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6 십사장 - 청룡비무회 (16)
* * *
소란스러운 비무장의 대기실이었다.
“저 인간도 참 별나구먼. 안 그런가 목아우? 맹의 대주나 되어서 임무보다 비무가 먼저라니 참 웃기지 않나.”
제갈산이 킥킥대며 오늘의 대진 상대인 강찬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목리원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제갈형은 뭘 모르는구려! 그 정도로 무와 경쟁에 진심이니 대주가 되실 수 있었던 게 아니겠소!”
주먹까지 꽉 쥐며 내뱉는 말에 제갈산은 멍한 얼굴을 만들다, 이내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구먼! 내가 생각이 짧았네. 그래서 말인데….”
제갈산이 은밀하게, 조금 도발하는 듯한 기색으로 목리원에게 물었다.
“대주님께 이길 자신은 있나?”
나름 의욕을 불어 넣어주려는 행위겠지.
목리원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이번 비무회엔 꽤 자신이 있는 편이라오?”
“그 3식 말인가?”
“그렇소!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 3식만큼은 꽤 훌륭한 무공이 나왔다고 생각하오.”
아닌 말이 아니라, 이미 개괄적인 완성을 끝낸 무공임에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 무공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속에 들어차는 것이다.
“목 소협. 시간이 됐습니다.”
대기실로 들어온 당화서가 말했다.
오늘은 다른 단원들은 모두 임무가 있는 탓에 제갈산과 당화서가 응원 나온 사람의 끝.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만큼 목리원은 이해했다.
목리원은 이런 일로 섭섭해할 정도로 유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 지금 가겠소!”
목리원은 검을 챙겨 나가며 마지막으로 제갈산에게 인사했다.
“제갈 형! 그럼 다녀오겠소!”
“알겠네! 힘내서 꼭 승리해 돌아오시게!”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에 목리원은 웃었다.
그리고 나온 복도.
비무대를 향해 걸어가며 목리원은 말했다.
“소저! 오늘 이리 응원을 나와줘서 고맙소! 일이 참 바쁠 텐데도 시간을 내 와준 것 아니오?”
“다른 사람도 아닌 목 소협 비무가 아닙니까. 제가 안 오면 누가 오겠습니까?”
당화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것에 목리원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헤실헤실 웃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굳이 가늠을 해보자면 사천에서 천살성을 들켰던 그 일 이후부터일 터다.
왜인지 당화서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여러 생각이 들어버리고 괜히 심장이 간질거리는 때가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당화서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두드리거나 손을 잡아 올 때면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처음에야 그것이 너무 당황스러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숨기는 게 익숙해져 이리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도착했군요.”
“벌써… 아니, 그렇구려!”
목리원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바꿨다.
당화서가 작게 웃는 것에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럼 다녀오겠소!”
“예, 저는 관객석에서 응원하겠습니다.”
당화서가 손을 흔들었다.
목리원은 미소를 짙게 만들며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올라선 비무대 위, 맞은편에 적운대주 강찬이 팔짱을 낀 채 미소짓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비무를 하게 됐군!”
강찬이 신나서 말했다.
단단한 근육과 호쾌한 인상이 인상적인 사내.
기도 또한 그런 외형에 맞게 시원시원하게 뻗어오는 느낌이었다.
목리원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기회가 없어 이제야 비무를 하게 됐습니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하의 묵룡에게 한 수라! 이거 꽤나 부담이 되는군!”
강찬이 도를 뽑아 들었다.
그의 도는 양손으로 쥐어야 할 정도로 크고 난폭한 형태였는데, 그럼에도 목리원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둔한 무공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적운대주님의 별호는 수라도(修羅刀)!’
도를 휘두르며 주변을 휩쓰는 모습이 꼭 수라와 같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호다.
청룡대주인 기태운이야 사파 같은 별호라며 혀를 차지만, 목리원이 생각하기에 강찬의 별호는 꽤 멋들어진 구석이 있었다.
“준비하시오!”
심판인 청룡대의 무인이 손을 들었다.
목리원은 정신을 다잡고 검을 뽑아 들었다.
풀어내는 것은 묵색으로 빛나는 기파.
시선이 향하는 곳은 강찬의 도가 있는 자리.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처음부터 그를 몰아가고자 했다.
긴장이 차오른다.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닌 비무장 전체가 폭풍전야의 고요속에 빠졌다.
그 아슬아슬한 침묵을 깨는 것은 역시 심판의 손짓과 외침.
“개(開)!”
그리 말하며 심판이 손을 이래로 내리긋자, 목리원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강찬이 씨익 웃었다.
그의 몸에서 붉은 기파가 회오리치듯 솟아올랐다.
목리원은 곧장 기파의 흐름을 읽었다.
‘타협하지 않기에 유하지 못하다. 고집을 부린다기엔 자유분방하다. 그러니 강도 유도 아닌….’
패도(覇刀).
강찬의 도는 내키는 대로 몰아쳐 상대를 찍어누르는 패도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이윽고 강찬의 도가 허공을 긋는다.
그 움직임에 따라 마치 칼바람이 공간을 찢어버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목리원은 웃음을 진하게 만들며 검명을 울렸다.
지잉, 소리와 함께 목리원이 검을 위로 들고, 아래로 내리긋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네!”
강찬이 외쳤다.
“화검과의 승부를 몇십번이고 복기했지! 그리고 알게 된 것이 있다네!”
강찬이 도를 기울여 도면을 드러냈다.
면적이 넓은 만큼 방어를 위한 행동으로도 보이겠지만, 목리원은 알았다.
강찬은 방어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자네의 검은 상대의 검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가며 힘을 상쇄시킨다는 것을!”
정답이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목리원은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목리원이 내내 고민한 것이 있었다.
