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47화 (147/334)

EP.147 십사장 - 청룡비무회 (17)

* * *

“고생하셨습니다.”

당화서는 함성 소리를 뒤로한 채 돌아온 목리원을 반겼다.

목리원은 시원스레 웃으며 답했다.

“즐거운 승부였소!”

“예, 그래 보이더군요. 여전히 저는 목 소협의 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화서는 쿡쿡 웃었다.

만련이검의 3식이라 했던가.

목리원이 그것을 창시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관련된 이야기를 해왔지만 당화서로선 그 식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상대의 검을 눈으로 쫓으며 검식을 분해하는 것은 허황된 소리로만 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몸소 해내는 목리원이 있으니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다.

“그럼 돌아갈까요?”

“알겠소! 아, 그 전에 거리에 나가서 배라도 채우는 것 어떻소? 출출하기도 하고 소저와 시간을 보낸지도 꽤 된 것 같아서….”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당화서는 바로 답했다.

목리원이 충격받은 얼굴을 만들었다.

순간 떠오르는 것은 죄책감.

하지만 당화서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목 소협,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승냥이들이 있는 지라.’

안타깝게도 그랬다.

목리원을 딸과 엮으려는 간사한 승냥이들이 이 비무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단 말이다.

여유롭게 밖을 돌아다녔다간 군침을 흘리는 그치들에게 붙잡혀, 목리원이 ‘혼사’ 이야기를 들어버리게 될 터다.

승낙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생각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그저 그 일이 싫게 느껴졌다.

그저 감정적인 이유.

그렇기에 당화서는 이를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것이었다.

“으음, 하긴. 소저도 일이 많겠구려. 이리 응원을 와주느라 시간을 뺀 참일 텐데 미안하오.”

푹푹 속이 찔리는 기분이었지만 당화서는 아랑곳 않고 싱긋 웃으며 답했다.

“대신 전각에 돌아가 식사를 함께할 시간은 있습니다.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눠보지요.”

“알겠소!”

목리원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던 중, 당화서는 통로가 꺾이는 뒤에서 제갈산이 좁아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뭘 보냐.

그런 기색을 담아 노려보니 제갈산이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그러고 보니 제갈 형이 안 보이는 구려.”

“청룡대에서 지원을 부탁하기에 보냈습니다.”

“아하.”

당화서는 그대로 목리원을 이끌고 전각으로 돌아왔다.

전각엔 어느새 일을 마친 다른 단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대진표를 가져왔소.”

두 사람과는 따로 움직인 제갈산이 연기를 하며 들어왔다.

말한 대로 손에는 둘둘 말린 종이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에 32강으로 올라간 세 사내의 눈이 반짝였다.

“오!”

목리원이 가장 극적으로 반응했다.

당화서는 물었다.

“대진 순서는 어떻게 되더냐?”

“목 아우가 첫 번째요. 사실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 이리 대진표까지 가져온 것이라오.”

제갈산의 미소가 짙어졌다.

장난스러운 기색까지 감돌고 있었는데, 당화서는 그것이 의아하여 물었다.

“할 말이라?”

“이번 청룡비무회에 신예가 나타난 것. 알고 있소?”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청룡비무회보단 그 뒤에 있는 암투에 더 신경 써 온 터라, 비무회에 출진하는 무인들에 관해선 깊게 조사하지 않은 까닭이다.

제갈산이 탁! 하고 식탁 위로 대진표를 펼치며 말했다.

“일권(一拳) 강오설.”

라고 말하며 목리원의 대진 상대를 짚었다.

“동남쪽에 끝자락에 있는 복건에서 온 무인이오.”

“일권?”

“모든 상대를 한 번의 권으로 상대해 이긴 사내라 그리 말이 붙여졌소. 상대가 초절정임에도 말이오.”

그 말에 곳곳에서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절정의 상대도 모두 일권에 쓰러트린다.

그 일이 쉽지 않음은 같은 초절정인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가장 잘 알았다.

“제갈 형, 신예라 하면 이제까지 한 번도 무림에 나온 일이 없던 사내가 맞소?”

