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0 십삼장 - 사천, 결 (11)
* * *
당화서의 말에 곳곳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선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함은 집어치우시오.”
“모함은 무슨, 내가 설마 없는 말을 할까.”
당화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의 장례식이 있던 날, 당선중이 당여란과 함께 나눴던 말을.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이 살을 섞었던 일을.
어찌 이다지도 조심성 없고 생각도 짧을까.
당화서는 말했다.
“그래, 이 계집은 오른손을 녹였으니 자네는 왼손을 녹여주면 되겠소?”
“소가주!”
“소가주가 아니지.”
흠칫―
당선중의 몸이 떨렸다.
당화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눈을 한 채 말했다.
“무림맹의 용봉단주. 나는 그런 자격으로 이곳에 온 것이오.”
복수 따위의 감정은 아니었다.
당화서는 고작 감정에 휘둘려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허튼 이가 아니었으니.
당화서가 이렇게까지 매섭게 나오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맹의 이름으로 백도 무림의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를 징벌하러 온 것이오.”
인간의 도리.
당문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백도의 기둥이기 이전에, 무인이기 이전에 이런 일은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양민을 멋대로 잡아 실험하고 혈육을 제 손으로 죽이는 천륜에 어긋난 행동은 해선 안 되는 것이란 말이다.
“더 말하지 않겠소.”
암녹색의 뱀이 혀를 날름거렸고, 직후 당화서가 발을 디뎠다.
순간 당화서의 신형이 흐려졌다.
화아악―!
나타난 곳은 당선중의 코앞.
당화서가 손을 뻗자, 당선중은 흠칫 놀라며 팔로 얼굴을 막았다.
독기를 뿜어봤지만 당화서에게 타격은 없었다.
그녀에게 자신을 향한 독공이라 함은, 저 산들바람보다도 못한 하찮은 발악일 뿐이었다.
당선중이 뿜어낸 독기가 당화서의 몸을 휩쓸었고, 이내 당화서의 공력이 되었다.
치이이익―
그녀에게 잡힌 당선중의 왼팔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무인이 되어 수련을 등한시한 결과요. 당문의 장로나 되어선 겨우 절정 초입이 말이오?”
다른 장로나 핵심 인력은 초절정에 달했다.
당선중만이, 제 직위에 심취해 수련을 등한시하여 이리 보잘 것 없었다.
툭.
당선중의 왼팔이 떨어졌다.
공력을 모두 쥐어 짜내 발악한 탓에 그의 몸은 바닥으로 기울고 있었다.
당화서는 시리게 말했다.
“죽이진 않겠소. 당신을 벌하는 것은 맹의 일이니.”
죽이는 일조차 사치이리라.
또한 살겁으로 이룬 복수는 공허하기 그지없음이라.
인의를 어긴 이들은 인의에 심판받아 마땅함을 알기에 당화서는 그를 지나쳤다.
“길을 터라.”
당문의 식솔들이 머뭇거렸다.
당화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가 없는 이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미운가.
물론, 미웠다.
어린 날이 그리도 고단했음에도 그저 외면하기만 한 이들인데 어찌 밉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밉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게 인간으로서 할 일이던가.
명백한 죄가 아닌 감정을 이유로 행하는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추악한 죄업이기에 당화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눌렀다.
이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머뭇거리던 식솔들이 천천히 비켜섰다.
당문의 내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당화서는 걸었고, 단원들이 뒤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당문의 장원에는 미운 얼굴이 가득했다.
‘장로에 대주에 단주에….’
당문의 모든 전력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당화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주는 어딜 가고.”
분명 소식을 들었을 터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도 이 난리를 이미 기파로 감지했을 터다.
한데도 나오지 않는 것인가.
그저 침묵하겠다는 것인가.
가주전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은 이들에게 당화서는 말했다.
“볼 일이 있는 것은 가주요. 비키시오.”
당사극의 일지에 이름이 오른 것은 당선중과 가주의 곁을 지키고 있을 1장로와 가주 호위.
그리고 수양현에서 이미 폐인이 된 표산 뿐이었다.
이들은 모른다.
그저 만독불침이라는 것이 당문의 숙원이라는 것만 알고, 또한 그 노력을 위해 실험 대상이 된 것이 당화서 뿐인 줄로만 아는 이들이다.
