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0 십사장 - 청룡비무회 (10)
* * *
단 일초(一招)에 끝난 승부였다.
그것이 혼란의 이유였다.
“말이 안 되지 않소! 무언가 사술을 썼을 게 분명하단 말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한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청룡비무회의 본선 개막전.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난 승부에 허망함과 분노를 싹틔운 사람들의 말이었고,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은 말이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한 까닭이다.
목리원이 초절정에 달했다는 소문이 난 것이 겨우 몇 달 전이다.
그리고 화산의 화검은 이미 초절정에 오른지 3년이 훌쩍 넘은 사내였다.
체급으로는 당연한 화검의 우세였고, 승부의 양상 또한 누가 이기던 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있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이 결과는 너무 기이한 게 아닌가.
소문은 살을 붙여나갔다.
무한 전체가 온통 오늘의 개막전으로 뜨겁다 보니 살이 붙는 속도는 쾌검수의 검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정확히 그날 밤이 저물어가는 시점.
초절정의 무인들이 반박에 나섰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면 다 사술이요? 그러니까 경지가 그 모양이지!”
이번 비무회에 참가하는 한 초절정의 무인이 객잔 한가운데서 외친 말이었다.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그럼 뭐란 말이오! 대체 사술이 아니라면 어떻게 화검을 일 수에 이기냐는 말이오!”
“그럴 수밖에 없는 수였으니까!”
쾅!
초절정의 무인이 식탁을 내리쳤다.
그 성난 기세에 객잔이 조용해졌다.
다만 겁먹은 것은 아니었다.
자리한 이들의 속에 두려움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은 또 다른 의문이었다.
‘표정이….’
성내는 초절정의 무인은, 누가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분함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꼭 패배감과 닮은 얼굴이었다.
“그런 수였단 말이오! 그건… 그건…!”
무인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최초 그에게 반박했던 사내는 마른침을 꼴깍 넘겼다.
‘대체 무엇을 본 것이기에….’
그 일수에서 무엇을 봤기에 저리도 짙은 패배감을 띄워 올리는 것인가.
의문은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외면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내의 패배감도, 절망도, 느꼈을 어떠한 격차도.
그것들은 한없이 심마(心魔)로 가는 길처럼 느껴졌으니.
‘…경지가 낮은 것을 고마워 할 날이 올 줄이야.’
사내는 헛웃음을 흘렸다.
객잔의 분위기가 소강됐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무한 곳곳의 객잔에서 펼쳐졌다.
묵룡이 사술을 쓴다.
단 하루 만에 퍼졌던 소문은 덩치를 불린 속도만큼이나 빨리 수그러들었고, 그리 쪼그라든 소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다름 아닌 상대였던 화검이었다.
“고금제일. 어쩌면 나는 그 역사의 길목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오.”
그 말을 바로 옆에서 들은 이가 평하길, 말을 내뱉는 화검은 꼭 꿈속을 걷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구먼.”
다음날 용봉단의 식당.
제갈산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 맞은편엔 혜운이 비슷한 꼴로 식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죽겠네요.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다 목 아우가 잘난 탓이지.”
제갈산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진이 빠져 늘어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용봉지회에서의 일의 연장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 목 시주님만큼 혼담요청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놈의 혼담요청이었다.
맹에 소속되었다곤 하나 용봉단은 몇 년 안에 해산할 조직.
당연 그때가 되면 목리원은 자유의 몸이 될 테고, 그런 그를 노린 강호 각지의 무가들이 모두 혼담요청을 해 온 것이다.
용봉지회 때보다 더한 수준, 비교가 불가능한 정도의 혼란이다.
당연했다.
이제 강호 무림이 목리원을 노리는 이유가 늘어났으니.
“그런데 혜운 스님.”
“네?”
“혜운 스님은 목 아우가 휘두른 검이 뭔지를 알겠수?”
“제가 어떻게 알아요. 초절정인 인간들도 이해가 안 된다면서 머리를 싸매는데.”
“무슨 만련이검의 3식이라는데, 나는 도저히 모르겠구려.”
