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7 십사장 - 청룡비무회 (7)
* * *
일운의 예선이 모두 끝났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본선 진출.
고상을 만난 것이 악운의 끝이었을까, 일운은 그 뒤로 내내 일류급의 무인만을 만나 쉬이 비무를 끝낼 수 있었다.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일운이 본선 진출 자체에는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당화서는 그 이유를 물었었고 돌아온 답은 그랬다.
“…사실 선룡과 맞붙고 싶었습니다. 용봉지회에서의 설욕이라 말하면 좋겠군요. 예, 불자답지 않은 마음이지요.”
과연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쑥스러운 듯 말했지만 그렇지 않나.
일운은 서글서글한 성격과는 별개로 꽤나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승부’라는 것이 드리워진다면 이기려는 마음부터 품는 사내란 말이다.
‘담아두고 계셨구나.’
아무래도 용봉지회의 일이 꽤나 자존심 상했던 모양.
응원하는 게 옳으나, 당화서는 그러면서도 주의를 요했다.
‘힘에 대한 집착은 사도(邪道)로 이어지는 법이니.’
그 대표 격인 이가 바로 당사극이 아니던가.
당화서는 자신의 단원이 그런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하여 일운을 응원하면서도 충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낸 날 밤.
“단주님.”
내각의 무인이 전각으로 마중 나왔다.
그를 맞이하는 당화서는 잠행복을 입은 채였다.
“가자꾸나.”
“예.”
그녀는 단원들 몰래, 전각을 빠져나왔다.
*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막 당문의 일을 끝마친 때로 가야 했다.
그날은 당화서가 맹주 사백운을 만난 날이었고, 사천당문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날이었다.
당문과 당사극의 이야기를 끝낸 사백운은 말했다.
“청룡비무회가 있을 걸세.”
“비무회라면….”
“그래. 중원 무림의 고수들을 모두 이 자리에 부를 것이란 말이네.”
“시국이 좋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하는 것일세.”
“예?”
그날의 사백운은 싱긋 웃으며 그리 말했다.
“암약해있던 놈들을 뽑아낼 좋은 기회이지 않나.”
사백운의 의도는 그러했다.
지금 천마신교의 마인들이 중원 무림에 침투한 상황.
하나 같이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탓에 본신을 잡아채기가 힘들었고 그런 만큼 혼란은 가중되고만 있었다.
청룡비무회는 그런 상황에 던진 미끼인 것이다.
이리 많은 무인과 사람이 몰린다면 분명 그중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마인들도 섞여 들어올 터.
사백운은 그들을 쫓아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이 왔다.
“용봉단주. 어서 오게.”
내각 무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맹의 후문에는 몇몇의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백검대주님을 뵙습니다.”
가장 먼저 백검대주 금검 권표월.
그리고 그의 옆엔 청룡대주 기태운이 있었다.
당화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적운대주님은 어디 있습니까?”
이번 작전은 맹 내부에서도 비밀로 부쳐져 아는 사람이 몇 없는 작전이다.
그런 만큼 작전 참여자는 각 대에서도 믿을만한 대주들이 끝.
단주는 당화서가 혼자였고, 분명 함께하기로 한 대주 중엔 적운대주 강찬이 있었다.
“어디 있긴.”
기태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권표월은 큭큭 웃으며 대신 답했다.
“비무회에 참가해 버렸네. 못 참겠다더군.”
“…예?”
“그 인간이 고집이 여간 세던가. 맹주님 다리에 매달려 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다던데, 맹주님이 결국 허락을 해버렸단 말이지.”
당화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참, 볼 때마다 기운찬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당화서의 멍한 기색에 기태운은 또 한숨을 쉬었고, 그런 중 나타난 사내가 있었다.
“다 모였군요.”
“아, 군사님.”
나타난 이는 군사 제갈무연.
그는 당화서와 다른 대주들처럼 잠행복을 입은 채였다.
“밤이 깊습니다. 그러니 바로 시작하지요.”
