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7 십삼장 - 사천, 결 (18)
* * *
눈을 떴을 땐 금지의 입구에 누워있는 채였다.
다만 널브러진 것이라기엔 누군가가 바로 뉘어준 것처럼 반듯한 자세였고, 떨어지면서 있었을 충격에 의한 통증도 없었다.
하여 당화서는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날아가던 자신을 받아내 이곳에 눕혀준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높은 확률로 목리원이리란 사실을.
이후의 행동은 빨랐다.
이 자리에 목리원이 없다는 것은 당사극을 상대하기 위해 가주전으로 갔다는 뜻일 터.
그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을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끝에 마주한 게 이 상황이다.
무너져내린 가주전.
그 앞에 녹아내린 살점이 웅덩이져 있었다.
또한 주저앉아 흐느끼는 목리원이 있었다.
“…목 소협.”
하고 말하자 목리원이 고개를 돌린다.
드러난 눈동자는 온통 핏빛이다.
그리고 당화서는 원래 목리원의 눈이 다갈색인 것을 알았다.
일순 정적이 일었다.
목리원의 표정은 꼭 들켜선 안 될 비밀을 들킨 사람과 같이 경악에 차 있었고, 어찌나 주변이 조용한지 그가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그 짧은 순간 당화서가 떠올린 생각은, 그리고 해낸 행동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곧장 목리원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속삭이듯 말했다.
“기절한 척하십시오.”
흠칫 목리원의 몸이 들썩였다.
당화서는 이어 말했다.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어서.”
이 눈동자를 그 누구에게도 보여줘선 안 된다.
당화서는 다만, 그런 생각만을 떠올렸다.
이윽고 사람이 몰렸다.
“누님! 목아우!”
가장 먼저 제갈산.
뒤이어 일운과 혜운이, 마지막으로 몸 곳곳에 자상을 입은 남궁진천이 나타났다.
당화서는 검지를 입술 앞에 댔다.
“쉿, 기절했다. 어서 목 소협의 몸을 살피러 가자꾸나.”
“아, 알겠소. 그런데 이건….”
제갈산의 시선이 살웅덩이를 향했다.
당화서는 시린 기색으로 답했다.
“가주다. 아무래도 독기에 자멸한듯해.”
당화서는 당사극의 시신엔 어떤 안타까움도 드러내지 않았다.
*
가주의 사망 소식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당문 전체에 퍼졌다.
하나, 그 누구도 단원들을 사로잡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화서가 그제까지 비동의 비밀을 모르던 이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힌 까닭이다.
또한 당사극이 초월에 이른 독에 자멸했음은, 그의 시신이 증명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그랬다.
이제 당문을 이끌 직계는 당화서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대로라면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천당문 전체가 망해버릴 위기이니, 그들로선 당화서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 혼란스러운 중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났다.
목리원은 그때까지 의방에 갇혀 기절한 체를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당화서의 시비인 소향이 탕약을 놔두고 가는 것이 유일한 외부인과의 만남이었다.
아니, 그 소향조차 천막 너머로만 마주했으니 진정 만남은 아닐 것이다.
눈동자는 자고 일어나니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전보다 갈색빛이 강해졌지만, 이 정도라면 주변 사람이 눈치챌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목리원에게 중요한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들켰다.’
당화서에게 들켰다.
붉은 눈을, 그리고 살귀의 별을.
그녀가 모르리라 여기기엔 정황상 증거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제 눈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읊조리던 말.
그것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어 목리원의 속을 옥죄고 있었다.
쿵쿵 심장이 뛴다.
불안감에 사고는 한없이 위축되며 그 좁은 공간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금지의 진법을 헤쳐 나가던 순간 들려왔던 목소리였다.
-목 소협, 그리 추악한 속내를 이때까지 숨기셨습니까?
현실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으로 시작된 상념은 좀처럼 목리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만약을 상정하게 된다.
그 상황을 끝내고 하루가 넘도록 자신을 찾지 않은 당화서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을 숨겨준 것에 관한 후회를 하고 있다면.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절망이, 또한 눈앞이 깜깜해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기분이 목리원의 속에 떠올랐다.
