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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살검협-107화 (107/334)

〈 107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14)

* * *

목리원의 입술이 달싹였다.

질문은 그리도 당혹스럽고, 날카로운 형태였다.

‘마인이냐….’

어려운 질문이었다.

마인(?人)과 무인(?人)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무엇인 지는 목리원 또한 오랜 시간 고민해온 일이었으므로.

다만 가진 내력이 흉포하고 무공의 기저가 포악하다면 그것은 마인인가.

제아무리 난폭한 이라도 정종(??)의 무술을 익혔다면 그건 무인인가.

말은 단번에 나오지 않았다.

목리원 스스로야 목선오의 가르침이 있어, 다만 검을 휘두르는 이의 의지가 마(?)와 무(?)를 가르는 법도라 믿지만 타인에게도 그러하길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이미 극마지체를 들킨 상황에 그런 말을 해 봐야 변명으로 들릴 것이 뻔했기에.

‘…피할 수는 없다.’

목리원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다잡고, 마철곤에게 말했다.

“극마지체라 하오. 내가 타고난 신체는.”

“극마지체라….”

마철곤의 표정이 흐려졌다.

극마지체를 아는 듯한 얼굴.

하기야, 무림에 몸을 담근 의원이나 되어서 모른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였다.

마철곤이 물었다.

“타고났다는 말은 본디 그런 신체였다는 말이 맞소?”

“그렇소.”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구려.”

마철곤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가만 그를 보다 말했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으나, 나 스스로는 그런 몸을 타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백도의 무인으로 여기고 있소. 내가 품은 것은 협의라 생각하는 이유요.”

진솔함은 목리원이 가진 최고의 장점 중 하나였다.

닥친 위기에서 물러서거나 돌아섬을 떠올리지 않는 성정은 자칫 답답함으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를 바로 세워주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미 들킨 마당에 거짓을 말하고 싶진 않소. 협박하고 싶지도 않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믿어달라 부탁하는 일뿐이겠구려.”

목리원은 고개를 숙였다.

“협의로 살고 싶소. 내 이런 몸을 타고났음에도 이것을 바른 일에 쓰고 싶소. 하니,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겠소?”

바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목리원은 고개를 들지도, 답을 채근하지도 않았다.

그는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음을 알았다.

마철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길 한참, 그의 답이 돌아왔다.

“…오해가 있었나 보구려.”

마철곤의 입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목리원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작게 웃는 마철두였다.

“오해라 함은….”

“심문하려는 것이 아니오. 이것을 빌미로 협작질을 하려는 것도 아니오. 그저 내 예상한 것이 맞는 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철곤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쉬시구려.”

미련없이 돌아가는 모습에 목리원은 크게 당황했다.

하여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잠시…!”

“잊겠소.”

“…잊다니?”

“오늘 들은 이야기는 잊겠다는 말이오.”

마철곤이 지그시 웃으면서 말했다.

“묵룡께서 착각하는 게 있는 듯하오.”

조금은 장난스러운 어조였다.

“나는 흑도(??)요. 거창한 대의가 아닌 이익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이요. 힘의 본질이 아닌 그 크기를 따지는 이요.”

“그 말은….”

“내게는 중요치 않소. 당신의 체질도, 그 근원도, 그리고 의지도. 내가 아는 것은 하오문이 당신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것뿐이고, 신용을 무기로 삼는 장사치는 그에 마땅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뿐이오.”

목리원의 눈망울이 일렁였다.

마철곤은 끌끌 웃으며 이어 말했다.

“문주께서 보상을 약조하셨다지. 이 비밀은 그 위에 얹는 것으로 하겠소.”

목리원은 단번에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가 살아온 세상은 백도의 규율을 따르고 있었고, 그 규율에선 삿된 것을 멀리하라는 가르침만이 있었을 뿐이니.

정종에 속하지 않는 속성은 숨겨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 할 뿐이니.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에 따라 머뭇거림 또한 짙어졌다.

그리 한들 어쩌겠는가.

목리원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였다.

“…배려에 감사하오.”

목리원은 포권을 취했다.

깊은 감사를 담은 것이었다.

돌아온 답은 역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감사까지야. 내 속한 땅의 법도를 따를 뿐일진대.”

드르륵

문이 열렸고, 이내 닫혔다.

그때까지도 목리원은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

정양은 정확히 사흘 뒤에 끝났다.

하오문의 비처는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고, 이 이상 이곳에서 신세를 지는 것을 실례라는 판단에 용봉단이 떠날 채비를 끝낸 상황.

서예는 비처의 입구에서 문도들을 이끌고 그들을 배웅했다.

“이제 가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신세 많이 졌소.”

“신세라뇨. 저희가 해야할 말을.”

당화서의 말에 서예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다 손짓했다.

문도 둘이 앞으로 나와 총 여섯 개의 함을 내밀었다.

“약조한 100년 하수오에요. 난리통에 하나가 망가졌더라구요. 죄송해요. 여섯 개밖에 없네요.”

고개를 숙이며 내뱉은 말에 당화서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잘 되었구려. 일곱 개라면 누구 하나에게 더 줘야 할 터인데, 이번 일은 공로를 나누기엔 다들 너무 고생했으니 분란 거리는 없는 게 낫다 보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건 약조한 정보예요. 하오문이 아는 마인들에 관한 정보.”

서예는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꽤 두께가 있는 서찰은 마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서예가 도망 다니는 와중에도 알아낸 정보였다.

“감사히 받지.”

당화서가 서찰을 품에 넣었다.

이제 진짜 이별의 때.

서예는 단원들을 모두 바라보다, 남궁진천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그 또한 심드렁하게 서예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예는 피식 웃었다.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랫동안 함께 움직이고 고생 또한 같이 해버려 묘하게 정이 들어버린 상태.

