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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살검협-101화 (101/334)

〈 101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8)

* * *

목리원은 비처의 심부를 내달렸다.

그의 뒤로 당화서와 남궁진천, 그리고 서예가 있었다.

댕! 댕! 댕!

종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침입이 들킨 것.

하지만 네 사람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을 내달리며 몇 차례 전투를 치른 까닭에 이런 소란이 벌어진 것이었으니.

“앞에 또 있소!”

목리원은 검집을 크게 휘둘렀다.

빠악!

“컥!”

“크헉!”

일 수에 쓰러지는 두 마인.

하나 그들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확인할 틈은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던 까닭이다.

서예가 외쳤다.

“일 각이 지났습니다!”

제갈산이 외부의 병력을 교란할 수 있는 시각이 이 각.

서예는 앞으로 일 각 안에 심부의 비밀금고로 들어가, 진법을 발동시켜야 했다.

이제 심부를 절반 정도 지나온 상황.

빠듯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으리라, 그런 판단이 내려지던 중이었다.

멈칫!

목리원이 걸음을 멈춰세웠다.

동공은 좁아졌다.

시선을 던진 방향은 지금 향하는 곳과는 다른, 통로의 오른쪽이었다.

“목 소협, 무슨 일입니까?”

따라 멈춘 당화서가 목리원에게 물었다.

하나 목리원은 답할 수 없었다.

“…느껴지고 있소.”

“무엇이 말입니까?”

“적이 있소. 저곳에.”

목리원의 표정은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못 느낀 기척을 목리원만 느낀 이유는 하나였다.

‘살기.’

살기가 뻗어져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그것도 아주 정련되고 진득한, 얼마나 살업을 행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이의 살기가.

피부 위가 저릿저릿했다.

목리원의 천살성은 말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저것을 지나쳐선 안 된다고.

“…소저, 검룡 형과 문주를 데리고 안으로 가시오.”

“목 소협은 어찌하시려고 그럽니까?”

“저기 있는 이를 막아야겠소. 그래야만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오.”

당화서는 미간을 좁혔다.

당췌 목리원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적이 있다고? 목 소협이 긴장할 정도의?’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 정도로 강한 적이라면 필시 그 마기가 이곳까지 뻗어져 나와야 할 텐데, 지금 목리원이 바라보는 방향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

그리 치부할 수는 있었으나, 당화서는 그러지 못했다.

‘…목 소협은 감이 좋지.’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보면 그랬다.

사람보단 짐승에 가까운 직감을 가지고 있어, 이런 순간에 한해서는 자신보다 탁월한 판단을 내릴 때가 있었다.

당화서는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리원을 보내길 종용하고 있었다.

당화서는 결정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힘써 막아보겠소.”

스릉

여태껏 검집째로 무기를 휘두르던 목리원이 검을 뽑았다.

막아보겠다.

그런 단어를 선택한 것이 왜인지 불안해지고 있는 와중.

“우린 다시 가지. 시간이 없다.”

남궁진천이 말했다.

당화서는 떠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닥!

세 사람이 다시 심부의 끝을 향해 내달렸다.

*

목리원은 살기가 느껴지는 쪽으로 계속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했다.

‘…저자다.’

사람 백은 거뜬히 수용할 것 같은 거대한 방.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추론할 만한 모든 기물이 사라진 그 방의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

얼굴을 다 가리는 치렁치렁한 머리.

길바닥의 거지나 입을 법한 남루한 무복.

그리고 품에 끌어안고 있는 폭이 한 뼘은 될 것 같은 커다란 검.

“…누구시오.”

목리원이 긴장된 목소리로 묻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칼 사이, 동공이 풀려있는 눈으로 목리원을 물끄럼 보던 남자가 답했다.

“연리건.”

힘없는 목소리였다.

“검마(?).”

흠칫

목리원이 어깨를 들썩였다.

눈은 찢어질 듯 크게 뜨이고 있었다.

‘검마? 색마가 아니라?’

서예는 분명 이곳에 있는 육마(??)는 색마(色?)라 말했다.

한데 이곳에 왜 검마가 있는 것인가.

정보가 잘못된….

‘…아니.’

목리원은 이윽고 깨달았다.

‘검마‘도’ 있는 것이겠지.’

