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3 십사장 - 청룡비무회 (3)
* * *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흐른 날.
목리원은 연무장에 가부좌를 튼 채로 명상하고 있었다.
떠올리는 것은 강호에 나와 여태껏 상대했던 적들.
그들과 나눈 검과 그 속에서 얻었던 깨달음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아직 모자라다.’
그리 말하는 게 옳겠다.
평가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아직 목리원은 천살성 없이는 무인으로서 강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변명할 말이라면 있었다.
상대했던 적들이 하나같이 자신보다 경지가 높았고, 그들과의 전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할 고된 전투였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통제가 가능할 정도로만 천살성을 사용했다는 것.
하지만 의미 없는 변명이었다.
목리원은 인정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싸울 수 없다.’
외나무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검무는 언젠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터다.
무인으로서, 그리고 협객으로서 목리원이 가야 할 길은 그만큼이나 명확했다.
‘천살성을 더 억누른다.’
살의에 휘둘리는 검을 덜어내, 기교와 이성으로 검을 휘두르리라.
그것을 위해 기교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검을 빚어내리라.
목리원이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장 목검을 쥐어 천천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직 2식까지밖에 완성되지 않은 만련이검의 다음 초식을 엮는 것이다.
그것은 청룡비무회가 있기 보름 전의 일이었다.
*
강호 무림에서 한 해 중 가장 큰 축제를 꼽으라면 단연 청룡비무회였다.
용봉지회도 그 열기가 대단키는 하나, 어디 강호가 젊은 피들의 혈기만으로 만족하는 사회던가.
강호는 넓다.
그리고 그 속의 기인이사는 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
언제나 새로운 고수와 새로운 바람에 목마른 강호인들에게, 또한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강호인들에게 이 청룡비무회만큼 그 갈증을 채워주는 축제는 없는 것이다.
아무렴, 30여년 전 청룡 비무회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검성(劒星) 목선오이니 그들의 갈망을 헛되다 말할 수도 없었다.
호북 무한.
무림맹 본단이 자리한 이 도시는 지금 그런 열기에 온통 들썩이고 있었다.
“보름 뒤면 비무회의 시작이군.”
“이번에 어떤 고수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돼. 왜, 재작년에 나왔던 빈검(賓劒) 하창수도 출전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아, 재작년의 준우승자 말인가?”
“그렇네, 작년에 안 나온 이유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까닭이라더군. 들리는 말론 경지가 한층 더 완숙해졌다는 게 아닌가.”
“호오… 그렇단 말인가? 그럼 이건 아는가? 화산의 대제자인 일지검(一知劒) 운정이 이번 비무회에 나온더다군!”
“오!”
객작은 소란스러웠다.
이번 비무회에 누가 참가하고, 또 어떤 이가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 온통 이야기 보따리가 풀려나오고 있었다.
그런 중, 대화 중인 두 사내의 자리에 한 사내가 슬그머니 와 앉았다.
“형장들은 진짜 주목해야 할 이를 말하지 않고 있구려.”
씨익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내의 이름은 왕허.
그는 용봉지회때 목리원의 무공에 반해 그의 행적을 뒤쫓아 온, 열성적인 목리원의 추종자였다.
섬서에서의 일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소문만 수집하던 그는 다시금 목리원을 보기 위해 이리 세상으로 나온 상태.
“당신은….”
“축제를 즐기러 온 객이오. 내 저 구석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죽이던 중 형장들의 말이 들려온 게 아니오? 빈검과 일지검. 분명 강한 무인이긴 하오. 한데 당신들이 아직 말하지 않은 고수가 또 있음에, 그 사내에 대한 말을 해야겠다 싶어 이리 자리한 게요.”
왕허의 말에 사내들이 호기심을 띄워 올렸다.
“호오… 좋은 정보라면 언제나 환영이오. 한 잔 드시겠소?”
“감사히 받겠소.”
왕허는 술잔을 받아 시원스레 들이켰다.
그리곤 탁! 하고 잔을 내려두며 말했다.
“사실, 나는 이번 청룡비무회의 우승자로 단 한 사람만을 꼽고 있소.”
“그게 누구요? 우리가 모르는 그런 고수가 있단 말이오?”
“있지! 있고 말고!”
