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30화 (130/334)

EP.130 막간 - 검왕출두 (2)

* * *

술잔이 기운다.

한 잔이 두 잔으로, 그리고 두 잔이 다시 세잔으로.

“어떻소? 걸개가 구해온 술인데, 이것이 퍽이나 귀한 술이라 하더구려. 내 맛보기엔 향도 참 좋은 것 같은데 검왕께선 어찌 느끼실지 모르겠구려.”

목선오가 너스레를 떤다.

남궁혁은 말했다.

“세가의 술이 더욱 값지다.”

“태, 태상가주님!”

남궁운이 기겁하며 다그쳤지만, 남궁혁은 그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세가에서 즐기는 술은 중원 각지에서도 귀하다는 것들만 골라, 그중에서도 최고만 대령하니 이런 것과 비교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던가.

“틀린 말을 했나?”

“그, 그건 아니지만…!”

남궁운의 눈이 휙휙 굴러간다.

남궁혁은 코웃음 치며 잔을 또 넘겼다.

“하나, 이 또한 나쁘지 않다.”

“거 말 한번 싹수도 없게 하는구나.”

“걸개야.”

“형님은 맨날 저한테만 그리 타박이오. 이거 섭섭해서 살겠나.”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잖느냐.”

“나는 모르겠구려.”

마일석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남궁혁은 말했다.

“나이가 들더니 계집이 됐군.”

“이놈의 새끼가?”

마일석이 벌떡 일어났다.

남궁운이 따라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태상가주님이…!”

곤란함이 잔뜩 묻은 얼굴이었다.

남궁혁은 심기가 불편했다.

“남궁가의 일원이 그리 고개가 쉬이 꺾이는 것이 옳던가.”

“태상가주님! 제바알…!”

순간, 목선오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참, 이런 것도 오랜만이구려. 검왕께선 조금도 변치 않으셨어.”

“나는 변했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진했으니.”

“성정을 말하는 것이오. 검왕께선 여전히 심지가 굳으시구려.”

목선오의 미소가 지긋해졌다.

“그래, 참으로 스스로에게 당당하신 분이셨지. 내 산골에 사느라 그걸 잊었소.”

남궁혁은 코를 찡긋했다.

그리하며 목선오를 잠시 바라봤는데, 그러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역시.’

닮았다.

목리원과 목선오는.

남궁혁은 제 술잔을 바라봤다.

남궁운이 그새 잔을 또 채워 맑은 술이 가득한 잔이었다.

수면이 찰랑이는 것에 그 위로 비친 풍경이 일그러지고, 이내 되돌아온다.

그 과정이 모두 끝난 후에야 남궁혁은 입을 열었다.

“만났다. 그놈.”

“음?”

“네놈이 데려간 아이.”

멈칫―

목선오의 손이 멎었다.

마일석 또한 흥미롭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닮았더군. 네놈과.”

“…그랬소?”

목선오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기색은 전처럼 시원스럽지 않았다.

조금은 망설이는 듯했고,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였다.

“어땠소? 나는 그 아이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키웠다 자부하오. 실제로, 아이의 성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맑고 따스했소. 나는 그 아이가 사랑을 아는 아이라 생각하오.”

어떠했느냐라.

남궁혁은 눈을 감고 목리원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성련문(星聯門)의 11대 제자, 소문주 목리원입니다.

당돌하게 그리 스스로를 소개한 놈이다.

외모는 목선오와는 다르게 미남이었고, 기도는 아주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실제 관중석에서 봤던 무공은 또래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랬다.

“검술이 봐줄 만하더군.”

이는 남궁혁이 할 수 있는 칭찬 중 수위에 들어가는 칭찬이었다.

목선오의 눈이 크게 뜨이다, 이내 천천히 접혔다.

미소였다.

“그랬소?”

“당문의 계집과 제갈가의 사내놈과 친한 듯했다.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 듯하다. 듣기로는 그랬다.”

