마(拳魔) 패웅추라고 합니다.”

덜컥, 하고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권마 패웅추.

아직 목리원이 무림맹에 입단하기도 전 무한으로 가는 표행길에서 만난 마인이었다.

‘여기 있었나…!’

그를 떠올리는 순간 지난 전투의 양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좀처럼 우위를 잡지 못하고 패배, 게다가 그 일로 수많은 이들이 명을 달리 했으니 목리원에게 패웅추란 이름은 조금 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목리원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것은 분명한 형태의 복수심, 그리고 결의였다.

“목 소협.”

당화서가 작게 말하며 목리원의 손을 잡았다.

목리원은 그 말에 뒤늦게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괜찮소.”

싱긋 웃었다.

“흥분하지 않을 것이오. 그자가 얼마나 강해졌든….”

내가 그자보다 더 강해졌을 테니.

목리원은 자신감에 찬 말을 내뱉으며 당화서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

그렇게 하루를 더 달려 나갔다.

도착한 곳은 청해의 어느 작은 무관.

맹의 행사를 돕겠다는 이유로 나선 관장의 호의로 무관에 머물 수 있게된 선발대와, 그 소식을 듣고 무관에 도착한 후발대가 드디어 만났다.

“검룡 형! 일운 스님! 혜운 스님!”

목리원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단원들의 모습에 크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그간 잘 지내셨소?! 아니, 이런 말은 안 되겠구려! 상황이 안 좋으니…!”

“에이, 목 아우. 그래도 안부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거 남궁형은 변함이 없으시구려.”

제갈산이 목리원과 어깨동무를 하며 남궁진천에게 인사했다.

남궁진천은 미간을 구기더니 답했다.

“…여유롭군.”

그리 말하며 돌아섰다.

목리원과 제갈산이 고개를 갸웃하자 서예가 작게 속삭였다.

“초월의 마인을 추격하는 일에서 제외당했다고 저러는 거예요. 자기가 직접 잡겠다면서 길길이 날뛰었거든요.”

“아….”

“진짜 애 아니에요?”

목리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여, 열정이 있는 것이지. 한데 소저는 어찌 여기에 따라오셨소?”

“저야 정보 수집이죠. 망한 하오문 살리려면 고급 정보가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요. 단원들도 영 시원찮아서 직접 발로 뛰는 중이에요.”

문주라는 것도 참 고생을 많이 하는 자리구나.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표하곤 저 멀리 대주들과 단주들을 바라봤다.

한데 모여 무언가를 논의한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각자 어느 구역을 맡을지 정하는 듯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라고 당화서가 말을 내뱉곤 단원들에게 돌아왔다.

“저희는 청해 북쪽을 향할 듯합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바로 출발하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괜찮소!”

“나도 바로 갈 수 있소.”

목리원과 제갈산이 말했고 일운과 혜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 서예가 물었다.

“북쪽 어디로 가는 건가요?”

“신강 쪽으로 향하는 길목이 여러 군데가 있다 하여 그곳을 다 틀어막을 작정이요. 중앙은 곤륜에서 맡겠다더군.”

“아하.”

“한데 검룡은 어딨소? 직전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당화서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서예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삐져서 도망갔어요.”

“….”

당화서의 입이 꾹 다물렸다.

*

청해에서 신강으로 향하는 마지막 도시.

그곳의 어느 안가에서 패웅추는 배를 벅벅 긁었다.

“곧 도착이구먼.”

이 뒤로는 도시가 없다.

산과 숲을 미친 듯이 내달려 사흘을 내리 움직이면 신강이 나온다.

그리하면 십만대산.

신교의 본거지가 나오니 더 이상의 추격을 걱정할 일이 없었다.

“피곤해. 아주 피곤하단 말이지.”

패웅추가 배꼽을 긁은 손을 코앞에 대고 킁킁댔다.

그러다가 ‘크!’ 소리를 내며 손을 털었다.

“어이 태을벽이!”

“무엇이냐.”

“뭐기는, 거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궁상 떠니까 부상이라도 입었나 해서.”

“부상은 없다.”

그리 말한 태을벽이 눈을 감고 호흡을 이어갔다.

패웅추는 입술을 삐죽였다.

빙마(氷魔) 태을벽.

그가 소속된 설귀문(雪鬼門)은 저 중원 북쪽의 북해빙궁에서 도망쳐 나온 궁주의 혈족이 신교에 자리 잡으며 마도육문(魔道六門)에 오른 문파였다.

그런 출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놈의 설귀문 출신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냉랭하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도 같고 말을 주고받는 재미도 없으니, 수다를 좋아하는 패웅추의 입장에서 이만큼 상대하기 곤란한 인간도 없었다.