만련이검(萬聯理劒).
목리원이 직접 대종사가 되어 만들어 나가는 검의 이름이었고, 지금 강호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는 무공의 이름이었다.
겨우 18세의 청년이 만든 검임에도 그 오묘함이 극에 치달아 본인이 아니고선 휘두를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평해지는 검.
그 검과, 그 검을 휘두르는 목리원의 씨를 원하는 것이다.
고작 하룻밤 만에 목리원을 만나고 싶다며 찾아온 무가의 주인들이 일백에 달했다면 믿겠는가.
제갈산이 보기에 그들의 눈에 깃든 것은 광기였고, 입을 빌어 나온 것은 애원이었다.
“내 딸이 소주에서 제일가는 미녀요! 무공도 잘하고 나이도 어리오! 제발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주시오!”
“내 딸도! 내 딸은 강서 아이라오! 묵룡 대협과 동향이니 이야기가 잘 통할 것이오!”
번들거리는 탐욕이 그리도 소름 끼칠 수가 있을까.
다른 단원들과는 다르게 당장 맡아야 할 일이 없었던 제갈산과 혜운은 밤새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느라 이미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당 시주님은 아무 말 없으세요?”
“막으라고 하더구려. 그 말만 남기고 집무실에 틀어박혔수다.”
당화서의 명령이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명령이다.
보통 명령이라는 형태를 잘 사용하지 않는 당화서가 의심할 틈도 없는 명령의 말을 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당화서에게 혼나는 일이 가장 잦은 두명이기에 아는 것이 있었다.
“아시겠소? 못하면 죽는 것이오.”
“진짜아… 왜 직접 나서지 않는대요?”
“글쎄, 직접 나섰다간 그 인간들을 다 처 죽일까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소?”
“…와, 반박을 못 하겠네요.”
혜운이 몸서리쳤다.
제갈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이성적이고 관대한 당화서지만, 근래 들어 무슨 마가 끼였는지 그녀는 목리원과 관련된 일이 생길 때면 참으로 옹졸하고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있었다.
정말 혼담 얘기를 꺼내는 손님들이 독물에 절어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목 시주님은….”
“이 일을 모르오. 누님께서 연무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못 박았다더군. 뭐라더라, 기세를 몰아 우승까지 절치부심하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오.”
“음습해라.”
혜운이 한마디로 평했다.
제갈산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
같은 시각 비무대 위.
[승! 권룡 일운!]
일운은 128강의 상대를 무릎 꿇렸다.
숨을 내뱉고 합장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소.”
상대는 일운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무인이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일운은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온 신경이 한자리에 몰려있는 까닭이다.
‘다음이다.’
이 다음이 선룡 현공과의 승부.
일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꽤 오래, 이 순간을 위해 수련을 해왔으나 여전히 승리에 대한 확신을 차오르지 않았다.
과연 잘 할수 있을까.
모든 힘을 발휘한 선룡은 얼마나 강할까.
온갖 고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려가시오.”
와중 심판이 말했다.
일운은 그제야 너무 오랜 시간 멍하니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머쓱하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오. 여운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게 두어 죄송할 따름이오.”
심판은 백검대에서도 일운과 면식이 있는 사내였다.
그의 시원스런 미소에 일운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수고했다.”
비무장 밑에선 남궁진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오늘 비무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함께 나온 것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골목하는 표정이었다.
일운은 그 이유를 짐작해봤다.
‘남궁 시주님은 보셨겠지.’
목리원이 개막전에서 보였던 수.
아직 이해하는 자가 그리 많이 나오진 않았으나, 일운이 보기에 남궁진천은 세상 누구보다 그 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다.
남궁진천만큼 목리원의 무공에 깊이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물었으니.
“고민이 많으신 듯합니다.”
“…헛소리를.”
남궁진천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저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랬다.”
“목 시주님의 수 말입니까?”
“아니다.”
“음? 의외군요. 남궁 시주님이라면 분명 그 검에서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여겼습니다.”
