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26화 (126/334)

EP.126 십삼장 - 사천, 결 (17)

* * *

아득하리만치 농후한 향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비리고, 짜고, 단내였다.

멍하게 이성이 흐려지는 게 꼭 약에라도 취하는 기분.

목리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

“왜, 피 냄새에 기쁘기라도 하더냐?”

당사극이 끅끅 웃었다.

들리지 않았다.

목리원은 그저 이 혈향에 온 정신이 범해지는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안… 되는데….’

살심을 경계하라.

피를 멀리하라.

다만 협의로 바로 서라.

스승께 들었던 말들은 언제나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위에 새긴 것처럼 깊고 단단한 가르침이라 좀처럼 지워지는 일이 없었던 가르침이었는데….

‘안….’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징징 머리가 울린다.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그런 중에도 감각은 첨예하게 벼려진다.

목리원은 손에 힘을 더했다.

“봐라, 네놈은 겨우 핏물에도 흔들리는 살귀일 뿐이다.”

차오르는 쾌락을 떨쳐내려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평생 그렇게 발악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니다. 네놈은 강호에 나온 지 한 해도 안된 애송이다. 그말인 즉 이것보다 더한 위험이 네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당사극의 말이 방해하고 있었다.

턱―

그가 목리원의 멱살을 쥐었다.

고개를 들이밀었다.

“고작 한 해도 안 되어 이리 혈향에 발광하는 네놈이, 이 피를 먹는 숲에서 얼마나 본성을 숨기고 살 수 있을 것 같더냐.”

집중하는데….

“봐라. 협의니 정의니 지껄여봐야 네놈은 결국 살….”

…방해가 된다.

서걱―

“큽?!”

그러니까 이것부터 치우고, 다시 절치부심하여 집중을 이어가보자.

*

통증은 없었다.

이미 마기에 먹혀버린 몸이라 통증이 곧 활력으로 치환되는 까닭이다.

하나 대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당사극은 휙 하늘로 튀어 오르는 제 손을 봤다.

직전까지 팔목에 붙어 있던 손이다.

‘…보이지 않았다.’

기파를 느낄 수 없는 몸.

그것은 당사극의 생각보다도 훨씬 큰 약점이었다.

다행히 추가타는 맞지 않았다.

비록 노쇠하였다곤 하나, 오랜 시간 강호를 살아온 그의 몸은 그 속에 밴 경험이 있어 인지보다 빨리 몸을 물렸다.

당사극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멍하니, 그리고 나른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하다.

그런 감상이 치밀던 중, 목리원의 핏빛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 당사극을 향했다.

직후 목리원의 신형이 흐려졌다.

당사극은 기파의 도움 없이 다만 안력으로 그 움직임을 쫓아 팔을 들었다.

까앙!

마기가 검과 부딪쳤다.

그리고 검이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쩌저적―

이미 앞선 공방으로 반쯤 부러져있던 검에 더욱 큰 균열이 인 것이다.

하나, 당사극에게 그것을 기뻐할 틈은 없었다.

꾸드득!

목리원이 직전 잘린 그의 손목을 붙잡아 꽉 조였다.

그러자 절단면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네이노오오오옴!!!”

천독사가 움직인다.

목리원의 사각에서 은밀하게 기어와, 그의 발밑에서 솟아났다.

한데 목리원은 이미 그 기색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당사극의 몸을 지지대로 삼고 뒤로 뛰어올랐다.

“커억…!”

천독사가 허공을 물었다.

당사극은 짜여진 손목을 쥐어 피를 막고, 목리원을 바라봤다.

“하아….”

목리원은 제 손에 묻은 피를 얼굴에 부비며 뜨거운 숨을 뱉고 있었다.

삐죽삐죽 목리원의 입꼬리가 솟았다.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완전히 천살성에 먹힌 모양새였다.

순간 차오르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감정이었다.

분명 경지의 차이도 뚜렷하고 공력의 차이는 더욱 극심할진대, 당사극은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 속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저 종으로서의 생존본능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포식자를 만났다고.

하나, 당사극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크흐흐…!”

그저 웃었다.

‘협의는 무슨!’

그에게서 기파를 느낄 수 없는 몸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갈증, 살의가 느껴진 까닭이다.

