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9 막간 - 검왕출두 (1)
* * *
안휘성의 남궁세가 본채.
창성검(蒼成劒) 남궁운은 양 무릎을 꿇은 채 검왕(劒王) 남궁혁에게 외쳤다.
“태상가주니이이임!!!”
남궁운을 이르는 말은 그랬다.
원체 큰 소리는 낼 줄 모르고 타인에게 언제나 지긋한 미소만을 보이는 사내.
그리하여 푸르른 하늘처럼 흠결이 없는 사내.
하나, 이런 사내도 큰 소리를 내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눈앞의 남궁혁이었다.
“안 됩니다아아아!!!”
남궁운의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홀로 외유를 다녀오시겠다니요! 이게 무슨 큰일 날 소리랍니까!”
“목소리가 높다.”
“안 높게 생겼습니까?!”
아주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다.
남궁혁은 불퉁한 얼굴로 검을 챙기고 있는데, 그 속에서 절대 제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일렀다.”
“그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으셨잖습니까!”
“….”
“태상가주님! 조금 더 본인의 위치를 자각해 주십시오! 이제 검왕입니다! 검왕! 또 밖에서 사고나 치고 다니면 그냥 검치 소리를 듣는 걸로 안 끝난단 말입니다!”
새삼스러운 말을 해보자면 그랬다.
검왕 남궁혁.
검룡 남궁진천.
그 조부에 그 손자다.
두 사람은 검에 관한 재능은 가히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으나, 그 외의 부분에선 모자라도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수준.
그 우습지도 않은 사회 능력을 숨기느라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던가.
남궁운은 철이 든 시점부터 남궁혁의 곁에 붙어 다니며 언제나 그의 성정을 포장하며 살아왔다.
후달리는 언변은 과묵함으로.
고집불통인 성정은 오만함으로.
사실 검왕이라는 별호 또한 남궁운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으니, 남궁운은 제 평생의 노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스러지는 걸 원치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꼭! 꼭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눈을 부릅뜬 채 강하게 말한다.
“객잔에 홀로 묵는 걸 하실 수는 있습니까? 객잔의 한끼 식사가 얼마인 줄은 아시고 돈 관리는 하실 수 있습니까? 그보다 길은 찾으실 수 있습니까아아아!!!”
남궁운은 알았다.
이렇게까지 하면 남궁혁은 마지못해 말을 들어주리란 것을.
아니, 현실을 조금은 바라봐주리란 것을.
생애 동안 한 번도 생활에 관한 고민을 스스로 해본 적 없는 남자는… 이윽고 항복했다.
“…딱 너 하나다. 그 이상은 불가하다.”
창성검 남궁운.
그는 오늘도 남궁세가의 위엄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
태상가주가 자리를 비운다.
그 사실에 남궁세가 전체가 뒤흔들렸다.
가장 놀라는 것은 그의 아들이자 남궁진천의 아버지인 현 가주.
“아버님!”
“다녀오겠다.”
남궁운은 제 사촌되는 가주의 기색을 이해했다.
아무렴, 똑 닮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유일한 정상인이니 이 인간들이 한 번에 밖으로 나돌면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부터 되겠지.
그냥 걱정이라 하기도 뭣한 게, 이미 선례가 생겨버렸다.
바로 남궁진천의 정체가 어느정도 밝혀진 것이다.
무림맹으로 향한지 반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강호엔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
검룡 남궁진천은 머리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남궁운은 지그시 눈을 감고 참담함을 띄워 올렸다.
“가주님.”
“운아! 네가 좀 말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순간, 두 사내의 시선 속에 수많은 감정이 얽혔다가 풀렸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유대감이 그 속에 있었다.
가주는 이윽고,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이 전한 말이었지만 남궁운은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부탁하네.’
분명 그런 말이다.
그렇게 남궁혁이 떠나려는 순간.
“할아버지!”
어린 여아가 종종걸음으로 내달려온다.
남궁진천의 누이인 남궁소아였다.
남궁소아가 남궁혁을 꼭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어디 가?”
“비무하러 간다.”
“웅?”
남궁소아의 고개가 기울었다.
남궁혁은 코를 찡긋하다, 이내 남궁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학업을 게을리하지 말라.”
“웅!”
살아생전 학업이라면 서책을 찢기부터 하던 사람의 말이라 참 묘한 감상이 떠오른다.
남궁운은 떠오른 생각을 털어내고 남궁소아를 들어 가주에게 건넸다.
진짜 출발이었다.
*
안휘를 떠난 남궁혁은 곧장 강서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수양현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남궁운은 숙부가 이 마을의 누구를 찾아온 것인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태상가주님?”
“이르라.”
“목적지가 어딥니까?”
“산골.”
“예?”
“산골에 있다고 했다.”
남궁운은 입을 꾹 다물고 남궁혁을 바라봤다.
‘…기도가 날카로워지셨구나.’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남궁운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인지.
남궁운이 알기로, 남궁혁이 이렇게까지 기도를 가다듬으며 비무를 준비할 상대는 중원 무림을 통틀어도 하나밖에 없었다.
“…검성(劒星) 대협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검성 목선오.
그 드높던 이름을 스스로 저버린 채 강호를 떠난 전대의 천하제일.
남궁혁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객잔 내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몰리는 게 느껴지는데, 남궁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기도를 풀어 헤쳤다.
위압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그저 존재감만을 발산하는 기도.
그것은 꼭 누군가를 부르려는 듯한 기도였다.
남궁운은 긴장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진정 그분께서 살아계셨구나.’
사실, 강호를 떠나고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은 사람이다.
죽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다.
한데 보라.
남궁혁은 확신을 가지고 그를 부르고 있다.
남궁운은 알았다.