온갖 곳에서 반응이 튀어나오는 검이다.
분명 남궁진천도 그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을 텐데 너무 무던한 반응이라 의문이 차올라 건넨 말.
돌아오는 답은 일운으로서도 놀랄 종류였다.
“언젠 안 그랬나? 그놈은 그 정도는 하는 게 당연하다. 이 내가 꺾어야 할 상대이니.”
잠시 눈을 크게 뜨던 일운은 이내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참….’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어딘가 오만해 보이는데, 그것이 단순한 오만이 아닌 투기로도 보였다.
몇 년 전의 그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하지만 일운은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제 곧이지요. 응원하겠습니다.”
“응원받을 정도로 강적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다.”
남궁진천은 그리 말하며 떠나갔다.
떠나는 그는 또 무언가를 골몰하는 낯이었다.
*
도창건.
그는 먼 하북땅에서 오늘을 위해 무한까지 찾아온 무인이었다.
무공은 조법이오, 사문은 시골의 영세한 무관이나 그가 쌓은 수양이 적지 않음은 초절정에 달한 경지가 말해주는 것이리라.
이제와 불혹의 나이.
도창건은 이 넓은 강호에서 자신이 얼마나 통할지를 시험하기 위해 비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첫 상대가 검룡이라!’
도창건은 비무대 맞은편에 선 상대를 보며 시원스레 웃었다.
“하북의 금조(金爪) 도창건이오! 잘 부탁드리오!”
“남궁진천이다.”
듣던 대로 과묵한 성격.
근래에는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도창건은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바보가 저리 고민을 할 리가 있나.’
도창건이 아는 바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데 남궁진천은 비무를 앞둔 이 순간도 사색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분명 무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일 터다.
제왕성의 주인.
묵룡이 나타나기 전까지 차기 천하제일을 논하던 다음 세대의 약속된 강자.
이제 초절정에 올라 같은 반열에 섰으니 아마 꽤 치열한 승부가 되리라.
도창건은 무인으로서 그 사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준비!]
심판이 손을 들었다.
도창건은 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내 경지는 당신과 비슷하나, 두 배는 더 산 강호의 선배로서 쉬이 물러나진 않으려 하오. 긴장하시오.”
남궁진천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에야 남궁진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게 좋겠군.”
스릉―
남궁진천이 검을 뽑았다.
도창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고민이 끝났다.”
고민이라, 역시 멍청하다는 말은 헛소문이었던 건가.
도창건은 긴장을 더 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한 어조인데, 과연 이 앞날 밝은 후배가 무슨 검을 휘두를지 벌써부터 무서워질 지경이다.
기분 좋은 소름이 전신을 감싸는 그 순간, 남궁진천이 입술을 달싹였다.
“천존(天尊).”
“…음?”
“이 검의 이름이다.”
덜컥, 도창건의 기파가 흔들렸다.
눈동자 또한 잘게 떨렸다.
느닷없이 검의 이름을 말하다니.
‘설마 고민했다는 게….’
검에 이름이나 짓는 고민이었던 건가.
[개(開)!]
심판이 외쳤다.
남궁진천은 바로 검을 휘둘렀고, 차오른 당황에 자세가 흐트러졌던 도창건은 쉬이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에도 그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승! 검룡 남궁진천!]
패배가 확정되었음에도 도창건은 멍했다.
그가 마침내 패배를 인정한 것은 그날 밤이었다.
도창건은 생각했다.
‘심계가 깊구나! 그 사이에 나를 방심시키려 언변을 이용한 것이다!’
과연 초절정에 다다른 것으로 오만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일 터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겠다는 굳은 결의일 터다!
승리를 향한 갈망!
이 얼마나 뜨거운 혈기인가!
그는 끝까지 남궁진천을 좋게 평가했다.
큰 비무대회에 나와서 바보에게 졌다는 것보단, 혈기 넘치는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줬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한 이유였다.
다음날 도창건은 시원스레 웃으며 무한을 떠났다.
“창건아! 더 노력하자꾸나!”
진실은 오늘도 묻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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