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05화 (105/334)

〈 105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12)

* * *

막 진법이 발현된 시점.

목리원을 상대하고 있던 연리건은 이변을 느꼈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진동.

그와 동시에 갑작스레 흐려지는 시야와 가빠지는 호흡, 어그러지는 박동.

‘진법이다.’

그것도 꽤 규모가 큰 진법.

아마 이 비처를 모두 다 뒤덮는 수준의 진법이 아닐까.

이어진 연리건의 판단은 빨랐다.

‘색마가 당했군.’

이들은 분명 문주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문주가 자신들은 모르던 비처의 무기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

연리건은 목리원을 바라봤다.

“흐으…!”

거친 호흡, 일그러진 표정, 그리고 포악하게 날뛰는 묵색 기파.

하나하나가 모두 목리원을 한계를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 그를 기절시켜 끌고가는 것이 맞곘으나, 연리건이 목리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있었다.

‘천살성이 일깨워지고 있다.’

목리원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속에 이성이라 할 것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의.

눈앞의 적을 찢어발기겠다는 충동.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끝이었다.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며 피가 튀고 살이 쪼개지던 중 일어난 현상이었다.

‘무리했다간 시간이 끌린다.’

더 시간이 끌렸다간 포획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전멸.

아니, 그 전에 완전히 일깨워진 천살성에 목이 달아나는 게 먼저일 수도 있었다.

연리건은 완전히 일깨워진 천살성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았다.

경지의 우위 또한 사라진 상황.

연리건은 전력보존을 선택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어딜…!”

쾅!

목리원이 폭음과 함께 쏘아졌다.

공방을 이어가며 슬슬 살의가 이성을 흔드는 수준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이 끝에 단원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이 사내를 막겠다 약조한 까닭이다.

쩌어어엉!

파공성이 일었다.

연리건은 순간, 검면을 비스듬히 틀어 목리원의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드러난 복부를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커억…!”

목리원의 호흡이 끊어졌다.

그런 중에도 그의 팔은 움직였다.

검이 연리건의 팔뚝에 꽂힌다.

푸욱

그대로 아래로 그어진다.

뚜두두두두둑!

뻐마디를 다 찢고 빠져나온 검.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핏물.

연리건은 미간을 좁히며 다시 한번 목리원을 걷어찼다.

빠악!

“커헉!”

목리원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연리건은 검을 수습하며 한 마디를 남긴 후 떠나갔다.

“다시 보자.”

쿵!

너덜거리는 팔을 잡고 연리건이 떠나간 자리.

힘이 빠진 목리원이 기절해 있었다.

*

양고혜가 비틀거렸다.

남궁진천의 주먹질에 큰 타격을 입고, 이어 펼쳐진 진법에 오감이 다 찌부러진 탓이었다.

남궁진천은 검을 주워들었다.

‘기회.’

진법이 발동된 이후부터 보이는 기이한 반응.

분명한 기회였고, 남궁진천은 놓치지 않았다.

화아악!

짙푸른 기파를 뿜어내며 남궁진천이 발을 디뎠다.

위에서 아래로.

허공을 크게 내리긋는 움직임에 따라 기파가 벼려져 아래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하나 역시 타격은 미비하다.

양고혜는 초절정의 마인이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지어낸 네 개의 백색 팔.

그것이 양고혜의 전신을 다 감싼 것이다.

“썩을 놈이…!”

빠드득 이를 갈며 양고혜가 남궁진천을 노려봤다.

남궁진천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슬슬 한계다.’

내공을 너무 많이 빨렸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공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무공.

한데 더 이상 그 우위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이대로 양고혜가 공격해온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터였다.

남궁진천은 눈을 굴렸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었고, 그 결실은 그가 생각지 못한 형태로 피어났다.

“색마.”

쾅!

한짝 남아있던 문을 걷어차며 문주실에 들어온 이가 있었다.

남루한 무복과 덥수룩한 머리.

