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50화 (150/334)

EP.150 십사장 - 청룡비무회 (21)

* * *

위광천은 재빨리 목리원을 내던지고 마기를 둘러 공세를 막았다.

꽈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파가 주변을 다 일그러뜨린다.

강기(罡氣)에는 강기(罡氣).

위광천이 몸 위로 두른 칠흑의 강기와 사백운의 차에 서린 백금색의 강기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와중 위광천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초월.’

그것도 중원 무림의 맹주.

좋지 않은 상대다.

이대로 도주를 감행하려 해도 이 사내는 쉬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맞부딪치면 이길 수 있나?

‘힘들다.’

15년의 공백은 길었다.

이제야 막 몸에 차오르기 시작한 마기를 완전히 수습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즉, 지금의 위광천은 만전의 상태가 아니란 말이다.

이 또한 천살성(天殺星)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천살성만 있었다면 별의 보조가 마기를 이끌어줬을진대 그것이 없으니 상황은 수세로 몰리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아아아!!!”

사백운이 힘을 더하며 극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위광천은 진각을 밟았다.

쿵!

소리와 함께 천마군림보가 지반을 흔든다.

그것에 사백운이 마주 기파를 터뜨리며 잃은 중심을 되찾았다.

위광천은 가만 상황을 파악했다.

‘큰 공격은 더 이상 불가.’

이것은 양측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었다.

위광천의 입장에선 목리원의 숨이 붙어있어야 하기에, 사백운의 입장에선 이곳에 쓰러진 맹의 무인들을 지켜야 하기에 공간을 다 휩쓰는 공격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단 말이다.

그렇다면 전투의 양상은 몸에 강기를 두르고 공방을 주고받는 형태가 될 터다.

박투술과 창.

꽤 불리한 양상이다.

꽈아아아앙!!!

또 한 번 강기가 맞부딪친다.

위광천은 충격을 발밑으로 흩어내며 어떻게든 사백운을 떨쳐내고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시작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이곳의 중원 무림의 본단.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원 병력으로 인해 큰 해를 입게될 터다.

그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짧게 고민이 일었고 이내 위광천은 답을 냈다.

‘미끼.’

미끼를 사용한다.

위광천은 검지 끝에 마기를 둥글게 뭉쳤다.

그리고 그것을 휙! 쓰러져 있는 권표월에게 던졌다.

사백운이 눈치챘다.

그리고 거리를 벌린 후 권표월의 앞을 막아서며 극을 휘둘렀다.

쾅! 소리와 함께 쏘아낸 마기가 스러진다.

하지만 세는 위광천에게 유리해졌다.

“멍청한 것.”

조소하며 위광천은 또 마기를 자아내 다른 쓰러진 무인을 향해 쏘아냈다.

부하를 지키기 위해 유리한 지점을 포기하는 선택지가 참으로 우둔하기만 하다.

사백운의 몸이 더 빨리, 더 맹렬하게 움직이며 사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위광천은 마기를 더 많은 곳으로 흩뿌리며 눈을 굴렸다.

도주 경로, 그것을 위해 사백운을 몰아넣을 자리, 지금 데려가야할 목리원이 쓰러진 자리.

그 모든 것을 파악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고, 마침내 위광천이 도주 경로를 완성한 순간 사백운도 그걸 눈치챘다.

사백운의 눈이 부릅뜨였다.

위광천은 비릿하게 웃으며 이번엔 당화서를 향해 마기를 쏘아냈다.

직전보다 더 큰 힘을 담은 마기였다.

“네이노오오오옴!!!”

사백운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창을 거꾸로 쥐어, 쏘아지는 마기를 향해 내던졌다.

허공에서 마기가 스러지고, 맨손이 된 사백운이 그대로 위광천에게 달려들었다.

도주를 막기 위해 무기의 이점까지 버린다라.

꽤 합리적이었으나 고마운 선택지였다.

‘싸운다.’

박투술이라면 우위를 점하기가 쉽다.

그러니 이대로 쓰러트리든 죽이든 처리를 끝내고 가겠다.

그리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맹주님을 지켜라!!!”

지원이 도착했다.

위광천의 눈이 부릅 뜨였다.

너무 빠르다.

아니, 맹주가 이곳까지 도달한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좋지 않은 상황.

사백운에게 조금 더 여유가 생겼고 위광천의 조급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와중 또 한 번 이변이 발생했다.

“끄아아아악!”

“꺼허어어억!”

비무대 위로 달려들던 맹의 무인 중 몇이 돌변해 옆사람을 찔렀다.

그 와중 위광천의 앞까지 도달한 이가 부복하며 말했다.

“피하셔야 합니다! 맹의 본대가 오고 있습니다!”

위광천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순간 사백운과 위광천의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고민.

그 끝에서 위광천은 결국 도주를 택했다.

하여 목리원을 다시 짊어지려 했으나.

“어딜!!!”

어느새 창을 수습해온 사백운이 찌르는 자세로 내달려왔다.

쿵!

소리와 함께 위광천이 비무장 끝까지 날아갔다.

다시 갈 수 없다.

이 거리를 내달려 목리원을 잡아채려면 사백운과 더 긴 싸움을 벌여야 할 테고, 그것은 모든 작전의 끝으로 귀결될 것이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첩자였던 마인이 그리 말하며 단전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터질 듯 일렁이기 시작했고, 그 상태로 마인이 사백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폭.

그런 일을 행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꽈아아아앙!!!

소리와 함께 마인이 사백운의 코앞에서 터졌다.

위광천은 이를 짓씹으며 돌아섰다.

실패였다.

*

“맹주님!”

위광천이 떠난 직후, 청룡대주 기태운이 한달음에 사백운에게 달려와 그의 상세를 살폈다.

