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8 십삼장 - 사천, 결 (9)
* * *
정신을 차리니 동굴의 입구였다.
목리원은 멍하니 동굴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아직 그 어떤 시원스런 답도 못 들었던 까닭이다.
이런 천형을 타고나야만 했던 이유를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떠오른 마음에 뱀을 향해 걸어갔지만.
쿵!
불가했다.
입구에서 더 들어가지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벽이 앞에 자리해 있는 것 같다면 설명이 될까.
목리원은 한껏 격양된 어조로 동굴의 입구를 쿵쿵 쳤다.
그리하며 외쳤다.
“이보시오! 나는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너무 많소! 열어주시오!”
처절했다.
목리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런 모습을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그는 흥분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목에 핏대가 선 채로 이어가는 외침엔 그저 억울함이 가득했으며, 그의 눈가는 직전까지 흘린 눈물로 엉망이었다.
“열란 말이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것이오! 천명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나 괴롭게 하는 것이냔 말이오!!!”
그저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발악한다.
콰아아아앙!
내력이 가득 실린 주먹이 벽을 두드렸다.
투명한 막 위로 파문이 일었으나, 그게 끝이었다.
벽은 견고했고, 목리원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목리원의 몸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는 중얼거렸다.
“왜….”
‘왜’라는 중얼거림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마침내 생애 내도록 품은 의문을 풀 자리를 찾은 줄 알았건만, 그 무엇도 얻지 못해버리니 허탈함만이 속에 가득했다.
그리 절망에 빠져 있는 중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 약속한 2시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리원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단원들이 자신을 걱정하리라.
어서 목적을 달성하고 빠져나가야 하는 만큼, 폐를 끼쳐선 안 되리라.
비척비척 일어선 목리원은 허망함만 떠올리며 비동을 향해 걸어갔다.
*
비동 앞, 단원들을 가로막던 바위가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그곳에 서 있던 당화서는 멀리서 걸어오는 목리원을 발견하고 환한 얼굴을 만들었다.
“목 소협!”
목리원이 마지막이었다.
그전까지 모였던 다른 단원들이 장치를 찾지 못했던 걸 생각해보면, 목리원이 장치를 찾아 가동한 것이리라.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고마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간 당화서는 멈칫 몸을 멈춰 세웠다.
“목 소협…?”
목리원의 눈시울이 붉었다.
안색 또한 혼이 나간 사람처럼 창백했다.
순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꼴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보다 당화서가 먼저 떠올린 것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몸은 괜찮으십니까?”
목리원의 얼굴을 붙잡은 당화서가 말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상태를 살피고, 또 물기어린 얼굴을 닦아내는 당화서의 얼굴엔 걱정과 속상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목리원은 그 기색에 깜짝 놀라 토끼 눈을 뜨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소. 가는 중에 피로가 극심하여서.”
목리원이 힘없이 웃었다.
당화서는 입술을 앙 물며 목리원을 노려봤다.
“정말입니까? 숨기는 게 아니고?”
“정말이오.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무에 있겠소.”
목리원은 그리 말하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내 치워진 바위를 보더니, 그리 말했다.
“열렸구려.”
“예, 열었습니다. 장치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잘 모르겠소. 부끄럽게도 가는 중에 영물의 습격을 받아 방향을 잃은 게 아니겠소? 그 와중에 우연히 발견한 자리에서 장치를 찾았는데, 건드리니 쿠구궁 소리가 나서 곧장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소.”
영물의 습격이 원인이었던 건가.
당화서는 초절정의 무인인 목리원이 도주해야 할 정도로 강한 영물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다 생각을 지워냈다.
‘…아니, 무사하면 됐다.’
뭐가 됐든 다신 오지 않을 장소.
목리원이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그만 일을 마치고 나가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터였다.
당화서는 숨을 내쉬곤 단원들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들어가지요. 다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비동 문 앞으로 데려온 후, 앞장서서 비동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 순간.