왕허의 목소리에 힘이 더해졌다.
사내들은 긴장한 듯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객잔 안의 주변 자리들도 왕허의 말에 대화를 끊은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는 왕허에겐 꽤나 기꺼운 일이었다.
조금 더 끌어 이들을 골려주는 것도 재밌겠지만, 오늘 왕허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여 왕허는 바로 말했다.
“묵룡! 그 사내가 있는데 어찌 다른 이들을 우승 후보로 꼽는단 말이오?”
굳은 확신이 들어찬 목소리.
그것에 왕허 주변 전체가 조용해졌다.
순간, 어디선가 ‘푸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허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누구요?! 방금 웃은 것이!”
고개 돌린 방향에는 낭인으로 보이는 이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삼류에서 이류 사이인 무인이었는데, 그는 희대의 농담이라도 들은 듯 한참이나 꺽꺽대다 겨우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하오. 비웃을 생각은 없었소.”
“미안하다면서 뭘 계속 웃으시오?”
“하지만 그렇지 않소. 묵룡. 음, 확실히 유례없는 속도로 강호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괴물이긴 하지. 하지만 말이오. 여긴 용봉지회가 아니지 않소?”
왕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중에도 사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몇 년만 지나면 모르지. 그땐 정말 묵룡의 강점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만이 툭 튀어나와 백도 무림의 정상에 서 있을 수도 있겠소. 그러나, 지금의 그는 너무 어리지 않소.”
“어리다고 해서….”
“얕볼 순 없지.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오. 듣기로는 이제 막 초절정의 초입에 이르렀다던데, 이번에 참석하는 이들 중 초절정 초입이 한둘이겠소? 강호 전체의 고수란 고수는 다 몰리고 있잖소. 그 우승 보상 때문에 말이오.”
공청석유 한 병.
비무대회의 보상치곤 실로 과분하기 그지없는 보물이다.
왕허도 그걸 알기에 찔끔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것 한병이면 차오를 내공이 적어도 일갑자 하고도 반이다.
그런 탓에 근 몇 년간 청룡비무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명문 정파의 대표들도 하나같이 출사표를 던지는 와중이다.
즉, 강호의 초절정이란 초절정의 대부분이 다 이 비무회에 몰리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전대의 고수까지도 그랬다.
“형장의 마음도 이해하오. 묵룡이 어디 보통 대단한 후기지수요? 아암, 그의 재능이라면 적어도 본선까지는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을 거요. 내 그것은 부정하지 않겠소.”
사내의 말에 왕허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의 말은 맞다.
맞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왕허가 아는 목리원은 남들의 재단에 맞춰주지 않고 보란 듯이 그들의 예상을 깨주는 한 수가 있는 사내인 까닭이다.
그 발칙함과 패기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내인 까닭이다.
왕허는 그것을 전하고자 했다.
그런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그럼 형장은 그것 아시오?”
왕허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 있는 것은 꽤 늙은 노인이었는데, 무공 수위는 왕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딘가 남루해 보이는 차림새에 봇짐에는 붓이 슬쩍 삐져나와 있는 게 글공부를 하는 사람으로도 보였다.
그가 말했다.
“묵룡은 싸우면서도 성장하는 사내요. 그가 조금만 버틴다면 이 비무회에 나오는 모든 무인이 그의 경험으로 화할지도 모르오.”
“그건 너무 과한 말 아니오?”
“틀에 박힌 사고로는 벽 너머를 볼 수 없지.”
노인이 씨익 웃었다.
그러자 직전까지 의기양양하던 사내가 움찔 떨었다.
왕허는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 묘한 호감을 느꼈다.
동질감이라 해도 좋으리라.
같은 사람을 응원하는 입장이니, 그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내가 입을 다물자 노인이 껄껄 웃으며 손짓했다.
“형장. 나와는 대화가 잘 통할 듯한데, 술 한잔 기울이겠소?”
“아, 좋소! 나도 마침 같은 마음이었소!”
왕허가 노인의 자리에 합석했다.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왕허라 하오. 혹 형장의 소개를 받을 수 있겠소?”
노인은 지그시 웃다, 이내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곽칠, 나는 곽칠이라 하오.”
시원스러운 인사.