달칵―
순간 문이 열렸다.
목리원은 흠칫 놀라다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곧 탕약을 먹을 시간이니 소향이 들어온 것이리라.
“…오셨소?”
하여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답한 목소리는 소향의 것이 아니었다.
“몸은 어떠십니까.”
당화서의 목소리다.
목리원의 몸이 덜컥 멎었다.
“목 소협?”
입을 열고자 하는데, 무언가가 목에 걸린 것처럼 턱턱 막힌다.
불안감이 재차 짙어진다.
침묵이 일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 입술만 뻐끔거리길 잠시, 당화서가 천막을 걷어냈다.
“혹 몸이 상하셨습니까?”
드러난 것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여기 보십시오.”
목리원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당화서가 다가왔다.
목리원의 이마를 짚었다.
뺨을 꾹 누르고 눈꺼풀 안을 살폈다.
그리하며 말한다.
“독기에 정면으로 마주했으니 병세를 더 지켜봐야 할 겁니다. 독 중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몸속에 잠복하다 뒤늦게야 발현되는 것이 더러 있으니까요.”
그리 설명하는데, 목리원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녀의 태도가 마치 전날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 같았던 까닭이다.
순간 차오르는 말이 있었다.
“…소저.”
“말하십시오.”
“아무 것도 묻지 않소?”
목리원은 제 얼굴에 댄 그녀의 손이 흠칫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중에도 당화서의 얼굴은 고요하기만 했다.
맥을 짚던 그녀가, 이내 목리원의 눈을 바라봤다.
목리원은 긴장했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고 나올 말이 두려워, 그럼에도 보이는 기색에 떠오르는 희망이 있어.
염치없음을 아는데도 목리원은 기대감을 품어버렸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답은 더욱 깊게 파고든다.
“이제 다시 이쁜 갈색이 되셨군요.”
그녀가 지그시 미소 짓는다.
“역시 목 소협은 갈색 눈이 잘 어울립니다. 맑고 투명해서 꼭 목 소협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요.”
눈 밑을 쓸어준다.
“자, 됐지요? 어서 탕약부터 드십시오. 정양에 좋은 놈들로 고르고 골라 갈아 넣은 것이라 어디 가서 쉽게 못 먹습니다?”
끝맺는 말은 장난스러워 암만 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다.
일순, 울컥하고 무언가가 목리원의 속에 차올랐다.
얼굴이 떨림을 품고 찌푸려졌다.
감정을 표현하라 하면… 목리원은 할 수 없었다.
차오른 물기가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숨통을 죄고 전신과 사고를 얼려 한없이 정지에 가까운 상태를 만드는 까닭이다.
분명 당화서는 알고 있을진대.
그 붉은 눈동자가 뜻하는 바와 그 상황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는 모두 알게 되었을진대 왜 이리도 평소와 같은 모습만 보이는 것일까.
-원아, 숨겨야 한다.
그 아프던 가르침을 그르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목리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당화서가 입에 흘려넣어주는 탕약을 꼴깍꼴깍 마시는데, 도로 토해버릴 것만 같았다.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물기가 탕약을 밀어내는 기분 탓이었다.
“이거 한 사발이 어지간한 영약값입니다.”
그 말에 목리원은 겨우 탕약을 삼킬 수 있었다.
그릇이 텅텅 비었다.
당화서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리곤 목리원이 앉아있던 옆자리로 가 앉았다.
톡.
목리원의 꽉 쥐어진 주먹 위로, 당화서의 손이 겹쳤다.
아직까지도 목리원은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 조용해진 약방엔 약냄새가 더러 풍긴다.
창밖은 가을 내음을 풍기는 단풍이 져 있었고 이는 바람에 파스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겹친 손은 부드러웠다.
톡, 톡.
부드럽게 손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에 울음기가 진해진다.
“열일곱이었습니다.”
당화서가 말한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봤습니다. 독살이었습니다. 명치에 주먹을 꽂아 산성독을 가득 쑤셔 박았지요.”
흠칫 목리원은 몸을 떨었다.
당화서는 계속 말했다.
