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2 십오장 - 임무, 추격 (2)
* * *
선발대는 계속해서 달렸다.
어느새 사천을 빠져나가 청해로.
그곳까지 오며 총 두 차례의 전투를 더 치렀다.
“끄헉!”
남궁진천이 마인 하나를 베어냈다.
그러자 곁에서 숨을 돌리던 일운이 말했다.
“본격적으로 마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군요.”
눈살을 찌푸리며 내뱉는 말에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사천을 다 지나 청해로 들어오니 마인의 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청해의 곤륜파가 각지에서 들끓는 마인을 대신 잡아주는 만큼 발목이 잡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답답함이 가시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조급함이 문제였다.
이제 청해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면 이 너머는 신강, 천마신교의 영역이니 더 쫓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 이런 조급함을 더 보채고 있었다.
“한데 내각주님께선….”
일운이 고개를 돌리는 것에 남궁진천도 함께 고개를 돌렸다.
내각주 해파검 견궐.
그는 추격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검만을 휘두르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일운이야 모르는 듯하지만 남궁진천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초월이다.’
내각주 해파검 견궐.
그에게서 조부인 검왕 남궁혁에게서나 느껴지던 부담감이 느껴졌다.
‘숨기는 건가?’
모르겠다.
하나 굳이 입을 열어봐야 좋을 일은 없을 터.
초월이나 되는 무인이 스스로를 숨기는 것에 아무런 이유도 없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남궁진천은 멍청하지 않았다.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견궐의 물음에 남궁진천이 답했다.
“저희는 피해가 없습니다.”
“청룡대도 전원 무사합니다.”
“적운대도 무사합니다!”
순차적으로 상황을 알리자 견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쫓지. 청해는 넓으니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걸세.”
그리 말한 견궐이 다른 무인들이 쫓아올 수 있을 수준의 속도만 내며 경공을 발하기 시작했다.
“으아… 힘들어 죽겠네.”
혜운은 그리 투덜거리며 누구보다 먼저 경공으로 견궐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
무한에서부터 쭉 내달려 도착한 청해.
위광천은 그곳의 한 안가에 머물러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15년 간 몸에 걸었던 금제가 조금씩 풀린다.
다시 차오른 마기가 그간 몸을 떠나지 않던 약기운을 우악스럽게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정신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숨은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고 눈앞이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위광천은 숨을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올리는 것은 지난 15년간 약에 취해서 했던 섣부른 판단들.
‘…두 번 다신 쓰지 말아야겠군.’
마기를 모두 봉하고 몸을 약에 절여놓으니 그 휴유증을 없애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방을 나서니 검마 연리건이 부복하고 있었다.
위광천은 그에게 물었다.
“추격자들은?”
“아직 하루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청해에 심은 마인이 꽤 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곤륜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워낙 이동이 빠른 족속들이라.”
위광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곤륜파.
쥐새끼처럼 경공 하나는 특출난 편이라 추격이나 도주에 특화된 것들이다.
그런 만큼 위광천도 청해에 들어오며 세 차례 그들을 맞이한 일이 있었다.
“바로 움직인다.”
“존명.”
연리건이 일어나자 곳곳에서 튀어나온 마인들이 대열을 이뤘다.
연리건은 그들의 한가운데로 걸어가며 생각을 이었다.
‘교주님께서….’
돌아오셨다.
25년 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옥좌에 앉으셨으니 지금쯤이면 그간의 일을 모두 파악하셨을 것이다.
폐관에 드시자마자 단천화가 배신한 일부터 그의 대법과 천살성의 실종.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지난 15년 간 자신이 했던 일까지.
이것에 대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위광천은 그를 고민하면 할수록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기분을 느꼈다.
25년의 폐관이 끝났다는 것인 즉슨 교주의 성취가 어딘가에 닿았다는 말이다.
‘초월로도 만족하시지 못한 분이다.’
분명 닿아있는 것은 그 너머일 터다.
목이 타는 착각이 인다.
그 어느때보다 불안감이 치솟는다.
위광천이 그런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던 중이었다.
“찾았다!!!”
어디선가 한껏 날 선 외침이 울려퍼진다.
위광천은 고개를 들고 마기를 펼쳤다.
“쥐새끼들이 또 달려드는군.”
곤륜의 무인들이었다.
참 잽싸게도 달려오는 것들이 있었고, 찾았다는 말에 바로 다른 쪽으로 달려 나가는 것들이 있었다.
도주해서 위치를 알리려는 듯하다.
‘같잖은 짓을.’
위광천은 마기를 그러모았다.
그리고 쿵!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무인들.
초절정이 둘이다.
어쭙잖은 마기를 실었다간 끈덕지게 들러붙겠지.
단번에 쳐야 한다는 판단에 위광천은 이제 궤도에 오른 마기를 단번에 그러모아 쏘아냈다.
꽈앙!
“꺼흡…!”
무인 둘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 뒤를 이어 떨거지들이 달려든다.
연리건이 함께 나섰고 남은 무인들을 모두 몰살하는데 성공한 위광천은 이미 경공으로 저 멀리 달아나버린 무인들을 바라봤다.
‘쫓는다?’
아니, 그럴 시간조차 아깝다.
행선지가 들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괜히 시간을 더 낭비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꼬리를 달았어도 십만대산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니 그저 달리는 게 옳은 판단일 터다.
그리 생각한 순간.
‘…음?’
무인들의 기척이 스러졌다.