검술로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장 중요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상대의 검을 아는 것이다.’
그저 상대할 적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떤 방향성의 검을 휘둘러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상대의 검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검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 중원 땅이 얼마나 넓던가.
또한 그 중원을 살아가는 무인들은 얼마나 많던가.
사방에 모래알처럼 깔린 것이 고수다.
그들 모두가 서로 다른 검술을 사용하며 다른 성향의 기파를 뿜어낸다.
그것들을 모두 알 방법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겠는가?
그것들을 모두 공부하는 것이 가능은 하겠는가?
할 수 없다.
그것은 강호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기재라 평해지는 목리원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아류가 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가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보는 것이다.’
일찍이 용봉지회에서 목리원은 순간을 무한히 쪼개 내리그어지는 중에도 경로와 성질이 바뀌는 검을 완성했다.
이것은 그 응용이라 말하는 게 옳았다.
무한히 쪼개는 찰나 속에서, 상대의 검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검이 향할 경로, 변화할 양상, 그리고 찔러 들어오고자 하는 자리.
그걸 예측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결과적으로 검술을 분해한다.
배움이 아닌 관측을 통해 상대의 검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는 검술로 우위를 점한다.
이르길 천리만통(千里萬統).
천리 밖을 볼 눈으로 검을 쫓아 만 가지의 검로를 꿰뚫어 보는 검술.
그것이 만련이검(萬聯理劒) 3식의 정체였다.
‘보인다.’
목리원은 찰나를 쪼개 수없이 변화하는 강찬의 도를 지켜봤다.
도면을 내비치며 몽둥이를 휘두르듯 쏘아지고 있으나, 저것은 허수였다.
강찬은 스스로의 장점을 아주 잘 아는 무인이었다.
바로 단단하기 그지없는 근육과 그것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
저리 저항을 받으며 느린 검을 휘두르다, 어느 순간 도를 기울여 저항 면적을 줄일 것이다.
그럼 강찬의 힘 탓에 도가 그제까지의 속도를 잊고 섬전처럼 파고들 것이다.
그 속도의 간극이 인지에 괴리를 줘 쉬이 반응하지 못하는 도로 완성될 터.
그럼 이제 고민할 것은 하나.
저 검을 알았으니 이젠 파훼법을 알아내야 할 터다.
‘검이 변화하기 전에 막는다.’
아직 저항을 받고 있을 때 도를 쳐내 단숨에 목을 겨냥한다.
그리한다면 승부는 끝.
목리원이 눈을 빛냈다.
즉시 검로를 뒤바꿔 강찬의 검을 튕겨냈다.
그때였다.
‘…웃어?’
강찬이 씨익 웃었다.
이윽고 목리원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강찬이 도를 놓았다.
자세가 변하며 강찬의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분명 박투술을 준비하는 형태였다.
‘아차!’
사고였다.
상대가 도‘만’ 휘두를 것이라는 얕은 생각을 해버렸다.
목리원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잘 잡은 중심을 토대로 힘을 받은 주먹이 뻗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궤도에 오른 검으로 막자니 주먹이 더 빠르다.
그렇다고 검을 놓자니 박투술로는 강찬에게서 우위를 잡아올 수 없었다.
사고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윽고 하나의 방도를 생각해낸다.
목리원은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허리로 뻗었다.
검집을 꽉 움켜쥐고 앞으로 휘두른다.
쩌어엉!
불완전한 자세.
하지만 강찬의 주먹은 확실히 막았다.
그리고 목리원에겐 아직 검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근육을 조여 검로를 역행한다.
위로 높이 뻗어있던 검이 물리력을 무시하며 아래로 곧장 떨어진다.
끝내 강찬의 목덜미 옆에서 멈춘다.
척!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멎었다.
*
“아아….”
정적에 휩싸인 비무장 어딘가에서 노인이 탄성을 흘렸다.
그는 이미 128강에서 떨어진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늙은 나이에 겨우 그 경지에 올랐으나, 그럼에도 초절정이기에 그의 눈에 보인 것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찰나에 해당하는 비무, 그 속에 얼마나 치열한 수 싸움이 있었는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엄청나구나.”
강호 무림맹의 대주.
그리고 고금제일에 도전하는 기재.
젊음과 패기, 그리고 재능이 어지러이 빛난다.
그것이 노인의 눈가에 눈물을 자아냈다.
“눈이 트인다.”
인간의 사고가 인식하는 세상은 그 눈으로 봐온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갈린다.
그리고 노인은 오늘 자신이 알던 세상 밖의 것을 봤다.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하지만 당장 저 비무를 정의하기엔 재능이 사뭇 안타깝다.
저것을 정리하려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비무의 복기를 반복하며 상념에 빠져있어야 할까.
하지만 그것이 썩 두렵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보였구나.”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 숨어있던 한 발 앞으로 나갈 길이 보였다.
심상을 더욱 굳건히 할 길이 보였다.
그 사실에 노인은 희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런 노인과 비슷한 이가 비무장 곳곳에 있었다.
누군가는 탄성을, 또 누군가는 경악을, 또 누군가는 불신을.
그리도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며 인 정적이 이윽고 깨진다.
“묵룡! 승!”
이번 역시 심판이다.
그가 쐐기를 박자 그제야 환호성이 온 비무장에 울린다.
“와아아아아아아!!!”
광기의 도가니였다.
목리원의 수를 이해한 이들은 그 신비에 경악했고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그 불가해(不可解)함에 희열을 느꼈다.
차마 이해하지 못할 아득함이란 것은 그리도 감정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청룡비무회 64강 마지막 경기.
적운대주 강찬과 묵룡 목리원의 비무는 그렇게 뜨거운 열기 아래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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