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06화 (106/334)

〈 106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13)

* * *

“목 소협! 괜찮습니까?”

눈을 뜬 목리원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놀란 얼굴의 당화서였다.

그 뒤로 낯선 천장이 있었고, 씁쓸한 약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여긴….”

말을 흘리던 중.

“…윽!”

목리원은 두통을 느꼈다.

칼로 머릿속을 헤집는 듯 따가운 통증이었다.

통증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살기에 취하고 있군.

연리건의 목소리와 그 순간의 감각.

짙어지는 살기와 함께 떠오르던 짜릿함.

그리고 선명하게 드러나던 연리건의 살로들.

목리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협! 정신 차리십시오!”

당화서가 목리원의 뺨을 쥐었다.

목리원은 정신을 차리고 당화서를 바라봤다.

뺨에서 느껴지는 손길이 무척 따스해, 목리원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무사히 진법을 발동했습니다. 마인들은 그 즉시 도주했고, 지금은 이틀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틀….”

목리원은 그 말에 몸을 일으키다, 이내 덜컥 들썩이며 몸을 멈췄다.

통증 탓이었다.

“더 누워 계시지요. 골절이 심각해 요양이 필요합니다.”

“다른 단원들은 어디에 있소?”

“다들 몸을 회복하고 있지요. 그나마 멀쩡했던 제갈 놈은 바깥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렇구려….”

목리원이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당화서가 뒤늦은 안도의 미소를 띠며 목리원의 뺨을 살살 문질렀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그자는….”

“스스로를 검마(?) 연리건이라 소개했소.”

“검마 말입니까.”

당화서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심각해지는 낯빛에, 목리원은 가만 그녀를 들여다보다 손을 뻗었다.

그리고 ‘툭’하고 그녀의 뺨 위에 손을 얹었다.

당화서가 움찔 떨다 몸을 굳혔다.

“…음?”

“소저는 괜찮소? 다친 곳은 없는 것이오?”

당화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시선은 떨렸다.

입술까지 우물거리니 이게 대체 무슨 반응인가 싶어 목리원의 의아함이 짙어졌다.

“소저?”

“…괜찮습니다.”

삐걱삐걱 당화서의 입꼬리가 솟았다.

“괜찮… 아 진 것 같습니다?”

조금도 괜찮아보이지 않는 얼굴이라 목리원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일어나 당화서의 양 뺨을 다시 쥐었다.

엄지로 눈 밑을 한차례 쓸고, 이마에 손을 짚어 열도 재보고 코밑에 검지를 대 호흡까지 확인했다.

역시 비정상적이었다.

얼굴이 너무 뜨겁고 호흡이 거칠었다.

“소저, 조금도 괜찮지 못한 것 같소. 이리 와 보시오. 내 맥이라도 한 번 짚어보게.”

그리 말하며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는 순간.

탁!

당화서가 목리원의 손을 쳐냈다.

목리원은 흠칫 놀랐다.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당화서를 바라보니, 그녀는 무언가를 꾹 참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며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입꼬리는 삐죽삐죽 올라가 있었고, 왜인지 무섭게 느껴지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리원이 움츠러들었다.

“소, 소저…?”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당화서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목리원은 그런 위기감보다 그녀에 대한 걱정이 더 큰 탓에 또 슬금슬금 당화서에게 다가갔고, 당화서는 목리원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조금 더 정양하십시오. 아, 물이라도 좀 떠올 테니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목소리에서 왜인지 고저가 느껴지지 않았다.

딱딱했고, 거칠었다.

목리원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벌떡 당화서가 일어나 방문을 향했다.

쾅!

부서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방문을 열고 닫았다.

꼴깍.

목리원의 목구멍 뒤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

당화서가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목리원은 스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화서가 돌아온 것인가 싶어 입을 떼는 순간,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 아우?”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은 제갈산이었다.

목리원의 안색이 밝아졌다.

“제갈 형!”

