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10화 (110/334)

〈 110화 〉 십삼장 ­ 사천, 결 (1)

* * *

무림맹의 시간이 흘러간다.

달이 한번 차고 기울어 또 초승달이 된 날 밤.

맹 어딘가에 있는 용봉단 전각의 식당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우습지도 않은 이유로.

“그러니까, 제갈 형 말은 검보다 창이 더 강하다는 것이오?”

“같은 무력을 지닌 경우라면 그렇다고 생각하네. 애초에 길이가 더 긴 만큼 상대에게 공격하기가 더 수월하지 않겠나.”

“그게 무슨!”

오늘의 토론 주제는 어떤 무기가 더 강한가.

제갈산의 말에 목리원이 기함하며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무조건 검이 더 강한 게 맞지 않소! 검은 날이 길고 검격과 방어에 균형이 훌륭한 최고의 무기요!”

“같은 무력이라면 창이 맞다고 보네. 생각해보시게. 아무리 공방이 우수하다 한들 결정적으로 상대를 노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않겠나?”

“그렇지 않소! 검의 오묘함은 차마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여 찔러 들어 오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창 따위는 바로 빗겨낼 수 있소!”

“창 따위라… 목아우는 혹시 맹주님을 창‘따위’나 쓰는 한량으로 본 겐가?”

“그, 그게 아니오! 말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이오!”

목리원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중에도 제갈산은 껄껄 웃었다.

사실 제갈산에게 창이 세나 검이 세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제갈산은 목리원이 이리 열불을 내는 게 재밌어 더 그를 자극했다.

“한데 왜 창 따위라고 하는가?”

목리원이 울컥하는 얼굴로 남궁진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검룡 형! 검룡 형은 검수로서의 자존심도 없소?! 빨리 무어라 말 좀 해보시구려!”

“의미없는 논쟁이다. 기파로 찍어누르면 다 그놈이 그놈일진대 무기가 무엇이 중요한가.”

“에잇! 같은 무력일 때를 상정하고 있지 않소! 순수한 무기 자체의 우열을 가르는 일을 말하는 것이잖소!”

“실제로 똑같은 무력을 가진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극히 적다. 적든 크든 무력 사이에 우열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 안 통하는구려!”

목리원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의 시선이 이어 향한 곳은 일운이 있는 곳이었다.

일운은 ‘큼, 크흠’하며 무어라 말할 준비를 했고, 목리원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권수인 일운 스님께 물어볼 얘기도 아니고. 휴우…!”

일운이 시무룩해졌다.

사실, 무기에 관해서라면 이중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일운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권(?)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하나 일운은 이번 대 소림의 대제자다.

당연 소림의 십팔반무예(?????)를 모두 다룰 줄 안단 말이다.

한데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그만 풀이 죽어버린 것이다.

제갈산은 그 모습에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

달칵!

식당의 문을 열고 피로한 얼굴의 당화서가 들어왔다.

목리원은 안색을 환히 밝히며 외쳤다.

“소저!”

쫄래쫄래 달려가서 반기는 것이 꼭 주인을 만난 강아지 같았다.

“마침 잘 오셨소! 내 단원들과 검과 창 중 더 우월한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는데….”

“목 소협.”

흠칫

당화서의 서늘한 목소리에 목리원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거기.”

한데 묶어서 부르는 말에 다른 단원들도 굳었다.

당화서가 싱긋 웃었다.

“야밤에 웬 소란인가 해서 찾아왔는데 이런 얘기나 하고 있었습니까?”

웃고 있음에도 웃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 확실히 웃는 게 아니었다.

이마에 솟아있는 저 핏대가 증명했다.

제갈산은 몸이 기억하는 불안감에 슬금슬금 몸을 뒤로 물렸으나, 당화서가 더 빨랐다.

“다들 안 들어갑니까!!!”

호랑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호통이 쩌렁쩌렁 울렸다.

야밤의 토론은 오늘도 당화서의 호통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용봉단은 평화로웠다.

