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4 십삼장 - 사천, 결 (15)
* * *
공력은 저릿하다.
살기는 그것보다 더욱 날카로워 가만히 있어도 속이 확확 들끓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목리원은 당사극에게 질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가 초월지경의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렇게까지 당신을 망가뜨린 것이오?”
무공(武功)을 익히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심이다.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내면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다.
분명, 당사극 또한 그랬을 터였다.
언젠가는 천하를 논하는 자리에 서고자 쉼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였을 것이고 그 과실을 손에 쥐어 초월에 달한 것일 터란 말이다.
한데 지금의 그에게선 그런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를 초월로 이끈 부동심도, 공력의 웅혼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하나였다.
“당신은 지금 제 덩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살찐 호랑이 같소.”
둔하고 또 둔하여 발톱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살찐 호랑이의 기세다.
그저 무게로 깔아뭉개는 법밖에 모르는 백치의 공세다.
목리원은 감히 결론 내렸다.
저것은 초월이 아니라고.
당사극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닥치거라.”
“그리도 감정이 흔들리셨소? 그 악업이 그리 당신을 망가뜨린 것이오?”
“닥치라 했다아아!!!”
콰아아아앙!!!
천독사가 목리원에게 쏘아졌다.
하나, 목리원은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세 걸음.
보법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쉬이 공격을 빗겨낼 수 있었다.
“살기조차 지우지 못하시는구려.”
대체 무엇을 노리는지가 공격을 하기 전부터 느껴진다.
“당신은 나를 이기지 못하오. 또한 당신은 이제 초월을 말하지 못하오.”
사실을 말하자면 그랬다.
싸움에 임하기 전, 목리원은 목숨을 걸 각오로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한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너무 쉽다.
차라리 저 염마 오강악이나 검마 연리건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들은 적어도 무공을 사용함에 이지를 숨겨두었다.
아니, 이지를 잃은 순간도 감정을 공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마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공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공을 썼으면 더 강했겠구려.”
“네이노오오옴!!!”
벌떡 일어서려던 당사극의 몸이 고꾸라진다.
“커헉!”
핏물이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망가진 몸이 초월에 달하는 공력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저것은 그의 이전에도 누군가는 겪었던 현상이리라.
당사극은 엎어진 채로 고개만 들어 목리원을 노려봤다.
“겨우, 감히…!”
추악하게 찌푸려지는 얼굴 위로, 텅 빈 눈구멍에서 피눈물이 쏟아진다.
“살귀 따위가 훈계를 하려 하느냐…!”
“살귀가 아니오. 나는 살인을 즐기지 않으니.”
“가아아아알!!!”
당사극이 팔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라? 천살성을 이고서?”
히죽 웃었다.
“웃기지 말거라. 아니, 천살성이 아니라도 네놈의 논리엔 허점만이 가득하다.”
“어디가?”
“무공은 결국 살인을 위한 기술이니까!!!”
쿵!
당사극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 근본이 결국 사람을 헤치는 기술이니까! 그러니 그것을 배우면서 어찌 살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더냐! 어찌 의로움을 표방하느냐! 아느냐? 그것은 추악한 변명이다! 다 똑같은 살귀 주제에 저들만 고고하려 덧씌운 허물일 뿐이다!”
“…마인의 논리요.”
“그렇다면 마인이 옳겠지!”
흠칫, 하고 목리원이 몸을 떨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치켜 뜨였다.
“…정녕 그런 말을 입에 담으려는 것이오?”
스스로의 입으로 백도의 영웅임을 표방하는 이가 어떻게.
그런 의도로 묻자, 당사극은 말했다.
“무엇이 다르더냐. 너와, 검성과, 이 중원 무림과 그들이.”
“무엇이 다르냐니… 당연…!”
“목적을 위해 살인을 한다. 적아를 구분해 아군은 살리고 적군은 죽인다. 따르는 것은 결국 힘의 논리이니! 그 아래 우습지도 않은 명분을 만들었을 뿐이니! 그 본질이 무엇이 다르더냔 말이다!”
당사극의 몸에서 독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느냐? 오래전부터! 정사의 구분이 있기도 전부터! 무림은 피를 양분으로 자라난 숲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제 심장 위로 얹었다.
“나는…!”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울컥 솟아났다.
