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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살검협-100화 (100/334)

〈 100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7)

* * *

용봉단과 서예는 더 지체하지 않았다.

서예가 이른 말 때문이었다.

“정체를 숨기지 않고 귀주에 들어오셨죠. 여러분이 오신 걸 마인들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것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제가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했으리란 걸 예상할 수 있을 거구요. 그러니 더 지체해서 방비할 시간을 주면 안 돼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여 최소한의 채비를 마친 후 늦은 밤 작전을 결행했다.

성도를 나서 가장 가까운 산으로, 그리고 그곳의 어떤 바위 사이로.

“이곳이 비밀 통로의 입구요?”

당화서가 묻자 서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대로 문주와 후계자만이 그 위치를 알던 비상구예요. 아마 이쪽을 통한 출입은 저쪽도 모르고 있겠죠.”

서예의 턱끝으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용봉단과 다르게, 그녀는 장원에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 일정에 꽤나 무리를 느끼고 있었다.

하나 지체할 수는 없는 일.

탁!

서예가 바위 사이에 돌을 던지자, 작은 충돌음과 함께 바위 사이에 공간이 생겨났다.

제갈산의 눈이 빛났다.

“호오, 진법이구려. 꽤 높은 수준의.”

제갈산조차 서예가 발동시키기 전까지 존재를 눈치 못챘을 정도로 교묘한 진법이었다.

“가죠.”

서예가 통로로 들어섰다.

“이곳은….”

목리원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관리가 되지 않은 통로였다.

앞을 밝히는 불빛이라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저 어두컴컴한 긴 동굴.

서예가 입을 열자 그녀의 목소리가 통로에 다 울렸다.

“벽을 짚으면서 움직여야 해요.”

“불빛이 없는 이유가 있소?”

“통로가 노출되면 안 되니까요. 제가 탈출하면서 다 치웠어요.”

철두철미했다.

당화서는 작게 감탄을 띄워 올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약 이 각 정도를 걸었을까.

서예가 직전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단원들을 멈춰 세웠다.

“이 너머부터 하오문의 비처예요.”

단원들의 얼굴 위로 긴장이 떠올랐다.

“어디로 통하고 있소?”

“곧장 심부의 입구로요.”

“입구? 한가운데가 아니라?”

“심부는 그 어떤 뒷구멍도 있으면 안 되거든요.”

사실 원래는 존재했다.

심부의 문주실 의자 뒤편을 열면 이곳과는 다른 비밀 통로가 나오지만, 그것을 전대 문주가 다 막아버려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

그런 내막까진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낀 서예가 일렀다.

“여튼, 대부분의 병력이 외곽을 지킨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해요. 비밀 금고는 최심부의 문주실 책장 뒤, 저희는 두 시진 안에 그곳까지 도달해야 해요.”

빠듯해도 너무 빠듯했다.

단순히 건물 안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이 각은 족히 소모될 게 예상될 정도로 큰 건물일진대, 전투까지 치러가며 움직이려면 잠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을 터였다.

당화서는 제갈산에게 말했다.

“…제갈산, 입구 쪽에서 밀려오는 병력을 교란할 수 있겠느냐?”

차라리 외부의 병력을 진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건넨 말이었고, 제갈산은 고민 끝에 답했다.

“이 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소.”

이 각.

훨씬 숨통이 트인다.

“그럼 너는 그쪽을 맡아다오. 일운 스님은 백봉을 데리고 제갈산을 호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심부는 저와 목 소협, 검룡이 갑니다.”

인원 배분은 3대 3.

아니, 서예가 끼인 심부 쪽은 4.

안 그래도 작은 인원을 또 쪼개려니 속이 다 아파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인들이라 해도 절정 이상은 드물 터다. 심부에 있을 색마는 나와 목 소협, 검룡이 한 번에 덤빈다면 시선을 끌 수 있겠지.’

노리는 것은 서예가 진법을 발동시키는 일.

듣기론 진법만 제대로 발동한다면 뒷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했다.

‘시간만 끈다.’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자.

“그럼 인원 배분은 그리하고, 이제 출발해봅시다.”

“그럼 열게요.”

서예가 동굴의 끝에서 벽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벽이 ‘끼기긱’ 소리와 함께 열렸다.

드러난 것은 암벽.

이곳은 건물의 뒤쪽, 동굴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었다.

*

제갈산은 일운과 혜운을 이끌고 비처 외각을 향했다.

내각과 외각을 잇는 통로에 진법을 깔기 위함이었다.

통로의 위치는 이미 서예에게 들은 상태.

경신법을 이용해 은밀히 이동하던 제갈산은, 이내 손을 들어 뒤따르던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정지, 적이 있소.”

일운과 혜운이 숨을 죽였다.

