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08화 (108/334)

〈 108화 〉 막간 ­ 연심과 배덕 (1)

* * *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용봉단의 보무는 당당했다.

떠나던 때처럼 정체를 숨기지 않고 돌아오는 여정.

그 과정에는 수많은 말이 뒤따랐고, 개중 가장 많이 도는 말은 그랬다.

묵룡과 검룡이 초절정에 다다랐다.

그저 뿜어나오는 기도가 있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일류급의 무인만 되어도 느껴지는 압박감이 있을진대, 귀주에서 무한으로 향하는 그 긴 여정 동안 이들이 일류의 무인 한 번을 마주치지 못했겠나.

누군가의 말처럼 강호의 소문은 말보다도 빠르게 달려, 용봉단보다 먼저 무림맹에 도달했다.

그렇게 찾아온 용봉단의 복귀 예정일.

무림맹의 입구는 온통 북새통을 이루는 중이었다.

“대단하군…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번 세대에 벌써 초절정 둘이 나온 것이 아닌가.”

“그저 초절정도 아니네. 검룡은 22세. 묵룡은 18세. 강호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속도야. 특히 묵룡은….”

“…전례가 없는 기록이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말들은 죄다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초절정.

강호에서 그 무게는 농담으로라도 적다고 말할 수 없었다.

초절정은 지역에서 문파를 연다면 그 땅에서 가장 강성한 문파로 만들 무력이었고, 세가나 구파일방에 들어간다면 중역으로, 무림맹에선 ‘대주’급의 직위를 맡을 수 있는 경지였다.

그저 가진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한 경지란 말이다.

“한데 단주인 독봉은 아직 절정이지 않나. 이 경우에 단의 서열은 어찌 되는 겐가?”

“아, 내 백검대주님이 적운대주와 하는 이야기를 들었네. 묵룡과 검룡이 실무능력은 영 꽝이라 서열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 하더군.”

“허어… 이걸 두고 하늘은 공평하다고 말해야 하는 겔까.”

“공평은 개뿔이. 누구는 저리 젊은 나이에 초절정까지 가고 우린 아직 일류에 머물러 있건만 뭣이 공평하단 말인가.”

“그것도 그렇구먼.”

목소리엔 질시와 경외가 섞여 있었다.

또 어딘가에선 기쁨이 튀어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금검 권표월과 함께 있었던 적운대주 강찬의 웃음소리였다.

“내 이번엔 꼭 비무를 신청해야겠군! 이제 봐줄 필요도 없겠어!”

“경거망동 마시게.”

“청룡대주, 자네는 그게 문제일세! 사람이 패기가 있어야지 원.”

“…내가 말을 말아야지.”

청룡대주 기태운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팔짱을 꼈다.

그러던 중, 진원단주 견동이 슬그머니 그들 사이에 꼈다.

용봉단과의 비무에서 처참히 깨지고 요즘 들어 잠잠해진 견동의 눈엔 기대감이 피어 있었다.

“곧 오실 때가 되었는데. 조금 늦는구려.”

견동의 염소수염이 씰룩거렸다.

그날의 패배는 쓰렸으나 얻은 것은 참 많았기에, 또한 목리원이 건넨 말은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기에 견동은 목리원에게 호감이 있었다.

돌아오면 축하의 의미로 아껴두었던 술도 전해줄 생각이었다.

견동이 품에 술병을 안고 있자 권표월이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

“곧 오지 않겠소.”

그 말이 나온 순간.

“아! 저기 오고 있소!”

대로를 따라 걸어오는 여섯의 인영이 있었다.

밝은 얼굴의 용봉단이었다.

그들의 선두에 있던 당화서가 몰린 인원에 당황한 얼굴을 만들었고, 목리원은 아는 얼굴들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그들이 도착하자, 온 땅이 다 울릴 정도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아!!!”

무림맹은 고수(高手)를 맞이했다.

*

용봉단의 전각으로 돌아온 직후, 당화서가 말했다.

“저는 보고를 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쉬고 계시지요.”

“알겠소!”

목리원은 힘차게 답하고 당화서를 배웅했다.

전각의 입구까지 함께 가고, 이어 밖으로 당화서가 나가자 목리원은 고개를 돌렸다.

두 달 만에 돌아온 집의 의미는 꽤나 각별했다.

그간 관리가 잘 되어온 것인지 쌓인 먼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와중.