이곳에 있는 것은 육마 중 둘.

전력이 충원됐다.

목리원은 전신에 긴장을 더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예상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듯하다.

빨리 그를 쓰러트리고 당화서 쪽으로 붙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섣불리 그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자는 초절정이다.’

그것도 어설픈 초절정이 아닌, 완전한 초절정.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느껴지는 살기.

아주 농후하고 끈적해 숨이 뜨거워질 정도의 살기가 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저리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목리원은 입술을 달싹였다.

“…물어볼 것이 있소.”

“얼마든지.”

“저 안에 있을 색마도 당신만큼 강하오?”

“….”

연리건은 고개를 숙였다.

잠시 입술을 뻐끔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다, 이내 저었다.

“염마 보다 약하다. 색마는.”

오강악이 기준이라.

목리원은 잠시 생각을 잇다, 이내 답했다.

“그럼 검룡 형이 이기겠구려.”

“높은 확률로.”

“그걸 알면서 태평하게 굴어도 되는 것이오?”

“내 임무는 이곳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연리건은 아직도 자리에 앉은 채였다.

대체 무슨 말인가.

목리원이 의아함을 띄워 올리자, 연리건이 말했다.

“천살성. 너를 데리러 왔다.”

“…내가 목적이었군.”

목리원은 전처럼 당황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제는 알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저들의 목적에 제 천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사살인가, 그도 아니면 납치인가.’

여러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그것마저 오늘에 와서 좁혀졌다.

“왜 나를 납치하려 하는 것이오?”

“그것이 명령이니까.”

“누구의?”

“소교주님의.”

“…소교주라.”

다음 천마신교의 주인.

그가 직접 노리는 것이란 말일 테다.

하기야, 중원 침공이 어디 아랫것들끼리 벌인 일은 아닐 테니 당연하다.

목리원은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연리건을 노려봤다.

멍한 얼굴이라 생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더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쉬이 알려 주시는구려.”

“알려주지 말라는 말은 명령에 없었다.”

“당신들을 육마라 부른다고 들었소.”

“그래.”

“권마(??). 그를 아시오?”

“패웅추.”

“그는 살아서 악행을 이어가는 중이오?”

“살아있다. 명령을 따르는 중이다.”

권마 패웅추.

무림맹으로 향하던 표행에서 그를 습격하고, 표국 무사들을 참살한 마인의 이름이었다.

목리원은 그 일을 잊지 않았다.

그날 느꼈던 패배감도, 분노도, 슬픔도.

언젠가 모두 갚아주겠다는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겁게 타오르며 목리원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강해져 있소.”

“오강악만큼, 그리고 더 강해질 거다. 재능이 있으니.”

“그렇소?”

살아있다.

강해질 것이다.

들을 것은 모두 들었다 판단한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아아

그리고 묵색의 기파가 흘려냈다.

“알려줘서 고맙구려.”

“고마울 것 없다.”

연리건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릉

폭이 한뼘은 되는 넓고 기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무슨 검술을 쓸지 감도 안 잡히는 모양새의 검.

연리건이 말했다.

“알아봐야 쓸모없는 일. 너는 패웅추와 싸우지 못한다.”

“당신이 잡아갈 것이기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게요?”

“옳다.”

“오만하구려.”

목리원이 기수식을 취했다.

“당신들은 하나 같이 그렇소. 내가 천살성이라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별이 어떤 별인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

살기가 전신을 짓누른다.

하나, 그럴수록 목리원은 강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천살성과 극마지체.

마(?)로서 살(?)을 행하기 위해 지어진 이 중원 땅에서 둘째가라면 모자랄 무재.

목리원은 그것을 타고난 사내였다.

“이 살기를 이용하지 않으려 했소. 그것이 삿된 일이라 생각한 까닭이오.”

“….”

“하나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오. 내 존경스러운 분께 배웠거든.”

목리원은 무림맹에 입단한 후 얻은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머나먼 선배들의 따끔한 회초리.

그것은 분명 목리원의 심경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융통성을 가져 보시게.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어선 더 나아가는 일에 장애가 생길 것이니.

사백운은 융통성을 말했다.

­강호는 결국 강자존이다. 네놈이 옳음을 말하고 싶으면 증명하거라. 네게 그럴 힘이 있음을.

