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9 십삼장 - 사천, 결 (10)
* * *
당운경은 소인이다.
그것은 그의 덩치나 공력이 아닌, 마음 씀씀이에 관한 말이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그럼에도 직계.
바로 위에 있는 당화서가 여인이니 장남.
옹졸한 인간성에 비해 과분한 것을 타고난 그는 어릴 적부터 욕심이 많았고, 실제로 그리 가진 욕심의 대부분을 이룰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양껏 먹을 수 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어미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소가주는 결국 네 자리가 될 것이란다. 무릇 가주라 함은 후대에 피를 이을 능력이 있는 이에게 돌아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
결국 소가주가 되는 것은 자신이다.
당화서는 당문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재능을 타고난 기재이긴 하나, 그녀의 몸에 행해지고 있는 대법은 생식 능력을 앗아가는 탓에 후계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용봉지회가 있던 날 당운경이 했던 망언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당화서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결국 생식 능력이 있는 제게 가주 자리가 돌아올 것이란 하찮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의 속에 있던 게 아니겠나.
여하튼, 그런 옹졸하고 오만한 당운경이 두려워하는 것이 딱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제 생애 처음으로 노골적인 살기를 느끼게 한 목리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당문의 금지였다.
‘나, 나가야….’
당화서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당운경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 금지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이 너무 선연하게 머릿속에 박혀있는 까닭이다.
당운경이 왜 이다지도 금지를 두려워하는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 금지에 몰래 들어와 변을 당한 경험이 있는 까닭이다.
‘뱀, 뱀이 있을 텐데….’
당운경은 뒷짐을 진 채 떨리는 손을 숨기며 회상했다.
어린 날, 당사극의 손에 이끌려 당화서가 금지에 오던 날에 당운경도 그들을 몰래 뒤따랐었다.
정확히는 당사극이 그의 미행을 막지 않은 이유지만, 어찌 되었든 금지에 들어온 당운경은 생전 처음 보는 고즈넉한 전경에 홀려 이리저리 쏘다녔었다.
그 끝에서 만났었다.
-하찮은 미물아.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말거라.
저 가주전보다도 커다란 흑색의 뱀.
존재만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던 경이.
목리원의 살기를 한몸에 받았던 순간 떠올렸던 공포의 원주인.
그 뱀이 이곳에 있을진대 어찌 제정신일 수 있겠느냔 말이다.
“비키라 했다.”
당화서가 시린 어조로 말했다.
당운경은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을 이었다.
이곳에 오래 있다간 뱀에게 먹혀 죽을 것이다.
하나 가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간 이제까지 누려온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터.
양자택일.
무엇도 두려운 선택지.
옹졸한 당운경은, 그 앞에서 선택했다.
“가, 가주의 명이오! 소가주는 당장 받들어 가주전으로 따라오시오!”
타인의 권위에 기생하는 선택지였다.
하나, 좋지 않은 선택지였다.
“가주의 명이라….”
당운경의 몸이 흠칫했다.
그 정도로 당화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시리던 까닭이다.
“안 따르겠다면?”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 아니다.
이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자, 잡아라!”
당운경이 당화서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이쪽의 무인 수는 이십. 저쪽은 여섯이고, 당화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무력 행사를 하지 못한다.
이유야 하나였다.
맹의 무인이라는 방패를 거두면 뒤에 있는 것은 구파와 다른 세가다.
저들이 당문의 땅에 들어와 당문의 규율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비단 맹과의 갈등 뿐만 아니라, 그 본적인 세가와 당문의 갈등으로 발전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라면 보통 명분은 당문에서 쥐게 된다.
가문 내의 일에, 외인인 그들이 간섭할 도리는 없단 말이다.
‘무, 묵룡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흠칫흠칫 떨리긴 하지만, 저자는 뒷배가 없으니 이들보다 더욱 당문에 항거할 도리가 없었다.
무인들이 움직였다.
당화서 또한 이런 구도를 이해한 듯, 홀로 앞으로 나섰다.
