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막간 번뇌퇴산 (2)
* * *
목리원의 도움이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났다.
당화서는 복에 겨워 죽을 맛이었다.
매 순간순간 심장을 철렁거리게 하는 외모도, 순진하게 웃는 얼굴이나 자각하지도 못하고 내뱉는 말에 그리된 것이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
“소저는 머릿결이 참 좋은 것 같소. 이렇게 빗질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오.”
이젠 일과가 되어버린 빗질.
목리원은 재잘대며 낯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었다.
“그, 그렇습니까….”
“음, 부드럽고 소저의 냄새가 나오.”
스윽
빗이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당화서의 심장이 철렁했다.
오늘도 목리원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터라, 다행히 표정만큼은 들키지 않은 와중.
“아, 끝났소.”
목리원이 머리칼을 조심스레 손에서 놓았다.
당화서는 ‘흐읍!’ 심호흡한 후에 고개를 돌리며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신세를 졌군요.”
“당연히 해야할 일이오!”
목리원의 시원스러운 미소에 당화서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러다 피식 힘빠진 웃음을 흘려내며 말했다.
“그럼 식사라도 하러 가지요.”
“일은 끝난 것이오?”
“오늘치는 다 끝났습니다.”
“알겠소! 그럼 내가 먹여주어야겠구려!”
벌떡 일어난 목리원의 눈에 언뜻 열정이 비쳤다.
당화서는 죄책감을 느꼈다.
사실 젓가락질 정도야 한 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을 숨기고 있는 까닭이다.
사람의 심리는 참으로 간사한 면이 있어, 이 순간 당화서가 하는 것은 결국 자기합리화였다.
‘…아니, 한손으로 하다 흘리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냐.’
체면을 위해서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외간 남자가 떠먹여 주는 밥을 먹는 것에 손상될 체면은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으며 내뱉는 말이었다.
“갑시다!”
그 말에 당화서가 식당으로 향했다.
*
용봉단의 식당은 그리 크지 않은 크기였다.
아무렴, 단원이 여섯일진대 굳이 큰 공간을 쓸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나 그것이 소담함을 말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돈을 처바른 식당.
건축에 들어간 자재부터 안에 들어찬 장식과 기물까지 고급품이 아닌 게 하나도 없는 호화로운 식당.
그곳에 딱 3개가 놓여있는 식탁 중 가장 왼쪽에 당화서와 목리원이 자리했다.
직후 숙수가 주방에서 나왔다.
“오, 목 대협!”
“숙수! 오늘은 고기 냄새가 나는 구려!”
“허허! 우리 목 대협 챙겨주려고 내 좋은 놈으로다가 구해왔지!”
“역시 숙수밖에 없소!”
목리원이 크게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당화서의 미간은 조금 좁아지고 있었다.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당신밖에 없다’라는 말을 뭐 저리 아무한테나 쉽게 하나.
이건 누가봐도 흘리고 다니는 모양새가 아닌가.
물론 숙수는 노년의 사내고, 먹을 것에 관심이 많은 목리원과 친밀함을 알고 있지만 그걸 생각해도 그랬다.
이렇게 아무한테나 ‘당신 밖에 없다’라는 말을 하는 게 습관이 들어버린다면 후일 큰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목리원의 말을 들은 색녀가 착각에 빠져 그를 범할 수도 있단 말이다.
저 숫기 없는 목리원이라면 어쩔 줄 몰라 할 것이고, 남자라면 훤한 색녀가 그걸 눈치채고 목리원의 양심을 자극할지도 몰랐다.
‘이런 저는 싫은 것이겠죠….’ 따위의 같지도 않은 연기나 하면서 목리원을 덮치려 할 터였다.
당화서의 얼굴이 불퉁해졌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색녀에 대한 짜증이 그녀의 속에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창 목리원과 대화하던 숙수가 그녀를 발견했다.
“아, 단주님도 팔은 괜찮으시우?”
“…예, 목 소협이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퉁명스러운 말에 숙수는 눈을 끔뻑이다, 이내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내 금방 기막히게 만들어 올 테니!”
돌아서는 숙수는 온통 흥겨운 기분이었다.
