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22화 (122/334)

EP.122 십삼장 - 사천, 결 (13)

* * *

당화서는 가주전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문은 마치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활짝 열려있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당화서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못 들어갈 이유야 있을까.’

안쪽이 어둡게 내려앉은 공간에 들어서고, 직후 당화서는 마주했다.

“왔느냐.”

지난번과 같이 흉측한 몰골을 한 당사극을.

“앉거라.”

당사극이 자리를 권했다.

당화서는 따르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가주, 이제 모두 끝입니다.”

툭―

당화서가 일지를 바닥에 던졌다.

챙겨둔 것 중 하나였다.

“당문이 이리 썩어빠진 곳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아무리 제게 악독했다 한들 백도 무림의 기둥으로서 선을 지킬 줄 알았습니다. 한데 이게 뭡니까?”

“…당문이 흘려온 땀의 기록이지.”

“누군가의 피의 기록이겠지.”

당화서의 어조가 더욱 서늘해졌다.

경멸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고, 눈빛 또한 그랬다.

당화서는 이 순간조차 눈곱만큼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당사극이 실로 경멸스러웠다.

“하려는 말은 그게 끝입니까? 정녕 제게 못난 모습만 보일 심산이십니까? 어찌 끝까지 그러십니까.”

당사극은 가만 일지를 바라봤다.

흉측하게 무너져내린 얼굴에선 역시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고, 그에 따라 당화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답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사실, 당화서는 이 순간조차 그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놈의 혈육이란 게 무엇인지, 무심코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 당사극은 당화서의 마음에 응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중요하더냐? 고작 그 몇의 희생이?”

당화서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뭐라 했습니까?”

“당문 전체를 위한 일이었다. 이 가문을 중원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선조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염원했던 꿈이었을진대. 이제야 결실을 맺은 꿈일진대 알지도 못하는 몇의 희생이 중요하더냔 말이다.”

이게 정녕 인간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아니, 백도 무림의 고수라는 이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지금 당사극이 하는 말은 꼭….

“…흑도 같습니다. 아니, 마인 같습니다.”

힘을 위해 인간성을 희생하는 마인 같았다.

당사극은 분노하지 않았다.

“힘으로 권위를 쟁취한다는 점에서 그 무엇이 다를까. 모든 무인은 결국 허물만 다를 뿐, 결국은 다 같은 것들이다.”

“변명까지 추악하군요.”

사아아―

당화서가 독기를 풀어헤쳤다.

“자수하십시오. 그리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제압해 맹에 끌고 가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어찌 자수를 하겠느냐.”

“목적을 위해 살아있는 이를 해했다는 점에서 이미 죄입니다.”

“그럼 너 또한 죄인이겠구나. 그 과실을 취했으니.”

“어디까지 추해질 생각이신지.”

당사극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당문을 네 손으로 지우겠다는 것이냐.”

“필요하다면.”

“네가 나고 자란 곳이다.”

“원하지 않았고, 매 순간이 끔찍했습니다.”

“그럼에도 고향이다.”

“얼버무릴 심산이십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당사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나는 너를 이해하려 했다. 어린 마음에 힘들었겠지. 강호의 이치를 알기엔 당장이 너무 아팠겠지. 어찌 모르겠느냐. 독기에 몸이 절여지는 감각은 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을진대.”

“….”

“하여 기다렸다. 네가 출가를 한 날에도 부디 내 뜻을 깨우치길 바라며 잡지 않았고 강호를 주유하는 중에도 최소한의 간섭만 했다. 맹으로 향하고자 할 때는 드디어 네가 강호의 민낯을 보리라는 생각 또한 했었다.”

당사극은 마침내 한쪽만 남은 눈을 떴다.

“한데 이것이구나. 끝끝내 너는 이해하지 못했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신이지.”

당화서는 더 이상 그를 가주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정의 없는 힘을 부르짖는 당신뿐입….”

“그 정의가아아아!!!”

화아아아아악―!

독기가 터져 나왔다.

당화서의 걸음이 주춤 물러났다.

한껏 뜨인 눈으로 바라본 당사극의 얼굴은 흉신악살과도 같았다.

“정의가! 힘이 있어야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쿵!

내딛는 걸음에 전각이 진동했다.

“이 무림의 야만성은 강자의 말만을 옳다 여긴단 말이다!”

그의 분노에 기파가 찢기듯 진동했다.

“아느냐? 당문은 단 한 번도 정의로웠던 적이 없었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그런 이유로 악이었단 말이다! 그리도 오랜 시간 백도 무림에 종사했음에도! 꼬리표처럼 매달린 것은 독과 암기나 쓰는 비열한 문파라는 오명이었단 말이다!”

추악하다.

저 몰골로 찌푸린 얼굴도.

주장하는 바도.

그리고 터져 나오는 기파도.

그런 중에도 그 기색에 절절함이 가득해, 당화서는 역겨움을 느꼈다.

“말이 되느냐? 얼마나 더 의로워야 하느냐! 초월에 달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리는 이 천명을 이고도 백도에 남고자 했을진대! 얼마나 더 희생해야 하느냔 말이다!”

“….”

“그러니 힘을 좇는 것이다! 그 천명을 극복해 당당히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강호에 우리가 있음을! 이 당문이 그리도 오랜 시간 모욕을 감내해 왔음을!”

노인의 아집은 말한다.

“그렇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그것에 당화서는 답한다.

“…끝까지 변명이군.”

“뭐라?”

"변명이란 말입니다."

우습지도 않다.

당사극은 독의 왕이라는 별호가 너무 아깝게 느껴질 소졸이었다.

그렇지 않나.

당사극의 말은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당문이 멸시를 받았던 것은 백도에 막 편입된 1대 때의 일이었다.

