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32화 (132/334)

EP.132 십사장 - 청룡비무회 (2)

* * *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나날이다.

그것에 당화서는 비로소 자신이 용봉단의 전각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헛웃음이요, 함께 떠오르는 마음은 익숙함에 대한 기꺼움이었다.

사천의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지 정확히 일주일.

그간 상념에 빠져 때때로 멍한 모습을 보이던 당화서는 완전히 원래의 기색을 되찾았고, 오늘 역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또 사고를 치셨군요.”

오늘은 제갈산과 혜운.

두 사람은 고개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머리 위에 들고 있었다.

제갈산은 맹 근처 포목점주의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다 걸렸고, 혜운은 그 포목점주를 유혹해보려다 걸렸다.

이 인간들은 포목점에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당화서는 그런 생각에 빠져야만 했다.

“누님, 혜운 스님이 먼저 하자고 했소.”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갈 시주님!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우리는 협력한 거잖아. 협력!”

“…난 모르겠소만?”

제갈산이 시치미를 뗐다.

혜운이 억울하다는 듯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당화서는 대충 견적을 뽑았다.

아마 둘이서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포목점이 눈에 띈 것이겠지.

하는 짓거리가 거기서 거기인 인간들이라, 분명 암묵적으로 누가 누구를 맡겠느니 따위의 작당이나 하다 걸린 것일 터였다.

당화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외출 금지 사흘입니다.”

“네에에에?!”

혜운이 기겁하며 당화서의 팔을 잡았다.

“사흘은 너무 심하잖아요! 줄여줘요! 하루로 해줘!”

“누님,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분위기에 이끌려서 간 것이지만… 어쩌겠소.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것을.”

“너는 내가 따로 줄 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당화서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제갈산은 외출 금지에 그리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터라, 벌이 따로 필요했다.

물론 설사독이다.

“누, 누니…!”

빠악! 소리와 함께 제갈산의 명치에 주먹이 꽂혔다.

나날이 손맛이 좋아지는 게, 어쩌면 먼 훗날 이 맛이 그리워 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당화서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꺼헉…!”

제갈산이 파들대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혜운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당화서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룡비무회가 바로 내달입니다. 평소보다 사고를 덜 쳐도 모자랄 판에 이런 대형 사고를 치시다니요. 대체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시는 겁니까?”

두 사람의 입이 꾹 다물렸다.

당화서는 눈을 좁히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시고 처신에 심혈을 기울이십시오. 이상입니다.”

“넵.”

그나마 멀쩡한 혜운이 파들대는 제갈산의 뒷목을 잡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당화서는 그 뒷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여하튼.”

아주 활기차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잠시 자리에 선 채로 단원들이 떠나간 자리를 보던 당화서는 이내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용봉단에선 목리원과 남궁진천에 일운까지 비무회 참가를 희망하면서 그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상황이다.

무슨 비무회 참가에 뒤치다꺼리씩이나 하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무림맹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였다.

무림맹은 청룡비무회에 맹 소속 무인이 참가하는 걸 꺼려한다.

이유는 즉슨 비무회의 주최측이 맹인 까닭이다.

그렇지 않겠나.

맹에 참가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비무회를 관리할 일손이 적어지니, 그와 관련해서 맹 자체적으로 소속 무인에게 건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원래 세 사람 몫으로 배정되어 있던 일부터….’

단에 소속된 무인이 비무회에 참가하면 그 몫의 일을 다른 단원들이 더 해야 한다.

즉, 비무에 참여하지 않는 자신과 제갈산, 혜운의 일이 그만큼 늘어난다.

한데 보라, 방금 다녀온 두 사람이 하란다고 일을 할 사람이던가?

아니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당화서는 기꺼이 6명의 일을 홀로 감내해, 이 비무회를 무사히 끝마칠 계획이었다.

손이 바삐 움직인다.

당화서의 서명이 서류에 기입 되고, 그 위로 또 다른 서류가 쌓인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류 작업을 이어가던 중.

“…아.”

당화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서류를 마주했다.

『사천 파견 보상안.』

단촐하기까지 한 제목이었으나 내용은 아니었다.