“변방의 촌에서 기루를 운영하는 흑도였는데, 글쎄 제가 신분을 숨기고 다니니 잡아서 팔아먹으려 들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참 화가 나고 싫어서. 저는 그를 죽였습니다.”
“….”
“첫 살인이라는 것에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냥 귀찮은 일 하나를 지운 기분이었지요. 다들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니.”
당화서는 과거를 되짚듯 멍하니 ‘으음’ 소리를 내다 이내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에도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개중엔 개인적으로 원한이 없음에도 필요해 의해 죽인 이들이 있습니다. 흑도였습니다. 하지만 변명거리는 되지 않지요.”
당화서가 손에 힘을 더했다.
“절 봐주십시오.”
목리원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당화서는 따스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목 소협 눈엔 제가 살귀로 보이십니까?”
목리원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휘휘 저었다.
살귀라니, 목리원이 아는 한 당화서는 세상에서 그 말이 제일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절대! 절대 아니오!”
“진정 그리 여기십니까?”
“그렇소! 내가 아는 소저는 절대 살귀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오!”
“그럼 답이 나왔군요.”
“…답이라니?”
“제가 아는 소협도 살귀랑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살귀보다는….”
당화서는 입술을 우물거리다, 이내 힘빠진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귀여운 동생이지요.”
무어라 말해야 할까.
목리원은 그 순간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분명 성대의 울림으로 전하는 말일진대 그 진동이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기분이었다.
낱말을 이루는 획들이 모두 흩어져 다른 단어로 조립되는 기분이었다.
괜찮다.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당화서의 말은 그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왜이리 속이 진정되지 않는 것인지.
심마(心魔)에라도 들린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 통제를 벗어난다.
이내 토해내는 말엔 울음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하지만은 또 뭡니까. 아니라면 아닌 거지.”
당화서가 손을 뻗어 목리원의 눈가를 닦아냈다.
그리곤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줬다.
“사내는 그리 함부로 울면 안 되는 겁니다. 뚝 그치세요.”
“…천, 살성이지 않소.”
“예, 그게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나는 살겁을 몰고 올 거요.”
“누가 그럽니까?”
“…모두가.”
“그럼 이젠 아니게 되었군요.”
당화서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더해졌다.
“저는 목 소협이 살겁이 아닌 평화를 끌고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젠 모든 사람이란 말은 사용할 수 없게 된게지요.”
당화서가 또박또박 말했다.
“목 소협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세상 누구보다 칭찬받아 마땅할 사람입니다.”
“소저….”
“금전이 있는 자에게 금전을 베푸는 일은 쉽습니다. 방이 남는 이들에게 남는 방을 베푸는 일은 쉽습니다. 하나, 배고픈 자가 식사를 베푸는 일과 헐벗은 자가 옷을 양보하는 일은 어렵지요. 목 소협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화서가 목리원을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살심을 속에 이고도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죽이는 것이 훨씬 쉬움을 알고도 살리고자 합니다. 목 소협은 목 소협의 말대로,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협객입니다.”
당화서는 위로하듯, 또한 칭찬하듯 목리원의 뒤통수를 쓸었다.
“제가 아는 법도엔 협객을 죽어 마땅하다 표하는 말이 없습니다.”
목리원의 이가 악 물렸다.
“그러니 저는 목 소협을 아주 많이 칭찬해줄 것입니다. 또한 천살성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말할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그도 그럴게, 별은 생각보다 힘이 없잖습니까. 저기 검룡을 보십시오.”
당화서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치가 제왕이 어울리는 사람입니까? 웃기지도 않지. 그건 그냥 검치가 어울리는 놈입니다.”
목리원은 푸흐 웃었다.
그리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화서의 옷섬이 젖어 들어가는데, 그것이 신경 쓰여 떼어내려 하자 당화서가 팔에 힘을 더했다.
“그러니 저는 별의 운명 따위는 평생 믿지 않으려 합니다.”
이윽고 목리원은 저항을 멈췄다.
위로의 말은 너무 따스하여, 꼭 기대고 싶은 형태를 하였기에.
“자, 이제 됐지요?”
오늘만 이리 어리광을 부려도 되리라.
목리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품의 온기에 집중하는 순간, 그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따스한 온도로 꾹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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