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십이장 임무, 조사 (11)
* * *
서예의 감상과는 별개로 남궁진천은 진지했다.
마침내 마주한 초절정의 적수.
들끓는 감정과 찌릿한 살기.
이 모든 것이 재료가 되고 있었다.
‘초절정(??).’
그 지고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재료가.
‘따라주마.’
일찍이 더 이상 별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남궁진천이었으나, 이 순간은 기꺼이 별을 수용했다.
일시적인 동맹 관계라 해도 좋았다.
제왕성(?王?)이 바라는 미래와 지금 남궁진천이 바라는 너머의 경지가, 지금만큼은 같은 곳에 있었으니.
남궁진천은 그저 사고했다.
‘심의(心?).’
무엇을 바라보며 나아갈 것인가.
이 검으로 행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로 표출해 주장할 이상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부르짖을 스스로의 이름은….
‘답은 정해져 있다.’
검왕(王)의 손자, 제왕성(?王?)의 주인, 그리고 차기 천하제일(?下?一).
그를 일컫던 모든 말이 하나의 답을 향하고 있었다.
‘하늘.’
그 무엇보다도 드높이 솟아 그저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하늘이 되리라.
처음 검을 쥔 순간부터 변치 않았던 마음은 말한다.
이제야 그 이상을 향해 한 발짝 뻗을 때가 되었다고.
고오오
내공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낮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 한가운데, 남궁진천의 벽안은 더욱 시리게 빛났다.
쿵!
한 발 내디디며 검을 머리 위로, 그리고 내리그었다.
도화지에 붓을 칠하듯 공간에 검을 수놓았다.
제왕검형(?王?) 1식, 창천무상(??無?).
푸른 하늘 아래 모든 상념의 의미가 사라지니, 다만 고고함이 있으라.
화아아악!
양고혜의 정수리에서 벼려진 내기가 아래로 떨어졌다.
양고혜는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남궁진천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가로베기.
거리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제왕검형(?王?) 2식, 천중일섬(?中一?).
제왕의 검은 적을 쫓지 않음이니, 다만 왕좌에 앉아 적을 멸하라.
오만한 구결 그대로, 상대가 어떤 자리에 있던 내공이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남궁진천의 검은 닿았다.
콰아아앙!
양고혜의 허리에서 내공이 폭발했다.
양고혜는 인상을 구겼다.
“난폭하긴.”
화르륵!
백염이 치솟았다.
그것이 선녀의 비단옷처럼 살랑이며 양고혜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네 개의 팔로 화했다.
기공(??), 백수나찰(白手).
이미 완숙한 초절정의 지경이라, 양고혜는 그것을 형상화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탁!
양고혜가 가볍게 발을 굴려 내달렸다.
남궁진천은 집중을 더했다.
순간, 시야가 길게 늘어지는 기분과 함께 몸이 절로 움직였다.
제왕검형은 같은 적에게 같은 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스승이자 조부인 검왕(王) 남궁혁의 조언대로, 다음 수를 엮기 시작했다.
그것조차 사치이니.
남궁진천이 오른발을 뒤로 물렸다.
검을 비스듬히 세우고 그 끝을 달려오는 양고혜에게로 향했다.
휘이이
남궁진천의 몸 주변으로 짙푸른 기파가 소용돌이쳤다.
두 차례 검을 휘두르며 정련한 기도.
가로와 세로로 두 차례 검을 휘두르며 생긴 하나의 점.
남궁진천이 지은 하늘의 중심으로 검이 쏘아져 나갔다.
제왕검형(?王?) 3식, 천원쇄도(????).
다만 검이 다다라 있어야 할 곳은 천상의 중심이니, 향한다면 오로지 그 길로만 맹렬히 내달리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집중 중에 발현된 기파.
그것은 이미 하나의 공력(?力)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심의(心?)를 일컬어 천정(??).
크게 날개를 펼친 남궁진천의 기파가 공간을 푸르게 물들여, 이윽고 양고혜의 행동을 통제했다.
‘무슨…!’
달려가는 끝에 남궁진천의 검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하나 양고혜는 멈출 수 없었다.
공간을 뒤덮은 흐름이 그녀를 저 자리로 이끌고 있는 까닭이다.
기파를 터뜨려본다 한들 그 순간 자신의 미간은 저 검 끝에 닿아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
양고혜는 이를 악 물었다.
기공으로 지은 네 개의 손으로 안면을 막았다.
그리고, 검이 그 손을 뚫었다.
뚜두두두둑!
검로가 흔들렸다.
