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1 십사장 - 청룡비무회 (11)
* * *
당화서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집무실의 분위기는 그런 기색에 따라 날카로워져 있었고, 당화서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모양이었다.
이는 여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평소의 당화서라면 제 기분의 이유로 남을 겁박하는 일은 없었다.
원체 사람 자체가 이성적인 편이라 화를 잔뜩 내는 중에도 타인에게만은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왔단 말이다.
한데 지금은 어떻던가.
오늘 하루, 용봉단의 전각에서 사고를 친 이들은 모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야 했다.
사고를 치지 않아도 당화서의 심기를 건드린 이는 모두 혼쭐이 나야 했다.
대표적인 예로 남궁진천을 들 수 있으리라.
눈치 없는 남궁진천은 당화서의 어두운 안색을 생각지도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내 검 이름은 천존이다’라고 말했다가 배에 주먹이 꽂혔다.
제갈산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 아직도 몰려오고 있소. 아니, 더 늘어났다고 해야 하나.”
“그놈의 혼담 소리가 맹 전체에 다 울린다고 하더구나.”
“나, 나도 노력해봤소만….”
제갈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당화서는 ‘쯧’ 혀를 찼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아주 승냥이 같은 것들이 온 강호에 가득해.”
목리원과의 혼담을 추진하려는 무가의 가주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렇지 않나.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자신과 목리원의 관계는 대외적으로 연인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냥 착각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지난 용봉지회때만 해도 그랬다.
백봉과의 승부가 있던 날, 목리원을 쟁취하기 위한 승부라며 온 안휘에서 소문이 돌았었고 승리한 건 자신이었다.
이제 목리원은 자신의 것이란 말이다.
뒤늦게 나와서 염치도 없지.
당화서는 저 무가의 가주들을 직접 혼쭐내는 건 한없이 도의에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대로 독에 절여 죽여도 그 누구 하나 반박해선 안 되리라.
꽈악, 주먹이 쥐어졌고 이가 빠득 갈렸다.
제갈산이 힉힉대며 놀랐지만 알 바는 아니었다.
“제갈산, 내가 심기가 아주 불편하구나.”
“이, 이해하오!”
제갈산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봉. 내가 잘못된 것이냐?”
혜운이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건 정당방위가 아니더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 소협이 연무장 안에만 있느라 많이 답답하실 테다. 외출도 허가해주어야 하는데 방해하는 이가 너무 많구나. 그러니 내가 ‘직접’ 정리하고 와야겠다.”
라고 말하는 당화서의 모습에 두 남녀는 목끝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
그 목리원을 가둔 게 당신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
용봉단 전각의 제 1 연무장.
목리원은 한참 진행하던 수련을 끝내고 검을 집어넣었다.
몸은 땀에 절어있었다.
감각 또한 아주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이는 검을 휘두르며 화검과의 비무를 복기한 이유였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수.
하지만 그 속에 있었던 치열한 기싸움을 생각하면 절대 짧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목리원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 중 다가온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음? 소저?”
당화서가 싱긋 웃는 얼굴로 그곳에 있었다.
목리원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어쩐 일이시오? 오늘은 일이 바쁘다고 들었소.”
“바빠도 목 소협보다 바쁘겠습니까. 이리 비무회를 위해 힘쓰시는 것을요.”
“그리 말하니 참 부끄럽구려.”
목리원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뺨을 붉혔다.
그리하며 당화서를 바라봤는데, 왜인지 오늘따라 유독 미소가 진해 보였다.
무언가 화풀이라도 하고 온 사람의 얼굴 같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아무튼 기분이 좋아 보이니 괜히 덩달아 행복해져 목리원은 물었다.
“식사는 하셨소?”
“마침 그 이유로 온 것입니다.”
“아? 함께 식사를 하려는 것이구려! 좋소! 어서 식당으로….”
“아니요.”
당화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오랜만에 함께 외출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비무회의 본선이라 노점들이 참 많이 들어섰더군요.”
노점이라.
사실 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도 정말 좋아하는 목리원은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도는 것을 느꼈다.
“그거 참 좋구려!”
“바로 가지요.”
목리원은 그 말에 당화서에게로 달려갔다.
*
직후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목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상하구려.”
“무엇이 말입니까?”
“전각 입구에서 소란이 느껴졌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오. 게다가 뭔가 퀘퀘한 냄새도 나는 것 같소.”
목리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킁킁댔다.
당화서는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속으로 답했다.
‘그렇겠지요. 설사독을 뿌려놨으니까.’
웬 해충이 그리도 들끓던지.
이 자리에 설사독을 푸는 것도 참 일이었다.
개중 공력이 꽤 되는 이들이 있어서 독을 조합하다가 빈혈까지 왔을 정도라면 설명이 되겠는가.
‘이젠 지난 과거지.’
당화서는 바로 한 시진 전의 일을 먼 옛날 일처럼 치부하곤 목리원의 팔을 붙잡았다.
목리원이 흠칫했다.
빠짝 굳는 것이 퍽이나 귀여웠다.
“그럼 갈까요?”
“으, 음!”
당화서는 그대로 목리원과 거리로 나섰다.
“자, 쌉니다. 싸요!”
“거기 대협! 여기 만두 맛 좀 보고 가시오!”
곳곳에서 호객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거리 가득 온갖 음식의 냄새가 어지러울 정도로 풍겨왔으며 그 앞으로는 무인들이 삼삼오오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와중 꽂히는 시선들이 있었는데, 절반은 목리원을, 절반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당화서는 그 시선에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더 시선이 몰리길 바랐다.
쐐기를 박는 것이다.