하나, 그것이 역으로 문제가 되는 듯했다.
“가주전엔 들어갈 수 없소. 행패는 그만두십시오.”
2장로 당운정이 말했다.
당문의 사람이라기엔 커다란 체격, 우직함과 충성만으로 똘똘 뭉친 실질적인 당문의 무력.
당화서는 그와 눈을 맞췄다.
-가주께서 뜻하는 바가 있으실 테니 견디셔야 합니다. 조금만 더 크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런 말로 당화서를 붙들던 이였다.
대체 무슨 위대한 뜻이기에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느냐 물으면 입을 꾹 다물어버리던 이였다.
“아시오? 나는 당신이 너무 싫었소.”
“….”
“스스로의 머리론 그 어떤 것도 생각지 않고 그저 충성만을 덕으로 아는 우둔함이 싫었소. 그것을 내게 강요하는 것이 싫었소. 그리고 그 덕에 아파야 했던 시간들이 싫었소.”
“….”
당운정은 그날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는데, 당화서가 보기에 그것은 분함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자신의 말에 그 어떤 논리적인 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 당신이 너무 미우나, 그것이 당신을 벌할 이유는 아니오. 그러니 비키시오.”
“…불가합니다.”
“가주에게 죄가 없다면 내가 대가를 치를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가주가 대가를 치르는 것일 테요. 법도에 따라 공정한 처리를 하는 것이란 말이오. 한데 그것조차 불가하다? 2장로는 대체 무엇이 하고 싶은 거요?”
“이곳을 막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역시 말은 통하지 않았다.
당화서는 설득을 포기하고 주먹에 힘을 더했다.
‘상대는 초절정.’
경지로 보자면 한참이나 밀린다.
하나, 상성이라는 게 존재했다.
독공을 쓰는 모든 무인은 설령 그가 초월지경에 달했다 한들 당화서에겐 무력했다.
만독불침이라는 지고의 체질은 그리도 붉은 역사 끝에서야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싸운다.’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겠다.
그리 마음먹고 나서려는 순간.
“내가 맡지.”
남궁진천이 걸어 나왔다.
당화서는 깜짝 놀라 입술을 달싹였다.
“잠….”
“가문 내의 일이 아닌 맹의 행사.”
남궁진천은 그리 말하며 당화서를 바라봤다.
“분명 그런 말이었을 텐데.”
스릉―
검이 뽑혀 나왔다.
남궁진천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무림맹 용봉단 소속의 무인, 나는 그런 직위로 이 자리에 있다. 검을 뽑을 이유는 충분하다.”
뒷모습인지라 당화서는 남궁진천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또한 어떤 감정으로 2장로를 막아서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당화서는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침 실전이 필요한 때라.”
화아아악―!
남궁진천의 몸에서부터 푸른 기파가 뻗어 공간을 점했다.
찍어누르는 듯한 고압적인 기파는 초절정에 오르며 더욱 그 기세가 무거워져 당화서 또한 저릿함을 느낄 정도였다.
“좋은 상대가 눈앞에 있군.”
당운정은 눈을 부릅떴다.
당화서는 남궁진천의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누님, 어서 갑시다.”
제갈산이 말했다.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가까이 온 단원들이 있었다.
혜운이 싱글벙글한 낯짝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저희 맹 소속 무인이잖아요? 아까 비동에서 증거를 찾은 거 아니에요? 이제 안 참아도 되잖아.”
얼마나 근질거렸다구요.
그렇게 말을 덧붙인 혜운이 검을 뽑았고, 일운 또한 싱긋 웃고 있었다.
목리원은 작게 웃으며 당화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화서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 이내 힘없이 웃어버렸다.
새삼 되새긴다.
‘나는….’
이제 홀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구나.
머리가 뜨거워져 그저 홀로 모든 일을 끝내고자 했던 스스로를 질책하게 되어버린다.
당화서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이내 내뱉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가지요. 맹 소속의 무인으로서.”
“소가주!”
“늙으니 귓구멍이 막혔소? 맹 소속의 무인으로서 가주를 뵈어야 하겠다니까.”
당운정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의 몸에서 지독한 독기가 흘러나왔다.
쿵!
당운정이 당화서를 향해 쏘아져 나왔고.
