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5 십삼장 - 사천, 결 (16)
* * *
당사극의 눈 흰자위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호흡마다 보랏빛으로 독무가 뿜어져 나오고 휘청거리던 움직임은 사라졌다.
“자, 언제까지 여유로울 수 있는지 보자꾸나.”
당사극의 말에 목리원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마공에 손을 댄 것이오?”
“힘을 추구한 것이다.”
쿵!
“그 힘이 곧 정의가 되는 까닭이다.”
당사극이 힘차게 진각을 딛자 건물 잔해가 들썩였다.
천독사는 직전보다 더욱 까맣게 물들어 이젠 기파가 아닌 실제 뱀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저리도 망가뜨린 것인가.
그 힘이 무엇이기에 저렇게까지 갈망하는 것인가.
목리원은 그리 의문을 던지면서도 동시에 답을 떠올렸다.
‘결국 강자존이구나.’
이 강호의 생리는 그것으로 비롯되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일 터다.
‘그러나.’
그 속에 협의가 없음이니 당사극은 틀렸다고.
목리원은 있는 힘껏 그를 부정할 셈이었다.
“추하오. 독마(毒魔).”
그를 그리 칭함으로써.
*
누구도 신호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은 동시에 쏘아져 나갔다.
거대한 독사와 묵색의 파도가 부딪친다.
하나, 정면승부는 너무나도 명확한 독사의 승리였다.
째애애앵―
유형화한 묵색의 기파가 스러지며 파열음이 일었다.
뱀은 더 뻗어나갔고, 목리원은 재빨리 몸을 물렸다.
하나 이전처럼 쉬이 피하진 못했다.
팔뚝에 비늘이 스쳤다.
‘빠르다!’
또한 강하고, 거대하다.
과연 초월지경에 이른 과거가 헛것이 아니라는 걸까.
하지만 목리원으로서도 믿을 구석은 존재했다.
‘여전히 기파를 감지하지 못한다.’
감각기관 어딘가가 영구히 상해 억지로 이용하는 것조차 못하는 것일 터.
또한 살기와 함께 더해지기 시작한 마기는 목리원의 감각을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해볼 만하다.’
마기를 먹을수록 몸은 더욱 활력을 띤다.
살기가 진할수록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영락한 초월이라 감히 저항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 전력으로.’
목리원의 몸에서 기파가 흩어져 나왔다.
그를 이루는 공간 전체를 점했다.
사아아―
유성만리(流星萬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며 깨우친 심득이 몸을 일으켰다.
“고작!”
당사극이 외친다.
그가 주먹을 쥐자, 뱀의 비늘 위로 결정이 돋아났다.
얼핏 봐도 수천수만 개는 되어 보이는 비늘 전체가 제각기 빛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목리원은 저 수를 알았다.
‘강기(罡氣)!’
초월에 달하여야 겨우 완성할 수 있다는 기공의 끝.
과연 십강에 오른 이름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강기를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강기를 순식간에 저리 많이 생성해내는 기량은 목리원으로서도 아득함이 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결정화된 기파는 맞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다.
뱀이 쏘아져 나온다.
목리원은 빙글 몸을 돌리며 뱀의 턱주가리를 쳐올렸다.
뱀의 머리가 위로 튀어 올랐으나, 목리원으로서도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쩌적―
검날에 금이 갔다.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분명 흘렸을진대!’
힘의 방향을 모두 뒤틀었을진대 닿는 것만으로도 이런 충격을 받는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실책이었다.
“어딜 한눈을 파는 것이냐.”
당사극이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기동력을 다시 얻은 그는, 목리원의 인지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당사극이 손을 뻗어 목리원의 명치에 댔고, 기를 발출했다.
꽈아아아아앙―!
목리원의 사고가 일순 끊겼다.
쿨럭―
피가 토해지는 동시에 사고가 돌아왔으나 몸은 이미 하늘에 붕 뜬 상태.
정신을 붙잡은 목리원의 눈에 당사극이 보였다.
그가 손을 휘젓자 뱀이 고개를 들었다.
‘피해야 한다!’
목리원은 발바닥에 기를 집중했다.
그리고 터뜨렸다.
투웅!