“잘 지내고 있었나 보구려. 어느새 친우도 사귀고 말이오.”

“에이, 형님. 거 당문의 계집이라 했잖소. 그 아이 말이오. 왜, 내가 말해줬던 독봉. 당문에서 나온 만독불침의 계집아이. 원이 고놈이 얼굴 하나는 참 곱상하니 이거, 이거 아니겠소?”

마일석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꼼지락거렸다.

목선오는 눈을 크게 뜨다, 이내 껄껄 웃어버렸다.

“우리 원이가 그런 쪽으로 지식이 있긴 하더냐. 그저 사람이 좋아 함께 지내는 것이겠지.”

“에이, 형님도 참. 그 나이대 남녀 간에 친구가 어디 있겠소? 형님은… 그래, 그 나이대 산에서만 지냈으니 모르시겠다마는.”

그리 담화가 오가던 중, 쭈뼛쭈뼛 남궁운이 손을 들었다.

“저어….”

표정은 삐죽삐죽 어색하게 웃는 상이었는데, 왜인지 식은땀이 얼굴에 맺혀있었다.

“그, 지금 말하시는 게 혹시 묵룡입니까?”

“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지금 화제에 들어맞는 사람이 있어서….”

남궁혁은 코웃음 쳤다.

“그걸 이제 알았나?”

남궁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잠시. 잠시만.”

벌떡! 남궁운이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묵룡이 검성 대협의 제자였단 말입니까아아아아!!!”

하여튼 호들갑은 이 중원 제일이라고.

남궁혁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어진 화제를 이끄는 것은 남궁운이었다.

“세상에!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어린 고수가 튀어나온 건지 처음 용봉지회에 묵룡이 나왔을 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요!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과연 성련문의 소문주라!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허허, 우리 원이가 용의 별호를 받았단 말이더냐?”

“용도 그냥 용이겠습니까! 그간 용봉지회의 우승을 단 한 번도 놓쳐본 일이 없던 우리 진천이를 그냥 아주 묵사발로 만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혁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정정했다.

남궁운은 입맛을 쩝쩝 다시다 말을 이었다.

“…예, 뭐. 묵사발 정도는 아니고 팽팽하게 겨루다 이겨서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됐지요. 그 비무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허어, 내 그런 소식도 몰랐구나.”

“음? 검성 대협께선 모르셨던 겁니까?”

“몰랐다. 이런 산골에 살다보니 바깥 소식과는 영 멀어지게 되어서 말이다. 독왕의 일도 크게 소문이 난 탓에 겨우 들려온 것이고.”

목선오는 감격스럽다는 듯 아련한 얼굴을 하다, 이어 남궁운에게 물었다.

“그래, 혹 괜찮다면 우리 원이의 소식을 더 들려줄 수 있겠느냐?”

“물론이지요! 아, 용봉지회를 우승한 후 묵룡이 무림맹으로 향했습니다. 당문의 아이를 따라간 것이지요.”

“고놈이 벌써부터 계집아이 치마폭에 둘러싸인 게냐?”

마일석이 표정을 찌푸렸다.

남궁운은 큭큭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보이진 않았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만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디 읊어봐라.”

마일석도 이야기에 집중했다.

남궁운은 두 노인과 목리원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여 더욱 세밀히 말하기 시작했다.

“맹에 새로운 단이 생겼습니다. 저희 진천이도 함께 입단한 단이지요.”

용봉지회가 끝나자마자 들끓기 시작한 마인.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한 백도 무림의 얼굴이 된 용봉단.

그 용봉단의 행적이 어떠했는지까지.

“…해서, 이번 사천행까지 그 젊은 무인이 모여놓고도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 말이지요!”

남궁운이 호방하게 웃으며 말을 끝냈다.

그 순간의 목선오는 참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랬단 말이지….”

그의 얼굴에 드러난 기색은 분명 자식의 안부를 듣는 부모의 것이었다.