제갈무연이 말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한 번 더 설명하자면 마인의 흔적을 잡았습니다.”
“참가자가 섞여 있다 들었소.”
“예, 예선에서 탈락한 자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의 행선지를 뒤쫓던 중 아직 무한을 떠나지 않고 한 객잔에 몰리는 무리를 포착했습니다. 그들을 추적하던 맹의 첩자가 마기의 흔적을 발견했지요.”
제갈무연이 품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검붉은 보석의 조각이었는데, 그것에선 노골적으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의 결정….”
당화서의 얼굴 위로 긴장감이 떠올랐다.
저것은 죽은 마인의 단전에서 채취할 수 있다는 결정인 까닭이다.
“확실하군요.”
“예, 마인들은 아직 객잔에 모여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구석진 객잔이라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테지요.”
“작전은 어찌 됩니까?”
“양동입니다.”
“양동이라면….”
“저희가 미끼입니다.”
당화서는 미간을 좁혔다.
이곳에 있는 인원은 넷.
하지만 개개인의 무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당장 권표월과 기태운만 해도 초절정에 자신과 군사는 절정이다.
한데 이런 무력을 미끼로 쓰다니.
대체 본대에 누가 있길래….
“…아.”
당화서는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제갈무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각주님께서 직접 행차하십니다.”
해파검(海波劒) 견궐.
그가 이 작전에 참여했다고.
*
무한에서도 가장 구석진 골목.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객잔 몇 개와 이미 망해버린 몇 상점이 있는 자리에 당화서는 도착했다.
“저깁니까?”
당화서가 가리킨 자리에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객잔이 있었다.
제갈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과연….”
기분 탓이라면 기분 탓이겠지만 마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기감을 잔뜩 벼리니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총 삼십하고 여섯.
이쪽이 들킬 일은 아직 없었다.
다름 아닌 제갈무연이 약식 진법을 펼쳐둔 까닭이다.
“다들 준비는 되셨는지요.”
제갈무연이 물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옥돌을 버리면 그때가 진법이 풀리는 순간 기척이 외부로 노출되며 위치가 발각될 터였다.
“본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근처에서 대기 중입니다. 미리 깔아둔 진법 안에 계신지라 느낄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말에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운과 권표월은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채였다.
당화서 또한 암녹색의 기파를 일으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제갈무연은 지체하지 않고 옥돌을 바닥에 떨궜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객잔 안의 인기척들이 들썩였다.
*
쾅!
객잔의 문이 열리고 칼을 뽑아든 괴한들이 튀어나왔다.
마기를 숨긴 채였음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흰자 위로 거뭇한 기색이 가득했다.
“마공을 수련하는 중이었나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마공을 운용하면 흰자위가 검게 물드는 것은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굳이 가리지 않은 이유야 뻔했다.
“살인멸구겠지요?”
“죽여 없애버리면 들킨 일이 없었던 게 되니까.”
“마인다운 발상입니다.”
당화서는 피식 웃었다.
곧장 자신들을 발견한 마인들이 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역시 여유로웠다.
당화서는 짓쳐드는 검 하나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말했다.
“절정 다섯에 일류 열 일곱. 나머지는 안에 있는 듯합니다.”
그 옆의 권표월이 내려 베기로 절정의 마인을 쪼개며 말했다.
“초절정의 마인도 있다고 들었네. 저 안이겠지.”
“잡담은 그만.”
기태운이 절정의 마인 둘을 쪼개며 말했다.
여유로워도 너무 여유로운 상황.
당화서는 마인 하나의 안면을 붙잡은 채 산성독을 터뜨렸다.
치이이이익―
“아아아아악!!!”
비명이 길게 울려 퍼진다.
당화서가 손을 놓았을땐, 이미 호흡기관이 죄다 짓물려 더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였다.
잠시 꺽꺽대던 마인은 이내 호흡을 하지 못해 사망했다.
“독공은 역시 무섭구려.”