다른 사람에 비해 부상이 적다는 말대로, 제갈산은 멀끔한 상태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제갈산이 빠르게 문밖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무언가를 찾는 듯했고, 이내 한숨을 내쉬며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잰 걸음으로 목리원의 곁에 앉아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나?”

“일이라니? 무엇 말이오?”

“게 있잖나. 그 누니… 아니, 아니지.”

제갈산은 마른 세수를 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표정을 가다듬더니 목리원에게 말했다.

“…그래, 무사히 일어나서 다행이구먼. 내 아우가 눈을 뜨지 못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목리원은 그 말에 감격을 느꼈다.

역시 의형제라는 것일까, 들은 말론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바쁠 텐데도 이곳까지 찾아와준 것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제갈 형도 무사해서 다행이오! 내각 입구를 방어하느라 고생했다 들었소! 다친 곳은 없으시오?”

“나야 뭐 특기가 도망이지 않은가! 그냥 냅다 줄행랑을 쳐버렸지! 마인들이 날 쫓아와서 다행이었네. 도망치면서도 날 포기하고 내각으로 갈까 조마조마했거든!”

목리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갈산답다는 생각 탓이었다.

“여하튼 무사해서 다행이오. 돕고 있는 일은 잘 되어가오?”

“말도 마시게. 이 흑도들이 은혜도 모르고 아주 종놈 부리듯 부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제갈산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참으로 재치 넘치는 이야기꾼이라, 목리원은 빨려 들어가듯 제갈산의 말에 집중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다가 문도 하나가 똥을 지린 일.

그게 더러워 다른 곳을 도우러 떠났고, 그렇게 기력이 쇠약해져 있던 기녀들에게 직접 죽을 떠다 먹여준 일.

그러던 중 남편이 있는 기녀에게 추파를 던졌다가 남편을 피해 이곳까지 도망 나온 일까지.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목리원의 얼굴 위엔 경멸이 맺혔다.

“…제갈 형,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참 좋아하는 제갈산이지만 그가 이럴 때면 괜한 거부감이 떠올라 건넨 말.

제갈산은 제갈산이었다.

“목 아우,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일세. 크… 내 이 맛을 목아우한테도 알려줘야 하는….”

“뭘 알려주겠다고?”

순간 공간에 새로운 목소리가 겹쳤다.

차갑게 타오르는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

목리원은 데굴데굴 눈을 굴려 이마에 핏대가 솟은 당화서를 바라봤다.

꿀꺽

목리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눈을 돌려 바라본 제갈산의 낯빛은 희게 질려 있었다.

식은땀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음에도 웃음보단 울음으로 보이는 얼굴.

삐걱삐걱 제갈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괴이를 마주하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시선을 옮겼고, 이내 덜컥 굳어버렸다.

“…누님, 안녕하시오?”

“네놈 덕에 안녕하지 못하구나.”

물잔을 담은 소반을 바닥에 내려둔 당화서가 손을 풀었다.

뚜두둑

살벌한 소리와 함께 당화서의 손에 암녹색 기파가 서렸다.

“죄소….”

제갈산이 사과하려 했으나 당화서의 주먹이 한발 빨랐다.

빠악!

“꺼흡!”

제갈산의 명치에 정통으로 주먹이 꽂혔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와 활처럼 굽어버리는 허리.

목리원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외면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제갈형….’

자업자득이오.

*

다시 하루가 지난 날.

목리원이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운기조식을 하던 목리원은 미소지었다.

‘결국 초절정이 되었구나.’

심상에 떠오른 다섯 번째 별.

그것까지 이르는 하나의 길.

벽을 깨부순 일은 다만 공력의 상승만을 말하지는 않았다.

목리원은 더 깊이 있고 충만해진 내공을 느꼈다.

물론 내공의 포악함 역시 진해졌지만, 그것을 통제하는 목줄이 배는 튼튼해졌다.

성련신공(????)은 마음의 공부.

경지가 오를수록 더 깊이 있는 심력을 가지게 되고, 그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쌓이게 된다.