“우리 원이가….”

“다행이오. 형님. 잘도 지내고 있나 보오. 떠나보내면서도 걱정하지 않았소.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좋은 사람들이 함께해 준 것이겠지. 왜, 당문의 아이와 제갈가의 아이라 하지 않았더냐. 음, 다른 건 몰라도 제갈가의 아이라면 필시 현명하고 의젓한 아이일 게다. 우리 원이를 많이 이끌어주었겠지.”

멈칫―

남궁운의 몸이 멎었다.

‘말해 드려야 하나?’

그 제갈가의 아이 제갈산이 현 무림에서 어떤 별호로 불리는지.

‘…아니,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

듣기론 참 잘지내고 있는 듯한데, 괜한 걱정거리를 끼울 필요는 없을 터다.

남궁운은 판단을 마치고 안색을 밝히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일들이 있고 이제 잠시 임무를 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음?”

“아, 형님. 곧 그때잖소. 청룡비무회.”

“아!”

목선오가 탄성을 내질렀다.

남궁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창 마인들로 인한 소란이 짙은 시기라 사기진작을 위해 여느 때보다 크게 연다고 하더군요. 이번엔 무려 우승자에게 공청석유 한 병을 통째로 내어준다지 뭡니까.”

“호오… 그것 참.”

마일석이 입맛을 다셨다.

목선오는 큭큭 웃으며 남궁운에게 물었다.

“너는 나갈 심산이냐?”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왜, 운이 너 정도면 충분히 입상할 만하지 않느냐.”

“진천이가 나가지 않습니까. 남궁가에서 사람이 둘 이상 나오는 것도 보기 좋진 않으리란 결론이 내부에 있었던지라.”

청룡비무회.

그것은 무림맹에서 여는 비무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비무회로, 용봉지회와는 달리 나이 제한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백도 무림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비무회였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고수들에겐 추억으로 자리하는 비무회였다.

아무렴, 검성 목선오가 처음 강호 무림에 나와 이름을 떨친 비무회가 아니던가.

“검성 대협께선 구경가지 않으실 심산이십니까? 정체를 숨기고 가셔도 될 터인데.”

“내 입으로 강호를 떠나겠다 해놓고 어찌 그러겠느냐. 나는 되었다. 이리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 충분해.”

“으음… 그리 알겠습니다.”

직접 목리원을 보면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

남궁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으나 굳이 내뱉진 않았다.

이것은 전대의 천하제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나저나 우리 원이가 벌써 청룡비무회까지 바라보는구나.”

“초절정이라 하지 않소. 내참… 천천히 좀 가라니까 뭘 그리 급하게 가는지.”

“사람과 세상을 마주하며 깨달음이 깊어진 것이겠지. 우리 원이가 어디 경지를 급해 하는 아이더냐.”

“그것도 그렇지만….”

마일석과 목선오의 말이 쭉 이어졌다.

그런 얘기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어쨌든 이왕 나선 거 그놈이 우승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쉽진 않을 것이다. 어디 이 강호에 고수가 좀 많이 숨어있더냐.”

“그래도 그놈이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남궁혁이 나섰다.

“우승은 손자가 한다.”

그리 말하는 얼굴은 조금 단호했고, 또한 오기가 맺혀있었다.

눈빛 속에서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듯하다.

남궁운은 큭큭 웃어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천이를 참 아끼신단 말이지.’

본인과 닮아서 그런 것일까.

남궁운은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설은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남궁혁이 술잔을 내려뒀다.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남궁혁의 기도가 꽤 포악해졌다.

목선오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잔을 기울인 후의 비무라. 옛날 생각이 나서 좋구려. 내 한 수 부탁드리겠소.”

“전처럼 쉽지는 않을 터다.”

남궁혁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어진 화제를 이끄는 것은 남궁운이었다.

“세상에!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어린 고수가 튀어나온 건지 처음 용봉지회에 묵룡이 나왔을 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요!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과연 성련문의 소문주라!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허허, 우리 원이가 용의 별호를 받았단 말이더냐?”