최초 임무였던 단순 협조 요청이 어찌 이리 커져서, 이번 임무에 대한 보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와중이다.

맹의 상급 영약을 각 1개, 거기다가 만년한철을 하나 얹어주니 단원들이 눈을 까뒤집고 좋아할 게 뻔한 상황.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던 당화서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영약이야 그냥 주면 된다고 쳐도, 이놈의 만년한철이 문제였다.

딱 검 한 자루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인데, 이걸 어찌 나눠야 하나 싶은 것이다.

이어지던 생각은 이내 목리원에게까지 닿았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 멋진 검 하나를 선물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마침 지난 임무에서 목리원의 검도 부러진 참이다.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이 딱 좋을 것 같았다.

‘조금만 구워삶으면 단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텐데.’

생각이 통통 튄다.

만년한철을 나누려던 최초의 판단은 어디 가고, 당화서의 머릿속엔 그새 멋진 검 한 자루를 선물 받고 기뻐하는 목리원만이 남았다.

분명 ‘소저! 역시 소저밖에 없소!’라고 하며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어댈 터.

그 모습을 상상하자 당화서의 입가에 삐죽삐죽 미소가 솟아올랐다.

당화서는 입가를 매만지며 진정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근래 들어서 목리원이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는 일이 많아진 까닭이다.

-소, 소저구려! 으음… 식사는 하셨소?

오늘도 그랬다.

밥은 먹었냐는 말을 뭐 그리도 수줍게 하는지, 뺨을 붉히는 모습이 못내 깜찍해 당화서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을 위기에 놓였었다.

그리 마냥 수줍어하기만 하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소저! 이것 좀 먹으시오! 내, 내가 숙수님을 돕다가 만두를 만들어버렸지 뭐요! 분명 맛있을 것이오!

직접 요리도 해준다.

목리원의 단언대로 꽤 그럴싸한 만두였는데, 일단 맛보단 그 정성이 갸륵해 당화서는 기뻐했다.

생각해보라, 그 어여쁜 얼굴로 수줍게 내조까지 하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나날이 요망해지는구나.’

당화서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얼굴 위로 손이 덮였다.

당화서는 더 이상 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은 오로지 지난 일주일의 목리원.

밥을 먹던 목리원과 수련하고 나온 목리원과 이침인사를 하는 목리원과 저녁인사를 하는 목리원이었다.

‘세상에, 목 소협만 생각해도 하루가 다 가겠구나.’

당화서는 기쁘고도 곤란한 상황에 몸을 떨다, 이내 뺨을 짝짝 두드렸다.

‘그래.’

만년한철은 목 소협에게 주자.

단원들을 협박해서라도.

…라고, 이성이 조금 흐려진 채로 판단을 마친 당화서가 곧장 단원들을 불러모았다.

*

“만년한철말이오?!”

목리원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번 임무 보상으로 상급 영약 각 한 개씩과 만년한철 하나를 받았습니다. 마침 목 소협의 검이 부러지기도 했고, 이번 임무에서 특히 고생하셨으니 목 소협께 드리는 게 맞다는 판단입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떠십니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이었다.

하나 논리는 완벽했다.

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이런 쪽에 욕심이 강한 남궁진천 또한, 지난 용봉지회의 준우승 보상으로 만년한철을 받은 터라 크게 욕심내지 않고 있었다.

자연히 목리원에게 만년한철을 건네는 것으로 분위기가 형성되자, 목리원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럼 결정됐군요.”

당화서는 쐐기를 박았다.

“만년한철은 목 소협께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목 소협. 바로 검으로 만드셔야 할 테니 맹의 야장분께 함께 말씀드리러 가는 게 어떻습니까?”

당화서는 호의를 두른 가짜 미소를 지었다.

목리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너무 좋소!!!”

작전이 순조로웠다.

*

야장을 만나는 일은 금방 끝났다.

애초에 만년한철은 아직 받지도 않았고, 목리원의 요청사항이 간단했던 것도 컸다.

“크기는 이렇게! 검자루는 딱 이만큼만 해주고 무게중심은 정확히 가운데 둬 주시오! 여러 검술을 섞어 사용하는 터라 한쪽에 쏠린 검은 부담스럽소!”