불완전한 허공답보(虛空踏步)다.
다행히 입을 쩍 벌려오는 독사는 피했지만 착지에 문제가 생겼다.
콰르릉, 하며 목리원은 잔해더미 위로 떨어졌다.
“그 잘난 협의는 끝이더냐?”
당사극이 물었다.
희열, 경멸, 오만.
그런 류의 저열한 감정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의 저열함은 이어 말했다.
“봐라. 힘없는 정의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네놈은 그리 협의를 부르짖었음에도 끝내 패배하고 있지 않느냐.”
“….”
“힘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 그릇되고 오만한 감정은 이내 질척한 오물로 화해 목리원의 피부 위로 닿았다.
목리원은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숨을 몰아쉬며 독기를 몰아낸다.
다행히, 그 일만큼은 전보다 쉬웠다.
독기에 스며든 마기가 독을 중화하는 기형적인 현상을 일으킨 까닭이다.
‘출혈이….’
작지 않다.
이마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왼쪽 시야를 가린다.
풍겨오는 혈향에 심장이 쿵쿵 뛴다.
살성이 날뛴다.
“변명해보지 그러느냐.”
당사극의 눈이 부릅 뜨였다.
흰자위가 온통 까만 눈은 께름칙함을 불러일으켰으나, 동시에 달콤하게도 느껴졌다.
“못하겠지. 네놈도 똑같으니까. 아니, 네놈이 아닌 이 강호 전체가 다 똑같은 것들이니까!”
“…아니오.”
“아니기는!”
독사가 또 입을 벌린다.
그 가운데로 독기가 응축되었는데, 목리원이 보기엔 쏘아내려는 듯한 자세였다.
목리원은 흐린 정신을 꽉 붙잡고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하며 발을 놀렸다.
직후 독기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피했다.
콰앙!
목리원은 등 뒤에서 폭발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나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당사극을 향해 달려갔다.
‘왼쪽 가슴, 심장을 노리는구나.’
당사극의 살기가 그 위치를 찌릿하게 한다.
내어주는 척, 목리원은 가슴을 일부러 드러냈고 당사극은 기꺼이 응했다.
품에서 비도를 쏘아냈다.
물론, 허수였다.
당사극의 살기가 닿는 위치가 오른쪽 어깨로 바뀌었다.
목리원은 허리를 튕겨 몸을 뒤틀었다.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옷깃이 잘려 나갔다.
‘이때다!’
목리원이 기파를 터뜨렸다.
당사극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꽈아아앙!
묵색의 운무가 공간을 까맣게 물들였다.
성련의 빛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화아아악―
검 위로 묵색의 기파가 덧씌워진다.
공간 위로 하얀 점들이 우수수 박히기 시작한다.
유성칠검(流星七劒)의 4식, 십이지검(十二之劒)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수를!”
당사극은 분노했다.
“네놈이 그놈을 따라한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발작하듯 소리친 당사극이 기파를 터뜨렸다.
“틀렸다! 네놈은 이기지 못한다! 아니, 그놈이 온다 해도 지금은 나를 이길 수 없다!”
당사극이 주먹을 들었고.
“내가아아아!!!”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네놈들은 벗어내지 못한 허물을 벗은 까닭이다!!!”
꽈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독기가 몰아쳤다.
하나 목리원은 멈추지 않았다.
읊조리며 달렸다.
“틀렸소.”
목리원이 아는 성련의 무학은 협객의 무학이다.
협객의 무학은 악인에게 지지 않는 무학이다.
그러니 목리원을 지지 않을 것이었다.
‘다음을.’
휘릭,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대로 허리 뒤로 당기며 기파 위로 수놓은 백색의 별들을 조율했다.
-유성칠검의 후반 4식은 기공의 영역에 걸쳐있다. 4식인 십이지검은 절정의 경지에서도 흉내는 가능하나, 5식부터는 불가하다. 온전한 기파의 조율이 필요한 까닭이다.
‘빨라져라.’
백색의 별에 속력을 더했다.
‘더욱 빨라져라.’
백색의 별에 꼬리를 달았다.
‘더욱 더.’
그리 꼬리를 만든 별들이, 이내 궤도를 따라 돌며 무수한 고리로 화했다.