그리고 그곳에 아주 익숙한 기운 두 개가 새로이 나타나, 위광천에게 다가왔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하고 껄껄 웃는 산적같은 인상의 사내와 머리칼이 새하얀 사내.
“…패웅추, 태을벽.”
권마 패웅추, 빙마 태을벽.
위광천의 수족들이 직전 도주하던 무인들의 목을 든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신교로!”
패웅추가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
목리원 일행은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과정에서 길을 잃거나 목적지를 고민하는 일은 없었다.
선발대가 이미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무림맹 지부에 전서를 남겨둔 까닭이다.
약 닷새의 시간을 써서 겨우 사천당문의 땅에 도착.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왔던 장소인데다가 당문의 현 가주인 당화서가 무리에 있는 만큼 그날 저녁 목리원 일행은 당문의 저택에서 묵었다.
그날 밤 목리원이 바라보는 것은 금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네놈이 가진 별의 원주인.
떠오르는 것은 마인의 말이다.
목리원이 알기로는 천살성은 수 백년에 한 번 이 땅에 나올 정도로 그 주인이 잘 나타나지 않는 별이고, 이미 별의 주인이 있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법이 없는 별이다.
한데 마인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해보면 그 전제가 깨지지 않던가.
차오르는 의문의 답을 저곳에 있는 뱀은 알까 싶지만, 목리원은 이내 금지에 들어가길 포기했다.
‘만나줄지부터가 의문이다.’
뱀은 분명 천살성을 가까이하는 행위 자체에 거리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리하며 이른 것은 천기누설(天氣漏洩)은 불가하다는 말.
괜히 뱀을 찾겠다고 시간을 지체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터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직접 물어보면 될 터이니.’
목리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목 소협.”
와중 당화서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왜 그녀가 밖에 있는 걸까.
생각하던 목리원은 뒤늦게야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당문의 일을 처리하고 계시구나.’
당화서는 그간 당문을 이어받고 전서를 통해서만 당문을 관리해왔다.
오늘은 이리 당문에 들른 김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처리해야 할 일을 마저 끝내러 온 것일 터다.
“아, 소저.”
“왜 여기 계십니까. 바로 주무시지 않구.”
당화서가 목리원의 옆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의 앞에는 작은 못이 하나 있었는데, 목리원은 그 위의 연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문에 오니 지난 금지에서의 일이 떠올라서 말이오.”
“음… 아, 그 뱀 말입니까?”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이미 뱀에 관한 것을 당화서에게 물은 일이 있었으나, 당시의 당화서는 금지의 영물에 대해선 자신도 잘 모른다고 답했었다.
하여 고민에 대한 시원스런 답을 그녀에게 기대하긴 힘든 것이다.
“속이 좀 답답하더구려.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
“그러실 수 있지요. 저도 뱀이 천살성의 첫 주인이라는 건 처음 알았으니까요.”
당화서가 위로하듯 목리원의 어깨를 감쌌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목 소협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저는 목 소협의 편이니까.”
건네지는 것은 또 가슴을 뭉클하게만 만드는 말이다.
목리원은 멋쩍은 기분에 뒷목을 쓸었다.
그러다 말했다.
“그으… 당문에서의 일은 잘 처리를 했소?”
“예, 어렵지 않게 끝마쳤습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관리는 소향이가 해주고 있었으니 저는 보고만 받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세가 줄었다고 들었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당문은 그저 두었다 노후나 한적하게 보낼 용도로 쓸 것이라서.”
당화서는 쿡쿡 웃으며 넌지시 그리 말했다.
“그땐 목 소협도 함께 오시렵니까? 사천 유랑이나 하며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한데.”
노후라.
목리원은 그 단어가 왜인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목리원은 매 순간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천명과 그 본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긴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목리원은 언제나 ‘죽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것’ 따위로 미래를 뭉뚱그려 표현해왔었다.
그런 목리원은 오늘에 와서야 늙은 자신을 상상했다.
‘늙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스승님처럼 신선같은 분위기일까, 아니면 언젠가 봤던 검왕처럼 열정적인 사람일까.
의외로 어른스러움이 가득 들어차 맹주님 같은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런 상상이 쭉 이어가던 중 목리원은 깨달은 게 있었다.
“노후를 그려보면 말이오.”
“네?”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상상하던 꼭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소.”
목리원은 당화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의아함이 묻은 얼굴이 왜인지 속을 설레게 만드는 면이 있어, 목리원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곁엔 꼭 소저가 있더구려. 강호를 나온 이후 언제나 소저의 곁에만 있어서 그런 듯하오.”
“그….”
“나는 소저가 없는 강호는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소.”
머쓱해져서 목리원이 뺨을 긁적였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 당화서의 기색을 살폈는데, 당화서는 이리 어두운 와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새빨간 얼굴을 한 채 굳어있었다.
“소저?”
“…아닙니다.”
그리 말한 당화서가 벌떡 일어났다.
“그만 자러 가 볼까요. 내일은 또 바로 출발해야 하니 말입니다.”
“알겠소! 그럼 잘 주무….”
목리원이 채 답을 끝맺기도 전에 당화서가 자리를 떠났다.
혹시 무언가 실례되는 말을 한 걸까.
이 말이 미래에도 뒤치다꺼리를 해달라는 말로 들렸던 걸까.
그런 의문은 이내 흘러들어온 당화서의 중얼거림에 흩어졌다.
“목 소협이 나쁜 겁니다. 목 소협이….”
왜인지 등골을 싸하게 만드는 중얼거림.
목리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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