“용도 그냥 용이겠습니까! 그간 용봉지회의 우승을 단 한 번도 놓쳐본 일이 없던 우리 진천이를 그냥 아주 묵사발로 만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혁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정정했다.

남궁운은 입맛을 쩝쩝 다시다 말을 이었다.

“…예, 뭐. 묵사발 정도는 아니고 팽팽하게 겨루다 이겨서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됐지요. 그 비무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허어, 내 그런 소식도 몰랐구나.”

“음? 검성 대협께선 모르셨던 겁니까?”

“몰랐다. 이런 산골에 살다보니 바깥 소식과는 영 멀어지게 되어서 말이다. 독왕의 일도 크게 소문이 난 탓에 겨우 들려온 것이고.”

목선오는 감격스럽다는 듯 아련한 얼굴을 하다, 이어 남궁운에게 물었다.

“그래, 혹 괜찮다면 우리 원이의 소식을 더 들려줄 수 있겠느냐?”

“물론이지요! 아, 용봉지회를 우승한 후 묵룡이 무림맹으로 향했습니다. 당문의 아이를 따라간 것이지요.”

“고놈이 벌써부터 계집아이 치마폭에 둘러싸인 게냐?”

마일석이 표정을 찌푸렸다.

남궁운은 큭큭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보이진 않았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만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디 읊어봐라.”

마일석도 이야기에 집중했다.

남궁운은 두 노인과 목리원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여 더욱 세밀히 말하기 시작했다.

“맹에 새로운 단이 생겼습니다. 저희 진천이도 함께 입단한 단이지요.”

용봉지회가 끝나자마자 들끓기 시작한 마인.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한 백도 무림의 얼굴이 된 용봉단.

그 용봉단의 행적이 어떠했는지까지.

“…해서, 이번 사천행까지 그 젊은 무인이 모여놓고도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 말이지요!”

남궁운이 호방하게 웃으며 말을 끝냈다.

그 순간의 목선오는 참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랬단 말이지….”

그의 얼굴에 드러난 기색은 분명 자식의 안부를 듣는 부모의 것이었다.

“우리 원이가….”

“다행이오. 형님. 잘도 지내고 있나 보오. 떠나보내면서도 걱정하지 않았소.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좋은 사람들이 함께해 준 것이겠지. 왜, 당문의 아이와 제갈가의 아이라 하지 않았더냐. 음, 다른 건 몰라도 제갈가의 아이라면 필시 현명하고 의젓한 아이일 게다. 우리 원이를 많이 이끌어주었겠지.”

멈칫―

남궁운의 몸이 멎었다.

‘말해 드려야 하나?’

그 제갈가의 아이 제갈산이 현 무림에서 어떤 별호로 불리는지.

‘…아니,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

듣기론 참 잘지내고 있는 듯한데, 괜한 걱정거리를 끼울 필요는 없을 터다.

남궁운은 판단을 마치고 안색을 밝히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일들이 있고 이제 잠시 임무를 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음?”

“아, 형님. 곧 그때잖소. 청룡비무회.”

“아!”

목선오가 탄성을 내질렀다.

남궁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창 마인들로 인한 소란이 짙은 시기라 사기진작을 위해 여느 때보다 크게 연다고 하더군요. 이번엔 무려 우승자에게 공청석유 한 병을 통째로 내어준다지 뭡니까.”

“호오… 그것 참.”

마일석이 입맛을 다셨다.

목선오는 큭큭 웃으며 남궁운에게 물었다.

“너는 나갈 심산이냐?”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왜, 운이 너 정도면 충분히 입상할 만하지 않느냐.”

“진천이가 나가지 않습니까. 남궁가에서 사람이 둘 이상 나오는 것도 보기 좋진 않으리란 결론이 내부에 있었던지라.”

청룡비무회.