일이 잘 풀리나 싶던 순간.
“여하튼, 그 귓구녕은 장식으로 달고 있나보구나.”
사아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암녹색의 기파가 형상을 취했다.
그것은 머리 꼴이 세모난 독사였다.
“당장 찢어 죽이고 싶은 기분이니 살고 싶으면 비키라 했을 텐데.”
당운경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였다.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저것은….’
독문 무공인 흑천독라공(黑天毒邏供)의 6성에 달해야 발할 수 있는 기예다.
분명 용봉지회에서만 해도 4성에서 5성으로 넘어가는 시기였을 진대 어찌 벌써 저리된 것인가.
당화서가 비동 안에서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모르는 당운경은 그저 위기감에 몸을 떨었다.
‘…안 된다.’
6성은 안 된다.
그것은 진정 흑천독라공이 본색을 보이는 경지였고, 더 이상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불가능해지는 경지였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뒤로 물리는 순간, 당화서가 손을 휘둘렀다.
화아아악!
뱀이 입을 쩍 벌리고 독기를 내뿜었다.
피독주를 입에 물고 있어도 침투하는 독이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토해져 나오는 피.
‘그, 극독…?’
정말 죽이기라도 할 심산인가.
썩어도 준치라고 이 독이 어떤 독인지를 깨달은 당운경은 경악하며 당화서를 바라봤다.
한 치의 인정도 없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에서 보이는 건 그저 분노와 경멸뿐이었다.
무인들은 자신보다는 상황이 나았으나, 다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지.”
당화서가 다가와 당운경의 머리를 꽉 쥐었다.
“끄윽…!”
“하나, 그보다 더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주제에 맞지 않은 머리를 억지로 굴리는 일이다. 또한 분에 맞지 않는 것에 욕심을 보이는 일이다.”
독기가 당운경의 머릿속에 침투했다.
당운경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였다.
당화서는 무감정하게 말했다.
“그러니 차라리 백치라도 되거라. 그리하면 또 모르지. 네년 어미가 평생 너를 보듬어줄지.”
“자, 잠….”
“원망은 네 어미한테 가서 하거라. 뒤에서 헛바람이나 불어넣은 벌은 달게 받아야지.”
이윽고 공포가, 사고가 사라진다.
“꺼어어억…!”
당운경의 눈이 뒤로 뒤집혔고, 이내 그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희미하게,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그랬다.
“꺼져라. 이놈과 같은 꼴이 되기 싫으면.”
당화서가 그리 말했고.
“흐, 흐아아악!!!”
무인들의 비명이 있었다.
*
가주와 가주에게 충성하겠다는 이유로 이런 악업을 도운 모든 이들을 벌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당화서는 쓰러진 당운경의 뒷덜미를 쥔 채로 금지를 내려갔다.
단원들은 그제까지도 침묵했다.
그 정도로 당화서가 분노하고 있었기에, 또한 그녀가 작은 일에 이리 분노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당화서로선 고마운 배려였다.
당장 당문의 치욕스러운 일을 모두 설명하자니 머리가 너무 뜨거워 정리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으어어….”
당운경의 입에서 멍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손으로 그리 만들었음에도 당화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당운경은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인정을 발휘해줘 봐야 알아 처먹지도 못하는 말종.’
여태껏 살려둔 것조차 배려였다.
당운경이 제아무리 자신을 모욕해도, 당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사천 땅에서 패악질을 부려도 눈감아준 것은 그저 그에게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 이유였다.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는 것이다.
금지의 출구가 눈앞에 보인다.
온통 안개로 둘러싸인 금지에서도 유일하게 안개가 자리하지 않은 공간.
거대한 문 앞에 다가가는 순간, 당화서는 저 너머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기척을 느꼈다.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경아!!!”
여인의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가장 먼저 들려온다.
당화서는 그녀를 바라봤다.
당운경의 어머니, 자신의 계모가 되는 여인인 당여란.
이지를 잃고 헤헤 웃으며 끌려오는 당운경의 모습에, 그녀의 눈빛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 간악한 년이이!!!”