목리원은 과거 목선오의 말을 떠올렸다.

아직 그가 일류일 적 들었던 말이었다.

­지금이야 경지가 낮아 내공을 다루는데 심력 소모가 크겠지만, 그 일이야 갈수록 쉬워질 터다. 성련은 일견 부동심의 무공으로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경지가 쌓이는 것만으로도 그런 일이 가능해지는 거예요?

­하여 신공(??)이라 불리는 게지.

멋지게 웃으며 건네던 말.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스승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이제 내공의 통제가 전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급박한 상황을 연달아 겪으며 경험이 쌓인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본질적으론 성련신공의 덕이 컸다.

목리원은 눈을 떴다.

‘하나 방심해선 안 되겠지.’

이것 또한 목선오가 이른 말이었다.

­하나 결국 무공은 도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이 네 의지란다. 그러니 더욱 정진하거라. 다만 강한 힘을 얻는 것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갈고 닦음에 온 힘을 다하거라. 무릇 힘이란, 굳은 신념에 꼬리처럼 뒤따르는 부차적인 개념일 뿐이다.

목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하오문도들에게 배급받은 회색의 무복을 입었다.

깔끔하고 편한 무복에 목리원은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무인은 무복을 입어야지! 암!’

허리에 검까지 차고 그리 방을 나서려던 순간, 목리원은 문밖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낯선 인기척이었다.

“…누구시오?”

문도 중 하나이리라 예상하며 건넨 질문.

그것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오문의 장로 마철곤이라 하오. 내 들어가도 되겠소?

하오문 장로 마철곤.

목리원도 아는 이름이었다.

당화서가 이르길, 마철곤은 단원들을 치료해준 은인의 이름이었다.

목리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 들어오시오!”

­그럼 사양 않고.

드르륵

문이 옆으로 밀리며 열렸다.

목리원은 그제야 마철곤의 생김새를 알 수가 있었다.

떨어지는 머리 없이 모두 묶어 둥글게 말아 올린 백발.

수염처럼 길게 떨어져 내리는 눈썹과 신선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명치까지 내려온 수염.

그리고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와 주름.

목리원은 포권했다.

“이미 아시겠지만, 다시 소개하겠소. 무림맹 용봉단 소속의 목리원이라 하오. 은인을 뵙소.”

“하오문의 마철곤이오.”

마철곤이 마주 포권을 취하고, 이내 풀었다.

목리원도 따라 포권을 풀며 자리에 앉았다.

“한데 어쩐 일로 오셨소?”

“몸은 괜찮으시오?”

“그렇소! 어찌나 치료를 잘 해주신 건지 이제 슬슬 걷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더구려!”

금고에 남아있던 금창약 중 효능이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발랐다고 하던가.

과연 목리원은 귀물은 귀물인 이유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사흘 안에 다시 만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신난 기분에 미소가 귀에 걸린 목리원은, 직후 왜인지 좋지 않은 마철곤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시오?”

마철곤의 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다.

주먹은 왜인지 꽉 쥐고 있었고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긴장, 그리고 고민의 기색이었다.

“…마 장로?”

“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소.”

“음?”

“치료를 위해 당신의 맥을 짚었소.”

덜컥

목리원의 몸이 굳었다.

눈은 찢어질 것처럼 커졌고, 입술은 벙긋거렸다.

‘맥….’

비밀이 들켰다.

극마지체(??之?).

내공이 흐르는 혈도가 보통 인간의 정반대 모양으로 뒤집힌 몸.

보통은 단순히 맥을 짚는 것만으로는 이런 이변을 알 수 없을 터였다.

하나 그는 의술을 아는 의원.

그것도 치료를 목적으로 제 몸 안에 내기까지 흘려보낸 의원이었다.

목리원은 심장이 내려앉는 감각을 느꼈다.

차마 무어라 답을 건네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는 순간.

“묻겠소.”

마철두가 물었다.

“당신은….”

긴장과 경계를 가득 담은 채로.

“…마인이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