염소소는 힘을 말했다.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이들이 가르침을 내려줬다.

목리원은 이제 망설이지 않을 것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일에도, 살기를 이용하는 일에도,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일에도.

“받아 가 보시오. 천살성.”

목리원이 쏘아져 나갔다.

째앵!

연리건은 칼등으로 검초를 막았다.

그리하며 말했다.

“얼마든지.”

싸움이 시작됐다.

*

채앵!

날 선 검명이 연이어 울렸다.

목리원은 한 순간의 깜빡임도 없이 계속해서 연리건을 응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채재쟁!

신형이 흐려질 정도의 쾌검폭풍.

만련이검의 1식 탈혼번쾌였다.

몰아치는 이유는 하나, 그의 검이 어떤 식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하나, 잘되지 않았다.

‘방어가 굳건하다.’

방어 외엔 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듯했다.

그 방어를 뚫어내려 해도 문제였다.

‘이래서 검면이 넓은 건가?’

보통의 검보다 배는 넓은 검면을 마치 방패처럼 사용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도 능숙했다.

제아무리 마인이라 한들 초절정에 닿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을 생각해도 방어에만 너무 숙련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째앵!

또 한 번 크게 검이 충돌했다.

순간, 목리원은 왼쪽 허리에 살기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검집으로 허리를 막았다.

쩌엉!

“크흡!”

발차기였다.

마기를 잔뜩 실은 각법에 목리원의 몸이 구석으로 날아갔다.

쾅!

목리원이 벽에 부딪쳤다.

순간 꽉 막히는 호흡, 풀린 자세.

그것은 벽에 부딪친 충격이라기엔 너무나도 큰 통증이었다.

‘내가중수법!’

공력을 몸속에 쑤셔 넣은 후 안쪽에서부터 터뜨리는 수법.

목리원은 깨달았다.

“…검마는 무슨.”

저 검은 휘두르기 위한 검이 아니다.

공격은 오로지 몸으로만 한다.

“졸렬한 수를 쓰는구려.”

“검을 들었으니 검마다.”

“치졸하오.”

목리원은 ‘흐읍!’ 숨을 들이쉬고 자세를 다잡았다.

연리건은 여전히 같은 자리.

방어를 이어가겠다는 뜻이 굳건해 보였다.

‘이대론 안 된다.’

다른 걸 떠나서, 저 방어를 뚫을 힘이 모자랐다.

절정과 초절정.

고작 한 단계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 얇은 벽의 높이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목리원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역시 절정으로는 안 되는구려.”

“그렇기에 경지지.”

연리건은 말했다.

여전히 멍한 눈, 멍한 목소리로 살기를 줄줄 흘려내며.

“포기해라. 너는 못 한다.”

“무슨 근거로?”

“경지가 떨어지니까.”

우스운 말이었다.

목리원 그리 생각했다.

“아시오?”

“무엇을.”

“나는 이 강호에 나온 이후로 언제나 강자와 싸워 왔다오.”

처음 발디뎠던 수양현.

그곳에서 목리원이 싸운 것은 절정 중입의 표산이었다.

귀곡을 지나 안휘의 용봉지회에서 맞선 것은 당대의 기재들, 그리고 무한으로 넘어가며 권마 패웅추를 만났다.

이후 친선 비무로 금검 권표월, 다시 섬서에서 염마 오강악.

승리도 패배도 있었다.

하나, 목리원은 그 승부들을 앞에 두고 단 한 번도 경지의 미달로 인한 포기를 떠올리지 않았다.

목리원은 다시금 기수식을 취했다.

“경지는 변명이 되지 못하오.”

사아아

묵색의 기파가 목리원의 전신을 감쌌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결국 검수의 의지니.”

이때까지와는 달랐다.

묵색의 기파는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목리원의 전신을 휘감아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목리원이 검 끝을 연리건에게 겨눴다.

전신을 찍어누르는 듯한 살기.

은은히 흘러나오는 마기.

그것에 날뛰는 제 내력과 세상이 회백색으로 탈색되며 날카로워지는 감각.

‘준비는 충분하리만치 해놨다.’

목리원은 직감했다.

“경지가 문제라면 뚫으면 그만이오.”

지금이야 말로 초절정의 벽을 뚫을 순간임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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