남궁혁은 생각이 단순할지언정, 필요치 않은 일에 시간을 소비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이윽고, 남궁운은 흠칫하며 몸을 들썩였다.
등 뒤에서 느껴진 압도적인 기운이 있는 까닭이다.
“…이 빌어 처먹을 검치놈. 기어코 여길 찾아내?”
심술이 잔뜩 묻어난 노인의 투덜거림.
남궁운은 이 목소리를 알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걸와….”
빠악! 하고 걸왕(乞王) 마일석이 남궁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억!”
“소란 피우지 마라. 욘석아.”
심드렁한 말.
남궁혁이 답했다.
“안내하라.”
마일석의 눈가가 떨렸다.
“…이놈 이거 태도가 참 불순하구나?”
“약한 놈한텐 관심 없다.”
“이 새끼가?”
남궁운은 심장이 떨리는 기분을 느꼈다.
*
산골을 타고 오른다.
남궁혁은 그리하면서도 기도를 가다듬을 뿐이었다.
‘가까워진다.’
그립고도 유쾌하지 않은 기파가, 언제나 벽으로만 존재했던 시린 기파가 골짜기 세 개를 넘어온 시점부터 온통 공간을 점하고 있었다.
남궁혁은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그가 강호를 떠나고 18년.
남궁혁은 단 하나의 고민밖에 떠올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목선오는 천하제일이다.
그 명제는 남궁혁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인정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마음가짐도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힘으로 찍어누를 수 없다.
기교로 이겨낼 수 없다.
그러니 다만 끈질기게 매달릴 뿐이다.
투견이 되어 승리를 향해 목을 맬 뿐이다.
생각이 이어질수록 기파에 무게감이 더해진다.
비단 긴장 뿐만 아닌, 기대감이 그 위로 덧씌워진다.
18년간 성장한 것은 자신 뿐만이 아닐 터.
당시에도 천하제일이었던 그는 어디까지 성장했을까.
또 어떤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어지는 상념 끝.
“…검왕?”
야트막한 초가집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노인을, 남궁혁은 마주했다.
“…검성.”
“이게 어찌…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검성 목선오가 환히 웃었다.
그의 얼굴은 남궁혁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자글자글 얼굴 위로 새겨진 세월이 이목구비를 흐린다.
그 탓에 객관적으로 못생겼던 얼굴이 전보단 나은 것도 같다.
허리는 굽었나? 아니, 여전히 꼿꼿하다.
그리고 비질을 하는 손에는 울긋불긋한 굴곡이 나 있었다.
심히 흡족하다.
그는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디 보자… 그래, 걸개야. 가서 술 한상 내오거라. 이리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휴, 형님도 이런 걸 손님이라고 들이십니까.”
“허허, 너는 여전히 검왕과 사이가 안 좋구나. 그러지 말고 부탁하마.”
마일석이 투덜대며 초가집 뒤로 떠나간다.
그제야 목선오의 시선이 남궁운에게로 닿았는데, 남궁운의 얼굴도 잊지 않은 듯했다.
“오, 운이가 아니더냐!”
“검성 대협을 뵙습니다!”
남궁운이 포권하며 고개를 숙인다.
왜인지 신나 하는 것도 같은데, 남궁혁은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언제 이렇게까지 컸을꼬. 마지막으로 봤을 땐 아직 파릇파릇했는데.”
“하하! 저도 이제 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아닙니까! 혼인하여 아이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것 참 경사로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남궁혁은 고민했다.
언제 나서야 하나.
이러다가 비무는 평생이 다 가도록 못 하는 게 아닌가.
잠시 이어진 고민.
그 끝에서 남궁혁은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잡설은 그만두지.”
기파를 풀어헤쳤다.
“검성, 비무다.”
목선오가 눈을 끔뻑였다.
남궁혁은 턱짓했다.
“검을 가져오라.”
“성질 참 급하구려.”
“그러기 위해 찾아왔음이니.”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소?”
목선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일석이 술상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회포라도 풀고 하는 게 어떻겠소?”
“엥? 이 검치놈의 새끼! 그새를 못 참고 또 검을 뽑아?!”
마일석이 술상을 마루에 두곤 노발대발하며 외친다.
남궁운이 옆에서 속삭인다.
“태, 태상가주님! 일단 검은 넣으시고! 급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리 환대해주시는데.”
남궁혁은 불퉁한 얼굴이 됐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은데 어찌 도움이 되는 인간이 하나도 없는가.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
남궁혁은 이내 검을 집어넣곤 마루로 가 앉았다.
“…긴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개뿔이, 말발이 후달려서 그렇겠지.”
“….”
“거, 걸왕님!”
남궁운이 허둥지둥한다.
남궁혁은 ‘흥!’하고 코웃음치며 술잔을 들었다.
순간, 목선오가 말했다.
“…독왕의 소식을 들었소.”
남궁혁의 움직임이 멎었다.
고개를 드니, 목선오는 씁쓸한 낯을 하고 있었다.
“독기에 자멸했다고 하더구려. 동시에 그간의 비행이 밝혀졌다지.”
독왕이라.
그래, 그런 놈도 있었지.
약한 주제에 발악할 줄도 모르던 머저리.
남궁혁은 이내 당사극에 대한 것을 떠올려냈다.
하나 사망 소식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랬던가?”
“어찌 산골에 사는 나보다 세상 소식에 어둡구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뿐.”
“참으로 당신답소.”
목선오가 큭큭 웃었다.
그러다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먼저, 그럼에도 한때 전우였던 이를 위해 잔을 들어주실 수 있겠소?”
남궁혁은 잠시 목선오가 든 잔을 바라보다, 이내 제 잔을 들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 말하자, 목선오가 지그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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