그리고 풀린 동공과 한쪽이 너덜너덜해진 팔.

남궁진천은 눈을 크게 떴다.

‘초절정이다.’

게다가 느껴지는 마기로 보면 마인이 분명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길게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묵룡은 어디 있나.”

목리원이 강자가 있다며 막으러 간 사내.

그가 분명했다.

또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목리원이 당했다는 소리.

남궁진천이 살기를 토해내며 연리건에게 물었다.

연리건은 그를 흘긋 보다,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양고혜에게 다가가 그녀를 들처 업었다.

“철수다.”

“놔라! 놓으란 말이야! 내 저 찢어 죽을 놈을…!”

푹! 푹!

연리건이 양고혜를 점혈했다.

그리고 기절한 양고혜를 업은 채, 남궁진천을 보며 그리 읊조렸다.

“운이 좋군. 너도, 묵룡도.”

연리건이 그대로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적막에 휩싸인 문주실.

남궁진천은 그제까지 날카롭게 벼리고 있던 기도를 흩어냈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헉… 헉….”

가쁘게 터져 나오는 호흡은 말했다.

남궁진천이 이미 오래전 한계에 달해 있었음을.

그제까지 서 있던 것이 정신력에 빌어 일으킨 기적이었음을.

“검룡!”

금고에서 서예가 뛰쳐나와 남궁진천을 살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아! 몸이 이렇게…!”

남궁진천의 상태에 서예가 경악하는 중에도 그는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운이 좋아?’

연리건이 떠나가며 내뱉은 말.

저를 무시하는 말이었고, 그럼에도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꽈악

남궁진천이 주먹을 꽉 쥐었다.

분했다.

치욕스러웠다.

직전 나타나 떠난 사내의 말대로 진법이 조금만 더 늦게 발동됐다면, 혹은 그 사내가 공격해왔다면 자신을 꼼짝없이 당해 죽음을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

남궁진천이 참담함에 몸을 떨자, 서예가 걱정스레 그를 바라봤다.

“검룡….”

서예의 시선이 주변을 살폈다.

문주실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하오문의 비처 전체가 죄다 망가진 상황이다.

돌입 후 한 시진도 안 지난 상태.

이 모든 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승리하긴 했으나, 그것도 결국 이들의 도움이 있었던 까닭.

생각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지만, 서예는 지금만큼은 그것들을 미뤄두기로 했다.

“…일단 상처를 돌봐요.”

그리 말하며 남궁진천의 몸을 살폈다.

다른 단원들이 문주실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또 이 각 정도가 흐른 후였다.

“문주!”

가장 먼저 온 것은 당화서.

그의 품엔 목리원이 몰골이 되어 안겨 있었다.

“마인들은 다 달아났소? 검룡의 상태는 어떻소?!”

“괜찮다.”

남궁진천이 정좌한 채 답했다.

서예는 당화서의 품에 안긴 목리원을 보며 말했다.

“묵룡은….”

“내공을 모두 소모해 쓰러진 것뿐이오. 아무래도 진법이 발동되며 싸움이 멈춘 것 같소.”

당화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분노의 기색이었다.

“…한창 몰려오는 마인들을 막던 중 웬 사내가 헐벗은 여인을 업은 채로 달려오더구려. 초절정이었소. 저자도 막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그가 날 지나쳐가더구려. 마인들을 이끌고 말이오.”

결과는 성공이지만 속이 시원하지 못하다.

서예는 그녀가 삼킨 말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뻐끔거리는 입술.

서예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리 도와주셔서. 일단 단주도 쉬어요. 상태가 좋지 못하잖아요.”

당화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형상이었다.

하기야, 그 많던 마인들을 홀로 막아섰을진대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당화서가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몸을 숙여 목리원을 눕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았다.

“누님! 목 아우! 남궁 형!”

제갈산이 일운과 혜운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전원생존.

그것을 깨달은 당화서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나 하며.

*

폐허가 된 비처.