힘이 있어야만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은 흑도의 사상이었다.

힘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또 어떤가.

저것은 마인의 주장이었다.

‘추하다.’

저리 추하게 무너진 과정을 당화서는 알 것만 같았다.

아마 탐욕에 근거를 만들려 한 까닭일 터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 위로 이성을 덮으려 하니 그 간극이 저런 추악함으로 완성되어버린 것일 터다.

당화서는 멍해진 당사극에게 말했다.

“그 모욕을 직접 감내하셨습니까? 아니지, 당문은 근 몇백 년 간 언제나 성세를 이루었으니. 또한 독과 암기나 쓰는 문파라는 오명은 이미 뒷말이 된 시대니 분명 아닐 텁니다.”

그는 다만 스스로가 힘에 욕심내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저 그 역사를 이유로 들고 싶은 겁니다. 가문의 숙원이라는 번지르르한 이유가 있어야만 덜 추해질 테니.”

“…그만.”

“왜, 나를 만독불침에 이르게 해 초월지경으로 이끌면 속이 좀 후련할 것 같덥니까? 본인이 독공을 지배했다는 생각이라도 들 것 같덥니까?”

당화서는 조소했다.

그의 추악함에 경멸을 담아서.

“웃기지도 않지. 결국 초월에 오르는 것도, 독공을 정복하는 것도 나일진대.”

“그만하라 일렀다!”

“덤벼보십시오.”

당화서는 숨을 후 내뱉었다.

초월지경의 독.

예상대로 지독했으나, 피해는 없었다.

그저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는 정도에 그친 후엔 곧장 공력이 되어 힘을 더해주는 것이다.

기량에선 떨어질지 모르나, 그것조차 미비할 터다.

초월지경의 무인 독왕 당사극.

그는 더 이상 위대하지 않았다.

독기가 그의 몸을 모두 갉아 먹은 까닭으로.

“그 웃기지도 않는 추악함을 내 손으로 끝내드리겠습니다.”

당사극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멎었다.

이내 그가 말했다.

“…오만방자한 것.”

한쪽만 남은 눈이 번들거린다.

그의 독기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래, 내 차라리 너를 잡아다가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해야겠구나.”

예전처럼 말이다.

그리 말한 당사극이 이어 손을 휘둘렀다.

“고작 절정에 오른 정도로 기고만장하니 얼마나 오만하더냐.”

순간, 칠흑의 독무가 아주 작게 뭉쳐졌고.

“초월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는 아둔함을 후회하거라.”

굉음과 함께 폭사했다.

꽈아아아아아앙!!!!!

가주전이 무너져내렸다.

*

초월지경(超越之境).

현 강호 무림에 단 열 명만이 도달한 경지임과 동시에 그들이 모두 전성기를 지나며 근 십몇 년간 누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한 경지다.

그렇기에 그 경지에 대한 의견은 언제나 분분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손가락 하나로 산을 밀어버리는 거력일 것이오! 인간이 무(武)를 갈고 닦아 극에 달한 경지이니 그 정도는 하지 않겠소?”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에이,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공력으로 하는 일이네. 나는 그것이 그리 대단치는 않으리라 본다네.”

“하지만 혈사 때의 일을 들어보면….”

“과장이지 과장! 다 알만한 사람이 뭘 그러나!”

이것은 근 십몇 년간, 혈사를 겪지 않고 그저 이야기로만 그들의 업적을 전해 들은 이들 사이에선 끊임없이 이어져 온 언쟁이었고, 도통 풀릴 길이 없어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던 언쟁이었다.

그리고 그 답을 아는 이가 있었다.

-음? 초월지경으로 할 수 있는 것 말이냐?

-네! 스승님은 초월지경의 무인이잖아요! 저도 그 경지에 다다르면 뭘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바로 목리원이었다.

어린 날의 목리원이 들은 답은 그랬다.

-무인마다 다르다.

-네?

-익힌 무공의 특성과 그 기의 성질에 따라 초월지경의 무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럼….

-이 스승이 할 수 있는 일과 원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다를 게란 말이지.

목리원은 오늘에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꽈아아아아아앙!!!!!

막 오르려던 가주전이 통째로 무너져내린다.

그 폭발로 인한 잔해가 온 사방에 운석처럼 떨어져 내린다.

순간 느껴지는 기파의 농도와 무게감에 전신의 감각이 비명을 지를 정도였으며, 속에선 위액이 역류할 것만 같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분명한 독기였다.

목리원은 ‘흡!’하고 숨을 멈췄다.

‘이것이….’

초월지경의 무인.

분명 당화서에게 듣기로 그의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몸이 아닌 기공으로만 일으킨 현상이라는 것일 터다.

다만 기파로 건물을 다 무너트리다니.

목리원은 그 아득함에 경악하던 중, 돌연 무너져내리는 건물 속에서 저 멀리 날아가는 인영을 확인했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소저!”

당화서였다.

그녀가 기파에 튕겨 허공을 날으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저대로 추락했다간 분명 큰 화를 입을 터였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쏘아져 나간 몸이 당화서를 향했다.

그 순간 등 뒤를 찌르는 살기가 느껴졌다.

가주전 쪽이었고, 그것에 슬쩍 고개를 돌린 목리원은 허공에 뜬 채로 자신을 노려다보는 몰골의 노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자가….’

독왕 당사극.

당대의 초월자 중 한 명.

그는 움직이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아마, 자신을 막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목리원은 온통 몰리는 신경을 애써 돌리고 당화서에게로 재차 달려갔다.

그리고 금지의 입구 쪽까지 튕겨 나간 그녀가 땅에 닿기 전, 겨우 붙잡는데 성공했다.

쿵!

목리원이 당화서를 품에 안은 채로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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