그것은 무림맹에서 여는 비무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비무회로, 용봉지회와는 달리 나이 제한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백도 무림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비무회였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고수들에겐 추억으로 자리하는 비무회였다.

아무렴, 검성 목선오가 처음 강호 무림에 나와 이름을 떨친 비무회가 아니던가.

“검성 대협께선 구경가지 않으실 심산이십니까? 정체를 숨기고 가셔도 될 터인데.”

“내 입으로 강호를 떠나겠다 해놓고 어찌 그러겠느냐. 나는 되었다. 이리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 충분해.”

“으음… 그리 알겠습니다.”

직접 목리원을 보면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

남궁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으나 굳이 내뱉진 않았다.

이것은 전대의 천하제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나저나 우리 원이가 벌써 청룡비무회까지 바라보는구나.”

“초절정이라 하지 않소. 내참… 천천히 좀 가라니까 뭘 그리 급하게 가는지.”

“사람과 세상을 마주하며 깨달음이 깊어진 것이겠지. 우리 원이가 어디 경지를 급해 하는 아이더냐.”

“그것도 그렇지만….”

마일석과 목선오의 말이 쭉 이어졌다.

그런 얘기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어쨌든 이왕 나선 거 그놈이 우승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쉽진 않을 것이다. 어디 이 강호에 고수가 좀 많이 숨어있더냐.”

“그래도 그놈이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남궁혁이 나섰다.

“우승은 손자가 한다.”

그리 말하는 얼굴은 조금 단호했고, 또한 오기가 맺혀있었다.

눈빛 속에서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듯하다.

남궁운은 큭큭 웃어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천이를 참 아끼신단 말이지.’

본인과 닮아서 그런 것일까.

남궁운은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설은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남궁혁이 술잔을 내려뒀다.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남궁혁의 기도가 꽤 포악해졌다.

목선오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잔을 기울인 후의 비무라. 옛날 생각이 나서 좋구려. 내 한 수 부탁드리겠소.”

“전처럼 쉽지는 않을 터다.”

“나는 단 한번도 검왕을 쉽게 생각해본 일이 없소.”

남궁혁의 코가 찡긋했다.

“…나와라.”

그렇게 마당으로 향했다.

*

잠시 후, 마당에 두 노인이 검을 들고 섰다.

남궁혁은 전신의 긴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채 목선오를 바라봤다.

‘역시….’

성장한 것인가.

그는 여전히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무인이었다.

“먼저 하시겠소?”

기도가 부드럽다.

바라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것은 시리게 빛나는 별.

그 고요하고도 파멸적인 울림이었다.

“기꺼이.”

남궁혁은 검을 들었다.

그에 맞춰 목선오가 검을 들었다.

그 순간.

“…허.”

남궁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게 아니었다.

목선오가 검을 들자, 그제까지 그의 속에 숨겨져 있던 힘의 편린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그는 지그시 웃고 있었다.

“왜 그러시오? 오지 않고.”

너스레를 떤다.

꽤, 가증스럽다.

“넘었군.”

“천운이 닿아서.”

“천운은….”

아니, 참으로 천운이란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초월지경의 끝자락.

그 18년의 세월동안 그 경지에 오른 남궁혁이기에 깨닫는 것이 있었다.

‘초월을 넘었다.’

검성 목선오.

그는 강호를 떠나 산골에 틀어박힌 18년간 초월 너머의 경지에 발을 뻗었다.

그 사실에 절망스러운가?

떠오른 질문에 남궁혁은 사나운 미소로 답했다.

“역시….”

암만 생각해도 그랬다.

이제와 새삼 뒤떨어짐에 절망스러울 이유는 없었다.

도리어 이리 상대가 앞서 나가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

남궁혁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평생을 걸쳐서라도 이기고 싶은 상대는 영원히 이 사내뿐일 터라고.

“간다.”

남궁혁이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칠주야를 쉬지 않고 이어 나갈 비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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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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