‘청춘이 좋구만!’
당화서가 목리원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 전각의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물론, 남궁진천만 빼고.
‘늘그막에 좋은 구경도 하고, 역시 숙수로 오길 잘한 듯허이.’
용봉단의 숙수 우재군.
그는 황실 숙수까지 해본 경력이 있는 은퇴해도 될 재력이 있는 노인이었다.
이곳에 온 것조차 소일거리나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
우재군은 이 선택에 흡족함을 느꼈다.
아무렴, 일도 많지 않고 손님으로 오는 단원들도 하나같이 흐뭇한 미소가 나오게 하는 청춘들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찌 되려나.’
늙으면 느는 것은 오지랖이라.
우재군은 당화서와 목리원의 관계가 어찌 될지 하루하루 기대감에 살고 있었다.
*
“맛있게 드시우!”
우재군이 식탁에 음식을 올렸다.
돼지고기볶음이었다.
양념을 함께 볶은 것인지 붉은 기가 가득했고, 고기와 지방층이 적절히 섞여 먹음직스러운 형태.
게다가 함께 볶은 다른 채소들이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었다.
“잘 먹겠소!”
“아암, 맛있게 드시오!”
우재군이 주방으로 돌아갔다.
목리원은 젓가락을 들어 가장 크고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집어든 후 당화서의 입가에 들이밀었다.
“자, 아~ 해보시오!”
혹여 양념이 떨어질까 싶어 빈손으로 음식 밑을 받친 상태.
당화서는 신기하게도 그 순간 마음이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응? 어서 해보시오!”
당화서가 슬쩍 뺨을 붉히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목리원이 그 속에 고기를 넣곤 해사하게 웃었다.
“어떻소? 맛있소?”
“예… 목 소협도 드셔보시지요.”
“알겠소!”
당화서가 입을 가리며 말하자 목리원이 고기를 두 점 집었다.
입이 꽉 찰 정도로 많이 넣고 한 번에 씹어야 먹는 기분이 든다던가.
목리원은 뺨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음식을 욱여넣곤 뺨을 붉히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구려!”
이리 행복하게 먹어준다면 만든 사람 입장에서도 더 뿌듯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당화서는 문득 숙수와 목리원이 친한 이유를 깨달았다.
“자, 이제 소저 차례요!”
“아, 예.”
그리 목리원과 당화서가 주거니 받거니 식사를 이어가던 와중.
“음? 목아우?”
제갈산이 식당에 들어왔다.
일운과 함께였다.
땀에 젖어있는 몸을 보니 수련을 마치고 온 듯했다.
제갈산의 좁아진 눈이 목리원의 손을 향했다.
당화서의 입 앞으로 고기를 내밀어주는 손 말이다.
“으음….”
“팔이 불편해서.”
당화서가 차갑게 말했다.
“팔이.”
강조했다.
“불편해서.”
눈이 부릅 뜨였다.
반론을 허락지 않는 강경한 태도.
제갈산은 강도와 맞닥뜨린 상인처럼 움찔 떨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그랬구려. 빨리 낫길 비오….”
그리 말하곤 일운과 함께 반대쪽 끝자리로 갔다.
이것이 천적 관계의 표본이리라.
매사에 능글맞고 당황하는 일이 잘 없는 제갈산은 당화서의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차오르는 한탄이었다.
일운은 그런 제갈산을 잠시 보다, 이내 톡톡 어깨를 두드렸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
침묵이 보약이다.
그런 격언을 지론으로 삼는 일운은 말했다.
“말을 조금만 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일운이 보기에, 제갈산은 주둥이가 문제였다.
*
당화서가 목리원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팔은 멀쩡히 다 나은 상태.
하나, 당화서는 부목을 손에 쥔 채로 고민하고 있었다.
‘…풀고 가야 하나?’
그놈의 음험함이 또 일을 치는 것이다.
이 부목을 풀면 그간의 극락 같던 생활이 끝난다.
그 생각에 아닌 척 하면서도 당화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목리원이 머리를 빗겨주는 것은 좋다.
밥을 먹여주는 것은 부끄럽지만 설렌다.