*

다음 날 아침, 당화서는 뻑뻑한 눈밑을 문지르며 맹의 복도를 걸었다.

안 그래도 일이 밀려 잠이 모자란데, 밤이면 밤마다 단의 사내들이 식당에 모여 소란을 떨어대니 피로가 풀릴 틈이 없었다.

당화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도 아니고….’

대체 언제 철이 들 생각인지 아주 생각만 해도 뒷골이 당겨왔다.

그리 두통에 몸을 떨며 걸음을 옮기던 중.

“용봉단주님.”

저 멀리서 걸어오던 사내가 당화서를 불렀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무인.

군사 제갈무연의 부관 고절이었다.

“마침 찾아뵙고자 했는데 여기 계셨군요.”

“음, 저를?”

“예, 군사님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당화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군사가 자신을 찾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굳이 꼽아보자면 원인은 하나.

‘…단원들이 친 사고?’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쳐대는 단원들이 드디어 군사가 움직일 만큼 큰 사고를 친 게 아닐까.

생각을 떠올리자 당화서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고절은 그 모습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단원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니, 아예 관련이 없진 않겠군요.”

“그, 그게 무슨 말이신지….”

당화서가 삐걱삐걱 웃으며 묻자 고절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일단 가시지요. 정확한 내용은 저도 듣지 못한지라.”

“후우….”

당화서는 심호흡했다.

그리하며 마음을 고쳐잡았다.

‘일단 사과부터 드리자. 얘기는 그다음에 듣는 거다.’

마음속에선 군사가 자신을 찾는 이유가 단원들이라는 확신이 내려진 상황.

당화서는 불안에 쿵쿵 뛰는 속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

도착한 군사 제갈무연의 집무실은 여전했다.

방 한쪽 벽의 책장엔 잘 분류된 서신들이 너저분하게 들어차 있었고, 또 다른 쪽 벽엔 중원의 전도가 걸려있었다.

그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있던 제갈무연이 당화서를 발견했다.

“…아, 오셨군요.”

“군사를 뵙습니다.”

당화서가 포권을 취하자 제갈무연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 순간 당화서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음? 그게 무스….”

“저희 단원들이 혈기가 넘쳐 좀처럼 주체하질 못합니다. 단주인 제가 잘 타일렀어야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아무쪼록 한 번만 선처를….”

“다, 단주. 진정하십시오.”

제갈무연이 드물게 당황하며 당화서를 진정시켰다.

당화서는 그 소리도 듣지 못하고 일단 사과부터 쭉 이어갔다.

그녀가 진정한 것은 제갈무연이 어깨까지 톡톡 치며 그만두라고 말할 즘이었다.

“…그것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닙니다.”

덜컥.

당화서의 어깨가 떨렸다.

얼굴엔 붉은 기가 가득했다.

수치심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레짐작을.”

“고생이 많으신가 봅니다.”

제갈무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조카 놈은 잘하고 있습니까? 그놈이 사고를 치고 다닐까 항상 걱정인지라.”

놀랍게도 그 조카보다 더 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들이 있어 비교적 얌전하게 느껴집니다.

당화서는 차오른 말을 꾹 삼켜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구려.”

제갈무연은 그리 말하고 차를 한 잔 마셨다.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새로운 임무입니다.”

“아, 그 얘기였습니까?”

당화서는 마침내 안도했다.

하나, 그런 중에 차오른 의문이 있었다.

“임무라면 따로 서신으로 하셔도 될 터인데.”

보통이 그랬다.

내려지는 임무라 함은 부관을 통해 서신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추가적인 궁금증이나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선 부관이 모두 말해준다.

그런 만큼 이리 직접 불러 하달하는 임무는 이례적이었다.

제갈무연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직접 얼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임무인지라.”

“어떤 임무이기에 그러십니까?”

제갈무연은 손으로 찻잔을 쓰다듬었다.

그리하며 나지막히 말을 시작했다.