제갈산은 골목 너머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적의 수를 확인했다.

‘다섯.’

이류 하나, 일류 넷.

당장 문 뒤에만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의 수였다.

제아무리 마인이라고 해도 일류가 넷이나 문 하나를 지키는 것은 과하다.

서예의 예상대로 침입을 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봐야 헛수고인 듯하다마는.’

이미 자신들은 심부에 들어온 상태.

제갈산은 씨익 웃었다.

“스님들.”

어찌 됐건 둘 다 스님이기에 그리 부르자, 두 사람이 제갈산에게 집중했다.

“내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소?”

“무엇입니까?”

“이 길로 쭉 돌아 외각으로 가주십시오. 그곳에서 난동을 부려줬으면 합디다.”

혜운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것 때문에 온 거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제갈산은 영리한 편이다.

게다가 진법적인 지식 또한 뛰어나니 그 인간 자체가 모자라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제갈산이라 한들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 무력.

그는 절저의 지경에 올랐다곤 하나 용봉단에선 가장 떨어지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섯 정도야 제갈 시주님이 어찌하실 수 있겠지만… 혹시 내각에서 소란을 듣고 나올 수도 있잖아요.”

제갈산은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눈을 끔뻑이다, 이내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별걸 다 걱정하는구려. 그쪽은 목 아우랑 누님이 알아서 막아주겠지.”

일운과 혜운의 얼굴 위로 미심쩍은 기색이 짙어졌다.

하나 제갈산은 드물게 고집을 부렸다.

“내 걱정일랑 마시오. 혹 위험하다 싶으면 다 때려치우고 두 분이 있는 곳까지 도망갈 생각이니까.”

“….”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 위에 미심쩍음이 사라졌다.

대신 얄미움이 떠올랐다.

제갈산의 족제비같은 미소가 진해졌다.

“부탁 좀 드리리다?”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에 응했다.

“그래도 너무 빨리 도망치진 마시구요.”

혜운이 그리 말하고 검을 뽑았다.

일운 또한 마찬가지.

“조금 있다 뵙지요.”

타닥!

두 사람이 외각으로 향하는 담벼락을 넘었다.

그제야 제갈산은 숨을 ‘훅’ 내뱉었다.

“이제야 혼자가 됐구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

“끄억!”

“억!”

털썩!

입구를 지키던 무인 다섯이 동시에 쓰러졌다.

제갈산은 뿌듯한 듯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이걸로 잔챙이는 끝.’

이제 해야 할 것은 진법의 설치.

하나, 제갈산은 그리하지 않았다.

“거 언제까지 변태처럼 관음만 할 것이우?”

그가 중얼거림이라기엔 꽤나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사내 하나가 스르르 튀어나왔다.

전신을 꽁꽁 싸맨 복면인.

색마 양고혜의 부관, 양돈이었다.

“…눈치는 빠르군.”

“눈칫밥 먹고 산 날이 하루이틀이 아닌 지라.”

“여유 부릴 틈이 있나?”

“없을 건 또 뭐요.”

제갈산은 사내를 보며 히죽 웃었다.

“내 형장이랑 좀 놀아보려 동료들까지 다 떠나보낸 참인데 이리 차갑게 굴면 섭섭하다오?”

“….”

양돈은 제갈산의 기색을 살폈다.

‘무공은 절정 초입.’

족제비 같은 인상과 능글맞은 태도를 보아하니 이자가 괴룡 제갈산일 터였다.

양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부러 홀로 남았다라….’

같은 절정이라곤 해도 수준 차이라는 게 있었다.

양돈은 완숙한 절정의 중입이었고, 또한 제갈산과는 다르게 잡기보다 파괴력에 집중된 마공을 익힌 상태.

일대일의 정면 승부라면 그에게 승산은 없었다.

‘…자기과신이군.’

양돈은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등 뒤에 매고 있던 태도를 뽑았다.

스릉

날 선 쇠붙이의 소리가 울린다.

“고통스럽진 않게 끝내주지.”

“어이쿠, 고마워라.”

“외로울 걱정도 없을 것이다. 저 밖의 백봉과 권룡도 곧 네놈을 따라갈 테니.”

제갈산은 그제까지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양돈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엇이 그리 우습지?”

“형장께서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과신은 네놈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순간.

“그리 보이오?”

등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양돈은 흠칫 놀라며 뒤돌아 검을 휘둘렀다.

사악!

하나 베이는 것은 허공.

“어딜 보는 것이오?”

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검을 휘두르니 이번에 벤 것도 허공이었다.

“무, 무슨…!”

양돈은 아연한 얼굴을 만들었다.

제갈산은 여전히 같은 장소에 서 있건만, 목소리는 계속해서 다른 곳에서 울리고 있으니, 놀란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양돈은 오싹함을 느꼈다.