목리원의 곁엔 자신이 있으니 감히 넘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역시 말길을 알아듣지 못하는 천치는 어디든 있었다.
저 멀리서 정확히 목리원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이는 중년의 사내가 보였다.
가슴에는 대문짝만하게 무관의 이름을 적어둔 사내였는데, 그가 달려오며 외치려 했다.
“잠시! 거기 묵….”
그 순간 숨어있던 제갈산이 튀어나와 사내를 점혈했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사라졌다.
당화서는 흡족함을 담아 미소 지었다.
‘방역은 철저히 해야지.’
좋은 시간을 방해받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소저! 저기 닭고기부터 먹으러 가봅시다!”
“네, 좋군요. 닭.”
당화서는 환한 목리원에게 이끌려 노점을 향했다.
그녀의 음험함은 오늘도 그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어쩌면 무공의 경지보다도 더 빠른 성장일지도 몰랐다.
*
남궁진천은 오늘따라 유독 비어있는 용봉단의 전각에 의문을 표했다.
“권룡.”
“예?”
“사람이 없군.”
팔짱을 끼며 건넨 말에 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운 스님과 제갈 시주님은 근래 맡은 일이 있으신지 계속 밖에 계십니다. 목 시주님은 당 시주님과 노점을 구경하러 갔고….”
순간 남궁진천은 흠칫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당 시주, 당화서를 생각하자 오전의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다름 아닌 검의 이름을 말하러 갔다가 배에 주먹이 꽂힌 일이었다.
배가 꾸르륵 거리는 기분이다.
사실 남궁진천이 자신이 왜 맞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억울함만 가득 들어차 있었다.
초절정이 되어서 절정에게 맞고 다니느냐 말하는 이가 있다면 남궁진천은 꿀밤을 먹여줄 것이었다.
그 정도로 주먹질을 하는 당화서에게선 묘한 압박감이 있었다.
마치 이 주먹을 피하면 경을 칠 것같다는 본능의 외침이었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나도 나가봐야겠군.”
“음? 외출이십니까?”
“그래.”
남궁진천 또한 노점을 구경 갈 계획이었다.
본선이 치러지는 기간 동안, 거리에 영물의 내단을 경매하는 노점이 선다는 소문을 들은 까닭이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너는 안 가나?”
“수련이 남은지라.”
아주 부지런하다.
남궁진천은 일운의 부지런함만큼은 인정해야 할 특기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잠시 마주친 시선.
응원의 말을 하려던 남궁진천은 왜인지 그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떠올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천존이다.”
“예?”
“내 검의 이름은 천존이다.”
그리고 돌아섰다.
일운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
거리는 온통 사람이 붐벼 머리가 다 어지러워질 정도다.
남궁진천은 그 한가운데 팔짱을 끼고 서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있었다.
‘…괴룡?’
제갈산이 골목 뒤에 숨어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선 혜운이 제갈산과 똑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또 무슨 바보 같은 짓거리를 하려는 것일까.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확인하니 목리원과 당화서가 있었다.
순간 남궁진천은 저들이 자신에겐 비밀로 다같이 외출을 한 걸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냈다.
남궁진천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소외당할 이유는 없는 까닭이다.
뭔가 일이 있는 것일 터.
굳이 더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하고 남궁진천은 갈 길을 가기로 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내단 경매는 거리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은밀히 이뤄진다 했다.
그럼 이 길의 끝까지 걸음을 옮기면 될 터.
남궁진천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누군가가 자신을 뒤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미행?’
들키지 않게 몰래 눈을 굴린다.
죽림에 흑의를 입고 있는데, 덩치는 조금 작았고 느껴지는 내력은 확실히 무인의 것이었다.
이목구비를 확인하려 해도 죽림 탓에 보이지 않으니 정체는 모른다.
잠시 고민했다.
‘마인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당화서의 집무실을 지나며 들은 바로는 이번 비무회에 마인이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했으니.
이대로 붙잡을까, 아니면 무시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잡는다.’
남궁진천은 실적을 외면할 성정이 못 됐다.
바로 발길을 돌려 골목길로 향한다.
죽림의 무인은 계속 따라왔다.
의도적으로 같은 골목을 빙빙 도는데도 말이다.
확실한 미행.
깨달은 순간 남궁진천은 진각을 밟았다.
쿵!
짧은 소리와 함께 섬전처럼 죽림인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검을 뽑고 바로 휘둘러 죽림을 두동강 냈다.
그리고 직후, 남궁진천은 바짝 굳었다.
“…여전하시네요?”
그곳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었다.
여린 목소리와 작은 체구, 어딘가 보호욕을 일으키는 가녀린 미소.
“칼부터 뽑는 버릇은 언제 고치실 생각이세요?”
하오문주 서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남궁진천은 심장이 쿵! 하고 멎는 기분을 느꼈다.
“저기요?”
서예가 남궁진천의 얼굴 앞에 손을 휙휙 휘둘렀다.
남궁진천은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만남, 칼부터 뽑아든 상황.
당황스럽고 멋쩍어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여 남궁진천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해버렸다.
“…천존이다.”
요즘 남궁진천은 검 이름을 자랑하는 일에 꽂혀있었다.
서예의 고개가 갸웃했다.
“네?”
“이 검의 이름은 천존이다. 그걸 말해주려고 검을 뽑은 것이다.”
다행이 변명거리가 잘 나온 듯했다.
남궁진천은 속으로 뿌듯해 했다.
서예의 반응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다섯 살이세요? 검에 이름 붙이고 놀게?”
남궁진천은 크게 충격받았다.
다음화 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