사백운은 손을 들어 무사함을 알렸다.

“괜찮다. 다른 무인들은?”

“대부분 무사합니다! 중상자가 몇 있으나, 마인들도 급했던 것인지 급소는 노리지 못했습니다.”

사백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살폈다.

‘…하루정도 정양하면 낫겠군.’

강기를 쓰는 상대와 마주한 것이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승부는 계속해서 우위에 있었던 사백운인 만큼 타격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백운은 도주한 강오설… 그런 이름을 하고 있던 마인을 되새겼다.

‘초월의 마인이라…!’

벌써 그런 이들까지 나타난 것인가.

사백운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폭하던 마인의 행동을 생각하면 꽤 중요한 인물일 것이 분명했다.

‘교주?’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

또한 초월에 달했다곤 하나 그 정도의 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으로 초월에 달했음에도 어딘가 삐걱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 터다.

대관절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백운이 그런 상념에 빠진 동안 본대가 도착하며 바로 상황이 정리됐다.

사백운은 한숨을 쉬고 일어서며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를 수습하고 당장 추격대를 편성해 보내거라. 투입 인원의 통솔은 내각주에게 맡긴다.”

“존명!”

사백운은 목리원을 바라봤다.

‘분명 묵룡을 납치하려 들었다.’

그것에 꽤 많은 생각이 사백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위광천은 보좌를 위해 온 마인과 함께 꽤 긴 거리를 내달려 무한을 벗어났다.

그렇게 마침내 숲속에 들어선 순간, 위광천은 마주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무당에서 첩자질이나 하는 버러지.

잘난 집안의 휘광을 믿고 사사건건 방해질이나 하는 쓰레기.

중원에서는 선룡 현공이라고 불리는 사마공이었다.

위광천은 날선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왜 그 자리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나.”

꽈악, 조여오는 목에 사마공이 컥컥 숨을 내쉬었다.

하나 그것이 두려움으로 비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생리 반응 정도.

사마공은 대체로 이런 식의 반응이라 위광천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말해라. 왜 병력을 보내지 않고 맹에 숨겨둔 첩자만을 이용한 건가.”

맹의 추가 병력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사마공이 상황을 지켜보다 그들을 막을 병력을 조금만 보냈더라면 자신은 사백운을 쓰러트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지지부진한 진행이 아닌 완벽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사마공.

또 빌어 처먹을 사마가(司馬家).

위광천이 한껏 분노해 보채자 사마공이 말했다.

“무한을 빠져나오는 경로에 혼선을 줘야 했습니다. 그것에 병력이 필요했습니다.”

“버러지 같은 것. 천살성을 회수하지 못하고 나오는데 무슨 의미가 있지?”

지난 15년은 천살성을 회수하기 위한 15년이었다.

그 모멸의 시간을 버틴 이유는 오로지 하나 천살성을 위해서였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리 계획을 비튼 이유는 천살성을 위해서였고, 사마공을 믿지 않은….

‘…잠깐.’

위광천은 사마공이 한 말을 되새겼다.

무한 밖으로 도주하는 경로의 혼선을 위해 미리 마인을 깔아 뒀어야 했다는 말.

그것이 또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알고 있었군. 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천살성을 데려 나올 것이란 걸.”

본디 계획은 천살성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그날 저녁 끌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초절정의 마인이 열 이상 필요하다.

한데 여유가 없단다.

그들 모두를 무한 밖에 미리 깔아뒀단다.

현공은 자신의 행동을 예상했음에도 그에 맞추지 않은 것이다.

위광천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마공은 말했다.

“도주가 더 중요합니다.”

“…돌아가야 한다. 천살성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

“그리해선 안 됩니다.”

사마공이 반박해왔다.

위광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안 된다?”

사마공의 목을 꽉 조였다.

“꺼헉…!”

“네놈이 감히 불가함을 이르는 것이냐? 이 나를 앞에 두고?”

“끄흑…!”

“나는 소천마다. 장차 이 하늘 위에 설 천외천이자 십만대산의 주인이 될 사내다. 한데 네놈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게 불가함을 말하느냐.”

짙어진 마기가 현공의 몸을 침투했다.

현공은 끅끅 숨을 내쉬며 발버둥쳤다.

할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위광천은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빠져나온 사마공이 바닥에 부복했다.

품에서 하나의 서찰을 꺼내며.

“무엇이냐.”

“신교에서 내려온 지령입니다.”

“무엇이냐 물었다.”

“일단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위광천은 미간을 구기며 서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확인한 순간, 덜컥 멎었다.

『복귀하라.』

다만 그런 지령만이 내려져 있었으나, 위광천은 그 짧은 글귀만으로 이것이 누구의 필체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굳고 정갈하나 그 속에 포악함이 깃든 이 필체의 주인을, 위광천은 모를 수 없었다.

천마신교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내.

그리고 그 빈자리가 신교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컸던 사내.

소천마 위광천의 스승이 되는 사내이자 신교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내.

사마공이 말했다.

“돌아오셨습니다. 교주님께서.”

서찰과, 사마공의 말은 이르고 있었다.

천마(天魔)가 돌아왔다.

25년 전 폐관에 들어간 그가 돌아왔다.

단천화가 신교를 배반하고 혈천교를 지었던 때도, 그 혈교가 무너지고 천살성이 빼앗겼던 때도 끝나지 않은 폐관이 이제야 끝을 맺었다.

위광천은 사마공을 바라봤다.

사마공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존이 명하셨습니다.”

위광천은 서찰을 구겼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울분을 담아, 그는 말했다.

“…존명.”

천마의 명은 곧 신교 전체의 뜻이나 다름없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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