“…음?”
당화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그러시오. 누님?”
“잠시.”
당화서는 손에서 느껴지는 저릿함에 의문을 품다, 이내 혀를 찼다.
“…독이다.”
문고리에 독이 발려 있었다.
그냥 독도 아니고, 피부에 접촉하는 순간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수준의 극독.
만독불침의 체질이 아니었다면 자신 또한 중독되어 고꾸라졌을 것이다.
당화서는 고민했다.
‘문을 여는 게 끝일까?’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적어도 당화서가 아는 당문이라 함은 지독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을 정도였고, 그들이 비동을 열고 난 후의 일도 생각했다 치면 안쪽이 어떨지는 뻔하지 않나.
‘공간 전체가 독에 절어있겠지.’
당화서는 단원들을 흘끔 바라봤다.
‘데려갈 수 없다.’
독이나 암기 따위가 함정으로 포진된 장소라면 단원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저 혼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을 지켜주시겠습니까?”
단원들은 단번에 당화서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누님도 조심하시오.”
“그래, 부탁하마.”
당화서는 ‘후우’ 숨을 내뱉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당겼다.
*
끊임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길고 긴 통로.
비동을 연 당화서의 눈에 가장 먼저 비친 것이었다.
‘지하군.’
또한 예상대로 들어온 순간 독기가 몸에 침투했다.
당화서는 바로 문을 걸어 잠갔다.
독에 대한 내성이 약한 단원들을 위한 행동이었다.
온전히 비동 안에 들어오니 정적만이 남는다.
다행히 야명주가 벽 곳곳에 박혀 있어 시야가 가려지진 않았다.
당화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야명주가 이리 썩어 넘치니 과연 당문의 재력이 다시금 실감 난다.
‘이럴 때가 아니지.’
당화서는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긴 통로를 한참이나 지나니 조금 더 넓은 공간.
그리고 그 공간 끝에 철문이 있었다.
잠겨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당화서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여기도 극독.’
직전보다 더한 독이다.
당화서는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스으으―
숨을 들이쉬며 독기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내쉬는 숨에 불순물을 뱉는다.
‘순도가 높다.’
뜻밖의 이득이라 해야 할까.
이 공간에서 호흡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증진되고 있었다.
‘폐관에 딱 좋겠군.’
물론, 다시는 오지 않을 거지만.
달칵!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문 뒤의 광경이 드러났다.
당화서는 헛숨을 삼켰다.
‘이곳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
굳이 어울리는 말을 따져보자면 그랬다.
“연단실?”
연단실.
영약을 연구하고 제조하는 공간.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작지 않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열장엔 온갖 생물의 독이 정제되어 담겨 있었다.
한 쪽 벽 가득한 것은 무언가를 기록한 일지.
또한 한가운데의 책상 위로 놓인 것은 침을 비롯한 여러 기구들이었다.
당화서는 호리병에 쓰여있는 문자를 읽었다.
‘…쌍두사의 독샘.’
그 옆으로는 오공의 독단, 흑와의 위액, 각충의 독침.
당화서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것은 모두 당화서가 아는 것이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만독불침을 연구하기 위한 자리였나.’
이 모든 독은 어린 시절 당화서가 주입 당한 독이다.
일정한 비율로 갖가지 작용을 일으켜가며 몸에 합성시킨 독이다.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여 졌다.
-쌍두오공의 독이다. 인면지주의 침을 2할의 농도로 섞어 놓을 테니 버티거라. 저릿하고 혈관 안쪽이 긁히는 느낌이 나겠지만, 오늘 안에 사라질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당사극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감에 절로 소름이 끼쳐온다.
당화서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이어 찾아보는 곳은 일지가 잔뜩 꽂혀있는 책장.
당화서는 눈에 뵈는 것을 집어 펼쳤다.
‘이번 대의 기록이 아니다.’
작성자의 이름은 당천명, 당문의 4대 가주였다.