“아! 연무장에 가야지!”

목리원은 하오문에서 보상으로 받은 100년 하수오를 섭취하고자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다 쓰고 있다네.”

“으잉?”

“1번은 남궁형이, 2번은 일운 스님이, 3번은 혜운 스님이 쓰고 있네. 목아우. 우리 차례는 멀었어.”

제갈산이 껄껄 웃자 목리원은 시무룩해졌다.

“다들 생각하는 건 같나 보구려….”

“몸이 달아있겠지. 다른 것도 아닌 100년 하수오인데 안전한 장소에서 쓰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것도 그렇긴 하오.”

100년 하수오라면 암만 못해도 20년 공력은 뽑아낼 수 있는 영약이다.

가공해서 영약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간 하수오를 바로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자연지기가 줄어든다.

자연지기란 것의 특성상, 기의 정순함이 다른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아 차라리 공력의 손해를 보더라도 자연지기쪽을 보충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은 당연한 일.

‘다들 하수오가 훼손되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목리원은 그들을 이해했다.

“으음…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시겠소?”

“좋지, 가세나. 방금 숙수 영감을 봤는데, 오늘은 돼지고기를 튀긴 요리를 할 것이라더군.”

“오오…!”

“소면에 쓸 육수도 새로 뽑았다는 말을 들었네.”

“오오오오!!!”

새로운 육수로 만든 소면.

그 말에 목리원의 목 뒤로 마른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헐레벌떡 목리원이 식당으로 달려갔고, 제갈산이 껄껄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

식사를 마치고 정원을 바라보며 목리원과 제갈산이 반주를 마시던 중, 남궁진천이 밖으로 나왔다.

“오! 남궁형, 다 끝나셨소?”

제갈산이 묻자 남궁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술잔을 물끄럼 보더니, 이내 가까이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마셔도 되겠나.”

“아무렴, 남궁형도 한잔 자시구려.”

제갈산이 잔을 건네자 남궁진천이 술을 꼴꼴 따랐다.

목리원은 그 얼굴에서 고민이라 할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검룡 형,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으시오?”

하오문을 떠난 이후부터 줄곧 이런 상태였다.

정확히는 문주와 따로 대화를 하고 나온 이후부터 이랬다.

그녀에게 무언가 협박이라도 들은 걸까.

그런 생각까지 떠오르는 안색에 단원들이 내내 질문을 건네봤지만, 남궁진천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런 일이 다 지나가고 다다른 오늘.

역시 고민기가 가득한 남궁진천의 모습에 목리원이 걱정이 묻은 어조로 묻자, 그가 고민에 빠졌다.

“….”

술은 마시지도 않고 차 있는 잔만 바라본다.

찰랑이는 수면 위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그가 이내 물었다.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음?”

“사….”

남궁진천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수치스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표정을 구기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산은 그 모습이 답답한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남궁형, 왜 그러시오? 거 사내답게 속 시원하게 말해보시오.”

“맞소! 우리는 동료 아니오! 제갈형과 내가 속 시원히 고민을 들어드리겠소!”

남궁진천의 눈빛이 더욱 흐려졌다.

그는 입술을 앙 깨물고 숨을 참다, 이내 한숨 쉬듯 내뱉으며 말했다.

“사… 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두 사람이 굳었다.

목리원은 본디 타인의 고민을 진솔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검룡 형이 그게 왜 궁금하시오?’

목리원은 당황했다.

*

당화서는 그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전각에 복귀했다.

귀주로 향해서 있었던 일과 하오문의 비처에서 만난 두 명의 육마.

거기에 하오문주를 통해 얻어온 정보까지.

보고할 거리도 많고 그 와중에 판단해야 할 사실 여부까지 많으니 온종일 시달리다 겨우 돌아온 당화서는 목리원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제까지의 피로도 씻겨나갈 정도의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검룡이 그런 걸 묻더란 말입니까?”

당화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많이 당황스러웠다오. 꼴을 보아하니 그간 고민했던 게 그 내용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검룡 형이랑 사랑이 어울리기나 하는 말이냔 말이오.”

당화서는 목리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 잘난 맛에 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칼부터 뽑아 들려고 하는 사고뭉치 중의 사고뭉치.

당화서가 생각하기에, 남궁진천에게 사랑은 일러도 너무 이른 말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던 중 당화서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그런데 이걸 저한테 말해줘도 됩니까?”