‘그러니까….’

작별 인사는 하고 싶었다.

“검룡.”

“말하라.”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어요? 따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네년과 할 말은 없….”

“부탁드려요?”

서예의 얼굴 위로 순간 시린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남궁진천은 흠칫 몸을 떨다, 당화서를 바라봤다.

도움을 구하려는 것같지만 당화서는 그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듯 턱짓했다.

“다녀 오십시오. 저희는 이 앞에 있을 테니.”

“….”

남궁진천의 입이 꾹 다물렸다.

*

문도들도 용봉단도 모두 물러난 자리.

서예는 남궁진천과 마당을 걷고 있었다.

비처가 동굴 속에 있는 만큼 따사로운 햇볕 따위의 것은 없었으나, 서늘하고 편안한 분위기만큼은 있는 자리였다.

“…용건이 뭔가.”

남궁진천이 말했다.

서예는 흘끔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실로 무관심함이 드러나는 얼굴.

서예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따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어서요. 사실 제일 큰 공로는 검룡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과정에서 납치 따위의 일이 있었고, 그의 생각없는 말에 속이 다 뒤집어 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랬다.

전화위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궁진천의 행동은 결국 성공적인 비처의 탈환으로 이어졌고, 서예는 그 값을 치를 심산이었다.

“이거 받아요.”

서예가 품에서 천에 둘둘 말려 있는 물건을 꺼내 남궁진천에게 건넸다.

남궁진천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이게 무엇이지?”

“100년 하수오요.”

남궁진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여섯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당연히 거짓말이죠.”

서예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검룡께 드리려고 하나 빼돌려놨어요. 저 혼자 한 일이니까 들킬 일은 걱정 마세요.”

“왜….”

“말했잖아요? 그냥 제일 고생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거라고.”

남궁진천의 시선이 따갑게 박혔다.

서예는 물었다.

“안 받으려고요?”

“감사히 받지. 고생한 것은 맞으니.”

사양하지 않는 태도가 그답다.

서예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래도 꽤 정들었는데 떠나신다니 아쉽네요.”

“나는 그다지….”

“하수오도 받았으니 입 싹 닫겠다?”

“….”

“빈말으로라도 아쉽다고 해주면 좀 좋아요?”

“…아쉬운 것으로 치지.”

“어련하시겠어요.”

서예는 가만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굳은 얼굴과 심드렁한 기색.

‘역시 그 이상은 안 읽히네.’

남궁진천의 표정은 읽는 것이 꽤 어려웠다.

심계가 깊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제까지의 일로 미뤄보자면 그는 스스로를 숨기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니.

‘나쁘게 말하면 생각이 없는 거지.’

좋게 말하면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깊어 그것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여하튼, 무엇이 되었든 서예에게 남궁진천이 갖는 의미는 조금 각별했다.

속내를 파악하려 심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만큼 묘하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

‘조금 속이 뒤집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는 사람.

서예가 빙긋 웃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인연이 되면 만나겠지.”

“굳이 찾아오진 않겠다는 말이네요?”

“그래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긴 하죠. 당신은 오대세가의 후계자고, 저는 흑도방파의 문주니까.”

“알면서 뭘 묻나.”

남궁진천이 코웃음 쳤다.

그리곤 이어 말했다.

“떠나는 김에 나도 충고하나 하지.”

“뭔가요?”

“외간 남자에게 함부로 살을 보이지 마라. 실제 모습이 어떻든, 그런 행위는 천박함으로 비칠 여지가 있는 것이니.”

서예의 얼굴이 멍해졌다.

남궁진천은 그런 기색을 모르는지 또 말을 이었다.

“나 또한 너를 기억하지. 천박하긴 했으나 도의는 아는 계집으로.”

저런 말을 진지하게 하려면 어떤 사고를 하고 살아야 할까.

서예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이어 떠오른 것은 눈치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렇게 노려보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면 여간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할 말 있나?”

“있죠.”

서예는 묘한 기대감을 품었다.

이제부터 이 사내의 얼굴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를 떠올려보니 자연히 따라붙는 기대감이었다.

서예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남궁진천이 흠칫하며 거리를 벌렸다.

“도망치지 말고.”

탁!

서예가 남궁진천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를 끌어당겨 귀에 속삭였다.

“저 처녀에요.”

덜컥!

남궁진천의 몸이 굳었다.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서예는 기꺼운 기분을 느꼈다.

“제가 남자 만날 틈이 어딨어요? 15살때부터 문주 일이나 하느라 쉴 틈이 없었는데.”

굳게 믿었던 상식이 무너진 이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표정이 남궁진천에게 떠올랐다.

벙긋거리는 입술이 그의 당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룡. 여자 보는 눈이 없으셔요. 아주 많이.”

그리 속삭이고 다시 거리를 벌린 서예가 삐뚜름하게 웃자, 남궁진천이 흠칫 떨었다.

뺨이 미약하게 붉어져 있었다.

‘귀여운 면도 있고.’

아니, 귀엽다고 해야 할까.

어폐가 있긴 했다.

처녀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는 걸 보면 귀엽다보다는 징그럽다는 말이 어울릴 터다.

여하튼, 서예는 이제 떠나는 이 몹쓸 사내에게 준비한 진짜 선물을 건넸다.

“잘 가요.”

서예가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남궁진천과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서예는 남궁진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쿵!

그 정도로 큰 박동이었다.

조금 거친 입술.

꾹 누르니 새어 나오는 호흡.

이건 확실히 귀여운 반응이었다.

서예는 입술을 떼고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당신 위쪽 순결은 제가 가져갈게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는 서예는 분명 들었다.

남궁진천이 휘청거리며 땅을 밟는 소리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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