혹여 어깨가 결릴까 안마를 해줄 땐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데 그것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은 길었고, 결론은 뻔했다.
“…크흠.”
당화서는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저 홀로 헛기침을 하곤 부목을 둘렀다.
그리하곤 밖으로 나갔다.
얼마 걷지 않은 시점 목리원이 나왔다.
“소저! 오늘도 힘내봅시다!”
목리원이 활기차게 말하자 당화서는 작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시간을 뺏고 있다는 자각 정도는 있었던 까닭이다.
또 흔들리는 마음.
당화서는 미안함이 차올라 말했다.
“제가 수련 시간을 너무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걱정마시오! 수련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멋쩍은 듯 당화서가 말하자 목리원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난 소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뺏기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소.”
“예?”
“소저랑 함께 있으면 행복하거든.”
쿵
또 심장이 말썽이었다.
당화서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으며 속이 꽉 조이는 것을 느꼈다.
풍경이 멀어지고 그 속에 목리원만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구김살 없는 미소가 햇볕을 반사한다.
어두운 갈색의 눈동자는 이 순간 저만을 담고 있다.
설렘과 긴장.
뒤이은 것은 조금의 원망.
표현에 있어 조절이란 걸 모르는 저 사내가 깊은 뜻없이 말을 내뱉었다는 것에 떠오른 감정이었다.
‘이러니까….’
제가 나쁜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말을 삼켰고, 당화서는 미소 지었다.
“…그럼 갈까요.”
“암! 갑시다!”
목리원이 당화서의 곁에 서서 걸었다.
한낮이지만 복도는 조용했다.
새소리나 풀소리가 작게 귀를 간질였고, 햇볕이 피부 위로 따사롭게 닿는다.
나른하고 편안한 분위기.
목리원도 그것을 즐길 심산인지 옅게 미소 지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흘끔대다 숨을 흘렸다.
직전의 박동을 수습하지 못해 아직 요상하게 뛰는 심장을 다그쳤다.
어느새 도착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목리원은 제 옆자리에 앉아 빗을 들기 시작했고, 당화서는 쭉 떠오르려는 입꼬리를 짓누른 채 자리로 가 등을 보였다.
빗질이 시작됐다.
목리원의 콧노래 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
그러던 중.
벌컥!
남궁진천이 들어왔다.
그리고 뚝 멈춰 섰다.
남궁진천도, 목리원도, 당화서도.
어색한 침묵 속 남궁진천은 벽안을 굴리며 상황을 살폈다.
두 사람의 위치, 자세, 목리원이 들고 있는 빗과 당화서의 머리.
그것을 모두 본 후에야 남궁진천은 말했다.
“연무장 보수가 필요하다.”
눈에 보인 것을 외면하는 말이었다.
아니,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남궁진천은 눈에 보인 것에 ‘머리를 빗겨주는군’ 이상의 사고를 하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남녀관계 쪽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당화서의 얼굴이 붉어졌다.
본디 말이란 것이 가진 특성 탓이었다.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제 용건을 내뱉는 말.
남궁진천이야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찔리는 게 있는 당화서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괜한 배려로 느껴졌다.
그냥 배려가 아니고, 눈치가 없어 상황을 더욱 어색하게 만드는 배려 말이다.
이어지는 것은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다.
뭐라도 변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치밀어 당화서가 벌떡 일어났고, 그 움직임 중 부목을 고려한 것은 없었다.
뽀각
부목이 부러졌다.
드러난 것은 앞으로 들린 채 굳건히 버티고 있는 당화서의 팔.
부상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어.”
당화서가 뒤늦게 눈치채고 멈춰섰다.
목리원은 눈을 깜빡이다, 이내 ‘아!’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소저! 팔이 다 나았나 보구려! 부목을 두르고 있어 몰랐나 보오!”
제멋대로 상상해서 내뱉는 말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당화서는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눈망울을 일렁이며 말했다.
“…그런듯합니다.”
부끄러워 죽고 싶었다.
그 촌극 속에서 남궁진천만은 이전과 같은 기색으로 말하고 있었다.
“연무장.”
그는 부숴 먹은 연무장의 보수가 급했다.
* * *