툭, 툭.

목리원이 균열 난 검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모래가 툭툭 튀어 올랐다.

킥킥대며 당사극을 바라보던 목리원은, 이내 검지 끝에 묻은 피를 핥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구나!”

천독사를 등 뒤로 둘렀다.

강기 비늘이 솟아난 독사는 목리원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냈다.

째애애앵―!

고개 돌린 당사극은 검날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희열이었다.

툭, 하고 목리원이 허공에 튀어 오른 검날을 잡아 당사극에게로 던졌다.

당사극은 황급히 손이 없는 팔을 들었고, 그 팔뚝에 검날이 꽂혔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기분 또한 나쁘지 않았다.

“보아라!”

당사극은 폭소하며 천독사를 조종했다.

그리하며 목리원에게 달려들었다.

“결국 살초다!”

휘두른 주먹을 목리원이 피한다.

그리하며 손을 뻗는다.

뚜두둑―

자신의 텅 빈 눈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그대로 앞으로 당겨 무릎으로 안면을 찍었다.

천독사가 입을 벌리는 쪽으로 당사극을 밀었다.

당사극은 당하면서도 외쳤다.

“공세는 악독하다!”

천독사의 머리를 돌린 당사극이 뒤차기를 하자, 목리원이 반만 남은 검으로 그의 발목 힘줄을 잘랐다.

그리곤 검자루로 으직, 무릎을 으깼다.

“결국! 옳은 것은 힘이란 말이다!”

또 천독사를 운용하려던 순간, 목리원이 파리를 내쫓듯 검을 휘둘렀다.

형도 식도 없는, 오로지 살인의 효율을 위해서만 지어낸 투로였다.

서걱―

당사극의 발목 아래가 아예 달아나버렸다.

이후로도 공세는 일방적이었다.

무술, 심계, 경험, 공력 차이.

그 모든 것이 빛바랬다.

그저 찢기고 부서지고 베인다.

후발선제의 묘리를 이용해 투로를 읽어내려 해도 불가능했다.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 움직임을 제한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는 투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귀가 본능적으로 깨우치는 살로는 인간이 지은 무술로는 상대할 도리가 없는 종류였다.

서걱―

귀가 잘린다.

서걱―

코가 베인다.

서걱―

겨드랑이 아래, 허벅지 위, 뺨의 가죽은 얇은 포로 뜨이기 시작한다.

꽈직―

고간을 짓밟아 터뜨린다.

당사극은 고통이 없기에 다만 그런 사실만을 나열했다.

폭소하며 목리원을 바라볼 뿐이다.

마치 이 행위가 놀이라도 되는 양 즐기는 그 모습을.

순수하게 떠올리는 쾌락을.

입매가 다 찢어질 정도로 길게 짓는 미소를.

“끄, 하하하….”

서걱―

성대가 도려내진다.

숨이 막혔다.

한데도 죽음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검을 휘두른 건지 동맥은 피해 움직인 검이 성대만을 도려낸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사극은 웃었다.

‘보아라 목선오. 저 모습 어디에 협의가 있단 말이냐.’

스스로의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되어 웃었다.

저 살귀가 더 날뜀으로써, 목선오가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기에 웃었다.

‘협의라는 것은, 결국 신기루와 같은 허상일 뿐이다.’

장난감처럼 굴려지며 사지근맥과 혈도와 단전이 죄다 부서지고 있음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증명이 가능한 것은 힘뿐이라는 말이다.’

이젠 소리조차 없는 폭소가 이어졌고, 살귀는 드디어 놀이에 질린 듯했다.

털썩―

당사극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목리원은 쩌억 하품을 했다.

흥미가 가득 돋았던 얼굴은 이제와 지루함만이 남았고, 당사극을 툭툭치는 발길질에선 귀찮음만이 가득했다.

‘베어라.’

입모양으로 그리 말했다.

죽는다.

패배한다.

그따위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기를 폭사한 순간 죽을 목숨이었다.

살귀를 일깨운 순간 달아날 목이었다.

그러니 미련은 없다.

증명하고자 한 것을 이뤘으니.

‘베어라.’

살귀는 물끄럼 자신의 입술을 보다, 이내 반만 남은 검을 들어 올렸다.

‘베어라.’