-5식은 순환의 묘리를 담은 검이다. 선조께서는 칠주야를 한자리에 앉아 밤하늘을 지켜본 후, 그 움직임이 운기행공의 이치와 닮아있음을 깨닫고 이 5식을 만드셨다.
고리들을 이루던 별들이, 이윽고 당사극이 있는 자리로 일제히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목리원이 역수로 쥔 검을 휘둘렀다.
유성칠검(流星七劒) 5식, 성야일주천(星夜一走天).
묵색의 공간에 당사극을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일었다.
오로지 대상의 소멸만을 바라는 잔혹한 소용돌이였다.
꽈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당사극의 전신이 알갱이 진 백색의 별에 두들겨진다.
어떤 것은 피부 위에서 튕겨 나갔고, 또 어떤 것은 살갗을 파고 들어 그 속에서 터진다.
그렇게 핏물과, 살점과, 독기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분명 통했다.
이것은 경지의 구분을 떠나 인간의 몸 자체를 상하게 하는 수법이었다.
한데도.
“끄흐흐…!”
당사극이 고통 따윈 느끼지 못한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푸욱―
손으로 검날을 잡았다.
*
당사극은 이 무학을 알았다.
차오르는 것은 기시감이었다.
[승! 검군(劒君) 목선오!]
나이 서른아홉에 참여한 청룡 비무회의 8강, 그 상대로 나온 목선오가 바로 이 수로 자신을 이겼다.
어찌 그리 파멸적인 무공으로도 급소만은 모두 피해 간 것이, 목리원의 수는 그날을 선명히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유성칠검의 5식, 성야일주천이라 하오.”
“….”
“과연 당문의 미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이시구려. 상대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포권하며 시원스레 웃던 모습이 재차 새겨진다.
그를 올려다보며 비참함에 떨어야 했던 자신도.
그를 보며 환호성을 내지르던 추악한 무림도.
그 모든 것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다.
그의 말에, 당사극은 내뱉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다음에 또 상대를 부탁해도 되겠소? 너무 즐거웠던 터라.”
무엇이 즐겁다는 것이냐.
“독공에서 미학이 느껴지더구려. 비도와 함께 쏘아내며 예기를 더한 마지막 초식은 간담이 다 서늘했다오.”
감히 네가 무엇이기에 나를 평가하는 것이냐.
“당신은 꼭 초월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소. 함께 강호에 협의를 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해봅시다.”
감히, 네가 무엇이기에, 협의를 입에 담느냐.
…아직도 전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것은 혈사가 끝나던 순간의 일이었다.
“…독왕, 내 떠나기 전 한마디만 하겠소.”
마지막까지.
“협의 없는 힘은 공허할 뿐이오.”
그는 살귀를 살리며 그딴 말을 지껄였다.
당사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협의란 결국 힘을 포장하는 허물에 불과했다.
무학이란 그 본질부터가 살기로 이뤄진 악의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협의는…!’
그 무엇을 가져다 붙인다 한들, 공허한 아우성이다.
증명할 것이다.
증명할 수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무공이다.”
바로 눈앞의 이 살귀를 통해서.
“어떻게….”
“목선오보다 못하다. 그놈의 수를 따라한다고 한들, 네놈은 하수다.”
당사극은 놀란 목리원을 보며 히죽 웃었다.
스스로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빈손에 받았다.
“웃기지도 않는 무공에 또 웃기지도 않는 게 있다.”
줄줄 흘러넘칠 정도로 피가 흘러나온다.
만족스럽다.
“바로 네놈의 협객 놀이다.”
촤아아아악―
목리원의 얼굴에 피를 뿌렸다.
생을 가득 담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피였다.
그 순간의 당사극은 볼 수 있었다.
“보아라.”
붉게 달아오르는 눈동자를.
그 속에서 수축되는 동공을.
가빠지는 호흡과 뜨거워지는 체온을.
“무엇이 협의더냐.”
목리원의 입이 슬쩍 벌어진다.
“무엇이 정의더냐.”
묵색의 기파가 날카롭게 가시를 세운다.
“결국 힘이다.”
살성이 눈을 뜬다.
“그러니….”
내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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