용봉단은 서예가 안내한 안채로 향해 그곳에서 몸을 정양했다.

그런 중에도 서예는 바빴다.

먼저 감금되어있던 문도들을 찾아 해방했다.

일천에 달하던 비처의 문도들 중 살아남은 것은 일백도 채 되지 않는 상황.

그들 모두가 내공이 다 빨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봐줄 만큼 비처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미안해요.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게끔 손을 빌려줘요.”

“이리 저희를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문주께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신 겝니다. 걱정일랑 마시지요.”

운이 좋게 살아남았던 장로의 말에 서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그것에 문도들은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그리운 문주를 만났다는 감격이 섞인 얼굴로 작게 웃었다.

“아, 그리고 마 장로.”

“예.”

“도움을 주신 분들이 상처가 심각해요. 혹 그들을 봐주실 수 있나요?”

마 장로라 불린 노인은 의술에 조예가 깊은 사내였다.

그라면 지금 몰골이 되어 있는 단원들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건넨 말.

마 장로는 흔쾌히 수락했다.

“흑도와 백도의 구분이 엄격하다 하나, 그것에 구명지은(??之?)을 외면한다면 인간 된 도리가 아니겠지요. 직접 살피겠습니다.”

“고마워요. 바로 가죠.”

“예.”

서예는 마 장로를 이끌고 안채로 찾아갔다.

그곳엔 응급처치를 마친 단원들이 있었다.

“마 장로가 여러분을 보살펴 줄 거예요. 의술에 조예가 아주 깊으신 분이니 믿고 맡기셔요.”

“고맙소.”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요.”

마 장로가 나섰다.

“그럼 상처를 보여주시오.”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남궁진천이 먼저였다.

마 장로는 그의 상태에 혀를 내둘렀다.

단전의 내공은 텅 비어버린 상태.

골절은 예사요, 내장은 반쯤 진탕이 되어 음식도 제대로 넘기지 못할 수준이었다.

‘내공의 충격이군.’

마기와 부딪치며 인 충격에 몸이 망가진 것일 터였다.

정양도 정양이지만 약초를 이용한 치료가 시급했다.

마 장로는 말했다.

“이 상태로 깨어있는 걸 보니 검룡이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닌가 보오.”

“….”

남궁진천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인들이 물러난 이후, 줄곧 이런 상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는 이유조차 자존심 탓이라면 이해가 될까.

그는 완전하지 못한 승리에 분노에 차 있었다.

‘젊은이의 혈기라는 건가.’

마 장로는 굳이 그를 자극하지 않고 다음 환자를 살폈다.

그렇게 다른 단원들을 모두 살피고 목리원의 차례.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공이 소진이라 했소?”

“그렇소. 안 그래도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는데 도통 깰 생각을 안하더구려.”

답하는 당화서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혹여 목리원이 크게 몸이 상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속은 이 순간에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마 장로는 그런 당화서를 흘긋 보다, 목리원의 맥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몸 상태는 괜찮소. 물론 아주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고, 무시 못 할 골절이 몇 있는 정도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피로 탓이 아닐까 싶소.”

“피로 말이오?”

“초절정의 마인과 단독으로 겨뤘다 들었소. 쉽지 않은 전투였을 터이니 그만큼 심력을 소모했겠지. 일단 며칠은 더 지켜보도록 하시오.”

“심력….”

당화서는 그리 중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호의에 감사하오.”

“별말씀을, 그럼 우린 가보겠소. 문주님, 갑시다.”

“아, 네.”

서예는 어색하게 일어나 짧게 목례했다.

“또 올게요.”

떠나는 서예의 시선이 잠시 남궁진천에게 머물렀다가, 이내 떠나갔다.

그리 조용해진 안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단원들은 각자 몸을 보살피기 위해 힘쓰고, 당화서만이 목리원의 곁에 남아 그를 돌보길 이틀.

“…소저?”

목리원이 눈을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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