내용이야… 끔찍했다.
당화서는 경멸 어린 눈으로 일지를 바라봤다.
‘…양민을 잡아 실험했던 건가.’
4대 가주는 양민을 잡아 독의 내성을 실험했다.
무기질적인 필체로 가득 기록한 것은, 무고한 이들의 생을 희생해 밝혀낸 여러 독의 작용들이었다.
일지를 챙긴 후 또 다른 것을 펼쳤다.
마찬가지였다.
혹시 다른 게 있을까 책장 곳곳에 있던 문서들을 다 뒤적여 봤지만, 그 모든 것은 무고한 누군가를 실험해 알게 된 사실의 기록이었다.
기록의 끝은 당사극의 것이었다.
그는 양민을 실험체로 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제까지의 실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행했던 실험을 기록해두었다.
일지의 마지막 문장은, 당화서의 감정을 자극하는 형태였다.
『이로써 당문의 비극은 막을 내렸다.』
꽈악―
당화서는 들고 있던 책을 꽉 쥐어 구겼다.
고개는 멍하니 천장을 향했다.
‘무엇이 막을 내렸단 말이냐.’
수백 년간 악행을 이어와 놓고 한다는 말이 고작 이것인가.
그리도 많은 이의 생을 무너뜨리고 한다는 말이 겨우 이런 것이느냔 말이다.
우습게도, 막상 가주를 옥죌 문서를 찾은 상황에 당화서가 떠올린 마음은 죄악감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 체질을 완성하기 위해 희생된 이들의 기록이 그녀의 속을 후벼파는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이들이 모두 명을 달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당화서는 눈을 감았다.
일렁이는 속을 다스리고, 부동심을 유지하고자 선 채로 심법을 운용했다.
스으으―
암녹색의 독기가 주변과 작용하며 더욱 어두운 색채로 화한다.
‘미안하오.’
이들의 희생으로 완성된 몸을 이고 사는 것이니, 당연 사죄가 필요할 듯하여 속으로 말한 당화서는 눈을 떴다.
결심을 떠올렸다.
‘당신들의 죽음이 그저 억울하지 않도록, 내 반드시 가주에게 죄를 묻겠소.’
당화서의 주먹에 기파가 맺혔다.
당화서는 그것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진열장을 깨부쉈다.
필요한 서책은 이미 챙긴 참.
당화서는 이 공간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공간이라는 판단하에 그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진동과 함께 폭음이 일었다.
짙은 암녹색의 기파는 불필요한 연구일지를 모두 녹여버리고, 한쪽 벽에 가득했던 독 병을 죄다 가루로 만들었다.
공기 중으로 풀려난 독기가 당화서를 덮쳤다.
당화서는 그것을 빨아들여 그대로 다시 힘에 실었다.
꽈아아아앙―!
이전에 무엇이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연단실.
당화서는 그것을 뒤로한 채 비동을 빠져나왔다.
당장에라도 당문의 가주전으로 찾아가겠다 마음먹으며 출구의 문을 연 순간.
“나오셨군.”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당운경이었다.
당문의 호위 수십을 대동한 채였다.
당화서의 눈이 굴러갔다.
단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운경의 곁엔 오랏줄에 묶인 채로 무릎 꿇고 있는 소향이 있었다.
대충의 인과 파악이 끝났다.
‘처음부터 틈을 노리고 있었나 보군.’
금지에 들어설 것은 예상한 듯하다.
당화서는 시린 눈빛으로 당운경을 바라봤다.
당당한 척 하지만 겁에 질려있다.
이 상황이 그의 의지가 아니라는 말일 터다.
‘가주인가.’
참 지독한 인간이었다.
당화서는 길게 숨을 내쉬고, 입술을 달싹였다.
“비켜라.”
목소리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색이 존재했다.
“당장이라도 널 찢어죽이고 싶은 기분이니, 살고 싶으면 비키라 일렀다.”
당운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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