끄트머리에서 생겨난 빈틈에 양고혜가 고개를 뒤틀었다.
다행히 미간에 검이 박히는 것은 막은 상황.
하나, 남궁진천을 피해 멀어진 양고혜는 죽음보다 끔찍한 것을 맞이하고 말았다.
툭
바닥으로 따뜻한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양고혜는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피.’
어디서 흘러나온 피인가.
그것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콧잔등에서 아릿한 통증과 함께 축축한 감각이 일기 시작했으므로.
“어…?”
양고혜는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뜨겁고 눅진한 액체라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굴이 상한 것이다.
“아, 아….”
양고혜가 몸을 벌벌 떨며 소리를 흘리자 남궁진천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시리게 빛나는 벽안이 그녀의 얼굴을 노려봤다.
입꼬리는 삐뚜름하게 솟았다.
“얼굴도 상했으니 줘도 먹을 놈이 없겠군.”
나름의 복수였다.
그것이 양고혜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뭐?”
“추하군. 네년 주제에 맞는 얼굴이다. 이젠 그 쓰레기 같은 몸뚱어리를 좋아해 줄 사내는 없겠어.”
비아냥이 가득한 목소리.
양고혜의 눈에 핏발이 섰다.
“감히….”
그녀의 마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감히이이이!”
“소리 지르지 마라. 어딜 창녀 따위가 언성을 높이나.”
콰아아앙!
양고혜가 내달렸다.
백염으로 이뤄진 네 개의 팔이 다시 한번 펼쳐져 그를 노렸다.
남궁진천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과 함께 차오르는 내력을 폭사했다.
검을 휘둘렀고, 팔을 쳐냈다.
!
내공의 충돌에 이명에 가까운 소음이 일었다.
한 발 떨어져 지켜보던 서예는 귀를 틀어막으며 눈을 부릅떴다.
‘무슨…!’
정말로 그 순간에 초절정에 오른 것인가.
남궁진천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악이 있었다.
이어 오가는 공방엔 서예의 경지로는 차마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심오함이 있었다.
검광이 번쩍이고 백염이 천장까지 치솟는다.
그 충격에 땅이 흔들리고 호흡이 턱턱 틀어막혔다.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상황.
하나, 그런 중에도 서예가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검룡이 불리해!’
경지를 뛰어넘으며 양고혜와 맞붙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곤 하나, 그것뿐이다.
깨달음엔 무릇 그것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 얻은 무기라면 그 생소함에 적응이 필요하단 말이다.
실제로 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폭발하는 내기가 걷어지는 순간순간, 서예는 남궁진천의 낮빛이 썩 좋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궁진천이 양고혜를 상대하는 동안 진법을 발동시켜야 했다.
서예의 시선이 침대 쪽을 향했다.
원래라면 집무실 책상이 있어야 했을 자리.
그 뒤로는 책장이 우뚝 서 있었다.
저것을 밀어내면 금고가, 그리고 진법의 중심이 나온다.
서예는 이를 악물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척을 죽였다.
그리고 문주실의 벽을 따라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죽어어어어!!!”
양고혜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남궁진천을 몰아붙였다.
남궁진천은 내공이 뭉텅뭉텅 깎여나가는 와중에도 그 수를 모두 받아냈다.
그의 시야엔 양고혜의 뒤로 움직이기 시작한 서예가 보였다.
‘시간을 끌면 되겠군.’
판단을 마친 남궁진천이 양고혜를 도발했다.
“쳐다보지 마라. 못생겨서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니까.”
“아아아아악!”
백수나찰의 팔 중 가장 위의 두 개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콰아아아앙!
남궁진천이 몸 주변에 깐 기막을 두드렸다.
이어 그 아래의 두 팔도, 양고혜의 팔도 미친 듯이 폭주하며 쏘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광!
“흡!”
남궁진천은 인상을 구기며 버텨냈다.
하나, 쉽지만은 않았다.
소수마공(?手??).
가장 악독한 마공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그것은 손에 닿는 이의 내력을 빨아먹는 흡공(??)이었다.
즉, 이리 대치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남궁진천의 내력은 더 빨리 달아나게 되는 것이다.
상성의 문제였다.
흡공을 상대하려면 상대가 내공을 빨아들이기 전에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정석.
하나, 이제 막 심의를 깨우친 남궁진천에게 그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우스운 일이라면, 대치가 길어져선 안 될 흡공을 상대로 남궁진천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유가 원래부터 경지를 아득히 벗어나 있던 그의 내공량 덕분이라는 것.
남궁진천은 그리 내공이 빨렸음에도 아직 버틸 여력이 있었다.
