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1 십오장 - 임무, 추격 (1)
* * *
목리원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어느 상념에 관한 것이 아닌, 목리원이 정신을 잃기까지 있었던 일을 무한히 되새기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었다.
초월의 마인.
그가 마기를 몸에 두른 이후 있었던 딱 두 번의 수.
진각을 밟으며 터뜨린 마기와 장을 뻗으며 쏘아낸 마기.
그것에 당하는 순간이 연신 이어진 것이다.
목리원은 아주 많이 그 수에 당했다.
진각과 장을 막아보려 온갖 수를 써봤지만 그 모든 게 무용했다.
왜 이 장면이 반복되는지, 또한 왜 자신이 이 수법을 막고 있는 것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목리원은 하나의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었다.
‘이길 수 없다. 이 상태로는 절대.’
초월은 너무나도 드높았다.
이미 맞닥뜨린 일이 있던 초월의 무인, 당사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건재한 초월(超越)은 겨우 초인(超人) 따위가 이겨낼 도리가 없는 벽이었다.
또 한 번 장면이 반복된다.
기파를 둘러 정면으로 막는 대신 쏘아진 공력을 피한다.
하나 그조차 마기가 쫓아오며 무산된다.
이후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멱살을 틀어쥔 마인의 말.
-네놈이 가진 별의 원주인.
순간, 목리원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목 소협!”
한껏 놀란 목소리가 목리원의 귀에 때려 박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있는 것은 당화서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목리원을 덥석 끌어안았다.
“드디어 깨어나셨습니까…!”
목소리에 울음기가 아주 짙다.
이제껏 목리원이 봐온 그 어느 때보다도 말이다.
정신이 없는 와중, 목리원은 그것에 당황해 당화서의 등을 토닥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라고 말하며 목리원은 되새겼다.
분명 비무대 위에서 초월의 마인과 겨루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무한히 반복되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보니 지금이다.
당화서가 울고 있고 이곳은 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의약당이었다.
“…사흘이나 누워 계셨습니다.”
아직 숨에서 울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당화서가 말했다.
“그날… 그렇게 쓰러지시고 사흘이나 지났단 말입니다.”
목리원은 황망한 얼굴을 만들었다.
쓰러지고 사흘이나 지났다니.
도저히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목리원은 일단 떠오르는 것들을 물었다.
“마인은 어떻게 됐소? 비무회는 또 어떻게 되고 맹의 무인들은 어찌 된 것이오? 아니, 소저는 괜찮소?! 분명 그 자리에 있지 않았소!”
목리원이 덥썩 당화서의 어깨를 잡았다.
그 순간, 목리원은 몽둥이로 전신을 맞은 듯한 통증을 느꼈다.
“끄흡…!”
“목 소협!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습니다! 진정하세요.”
당화서는 목리원의 상세를 살피곤 이윽고 한숨을 쉬며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그 말을 모두 들은 목리원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무회가 무기한 연기라니.”
청룡비무회는 갑작스러운 마인들의 난입과 그들이 일으킨 혼란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자리에 있던 무인들은 치명상을 입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맹주 사백운의 늦지 않은 등장으로 사망만큼은 면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추격조가 편성되었단 말이오?”
떠나간 초월의 마인과 그 수족들을 잡기 위해 추격조가 편성되었다.
그 추격조를 이끄는 것은 무림맹 내각주인 해파검 견궐.
그 밑에서 보좌를 하는 것이 청룡대주 기태운과 적운대주 강찬이었다.
“괘, 괜찮겠소? 마인은 분명 초월지경에 닿은 자였소. 한데 내각주님께서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화서는 다만 그리 말했다.
목리원은 더 질문을 이어보려다, 당화서가 저리 말을 줄이는 이유가 있으리란 판단하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더 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이오? 상황이 이리 되었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지 않소.”
“목 소협의 몸이 다 낫는 대로 저희도 추격조에 따라붙을 것입니다. 이미 일운 스님과 백봉, 그리고 검룡이 추격조로 먼저 붙은 상황입니다.”
그 말에 목리원은 눈을 감고 몸 상태를 살폈다.
내상이 조금 있긴 하나 심한 정도는 아니다.
아니, 도리어 마기에 의한 내상인 탓에 목리원의 극마지체(極魔之體)가 그것을 양분 삼아 더욱 빠르게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이틀. 그 정도면 충분하겠구려.”
“그렇게 일찍 말입니까?”
목리원은 그 물음에 잠시 주변을 살피다, 이내 속삭이듯 말했다.
“…극마지체가 있지 않소.”
“아…!”
당화서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극마지체에 관한 것은 고려하지 못했던 듯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해야 할까.
역시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목리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 빨리 몸을 정양하는 게 우선이겠구려.”
그때였다.
돌연 문이 열리더니 제갈산이 들어와 목리원에게 달려왔다.
“목 아우! 괜찮은가?!”
“제, 제갈 형?”
목리원은 덜컥했다.
혹시 방금 당화서와 한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극마지체에 관한 것이 들킨 것일까.
빠르게 제갈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일을 들켰다기엔 제갈산의 기색에서 한 줌의 당황도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걱정어린 기색.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괘, 괜찮소. 다행히 내상이 깊지 않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상태가 아주 좋구려.”
“참 다행일세! 목 아우가 큰일을 겪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지….”
제갈산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목리원은 그가 어떤 말도 듣지 못했음을 확신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오.”
그리 말하며 제갈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
이틀 뒤, 정양이 끝난 목리원은 운기조식에 들어간 직후 완전히 내공을 회복했음을 깨닫고 전각을 나섰다.