“그리 하도록 하지.”

맹의 야장은 3대째 이 일을 이어오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는데, 그는 껄껄 웃으며 목리원을 치켜세웠다.

“내 미래의 천하제일이 쓸 검을 만든다니 활력이 솟는구먼! 기대하시게나!”

“처, 천하제일이라니! 과분하오…!”

“과분하긴 무슨, 겸양떨지 않으셔도 되네.”

목리원이 뺨을 붉혔다.

당화서가 보기에 아주 흡족했다.

“자, 그럼 이만 돌아가지요.”

당화서는 이어질 보상을 기대하며 목리원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 맹을 걸으며 운을 띄웠다.

“다행입니다. 마침 맹에 만년한철을 다룰 줄 아는 기술자가 있어서.”

“참으로 그렇소! 내 일전에도 이른 일이 있었지만, 멋진 검을 휘두르고 싶다는 꿈이 있다오! 드디어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구려! 무려 만년한철이 아니오! 이게 얼마나 날이 잘 드는 검일지 벌써부터…!”

목리원은 거의 방방 뛰는 기세로 걷고 있었다.

수다 또한 평소보다 더했다.

“아참, 새로운 검이 올테니 그때까지 만련이검의 새로운 초식을 만들어야겠소! 음! 이때까진 그저 검술 자체의 완성도만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턴 검의 완성도도 고려한 검술을 쓰는 것이오! 단단하고 좋은 검을 쓰면 더 강해지는 검 말이오!”

“재밌는 생각이군요.”

“초식 이름은… 으음…!”

목리원이 눈을 질끈 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래봬도 그 극악한 만련이검을 창안한 대종사다.

무공에 대한 고민은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을 터다.

당화서는 여유롭게 기다렸다.

그러자 목리원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이 안 나는구려! 내 나중에 시간을 내어 깊이 고민해봐야겠소!”

“잘 되실 겁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용봉단의 전각 앞까지 왔다.

그쯤의 당화서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만년한철을 챙겨준 내 얘기는?

눈빛으로 전해보지만 목리원은 자신을 쳐다도 안 보고 있었다.

그저 새 검이 생긴다는 게 신나는 모양이다.

당화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이리 당황할 일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목리원이 만년한철을 받는 게 당연하긴 한데, 그래도 기대했던 일이 있는 만큼 그냥 가자니 아쉬웠다.

당화서는 눈빛을 더 강하게 쏘아냈다.

스스로의 입으로 생색내지 않는 것은 당화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걸음이 하나, 둘, 셋을 넘게 이어져 스무 걸음에 달했을 시점이었다.

두 사람이 찢어지는 자리까지 도달해버렸다.

“여기서 헤어져야겠구려!”

목리원이 기운차게 말했다.

당화서는 멍해져 있었다.

끝까지 자신에 대한 칭찬은 없는 것인가.

이런 마음이 유치함을 알고 있음에도 당화서는 괜히 심술이 나는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근래들어 목리원의 반응이 좀 기대할 만한 반응이던가.

제갈산에게 들었던 말까지 해보면 ‘이거 해볼 만한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단 말이다.

하나, 역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목리원이 인사를 건네려 하자, 당화서는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소저.”

“예, 잘 가십시오.”

애써 웃어보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좀 없었다.

당화서는 아차 했으나, 목리원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저 뺨을 붉히고 있었다.

당화서는 의아했다.

“…목 소협?”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말이오.”

“무슨 얘기 말입니까?”

“고맙소.”

목리원이 수줍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당화서의 양쪽 검지를 슬며시 붙잡았다.

당화서의 심장이 쿵! 하고 놀랐다.

“역시 소저밖에 없소. 나는… 그런 것 같소.”

배시시 목리원이 웃었다.

그러더니 바로 홱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펴, 편히 주무시오!”

자리에 남은 당화서는 그 자리에 박혀 꽤 오랜 시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누님? 거기서 왜 멍하게… 히익!”

그녀를 본 제갈산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음험한 얼굴을 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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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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