‘위험.’

지체해선 안 된다.

저놈이 숨겨둔 한 수가 있다.

콰앙!

그런 생각에 마기를 터뜨렸다.

제갈산은 히죽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 옛날 이야기 하나를 알고 있는데, 들어보겠소? 아, 긴 이야기는 아니오. 난 이 이야기를 아주 짧게 축약할 수 있다오.”

양돈은 그대로 쏘아져 태도를 휘둘렀다.

하나, 제갈산의 신형은 양돈이 베는 순간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그가 또 나타난 곳은 양돈의 뒤였다.

“별의 이야기요. 우리 남궁형도 가지고 있는 그 별말이오.”

양돈은 또 마기를 폭사하며 검을 휘둘렀다.

몇 차례, 몇십 차례, 제갈산을 어떻게든 쫓겠다는 마음으로 벨 때마다 흐려지는 그의 신형을 계속 쫓았다.

하나 쫓을 수 없었다.

사악!

제갈산은 계속해서 흩어졌다.

애초에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엇이냐!’

대체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것인가.

‘진법?’

그새 진법을 깔았나?

아니, 진법이라기엔 그럴 틈이 없었다.

양돈은 그가 홀로 이곳에 나타날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보법?’

제갈의 보법이 그리도 신묘하다 했다.

그것을 이용한 것인가?

‘…아니다.’

제아무리 보법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쫓을 수 없을 리가 없었다.

무공은 자신이 훨씬 뛰어났다.

혼란이 가중된다.

이제와선 왜인지 모를 께름칙함까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제갈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고독한 별이오.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별이지.”

사악!

양돈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 별을 타고난 아이가 있었다오. 어미를 아주 사랑하는 아이였소.”

신기루를 쫓다 보면 언젠가는 그 본신에 닿을 수 있으리라.

그런 판단에 휘두르는 검이었다.

“아이는 행복했지. 제게 별이 깃들어 있음을 모를 땐 그러했소. 따스한 어미의 품과, 부유한 집안, 또한 영민한 머리가 있어 매일매일이 즐거웠거든.”

하나 닿지 않는다.

양돈은 그저 신기루만 쫓을 뿐이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소. 별이 아이에게 이른 탓이오.”

양돈이 멈춰 섰다.

순간.

푸욱!

그의 가슴을 비집고, 기다란 낱붙이 세 개가 삐져나왔다.

“쿨럭…!”

양돈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양돈은 고개를 돌렸다.

등 뒤, 제갈산이 히죽 웃으며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는 영원히 고독할 것이라고.”

제갈산의 오른 손엔 기이한 무장이 끼워져 있었다.

팔뚝과 손등을 감싸는 수갑.

그것의 손등 부분에 발톱처럼 붙어있는 세 개의 얇은 검날.

조갑(??)이었다.

양돈은 덜덜 떨리는 턱에 힘을 꽉 준 채로 제갈산의 눈을 바라봤다.

‘검다.’

사람의 눈동자는 원래 검다.

하나, 그것을 생각해도 너무 검다.

저 속에선 세상의 그 어떤 광채도 제 빛을 뿜을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양돈은 그런 눈을 알고 있었다.

“…절연성(??).”

그 별을 품은 이를 고독으로 이끄는 별.

별의 주인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단명케 하는 저주받은 별.

이 사내는 그 별의 주인이었다.

제갈산이 빙긋 웃었다.

“아시는구려?”

쑤욱!

제갈산이 조갑을 뽑아내자 양돈이 털썩 쓰러졌다.

그는 이제야 제갈산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절정의 끝자락.’

그는 절정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한 걸음만 더 걷는다면 초절정에 이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끝자락에.

양돈은 깨달았다.

‘방심했군.’

내공 수위가 일천하다는 이유로 섣부르게 판단했다.

그는 내공‘만’모자란 것이었다.

제갈산의 말대로, 자기과신이었다.

“원래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두 명이었소.”

제갈산은 허리를 숙여 양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의 어미가 제게 이르던 말을.

­산아, 그 누구에게도 이르지 말거라.

“…한 명이 되었다가, 오늘 다시 두 명이 됐지.”

­웃거라. 너는 이 어미를 닮아 웃는 얼굴이 참으로 어여쁘니.

제갈산은 씁쓸하게 웃었다.

“한데 또 나 하나가 되었구려.”

양돈은 점점 시야가 뿌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 속에서 생각했다.

‘…위험하다.’

이 사내는 너무 위험하다.

생각과 함께, 양돈의 생이 스러져갔다.

이윽고 양돈이 시체가 되어 잠든 자리.

제갈산은 그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미안하오. 요즘 좀 답답해서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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