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십삼장 사천, 결 (2)
* * *
그날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다음 임무가 하달됐습니다.”
전각으로 돌아온 당화서의 안색은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의 피로와는 다른 안색.
단원들은 단번에 이번 임무가 평소와는 다름을 알아챘다.
하나, 그리 긴장한 채 들었음에도 이어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희는 당문으로 갑니다.”
흠칫
목리원의 손끝이 떨렸다.
얼굴은 놀란 기색을 가득 담아 당화서를 향했다.
그녀는 쓰게 웃고 있었다.
“사천 지역의 조사가 당문에 의해 막히고 있습니다. 저희는 당문으로 가서 그들의 협조를 받아와야 하구요.”
이 자리에 당문과 당화서의 관계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절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지금 저 말을 내뱉는 당화서의 심경은 어떨지에 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저….”
목리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나 당화서는 그가 말을 잇게 두지 않았다.
“이틀 뒤 바로 출발합니다. 다들 채비하시지요. 이상.”
당화서가 집무실을 나섰다.
단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그 와중 목리원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쫓아가 보겠소.”
그리하곤 집무실을 나섰다.
*
당화서는 멍하니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목리원과 단둘이 술잔을 나눴던 자리였다.
당화서는 입술을 짓씹었다.
주먹은 어느 때보다 꽉 쥐어지고 있었다.
‘기어코….’
그곳으로 가게 되었구나.
사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당화서는 제 몸의 가치를 당문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까닭이다.
아무렴, 만독불침의 몸이라 함은 당문이 그 긴 시간 꿈꿔왔던 숙원이었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만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기적이었으니.
당화서는 이후 있을 일을 상상해봤다.
그곳에 자신을 불러 어떤 식으로 겁박할까.
아니, 차라리 회유하려 들까.
알 수 없었다.
이미 그곳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다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쉽게 놓아주려 하진 않을 터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웃기지도 않는 가훈을 내걸어 그것을 어떻게든 지키는 독종들이 바로 당문이었으니, 그들은 자신에게 대가를 요구할 터였다.
어떻게든 자신을 옭아매려 들 터였다.
생각할수록 속이 미어지는 상념의 연속.
목리원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소저, 여기 있었구려.”
당화서는 고개를 들었다.
목리원이 주전부리를 싸선 다가오고 있었다.
당화서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시장하지 않으시오? 조금 들어보시구려. 만두가 아주 기가 막히오.”
목리원이 만두 하나를 내밀어 당화서에게 건넸다.
따끈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것이 갓 지은듯해, 당화서는 피식 웃어버렸다.
“숙수님을 괴롭힌 건 아니겠지요?”
“오늘 저녁으로 내려고 하시던 걸 조금 받아왔소.”
그리 말한 목리원이 만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걸 우물우물 씹으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맛나구려. 내 우리 숙수님 만큼 요리에 능한 사람은 앞으로도 평생 보지 못할 듯하오.”
목리원이 재차 채근했다.
“소저도 한 입 드셔보시오! 원래 고민이 있을 땐 배부터 채우는 것이 아니겠소?”
“…예.”
당화서는 만두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작게 베어 물었다.
진하게 육즙이 흘러나오고 피와 함께 속이 씹힌다.
따뜻한 것이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맛있군요.”
“내 뭐라 했소. 맛있다니까.”
목리원이 킥킥 웃었다.
그러다 저 멀리 연못으로 시선을 던지며 돌연 말했다.
“있잖소. 사천은 어떤 곳이오?”
당화서는 손끝을 움찔 떨었다.
잠시 입술을 앙 물고,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을 내뱉었다.
“…이곳보다는 조금 쌀쌀한 곳입니다. 하나 또 너무 춥지는 않아서, 살기엔 참으로 좋은 자리지요.”
“또 뭐가 있소? 내 듣기로는 사천이 그리 먹거리가 많다던데.”
“많지요. 한데 목 소협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천 요리는 대개 맵고 얼얼한 것들이라.”
“도전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지.”
목리원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떠올랐다.
“사천은 풍경도 좋다 들었소.”
“확실히 볼거리가 없진 않습니다.”
“기대가 되는구려.”
목리원의 시선이 당화서를 향했다.
“소저가 나를 안내해주지 않겠소? 사천을 말이오.”
당화서는 물끄럼 목리원을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위로입니까?”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오. 알잖소. 나는 강호에 어두워, 어딜 홀로 가질 못하는 칠칠치 못한 사내요. 내겐 소저가 필요하오.”
“홀로서기를 할 생각은 없으시구요?”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당화서는 마냥 장난으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자연히 떠오르는 최악의 상황이 있는 까닭이다.
‘혹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목리원과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에 목리원이 정면으로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싫구려.”
목리원이 희게 웃었다.
“나는 소저랑 떨어지기 싫소. 사천을 다녀와서도 마찬가지요. 아직 강호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고, 난 그 모든 곳을 소저와 함께 떠나고 싶소. 그래야 즐거울 것 같소.”
당화서의 눈이 슬쩍 커졌다.
목리원은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혹여라도 나쁜 생각은 하지 마시오.”
“목 소협….”
“설령 그곳에서 소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꿀밤을 놔줄 것이오. 그리고 소저에게 사과하라 이를 것이오. 소저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소.”
이것은 위로였다.
당화서는 그걸 알았다.
다만 위로임을 알면서도 그 말에 기대게 되는 이유는 있었다.
‘…진정 그리하시겠지요.’
목리원은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사내였으니, 설령 힘에 부치는 상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그 순수한 호의가 참으로 고마워, 또한 미안해.
당화서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다 몸이라도 상하면 어쩌시려구요.”