패웅추는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저 멀리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이번 역시 먼저 화제를 던지는 것이었다.

“음, 추격이 꽤 거세지 않나?”

“신강이 가까워졌으니.”

“그 탓에 시간이 지연되고 있잖나.”

“중요치 않다. 우리는 결국 신교에 도달할 테니.”

“연리건 그놈은….”

“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검마(劒魔) 연리건이 전신에 피칠갑을 한 채로 안가에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도 피로해 보이지 않는 낯빛에 패웅추는 저 피의 주인이 중원 무림인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추격자들은 몰살했다.”

공허한 눈빛을 한 채 연리건이 말했다.

패웅추는 고개를 끄덕이다 끙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어색하구먼.’

하필 있는 놈이 연리건과 태을벽.

육마라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재미없고 말도 안 통하는 족속들이다.

연리건이 태을벽의 옆자리로 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진다.

‘오강악 그놈이라도 있었으면….’

병신 주제에 날뛰는 맛은 있어서 괴롭히는 재미라도 봤을 텐데.

패웅추는 오늘따라 그가 유독 그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

또 사흘이 지났다.

패웅추는 연리건과 태을벽을 데리고 신강을 향해 내달렸다.

하나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또 추격이군.”

지긋지긋한 추격자가 또 따라붙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벌써 신강에 들어서 십만대산을 오르고 있어야 할진대, 추격자들이 쉴새 없이 달려드는 탓에 그 길이 하염없이 지연되고만 있었다.

이놈의 중원은 무슨 무인이 이렇게 많은지 아주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오는 바퀴벌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게 다 약한 놈들도 살려놔서 그렇지.”

강자존, 승자독식.

약자는 죽어 도태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진대, 저들은 우습지도 않은 협을 들이밀며 그 진리를 역행하고 있었다.

결과가 이것이리라.

약자들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그른 형태의 강호.

주먹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죄다 무너져 내릴 떨거지들의 강호.

“처리하고 가지.”

또 본보기를 보여줘야겠다.

패웅추는 자리에 멈춰선 후 주먹을 말아쥐었다.

태을벽과 연리건 또한 마찬가지.

각자의 마기를 풀어헤치며 전투를 준비했다.

“찾았다! 잡아라아아아!!!”

곤륜의 무인들인가.

아니, 개중에 다른 기운들도 느껴졌다.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근처 무관의 떨거지들인 듯했다.

‘숫자로 밀어붙여서야 되겠나!’

패웅추는 길게 찢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마기를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악!!!”

일제히 중원의 무림인들이 쓸려나간다.

잔류한 인원도 태을벽과 연리건이 처리한다.

하나 역시 무인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팔다리 어디 한 군데가 날아간 것들도 이를 악물며 달려들어 잇몸으로라도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기개는 좋다!”

실력이 없어서 문제인 게지.

패웅추는 발을 들어 기어서 달려드는 무인의 머리를 콱! 밟아 터뜨렸다.

그리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시 출바….”

멈칫, 패웅추의 말이 멎었다.

태을벽과 연리건 또한 마찬가지.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만났던 떨거지들과는 다른 꽤 강한 기운.

게다가 그것이 익숙하기까지 하다.

패웅추는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달려드는 기파를 느끼며 길게 미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꼭 어두운 밤을 떠오르게만 하는 기파다.

그리고 그 속에 고요함과 흉포함을 함께 품은 기파다.

“천살성!”

그때보다 더욱 강력해진.

확실히 여물어 이젠 등골에 소름까지 끼치게 만드는 천살성, 묵룡의 기파였다.

“잡아가야 하나?”

태을벽이 물었다.

연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에 들어와주는 것을 도로 뱉을 이유는 없다.”

패웅추가 나섰다.

“아니. 태을벽, 자네는 마저 신교로 향하게.”

“음?”

“소교주님의 명이 있지 않나. 초월 둘을 계속 상대하기엔 소교주님의 상세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네. 그러니 일단 장로님을 불러오는 일을 급히 해야지.”

라고 말한 직후, 패웅추는 연리건에게도 말했다.

“자네는 다른 쪽을 맡아주게. 천살성 말고 하나가 더 있네. 초절정.”

아마 검룡이니 하는 제왕성이겠지.

다행히 그놈이 함께 와줬다.

“천살성은 내가 맡지.”

아, 저리 맛있는 요리를 어찌 남과 함께 먹겠느냔 말이다.

한껏 여문 천살성과의 생사결이 코앞에 있는데 어찌 훼방을 두게 방치하겠느냔 말이다.

패웅추의 미소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해졌다.

“어때, 합리적이지 않나?”

이런 순간이면, 패웅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사내였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