남궁진천도 당연히 비밀을 지켜줄 것이란 생각에 물은 것일진대, 이리 쉽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의아함이 차올라 물으니 목리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소저니까 말해주는 거요! 나는 소저한테 비밀 같은 거 안 만들 것이오! 진정 친한 친우끼리는 그 어떤….”

목리원의 말꼬리가 늘어졌다.

잠시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것은 씁쓸한 기색.

하나 이내 사라졌다.

“…사소한 비밀을 쌓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오!”

당화서는 피식 웃었다.

‘문파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게 걸린 거겠지.’

목리원이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래봐야 그것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워낙 허술한 성격이다 보니 반쯤은 들켰지만.

당화서는 어색하게 웃는 목리원을 보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쓸었다.

“목 소협은 참 진솔한 사람이군요.”

“으음! 그렇소!”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에 어떤 저항도 가지지 않는 게, 순간적으로 엄한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당화서는 애써 그것을 참아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목 소협은 무어라 답하셨습니까?”

“음?”

“사랑 말입니다. 검룡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하셨습니까?”

묻는 당화서의 기색은 사뭇 진중했다.

목리원의 답은 그녀에게 중대사항이었다.

‘따지고 보면 목 소협과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정보 수집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속에 긴장이 차오른다.

목리원은 그런 당화서의 기색을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모르겠다고 했소!”

“으, 음?”

“너무 어렵지 않소! 사랑은!”

목리원의 시선이 별이 가득 박힌 밤하늘을 향했다.

그의 얼굴 위로 그리움이라 할 만한 게 걸렸다.

“어린 시절엔 말이오. 내 스승 되는 분께서 그리 이르신 적이 있었소.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보잘것없어 함부로 그것을 내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말이었소.”

“이상한 말이군요.”

“그렇소. 참으로 이상한 말이오. 하여 나는 어렴풋이 그것을 정의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오.”

“어렴풋이라 하면….”

“나는 내 스승님을 사랑하오. 사백도 사랑하고, 그것 말고도 이 땅에서 만난 모든 인연을 사랑하오. 물론 소저도 사랑하오!”

당화서는 크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저것이 이성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저 그의 입을 빌어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특별하게만 느껴져, 이 순간의 당화서는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켜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윽…!”

열이 확 오르고 있었다.

당화서에게서 스스로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삐져나왔다.

그런 중에도 목리원은 이어 말했다.

“정말 소중한 감정이지. 절대 잊어선 안 될 감정이고. 하지만, 이 사랑이 언제까지 아름다우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겠소.”

목리원은 눈을 감았다.

“내 스승님과 함께 나를 보살펴준 분께선 그런 말을 하셨소. 사랑은 때때로 너무 이기적인 모양을 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한다고. 그렇게 색이 변해 증오를 낳는 때가 있다고. 그렇기에 보잘것없는 감정이라고.”

“…아.”

“위대하고도 보잘것없다. 참으로 그 말에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오?”

순간 당화서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직전까지 얽혔던 사고가 풀어졌다.

‘…무슨 주책인 게냐. 화서야.’

목리원은 지금 진중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다른 생각이나 하다니.

당화서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목 소협의 스승님께선 참으로 생각이 깊으신 분인 듯하군요.”

“그렇소! 스승님께선 언제나 사색을 즐기시고 그 내용을 나와 토론하길 즐기시는 분이셨소!”

“저도 가르침을 얻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목리원이 싱긋 웃었다.

“여하튼, 결론은 검룡 형에게 답을 주지 못했단 것이오. 내게 사랑은 너무 어렵소.”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 그리고 제갈 형은 다른 답을 냈소!”

“음?”

“사랑은 곧 기쁨이라 말했소! 또한 마약 같은 것이라 말했소! 그것이 삿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행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했지. 배덕감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에 가장 은밀한 쾌락을 자극한다더구려!”

당화서는 저게 무슨 말인지를 단번에 알았다.

목리원이야 저 순진하게 웃는 꼴을 보니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저건 또 그놈의 유부녀 타령이었다.

배덕감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쾌락을 자극한다.

꽈악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목리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소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갈산을 죽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당화서는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는 데 심력을 써야 했다.

…솔직히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까닭이다.

말해 뭐할까.

당화서는 목리원의 순진한 면모를 볼 때면 배덕감이라는 감정에 관한 깊은 사색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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