“…저번 임무에서 얻어오신 정보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맹의 다른 단과 대도 한창 그 정보를 토대로 마인들을 색출해내고 있지요.”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지금 무림맹의 각 단과 대는 쏟아지는 임무에 맹에 발을 붙이는 시간이 더 적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대주급 인원들까지 임무를 나가 회의 참석률이 5할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큰 집단으로 4개, 중견으로 7개. 작은 집단으로 가면 수십의 마인을 잡았습니다.”

“많이도 숨어들어왔군요.”

“예, 하지만 역시 마인들이라 그런지 심문은 쉽지 않더군요. 아, 여러분께서 잡아오신 염마 오강악은 특히 그랬습니다.”

당화서는 깜짝 놀랐다.

“그가 아직 살아있습니까?”

“이미 폐인이 되어버려 이지가 사라졌습니다.”

“허어….”

탄식하던 당화서는 이어 물었다.

“그래서, 혹 알아낸 사실이…?”

“마교가 중원에 독자적인 자금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당화서의 눈이 좁아졌다.

“자금 흐름이라 하면….”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워낙에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라 출처를 파악하기가 힘든 까닭입니다. 하지만, 분명 알 수 있는 것은 있었지요.”

제갈무연이 가라앉은 낯으로 말했다.

“그것들이 이렇게까지 잘 숨어들어온 이유가 금전이라는 것. 저희는 상단 쪽에 마교의 자금줄이 있지 않을까 판단하는 중입니다.”

“그럴듯하군요.”

“아무튼,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이제 본론입니다.”

당화서는 허리를 바로 폈다.

“본디 흑도의 땅에 마인들이 숨어들었을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실제로 절반은 맞았고.”

“절반이라 하면?”

“흑도의 땅 뿐만이 아닙니다.”

당화서의 눈이 부릅 뜨였다.

제갈무연은 중원의 전도 앞으로 가 손가락으로 지역을 짚으며 말했다.

“십만대산이 있는 마교의 본거지 신강부터 서장, 청해, 감숙이 최초 침입 경로겠지요. 아마 이곳에서 자리를 틀진 않았을 겁니다. 뻔하고, 들키기가 쉬운 자리이니.”

제갈무연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서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운남, 그리고 그 오른쪽이 귀주입니다. 이쪽 방면은 맹의 손길이 닿지 않으니 합리적인 침입 경로지요. 실제로 귀주에 육마 중 두 명이 있었고.”

“…맞습니다.”

”위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숙의 끝에는 섬서와 사천이 붙어있지요. 실세로 섬서엔 염마 오강악이 있었습니다.”

당화서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 순간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제갈무연의 손가락이 현재 짚고 있는 곳은 섬서.

그리고 아직까지 설명하지 않은 곳은 사천.

사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직접 자신을 이곳까지 불렀으며, 이야기를 하기 전 보인 씁쓸한 미소가 마음에 걸린다.

당화서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제갈무연 또한 그 기색을 눈치챈 듯 미안한 표정을 만들었다.

“…본디 이쪽은 다른 단과 대에 맡기고자 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사천을 향했다.

“하나 아시겠지요. 사천은 넓습니다. 그리고 청성과 아미, 점창파가 있음에도 조사에 난항이 생기는 특성이 있지요.”

왜 모를까.

어찌 저것을 모른다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진대.

당화서는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당문은 제 땅에 외부인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 들지요.”

주먹은 꽉 쥐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갈무연이 미안한 듯 말했다.

“예, 하여 몇 차례 협조를 부탁한 일이 있으나, 당문은 그 어떤 답도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맹주님이 직접 서신을 보냈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왕(?王)께선 그리 오랜 시간을 침묵하다, 바로 전날 하나의 요구사항을 전해왔습니다.”

그의 손은 어느새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당화서는 고개를 숙였다.

예상되는 질문을 내뱉었다.

“…저를 데려 오라덥니까?”

“예.”

제갈무연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미안한 기색이 짙어졌다.

“사천으로 가주십시오. 그곳에서 당문을 찾아가 협조를 받아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실로 당화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명령을 내림에도 ‘부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얄궂은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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