“그렇네, 이번 청룡 비무회에 초출로 나온 사내라네. 지금 근처 객잔을 돌아다녀 보면 나오는 말이 있는데 무엇인 줄 아는가?”

“무엇이오?”

“마치 목아우, 자네의 첫 등장을 보는 기분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더군.”

목리원이 눈을 깜빡였다.

당화서는 놀랐다.

“그 정도란 말이냐?”

“맹에서도 꽤 신경 쓰고 있는 눈치던데 누님은 모르셨소?”

강오설이란 사내가 비무회에 출전한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렴, 복건의 천권문(天拳門)이라는 소규모 문파 출신으로 그전까지 문파를 나온 적이 없는 사내라 마인 용의자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다.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듣는 만큼 당화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목 소협과 비견될 정도의 등장이라….”

“게다가 나이도 아직 불혹(不惑)에 달하지 못한 정도로 젊다 하오. 서른 여섯이었나? 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소.”

나이로 들어보면 그저 유망한 무인 정도겠지만 초절정의 무인을 일권으로 패배시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력이 존재한다고 봐도 좋을 터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조금 신나보였고, 또 설레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역시 강호엔 밝혀지지 않은 고수가 모래알처럼 많구려!”

걱정은 되지 않는 걸까.

잠시 생각하던 당화서는 이내 피식 웃으며 답을 떠올렸다.

‘일 수에 상대를 꺾으며 올라온 건 목 소협도 같지 않더냐.’

그놈의 만련이검 3식이 있어 앞선 두 경기 모두 목리원은 일 수에 상대를 꺾으며 올라왔다.

그 사내에 비해 뒤처질 정도는 아닌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목리원 다음으로 남궁진천과 일운의 상대에 관한 것.

그리고 일주일 뒤에나 있을 32강의 다른 승부들에 대한 견해나 그것에서부터 비롯된 말다툼까지.

전각의 밤은 그리 깊어만 가고 있었다.

*

천하상단의 무한 지부.

그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만 나오는 비처에 현공이 있었다.

뚜둑―

그의 눈앞에서 사내가 여인의 목을 비튼다.

마치 장난감을 부수는 아이처럼 그 어떤 감흥도 없이 그저 호기심에 이끌려 해내는 행동이었다.

여인은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희열에 차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툭, 하고 여인을 바닥에 던진 사내, 소교주가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역시.”

현공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소교주는 이어 말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일평생 이리 생을 꺾는 순간이면 그 무엇보다 충만한 감정이 들어찼다. 별처럼 빛나는 신비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경이가 있었단 말이다.”

툭, 툭.

소교주가 여인의 시신을 발로 찼다.

그러다 꽈직, 밟아 머리를 터뜨렸다.

“한데 그것이 없다. 이리 별이 내게서 떠난 지도 2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것이 적응되지 않아. 나날이 갈망이 짙어질 뿐이다. 그 충족감을 다시 한번 느끼길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

“…예.”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

다 타버린 찌꺼기.

그리 표현해야 할 검붉은 눈동자가 현공을 향했다.

현공은 답했다.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 주….”

“그 시답잖은 계획이 얼마나 성공했나?”

현공의 입이 다물렸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까닭이다.

작금의 중원 무림은 너무나도 세가 강하여 시행한 계획 중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렸다.

성과를 바라는 소교주에겐 탐탁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일 테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그리 말해야 하건만 상황이 현공에게 좋지 않았다.

“…인내해 주십시오.”

“그 웃기지도 않는 환약으로 마기를 모두 죽였다. 이 중원으로 숨어들고자 살기를 죽였다. 그래서 이 꼴이 무엇이냐?”

소교주가 옷섬을 풀어 헤쳤다.

심장이 뛰는 위, 가슴 부분엔 붉은 반점이 가득했다.

저것은 약의 흔적이다.

또한 마기를 지우기 위해 몸 안의 공력을 모두 태운 흔적이다.

초월에 달하던 마기는 간데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미 초월을 겪었던 육신과, 인공 내단에서부터 뽑아낸 불순물 투성이의 자연지기다.

지금 투여하고 있는 약을 중단하면 마기가 되돌아온다.