이것이 삼류무사 왕허와 [강호협객전]의 저자 곽칠표의 첫 만남이었다.
*
용봉단의 전각은 분주했다.
청룡비무회가 가까워지며 당화서의 일감이 늘어난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비무회에 참가하는 단원들의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까닭이었다.
남궁진천은 그간 모아온 영양과 내단을 몸에 녹이느라 연공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일운은 무엇이 그리 심란한지 하루 중 대부분을 불공을 외며 지냈고, 목리원으로 가선 그랬다.
“소저. 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하루 종일 그 질문만 하고 있다.
집무실까지 찾아와 검에 대해 묻는데 당화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애초에 당화서는 검수가 아닌 까닭이다.
“…고민이 깊으신지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런 질문이 끝.
그럼 목리원은 이번 역시 같은 답을 말한다.
“모르겠소. 다 떼어두고 검만 생각해보자니 이 검이란 게 대체 뭔지 모르겠소.”
목리원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한동안 분위기가 꽤 좋았기에 그와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건만, 요즘 들어선 저리 고민하는 모습에 걱정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도움이 되어주고 싶지만 역시 검은 모르겠다.
“으음….”
당화서는 처리하던 서류를 내버려 두고 목리원의 옆에 앉았다.
목리원의 뺨을 붙잡고 얼굴을 들었다.
목리원이 흠칫 놀랐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수척해지셨습니다.”
“으음…?”
“이것 보십시오. 눈밑이 거뭇거뭇해요. 요즘 잠은 잘 자고 계십니까?”
목리원은 흠칫 놀라다가 눈을 피해버렸다.
확실히 잠도 줄이고 있는 듯하다.
당화서는 눈을 좁혔다.
“목 소협.”
“그, 그게….”
“제 눈 똑바로 보고 말하십시오.”
목리원은 우물쭈물댔다.
입술을 달싹이고 당화서를 보다가 눈을 피했다.
그러길 한참, 겨우 말을 내뱉었다.
“…천살성을 더 억누르고 싶소. 이것에 더 기대자니 나 스스로를 담보로 걸어 싸우는 기분이 드오.”
“아.”
당화서는 단번에 이해했다.
‘그렇지 참….’
이리 앙증맞은 모습만을 보여 잊고 있었다.
목리원은 천살성의 주인이었고 그것을 억누르고자 매 순간 고민하며 산다는 것을.
문득 떠오르는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목리원이 이리 고민하는 중에도, 어찌 이것을 넘어트려 볼까 고민만 하던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이 드는 것이다.
당화서는 괜히 큼큼 헛기침했다.
그러자 목리원이 말했다.
“미안하오. 이런 고민은 스스로 해야 할 텐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연히 함께 고민해야지요. 저희는 친우가 아닙니까.”
“친우…!”
“예, 둘도 없는, 세상에 서로밖에 없는 친우 말입니다.”
“음? 하지만 제갈 형도….”
“제갈산이랑 저중에 누구랑 더 친합니까?”
“소저요!”
“잘했… 아니, 그렇습니다.”
당화서는 헛나오려는 말을 정정했다.
그리고 기색을 바꿔 지그시 웃었다.
“그런 고민이라면 제가 언제나 함께해 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 저는 목 소협이 절대 운명에 지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하니까요.”
“소저…!”
목리원이 뭉클한 얼굴을 만들었다.
‘음, 이런 얘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목리원이 잠시나마 고민에서 멀어질 수 있게 했으니 성공인 것은 아닐까.
당화서는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법입니다. 잠이 모자라지면 도리 일도 안 되는 법이구요. 그러니 오늘은 조금 깊이 자면서 머리를 비우는 건 어떻습니까?”
“꽤 그럴싸한 방법이구려! 내 한 번 실천해보겠소!”
목리원이 벌떡 일어났다.
“방해해서 미안하오! 그럼 지금부터 바로 잠들어 보겠소!”
“음? 아직 해가 지는 시간 아닙니까?”
“열심히 자보겠소!”
목리원이 그리 말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당화서는 직전까지 목리원의 뺨에 닿아있던 손을 바라보며 작게 아쉬움을 토해냈다.
당화서는 스스로의 욕망에 조금 더 솔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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