등에는 봇짐을 둘러맨 상태.
도달한 곳은 무림맹 본단의 입구였으며, 그곳엔 먼저 나와 기다리는 인원들이 있었다.
“금검 대협? 진원단주?”
당화서, 제갈산과 함께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은 백검대주인 금검 권표월과 진원단주인 동강불괴 견동이었다.
이들도 함께 떠나는 것인가.
목리원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중 견동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후발대에 함께 참여하게 되어서 영광이오! 내 꼭 묵룡 대협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힘내보겠소!”
주먹까지 불끈 쥐며 말하자 견동의 염소수염이 씰룩였다.
권표월 역시 마찬가지.
그는 왜인지 분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
“…비무장에서 마인을 막지 못한 것은 내 실책이 크다 생각하네. 하여 이번 작전에 내 할 수 있는 성심을 다해볼 생각이야.”
“후발대는 우리가 끝인 것이오?”
“아닐세. 백검대의 정예 10명과 진원단의 부단주, 그리고 자네들까지로 총 열 여섯이라네.”
그것도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목리원은 이해했다.
하기야 지금 쫓는 마인들이 많은 수가 아닌 경지가 높은 소수인 만큼 병력을 더 많이 쓰기보다는 소수 정예로 빠르게 쫓아가 막는 것이 주요할 테다.
게다가 중원에는 맹의 무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각 지역의 대표 문파들에 지원 요청을 보냈네. 지역을 지날 때마다 그들이 힘을 합쳐줄 걸세.”
중원의 명문, 오대 세가와 구파일방.
그중 서쪽에 있는 명문들이 있었다.
모두가 구파다.
감숙의 공동, 사천의 청성과 점창과 아미, 그리고 신강 앞 청해의 곤륜파까지 여러 문파가 도움을 줄 것이었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그럼 늦지 않게 출발해야겠구려!”
“그래, 바로 가세나.”
직후, 맹의 하급 무사들이 말을 끌고 왔다.
“목 소협, 이리 타시지요.”
당화서가 말에 올라타 목리원에게 손을 뻗었다.
목리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화서의 뒤에 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꽉 잡으셔야 합니다!”
“알겠소!”
왜 굳이 같이 타느냐.
이유는 하나였다.
목리원은 아직도 말을 몰 줄 몰랐다.
*
마인 추격조 선발대.
이제 무한을 빠져나와 호북을 내달려 사천이다.
남궁진천은 이미 한 번 온 일이 있었던 당문의 영역에 도달한 후, 그곳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며 말했다.
“…왜 따라왔나.”
묻는 대상은 하오문주 서예였다.
그랬다.
그녀는 맹주와 거래해 정체를 숨긴 채로 이 행렬에 함께 하고 있었다.
행렬에 끼며 쓴 신분은 남궁세가의 무인으로, 남궁진천의 보좌를 위해 이곳으로 온 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각주인 견궐 또한 그런 사정을 알기에 서예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지만 남궁진천은 불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추격 작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위험해질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험난한 임무가 될 터다.
임무의 목적이 마인의 추살이다 보니 전투는 당연히 있을 터였다.
한데도 서예가 따라오겠다고 하니 괜히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예는 남궁진천의 퉁명스러운 어조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어때요. 그리고 제가 놀러 온 것도 아니잖아요? 하오문의 정보력이라면 가는 길목마다 마인들을 쫓을 단서를 구하기도 꽤 쉬울 거예요. 이건 상부상조죠. 저는 마인들의 동향을 파악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좋고, 맹의 입장에선 추격이 수월해지니 좋고.”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냥 걱정된다는 말이다.
그 말까지는 차마 내뱉지 못해 남궁진천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서예가 ‘흐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부끄럼 타요?”
남궁진천이 흠칫했다.
뺨은 조금 붉어졌다.
여하튼 이런 여인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인지.
남궁진천은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할 감상이 연신 차오르는 것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럴수록 서예는 더욱 미소를 짙게 만들며 남궁진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요. 이래 봬도 저 일류는 되는 무인이에요?”
“영약으로 오른 일류다. 너는 삼류나 다름없는 허접이다.”
“아픈데를 찌르시네.”
서예는 그리 말하더니 무릎을 끌어안곤 그 위로 턱을 기대며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말했다.
“그럼 제가 위험해질 때 지켜주세요.”
빙긋 시원스레 웃는 것에 남궁진천은 손끝을 움찔 떨었다.
그러다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계집이 건방지다. 애초에 따라오지 않았으면 될 일을.”
“그 말 용봉단주님한테도 할 수 있어요?”
절대 못하지.
남궁진천은 장담할 수 있었다.
무력이 어떻고 같은 세가의 주인이 어떻고를 떠나서 당화서에게 깝죽대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그리 문득 당화서에 대한 것을 떠올리던 남궁진천의 사고는 이윽고 목리원에게까지 닿았다.
‘…단 두 수에 고꾸라졌다고 했던가.’
당시 자리에 없던 남궁진천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목리원은 상대가 누구던 어떻게든 이겨내고 우뚝 서는 사내였던 까닭이다.
목리원이 패배했다.
그것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남궁진천의 속에 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아마도 분노이리라.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패배한 목리원에 대한 분노.
제 것이 되었어야 했을 승리를 빼앗아간 마인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장소에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
남궁진천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의 벽안은 조금 더 시린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감히.’
승리를 빼앗아 간 도둑놈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그 상대가 초월임은 남궁진천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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