저것이 떨어지면 끝.

그런 생각에 최후의 불씨가 타오르는 순간.

멈칫―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당사극의 표정이 멍해졌다.

“스으….”

외치려 했으나 이미 성대가 달아나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나온다.

기어 저 검 앞으로 가보려 했으나, 근맥은 이미 모두 잘려있다.

당사극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무얼 하는 게냐!’

왜 망설임을 담느냐.

왜 전처럼 즐기지 않느냐.

‘왜!’

표정을 찌푸리느냐.

쉬익 쉬익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도 닿지 않는다.

그 순간에도 목리원의 망설임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이젠 주춤하는 뒷걸음질도 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아.”

그의 눈에 이지가 맺혔다.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었다.

당사극은 분노했다.

‘네이노오오옴!!!’

웃기지 마라.

이런 결말을 보기 위해 내던진 목숨이 아니다.

[죽이란 말이다!]

당사극은 남은 공력을 짜내 전음입밀을 시도했다.

닿은듯했다.

목리원의 몸이 움찔 떨렸으니.

하지만, 답은 원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싫소.”

툭―

목리원이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손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려는 것인지 소매가 다 닳도록 얼굴에 비빈다.

그리하며 또 뒷걸음질 친다.

“…나는, 안 할… 것이오.”

후회가 느껴진다.

억누르는 듯한 울음기가 느껴진다.

그것이 당사극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살귀가! 이제와서! 그 끝 하나를 못 지어서!]

당사극은 공력을 더 쥐어 짜냈다.

기파로 몸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그 움직임에 핏물이 더욱 쏟아져 내린다.

그것을 무시하고 손을 뻗었다.

그의 검을 쥐기 위해, 살귀를 완성하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하나, 불가능했다.

후두둑―

그것보다 먼저 몸이 무너져내렸다.

당사극은 허망한 얼굴로 녹아내리는 제 팔을 바라봤다.

‘아, 이게….’

초월에 달한 독이 몸을 상하게 한다.

마기 탓에 고통이 사라져 몸의 경고를 듣지 못했다.

예견된 결말이었다.

후두둑―

산에 절여진 것처럼 점액질이 되어 몸이 녹아내리는 와중.

당사극은 고개를 들어 목리원을 바라봤다.

풀썩 주저앉은 채로 우는 모습에선 직전의 그 악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옳았어야 했는데.

이게 아닌데.

그리 되뇌며 발을 뻗어보지만.

철푸덕―

녹아내린 살점 위로 몸이 쓰러질 뿐이었다.

팔과 다리가 사라졌다.

허리가 녹아내리고 어깨가 흐물흐물해진다.

이제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나는… 살귀가 되지 않을…!”

목리원이 무어라 중얼거린다.

당사극은 끝을 느꼈다.

그때서야 오는 것은 주마등이라.

우습게도, 비추는 것은 오로지 한 장면이었다.

-아버지! 화서만은 안 됩니다!

-가주님! 제발!

아들과 며느리가 보인다.

그날 어찌했더라.

당사극은 곰곰이 생각을 이었다.

‘…내가.’

옳다 말했다.

그른 것을 타파하겠다 말했다.

그릇된 것은 협의라는 허물에 집어삼켜진 그들이라 일렀고,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는 것에 죽음을 방관했다.

그랬으니.

그렇게까지 했으니.

‘내가 옳아야 하는데….’

후두둑―

몸이 녹아내린다.

목 아래가 다 녹아내리고 턱이 녹아내린다.

당사극은 시야가 암전하는 것을 느꼈다.

생애의 끝에서야.

‘나는….’

그는.

‘…옳았느냐?’

뒤늦은 의문을 품었다.

*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검을 내리긋고자 움직이는 순간,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몸 전체를 뒤흔드는 살심에 당황하던 중, 당사극이 녹아내렸다.

쿵― 쿵―

심장이 가쁘게 뛴다.

아직 채 떨쳐내지 못한 손끝의 감각이 몸을 진동시킨다.

눈시울이 아주 뜨거웠는데, 그 탓에 온 세상이 붉게만 보였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던 순간이었다.

“…목 소협?”

등 뒤, 저 멀리서 당화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리원은 흠칫 놀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

당화서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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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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