“말버릇하고는.”
당화서는 툭, 당운경을 바닥에 던졌다.
당운경은 움찔움찔 떨다, 주먹을 들어 엄지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헛바람을 넣으셨소. 주제에 안 맞는 꿈은 꾸지 말았어야지.”
“네, 네년이 그러고도 당문의 소가주라 할 수 있겠느냐! 감히 정파의 후기지수라 말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피붙이를….”
“죽인 당신께서 할 말은 아니군.”
흠칫―
당여란이 몸을 떨었다.
어찌 저리도 멍청할까.
당화서는 조소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내 아비와 어미를 독살한 걸 모를 줄 알았소? 그리도 당문이 가지고 싶었소?”
당화서는 많은 것을 참아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저 당여란에 의해 부모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것 또한 그런 것 중 하나였다.
“가주가 눈감아주니 모르리라 생각했나보군.”
당사극에겐 사사건건 만독불침을 반대하는 아들이 불필요했을 뿐이었다.
배 아파 당화서를 낳은 며느리가 불필요했을 뿐이었다.
그의 광기와 아집은 오로지 만독불침을 완성하는 데에만 있었으니, 그들은 당사극에게 불필요한 인간이었다.
“나는 참았소. 복수심을 불태우기엔 너무 어렸고, 당문 전체를 상대하기엔 너무 나약했던 까닭이오.”
도망친 이유 또한 그랬다.
아무리 찢어죽이고 싶어도 당문이기에.
그런 일을 해봐야 끝에 평안은 없을 것이기에.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간 참아온 고충, 부모의 죽음은 물증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우성일 뿐이었기에.
즉, 명분이 없었기에 차라리 이들을 외면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젠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당화서에겐 맹의 자격으로, 당문의 소가주 된 자격으로 이들을 벌하고 가주를 끌어 내릴 명분이 생겼다.
당화서의 몸 주변에 존재했던 암녹색 기파가, 다시 한번 독사의 형상을 취했다.
곳곳에서 흠칫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여란은 핏발 선 눈으로 당화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 이…!”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했다.
“도구 따위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고작 대법의 실험을 위한 인형 따위가…!”
비수를 뽑아 들었다.
“감히 내 아들을!!!”
달려들었다.
볼품없고, 느렸다.
당화서의 어린 날을 나락에 처박은 수괴 중 하나는 이리 커서 보니 참으로 볼품없고 한심한 족속이었다.
턱!
당화서는 비수를 쥔 당여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래도 손 하나는 남겨두지. 그 귀하신 아들놈 젖은 물려줘야 할 것 아니오.”
조소하며 손에 힘을 더했다.
산성독을 가득 칠해서.
치이이이익―
“꺄아아아아아아악!!!”
당여란이 자지러지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바닥으로 고꾸라져 미친 듯이 펄떡이기 시작했다.
당화서는 그제까지도 손을 놓지 않았다.
힘을 더했다.
독기를 더했다.
타오르는 원망을 차갑게 식혀 무기로 벼렸다.
그리 살갗을 녹이고, 근육을 녹이고 뼈까지 녹여 당여란의 손목 아래를 지워냈다.
툭!
당여란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기절해 당운경의 위로 쓰러졌다.
당화서는 그제야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눈을 뜨니 눈앞에 있는 것은 여전히 원망스러운 당문의 무인들이었다.
“소가주.”
그것들을 헤치고 나오는 이가 있었다.
유약한 인상의 중년.
하나, 속은 그렇지 못한 사내였다.
“그만 하는 게 어떻겠소.”
당화서는 피식 웃었다.
사내의 이름은 당선중.
당화서에겐 당숙, 당문에선 3 장로라는 직위에 앉아있는 이였다.
그의 이름은 당사극이 기록한 일지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이름이었고.
“왜, 그래도 제 계집은 챙긴다 이거요?”
당여란과 붙어먹어 함께 부모를 죽인, 당화서의 또 다른 원수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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