‘하나,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서예가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양고혜가 저쪽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더욱 시선을 끌어 잡아야 할 터.
남궁진천은 공세에 들어갔다.
검이 아래에서 위로 강렬하게 치솟았다.
턱과 입술을 노리는 공격이었고, 양고혜도 그걸 느꼈다.
“이게…!”
또 얼굴을 상하게하려 한다.
양고혜가 본능적인 위기감에 고개를 뒤로 빼자, 남궁진천의 눈이 빛났다.
검로가 바뀐다.
힘의 배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불안정한 검로는 목리원을 따라한 것.
직접 당해본 입장으로서, 이런 의외성은 불안정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해볼만한 것이었다.
위로 치솟던 검이 뒤틀려 가슴 한가운데를 길게 긋는 검로로 화했다.
양고혜는 ‘아차’하며 마기를 폭사해 몸을 뒤로 물렸으나, 검은 이미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서걱!
그제까지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리고 있던 상의 매듭과 함께 가슴골에 긴 자상이 새겨졌다.
피가 튀어 오르고, 옷섬이 풀어헤쳐졌다.
탁!
양고혜가 땅에 발을 디뎠다.
남궁진천이 역겹다는 듯 말했다.
“젖도 처져있군. 추하다.”
“이 쓰레기 같은 동정 놈이…!”
“제아무리 동정이라지만 네년한테는 안길 생각이 안 생기는군. 추한 얼굴에 추한 젖에 추한 자상까지. 역겨움의 끄트머리를 달린다. 게다가 닭장 냄새까지 나는 듯하다. 제발 부탁이니 쳐다보지 마라.”
도발은 유효했다.
어느새 서예는 방을 반바퀴 돌아 책장이 있는 벽에 다다른 상황.
양고혜는 그 와중에도 자신만을 응시하고 있으니, 불쾌하긴 해도 작전상의 성공이라 볼 수 있었다.
“아아아아악!!!”
양고혜가 또 발광하며 달려들었다.
남궁진천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폭발에 문주실은 엉망이 된 지 오래.
그럼에도 두 사람의 공세는 쉴새 없이 이어졌으며, 점점 커지는 부담에 남궁진천의 시선이 더욱 자주 서예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막 책장을 밀고 있었다.
하나, 그 순간 양고혜도 이변을 눈치챘다.
남궁진천의 눈이 굴러가는 것을 확인한 양고혜가 서예를 발견했다.
“썩을 년놈들이!”
양고혜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들이 무언가 수를 쓰려 한다는 것을.
양고혜가 몸을 돌리려 했다.
목표물을 서예로 바꾼 것이다.
남궁진천은 그것에 이를 악 물면서 양고혜를 물고 늘어졌다.
“시간이 없다!”
“다 밀었어요!”
서예의 말대로 책장 뒤로 시꺼먼 공간이 드러났다.
서예가 그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양고혜가 남궁진천을 밀어내려는 듯 이제까지 흡수했던 마기를 모두 터뜨리기 시작했다.
“꺼져라아!!!”
절체절명의 순간.
이대로 양고혜에게서 멀어졌다간 서예가 위험했다.
또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남궁진천이 다급해졌다.
‘어떻게…!’
순간.
‘…그거라면.’
무슨 인과일까.
이 순간 남궁진천은 가까운 과거 제갈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남궁형, 그거 아시오?
무엇을.
여인은 말이오. 가슴을 얻어맞으면 사내가 낭심을 맞을 때와 같은 통증을 느낀다 하더구려.
…그 얘기를 왜 하지?
그냥, 남궁형이라면 요긴하게 쓸 정보인 것 같아서.
무슨 말인지 똑바로 말해라. 검을 뽑기 전에.
히익! 난 급한 일이 생겨서 가보겠소!
번뜩!
남궁진천의 눈이 뜨였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남궁진천은 이것 보라는 듯 크게 검을 휘둘렀고, 양고혜가 그 검을 쳐내기 위해 막대한 공력을 쏟아부었다.
남궁진천은 검을 놓았다.
채앵!
너무나도 손쉽게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검.
양고혜가 당황하며 빈틈을 드러냈다.
남궁진천은 주먹을 말아쥐어, 거기에 남은 공력을 죄다 쑤셔 박았다.
그리고 뻗었다.
빠악!
양고혜의 가슴으로.
“꺼어억…!”
순간 양고혜의 숨이 끊겼다.
눈은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속으로 제갈산에게 말했다.
‘도움이 됐군.’
심심한 감사의 말이었다.
쿠구구구구궁
진법이 발동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