“그러니 잘 다뤄야지요. 누구처럼 하지 말고.”
당사극을 겨냥한 당화서의 농담에 권표월이 머쓱하게 웃었다.
동조하기엔 당화서의 조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서걱―
기태운이 마지막 절정 무인의 머리를 베어냈다.
마인들의 시신이 온통 널브러진 골목.
기태운은 기운을 갈무리하곤 객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망치기 시작했군.”
기척들이 객잔을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데, 그때마다 곳곳에서 튀어나온 내각의 무인들이 그들을 잡았다.
누군가는 생포되었고 누군가는 죽어 나가는 혼란 중, 당화서는 느꼈다.
‘…마기가 짙다.’
객잔 후문으로 향하는 마인의 마기가 특히 짙었다.
직접 나선다면 상대도 되지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긴장이 떠올라 주변을 봤지만, 대주들은 평온했다.
“…괜찮겠습니까?”
“음?”
“도우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강한 마인인 듯한데 내각주님 혼자서는….”
“아, 용봉단주는 내각주님의 전투를 실제로 본 일이 없겠군.”
권표월이 큭큭 웃었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화서가 아는 한, 내각주 견궐은 혈사 이후로 전장에 나선 일이 없는 반쯤 은퇴한 무인이다.
게다가 초절정이라는 경지만 밝혀진 신비주의적인 무인이기도 했다.
“그럼 함께 보러 가시게.”
깜짝 놀랄 걸세.
권표월이 말했고, 당화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도시를 빠져나갔다.
대체 내각주는 무슨 생각인지, 마인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중에도 속도를 맞추며 따라갈 뿐이었다.
쫓아가지 못한다기엔 권표월과 기태운의 기색이 너무 평온하니 맞춰주고 있는 게 맞을 터.
그러던 중.
“시작하시는군.”
권표월이 말했다.
동시에 내각주의 기파가 크게 요동쳤다.
당화서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초절정의 수준이 아니다.
당화서가 알기로 이 정도의 압박감을 주는 기파는 하나뿐이었다.
“그래, 초월지경이지.”
“그게 무슨….”
“기밀이네. 그것도 아주 중요한 기밀.”
권표월은 웃으며 말을 더했다.
“강호의 격언이 있지 않나. 진정한 고수는 가진 힘의 3할을 숨긴다고. 맹 또한 그렇네. 맹 전체를 하나의 무인이라 볼 때, 내각주님은 그 숨긴 3할에 해당하는 전력일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맹을 더 고강하게 만드는 분이시지.”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당화서는 생각했다.
초월지경이라는 것은 단순한 경지가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순간 중원 무림 전체의 찬사를 받고 무림의 역사에도 새겨질 고수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 공명을 평생 숨기고 사는 게 어디 쉽겠는가.
“어째서 밝히시지 않는 겁니까? 초월이라면 맹주직에도 도전해볼 법한데.”
내각주가 맹에 봉사해온 시간을 생각하면 맹주 자리도 옛저녁에 딸 수 있었을 텐데 어찌 그는 스스로를 숨기기만 하는가.
그 질문에 기태운이 답했다.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동경의 기색이 있었다.
“개인의 공명보다 강호 전체의 평화를 바라시기 때문이지. 그것을 위해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지 않으시는 것이네.”
그 말에 무어라 말을 더하기 전, 어느새 당화서는 견궐을 따라잡았다.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늦다.”
내각주 견궐, 그가 등을 보이는 채로 검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처참했다.
일대의 숲은 무엇인가에 쓸려나간 것처럼 다 파괴되어 있었고, 마인은 사지가 뜯겨나간 채 꺽꺽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랫배에서 피가 흘러나오는데, 단전을 파괴한 듯했다.
“살려서 옥에 가두거라. 심문은 청룡대주. 자네에게 맡기지.”
“예!”
견궐이 돌아서서 당화서를 지나쳤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당화서는 흠칫했다.
‘…무슨.’
자신을 보는 견궐의 눈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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