“내 몸이 상할 것을 걱정해 친우를 버릴 정도로 도의를 모르지 않소. 내게 소저는 그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오.”
당화서는 너털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러다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연못을 바라봤다.
이리 웃다보니 어느새 걱정이 조금 가셔 있는 게 또 우스운 일이었다.
당화서는 입술을 우물거리다, 그리 말했다.
“목 소협은 아십니까?”
“무엇을 말이오?”
“소협이 그리 말할 때마다 한 번씩 참기 힘든 기분을 느낍니다.”
“참기 힘들 다니?”
“여러 가지를요.”
괜히 말해 무어 할까.
당화서는 거기서 말을 줄였다.
하나, 한가지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리 말해주셔서.”
처음 수양현 경화루에서 만난 날부터 계속.
목리원은 당화서에게 감사한 사람이었다.
잊고 있던 가치를 되새겨주고, 꺾여있던 용기를 바로 세워준 사람이었으니, 고맙다는 말을 백만번은 해도 모자랄 사람이었다.
당화서는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얇게 펴진 구름이 불그스름한 색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 걱정해서 무엇하겠느냐.’
작게 미소를 띠며 당화서는 되새겼다.
위협이 있다 한들 지레 겁먹어서 물러나선 안 되는 것임을.
그런 용기를 곁에 있는 이에게 배웠음을.
“…슬슬 일어날까요. 만두는 잘 먹었습니다.”
“암!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예.”
당화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식당으로 달려가 버리는 목리원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불안함은 여전했으나, 다행히 마음이 조금 편해져 있었다.
*
이튿날, 용봉단은 채비를 마치고 떠나갔다.
호북에서 사천까지 달하는 여정은 짧지 않았고, 과정에 몇몇 사건이 있었다.
와중 당화서는 다시 한번 이들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애써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소저! 저기 보시오! 극단이 있소!”
지나가는 마을에 들를 때면 목리원이 구경거리를 찾아 자신을 데려간다.
“당 시주님, 마음이 어지러울 땐 불경을 외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일운이 혜운과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 권유를 하며 신경을 써준다.
“누님, 내가 누님이니까 몰래 챙겨주는 거요.”
제갈산이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독을 슬쩍 건네준다거나.
“소가주는 무릇 가문의 사람에게 얕보여선 안 되는 법이다. 허리를 펴라.”
남궁진천이 뜬금없이 그런 충고를 건넸다.
당화서는 웃을 수 있었다.
제 고민에 함께 어울려주는 이들이 있어, 그 서투른 호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어 고민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하여 사천에 다다랐을 즘엔 당화서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이곳입니다. 당문의 땅.”
당화서는 크게 드리워진 도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역 전체가 사천당문의 영역인 도시.
하여 인근까지 그들의 영향권에 있는 도시.
언젠가 자신을 속박했고, 이제와선 아린 추억이 된 도시였다.
당화서는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중이었다.
“아가씨!”
도시의 입구에서 시비의 복장을 한 이가 달려나왔다.
당화서는 크게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향아!”
소향.
그녀는 당문을 떠날 적 자신과 함께 도주해 나왔던 수족 중 한 명이었고, 무림맹으로 향하는 날 헤어진 이였다.
어찌 그녀가 있는 것일까.
헤어지던 날 분명 당문의 분위기를 몰래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을진대 그런 그녀가 당문 안에 있으니 절로 떠오르는 의아함이었다.
“잘 지내셨는지요! 혹 상하신 데는 없구요?”
소향이 걱정스러움과 반가움이 섞인 얼굴로 당화서를 맞이했다.
당화서는 물었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는 것이냐. 응?”
“아가씨께서 이곳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여 얼마 전 당문으로 복귀해 자리를 만들어달라 부탁했지요.”
“그런 위험한 짓을!”
“아가씨가 곧 오는데 저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여차하면 또 도망가면 그만인 일입니다.”
소향이 싱긋 웃었다.
밝아 보이는 안색에 당화서는 안심을 떠올리다가도, 걱정을 금치 못했다.
그런 중 목리원이 나섰다.
“오랜만이오!”
당화서의 뒤에서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밝았다.
하기야, 수양현을 나선 뒤 간만의 재회인 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목리원이 반가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 네.”
소향은 반갑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당화서는 쿡쿡 웃었다.
떠나기 전 소향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까닭이다.
아가씨, 저 사내가 영 미덥지 못합니다. 혹여 아가씨를 상하게 할까….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어벙해 보이는 목리원을 의심하던 모습.
이리 목리원이 무명을 얻었음에도 소향의 눈엔 여전히 차지 않는 듯했다.
“그래, 당문에서 너를 보냈더냐? 나를 맞이하라고?”
“예.”
“당문은 지금 어떻더냐.”
“아직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아가씨를 따라 도주했던 입장이다 보니 잡일이나 시키고 있지요.”
정보를 주지 않겠다라.
당화서는 작게 웃었다.
‘여전하구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도, 속내를 감추려는 것도.
‘그렇다면.’
역시 뒤통수를 칠 생각 또한 하고 있을 터였다.
당화서는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단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보지요.”
단원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맹의 단주로 온 이상 그들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터다.’
당화서는 그것을 확신했다.
‘그러니 볼일만 보고 빠진다는 마음으로 들어서야겠지.’
“향아, 안내하거라.”
“네.”
그렇게 당화서는 기억 속에나 존재하던 고향으로 돌아왔고.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당문의 입구에서 그를 맞이하던 이를 만났다.
“…당무경.”
인사를 건네는 것은 그녀의 이복동생, 당무경이었다.
용봉지회에서 만났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