소교주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천살성을 되찾을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말해 뭐할까.

일권 강오설.

그가 바로 소교주였다.

우습지도 않은 소규모 문파의 후계자 노릇이나 하며, 초절정의 무인을 연기하며 이곳까지 온 이유는 하나, 천살성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그랬다.

바로 이 뒤에 있을 32강.

그곳에서 목리원에게 치명상을 남기고 그날 밤 바로 맹의 용봉단 전각으로 잠입할 터다.

그를 위해 준비된 초절정의 마인이 열이 넘는다.

희생이야 있겠지만 어찌 되든 목리원을 납치하기엔 넘치리만큼 충분한 전력.

문제는 이 소교주의 광증이다.

“이 내가 만들어진 인형 따위의 사정을 봐주어야 하는가?”

“…인형이 아닌 맹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때가 올 때까지는….”

“하나를 제외한 전원이 살아있는 사성육왕. 우습지도 않는 벌레들이 문제라 말하는 것이더냐.”

소교주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미약을 너무 쑤셔 넣은 건가.

눈빛에서 현기가 보이지 않았다.

“비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인형의 목줄을 틀어쥔다. 그리하고 그대로 마교까지 달린다. 왜 간단한 방법을 두고 그리 어려운 방법을 쓰는 겔까.”

현공은 입을 다물며 약을 내밀었다.

“…시간이십니다.”

진정효과가 있는 약물이었고, 동시에 마기를 태우는 약물이었다.

한나절마다 소교주가 주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물.

이것을 먹여야만 소교주의 광증이 덜해진다.

약에 절여 야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또 그놈의 지긋지긋한 무인 놀이를 하라?”

끝이 다가온다 생각하니 몸이 달아오른 걸까.

소교주가 웬일로 반항을 해온다.

현공은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코앞이다. 이제 코앞이란 말이다.’

이 지긋지긋한 도사 놀이가 끝나는 것이 코앞이다.

천살성만 되찾으면 신교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다.

한데 이게 뭔가.

저 빌어먹을 소교주의 광증이 또 발목을 붙잡는다.

“…부디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필부의 뜻이지.”

소교주가 조소했다.

이어 침상 옆에 있던 향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약향이 공간에 맴돌았다.

스읍, 크게 숨을 들이쉬어 그 향을 몸 가득 채운 소교주가 흐리멍텅해진 눈으로 손을 휘저었다.

현공은 숨을 참은 채로 그의 앞으로 다가가 약을 건넸다.

소교주가 약을 으깨 먹었다.

“꺼져라. 이제 일주일. 딱 그날까지만 참아주마.”

“천마군림, 만마앙복. 소교주님의 뜻을 따릅니다.”

현공을 고개를 숙인 채로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땅 위로 올라왔다.

척! 교인이 예를 취하는 것에 대충 화답하곤 숙소로 돌아가며 고민을 이었다.

‘문제가 심각하군.’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중원 잠입을 시도한 지난 15년.

소교주는 마기를 태우는 일을 더 못 버틸 지경에 와 있었다.

그것 외에도 약의 통증을 죽이기 위해 쓰는 미약이 너무 강해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소교주에게서 더 이상 이성이라 할 만한 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공은 소교주가 달아올라 중얼거리던 말을 되새겼다.

-비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인형의 목줄을 틀어쥔다. 그리하고 그대로 마교까지 달린다. 왜 간단한 방법을 두고 그리 어려운 방법을 쓰는 겔까.

계획도 뭣도 아닌 그저 조급함에 미쳐 날뛰는 망아지의 말이었다.

한데도 그 말을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소교주는 정말 계획을 뒤엎고 그런 일을 해버릴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다른 계획이 필요하다.’

현공은 소교주가 목리원과 비무대에 서는 순간 더 참지 못하리란 확신을 느꼈다.

살의를 보이던, 그 전에 약물을 끊던 어떤 식으로든 마기를 되찾으려 할 터다.

그러니.

‘…대책을 준비해야겠군.’

조금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소교주 대신 죽어 나자빠져 줄, 천살성을 되찾기 위해 희생되어줄 병력이.

‘…빌어먹을 중원.’

여하튼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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