채애애앵―!
남궁진천이 검을 휘둘러 막았다.
“나는 상대로 부족한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도발적인 어조였다.
당운정은 이를 빠득 갈며 남궁진천을 노려봤고, 이내 그를 먼저 처리하겠다는 듯 품속에서 비도를 꺼내 그에게 휘둘렀다.
“가라!”
남궁진천의 외침에 당화서와 단원들이 가주전을 향했다.
*
남궁진천은 짓쳐드는 독기에 숨을 참았다.
검에 힘을 더하고, 이내 온 힘을 다해 당운정을 밀어냈다.
콰아아앙―!
폭음이 일었다.
기파를 터뜨려 충격파를 만든 것이었다.
이미 단원들은 가주전으로 떠난 상황.
‘시간만 끌면 되겠지만….’
성격상 그런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승리하고 싶었다.
당운정의 경지는 자신보다 위다.
초절정이라 해도 그 안에도 급이 나뉘는 것은 당연하니, 승산은 적다.
‘하나 중요치 않다.’
남궁진천은 패배를 위한 검 따위는 수련한 기억이 없었다.
“…검룡, 이 일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보시오?”
“우스운 질문이다.”
“우습다라?”
“용서는 내가 아닌 자네들이 구해야지. 감히 백도 무림의 기둥이 되어 인륜을 져버리고 패악을 저지르지 않았나.”
남궁진천은 답하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꺼내든 것은 샛노란 진주였다.
아니, 진주를 닮은 돌멩이였다.
어디서 구한 것이냐, 또한 이것은 무엇이냐.
설명하자면 금지에서의 일을 끄집어내 와야 할 터였다.
…사실, 남궁진천은 비동의 입구를 열기 위해 흩어졌을 때 장치를 찾지 않았다.
그저 누구든 찾겠지 싶어 영물만 주구장창 잡으러 다녔고, 두 시진 동안 총 네마리의 영물을 더 잡아냈다.
이 돌멩이는 그때 구한 것으로 출처는 머리가 둘 달린 뱀 영물이었다.
독기가 꽤나 지독한 놈이었고 각 머리의 색깔이 다른 게 기억에 남는 놈이었는데, 양쪽 머리를 가르니 한쪽에선 독샘이 나왔고 다른 쪽에선 이 돌멩이가 나온 것이다.
뭐하는 물건인고, 가만두고 보다 알게 된 돌멩이의 용도는 명확했다.
손을 헛디뎌 돌멩이를 뱀의 독샘 위에 떨어트리니 글쎄 돌멩이가 독을 흡수하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
이것은 피독주였다.
그것도 영물이 직접 몸에서 지어낸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가치의 피독주말이다.
‘물고 싸우면 되겠지.’
남궁진천은 피독주를 입에 물었다.
혹여 씹어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는데, 다행히 자신의 치악력으로는 어찌 하는 게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단단했다.
“패악질, 패악질이라….”
와중 당운정이 중얼거렸다.
그가 핏발 선 눈으로 물었다.
“무슨 자격으로 그걸 판단하는 것이오? 당문의 사람도 아닌 외인 따위가 어찌 그것을 판단하느냔 말이오. 아니, 당신은 지금 이리 행동하는 일에 근거가 있긴 하오?”
한껏 흥분된 목소리는 이어 그리 일렀다.
“말해보시오. 지금 가문 내의 행사를 막아설 증거란 게 뭐요?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가 아니라면….”
“모른다.”
당운정의 몸이 멈칫했다.
남궁진천은 기도를 다듬으며 말했다.
“뭘 찾았는지 모른다. 안 물어봤다.”
실로 그랬다.
당화서가 비동을 빠져나왔을 땐 이미 그의 의붓동생에게 포위된 상태였고, 당장의 방침을 정하지 못해 머뭇대기만 했었으니 물어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궁진천이 아는 게 있었다.
“독봉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그녀가 어떤 성격이고, 평소에 어떤 언행을 보이며 협의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는 사람인지를, 남궁진천은 알았다.
“그 여자는 허튼 행동을 할 인간이 아니다.”
남궁진천은 검으로 당운정을 가리켰다.
“네놈들이랑은 다르게.”
남궁진천은 도발했다.
이때까지 당해본 경험을 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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