순간, 목리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틀리지 않았다.”
뿌득―
당사극이 제 심장을 손가락을 후벼 팠다.
그 순간 폭사했다.
‘…마기.’
지독한 마기가.
*
먼 과거, 당사극은 아직 그가 소가주일 적 아버지인 당진벽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극아, 무엇이 천하를 움직이더냐.”
끝끝내 초월에 달하지 못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사내의, 비애가 서린 말이었다.
“힘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의 말이었다.
“천하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힘이다. 이 무림은, 애초에 피를 양분으로 자라난 숲인 까닭이다.”
“예, 가주님.”
“그러나 사극아.”
의롭고자 했던 이의 말이었다.
“피를 양분으로 삼았으되, 감히 의롭고자 함이니 그것이 무(武)이자 협(俠)이오, 지금의 무림이다. 그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다오.”
선대의 당문은 초절정의 무인조차 하나밖에 배출하지 못했을 정도로 몰락했었다.
이유인 즉슨, 당진벽의 선대 되는 조부때부터 만독불침의 연구가 중지된 까닭이다.
더욱 완벽한 독과, 그 피독에 대한 연구를 총망라한 유산이 금해지니 당문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도 무림의 오대세가.
그런 이름을 달면서도 세가 열악하니 공적인 자리에서의 당사극은 언제나 홀로였다.
하물며 시기가 그랬다.
평화에 찌든 중원 무림은 하나같이 제 배를 불리기 바빠져, 서로를 향해 이빨질을 해대기 바빴다.
와중 들려오는 말은 당사극을 후벼파는 형태였다.
“사천의 주인이 사라졌군.”
“푸흐흐, 애초에 주인인 적은 있던가? 그곳에 있는 구파만 해도….”
“예끼 이 사람아! 거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실례가 되는 경우가 있다네!”
“사천의 주인이 사라졌다 말한 주제에 그러고 싶은가?”
“으응? 아이쿠! 난 모르는 일이네만?”
선대의 당문은 더 이상 사천의 주인이 아니었다.
당문은 그저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무림에 기생하는 해충이 되어 있었고, 영광되었던 과거는 그런 상황에 더 무거운 짐이 되어줄 뿐이었다.
선대의 가주, 당사극의 아버지인 당진벽은 그런 강호를 헤쳐 나간 사내였다.
“그럼에도 사극아. 우리는 당문이다. 사천의 맹주이자 독과 암기의 주인. 그리고 비경의 수호자인 당문이다.”
한때 그 말을 믿었다.
“초군아, 우리가 해야 한다. 당문을 다시 위대하게, 그리 만들어야 한다.”
“예! 소가주!”
다행히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와 그 전의 세대에도 움트지 않았던 재능이 당사극에겐 있었다.
사천당문을 다시금 사천 제일의 문파로 재능이었다.
하나, 천하를 논할 재능은 아니었다.
[승! 검군(劒君) 목선오!]
별은 너무나도 찬란했다.
아니, 그 별뿐만 아니라 하늘을 수놓던 모든 것이 찬란했다.
백도 무림의 황금기.
당사극은 그런 시대의 잔물결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초월이다. 다음 경지를 노린다면 승산이 있을 터다!”
초월을 노렸다.
감히 위대한 초인의 경지를 넘봤다.
그러지 않았다간 이 몰락을 되물림할 것이 뻔했기에.
너무나도 찬란한 별빛에 가려지기만 할 것이 뻔했기에.
하나 어디 초월이 쉬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던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와중 당진벽은 사망했다.
우스운 점은 그런 와중에도 당문을 찾은 이가 늘었다는 것 정도일까.
겨우 다다른 초절정의 경지에, 강호는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따스한 면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주의 타계에 깊은 유감을 표하오.”
“의로운 분이셨소. 우리는 가주를 잊지 않을 것이오.”
지독한 양면성이었다.
고작 힘 하나로 이리도 달라지는 것은.
그 양면성은 더더욱이 지독해져, 당사극이 초월지경에 달하는 날 절정을 찍었다.
“사천의 맹주를 뵙소!”
“강호 무림의 흥복이오!”
무림은 이제 더 이상 당문을 무시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당사극을 무시하지 못했다.
모두가 눈을 내리깐다.
또한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앞다툼 한다.
당사극의 겪었던 멸시는, 그날 이후 중원 무림에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당사극은 그 양면성에 치를 떨면서도 무림에 남았다.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후대도 위대해야만 했기에.
그리해야만 이 강호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기에.
“가주! 전란이오!”
혈사는 그런 중 찾아왔다.
당사극은 이 혈사를 끝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자 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영광만을 남겨, 후대에 넘기고자 했다.
…목선오만 아니라면 그리됐을 터였다.
“그걸 살리겠다고?”
“그렇소.”
“검성, 그 뜻을 이해는 하고 말하는 겐가? 강호는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질 것이네! 자네의 그 알량한 양심 때문에!”
“내 이름을 버리겠소. 이 공로 또한 당신들께 돌리겠소.”
“그게 문제라는 말일세!”
다시 이르길, 백도 무림의 황금기였다.
와중 터진 혈사는 당문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 마지막 기회였다.
이대로 끝난다면 그리 되리라.
천하제일을 노렸으나 안타깝게 십강에 그쳤다.
하지만 그로서도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당사극은 이 혈사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단순한 공로로 따지자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란 말이다.
한데 봐라.
이대로 공로를 나눠 가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문의 공로가 빛바랜다.
목선오가 얻어낸 전공은 당사극의 것과 그리도 아득한 차이가 있었다.
실로 시대의 천외천(天外天)이라.
그의 것을 아홉이서 나누는 순간, 아직 세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당문은 많은 공로를 소화하지 못할 테고 결국 시대의 말석으로 밀려날 게 뻔했단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다 여기기에 포기할 수 없소.”
예상은 들어 맞았다.
목선오의 공로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우습게도, 혈마를 벤 자리에 최전선에 있었던 사성육왕이 아닌, 뒷방석에 앉아있던 이들이 세에 맞춰 그것을 나눠버린 것이다.
삼대는 영광되게 만들 수 있었던 전공이 바래져, 또 다시 당문은 몰락의 위기 앞에 섰다.
자신이 죽는다면 후대는 또 어린 날의 자신과 같은 모멸을 받으리라.
당사극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초군아, 만독불침의 연구를 재개한다.”
“가, 가주…!”
“후대를 위해서다.”
길고 긴 시간 이어질 영광을 위해서.
이 추악한 강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만독불침의 연구를 재개했다.
과정에서 자식을 죽이고 손녀를 괴롭게 만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들도 결국은 자신의 뜻을 이해할 터였다.
강호의 비정함을 알게 될 터였다.
하나, 그리했음에도 불안했다.
시간이 모자랐던 까닭이다.
초월지경의 독이 와중에도 시시각각 자신을 갉아먹어, 당화서를 완성하기 전에 목숨이 스러질 것만 같았던 까닭이다.
하여, 당사극은 혈사의 날 우연히 얻게 되었던 마공을 펼쳤다.
역천혈기공(逆天血氣功).
가진 내력을 모두 마기로 치환하는 마공.
이것이 있다면 만약의 상황에 제 목숨을 더 늘릴 수 있으리라.
이지야 흐려지겠지만 대수겠는가.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당진벽의 얼굴이었다.
당사극은 그날 아비에게 물었다.
‘아버지. 의롭고자 한끝에 무엇이 남았습니까.’
적어도, 당사극이 알기엔 없었다.
그의 죽음을 빛낸 것은 시대의 물결에 올라탄 자신의 재능이었다.
이리 당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찬란한 자신의 재능이었다.
‘아버지. 이 무림은 오로지 힘만을 법도로 삼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무림이 생겨난 그 날부터.’
무림은 그 주인 되는 검날의 냉기만큼이나 차가웠다.
시린 냉기를 몰아내려면 뜨거운 피를 뒤집어 써야만 하는 세계였다.
의협심이라는 허물로는 감출 수 없는 본질이 그것이었다.
그러니, 당사극은 감히 당진벽의 뜻을 거부할 터였다.
‘의로움으로는 천하를 얻지 못합니다.’
당문의 치욕을 지우지 못합니다.
‘후대를 지킬 수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모멸만을 물려줄 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이미 피로 쓴 역사 위에, 몇 방울 피를 더한다고 무엇이 그리 달라지겠습니까.
선조들이 옳았습니다.
‘결국….’
강호 무림은, 피를 먹는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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